제3권 21화
071
쿠쿠쿠쿠쿠쿠!
브레스와 맞부딪힌 이정기의 검.
붉은 마력이 넘실거리며 브레스를 막아내고 있었다.
“뭐 해!”
소리치는 이정기.
“피하라고!”
그제야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막고 있는 이정기.
그 뒤에 자신들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으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난잡하게 뛰어다니는 헌터들.
“어, 어!”
김윤태도 즉시 그 대열에 합류해 몸을 내던졌다.
뒤의 헌터들이 피한 그 순간.
투캉!
이정기가 검면을 비틀어 브레스를 튕겨내곤 자리를 바꾸었다.
콰콰콰쾅!
이정기의 뒤로 쏘아져 나가는 브레스.
치이익.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이정기의 검.
마동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히드라의 브레스를 이겨내진 못했다.
타앗.
땅에 내려앉은 이정기.
“하아. 하아.”
막대한 마력을 일순간에 소모했기에 지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브레스를 사용했으니, 잠시 틈이 있을 거야.’
이정기가 뒤를 살폈다.
“무, 뭐야…. 브레스는 적어도 더블 에스급 몬스터부터 사용 가능한 것 아니었어?”
“설마….”
“더블 에스급 보스 몬스터?”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그들.
이정기가 브레스를 막아준 것은 김윤태를 살리거나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히드라의 브레스를 눈치채며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
‘힘들어.’
지금의 자신으로 히드라를 상대하는 게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혼자였다면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상대할 수 있겠지만.
‘뒤에 뭘 남겨놓지 말거라.’
게이트에 들어온 것이 자신뿐만이 아닌 공격대원들도 함께라면.
특히나 김윤태와.
“…….”
이성 그룹에서 파견을 왔다는 저 헌터가 있다면 히드라를 상대하며 심한 상처를 입어선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 살렸다.
“계속 그러고들 있을 겁니까!”
소리치는 이정기.
“그냥 죽을 겁니까?”
가라앉은 목소리에 짙은 힘이 담겨 있었다.
“아니, 안…, 돼!”
“죽을 순 없어!”
“공격대장!”
김윤태를 부르짖는 헌터들.
하지만 제일 패닉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김윤태였다.
“어, 엄마….”
실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닌 꼼수를 이용해 오른 S급 공격대장으로서 몇 년을 활동해 왔다곤 하지만, 녀석이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상대하기 편한 적, 어려움이 닥쳐도 헌터들 뒤에 숨던 녀석이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그래서였다.
“살고 싶다면-!”
투캉!
네메아가 제 모습을 드러내며 양각된 사자상이 붉은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제 말에 따르란 말입니다!”
온다.
“어떻게 말입니까!”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있었다.
팀장급의 헌터들.
그리고 이정기와 함께 척후대로 임무를 수행했던 헌터들.
“전부….”
히드라고 불리며 넥타까지 보유한 녀석.
이들이 공격한다고 해봐야 히드라에게 제대로 된 손상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저를 지원하십시오.”
혼자 사냥한다.
그리고, 백여 명의 헌터가 자신을 지원한다.
그러기 위해.
“살고 싶다면 말입니다.”
파앙!
브레스를 막아준 것이었다.
* * *
공격대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지원 헌터라고 하지만, 절대 적지 않은 수의 딜러와 탱커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어떻게 이정기를 지원할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해서 지원 헌터들을 보호하세요.”
드드드드드.
“지원 헌터들은 모든 지원을 제게 집중해주시면 됩니다.”
드드드드드드!
간단한 명령.
헌터들은 잠시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굳히지 못했지만.
드드드드드드드!
느껴지는 진동에 결국 마음을 먹었다.
“알겠습니다!”
저 멀리 늪지가 터져나가며 접근하고 있는 거대한 동체.
저것이.
‘히드라.’
화아악-!
이정기에게로 지원 헌터들의 지원 스킬이 난무하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원 스킬을 한 명의 헌터가 받아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지원 계열의 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아무리….”
지원 스킬로 헌터를 지원한다지만, 그건 무제한인 게 아니었다.
헌터가 지원 스킬을 받아들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헌터의 한계 마력량.
만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천의 지원 헌터를 데리고 있다면 누구나 초 상위권의 랭커만큼 강력해질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이정기에게도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일렬의 지원 헌터들에게만 스킬을 사용하게 한 팀장.
“상관없습니다.”
더욱 가까이 오는 히드라를 보며 이정기가 말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하세요.”
“하지만….”
더욱더 가까이 온 히드라.
그 커다란 동체는 가히 숨이 턱 막힐 만큼 거대했으며, 그 거대한 동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대기는 물론 늪지까지 떨리게 하고 있었다.
이제 곧 녀석과 충돌할 시간이 된다.
“상관없다고!”
더 이상의 말다툼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외치는 이정기.
“……알겠습니다.”
결국, 지원팀장이 지원 헌터들에게 스킬을 종용했다.
화아악!
마력이 깃드는 것이 느껴지며.
꽈악.
근육이 옥죄여 온다.
근육이 급격한 성장을 하며, 신체는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졌다.
‘나쁘진 않네.’
처음으로 받는 제대로 된 지원에 이정기는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민혁 헌터라고 했죠.”
이정기는 김윤태의 옆에 붙어있는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
끄덕.
“당신이 저들이랑 같다고 생각합니까?”
“…….”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라면….”
경고.
“당신 먼저 치워야 할 수밖에.”
그제야 강민혁은 작은 숨을 토해내며 등 뒤로 손을 뻗었다.
우웅.
공명하는 마력과 함께 나타나는 빛무리.
그리고 그것은 이내 활이 되어 강민혁의 양손에 잡혀 있었다.
‘유니크 무기.’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무기, 저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파아앗!
네메아를 타고 흐르는 붉은 마력이 이정기의 머리칼마저 물들였다.
“공략 시작합니다.”
어느새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정기였다.
* * *
커다란 물뱀의 형상.
여덟 개의 머리를 지닌 히드라.
콰앙!
이정기는 녀석과 부딪히며 기다란 목을 노리고 있었다.
-키오오오오!
계속되는 타격에 통증이 있는 듯 히드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독액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뷔앙의 독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제대로 적중한다면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수준의 독액.
“전력을 다해 지원 헌터들을 보호하세요!”
이정기의 외침에 탱커와 딜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딜.’
이정기는 히드라의 동체를 걷어차며 도약하곤.
콰아아앙!
다시금 히드라의 머리통을 때렸다.
-키오오오!
하나의 머리통을 가격해 휘어지자, 또 다른 머리통이 이정기를 노리며 휘감겨 오기 시작했다.
피해야 하건만, 쉽지 않은 상황.
파아아앙!
그때 허공을 가르는 무언가가.
파앗!
히드라의 눈에 꽂혀 들어갔다.
빛나는 흰색의 화살.
‘강민혁.’
그것이 강민혁이 쏘아낸 화살임을 이정기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민혁의 화살로 생긴 틈.
‘기회야.’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하지만 히드라를 여러 번 타격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가죽이 두꺼운 데다가, 충격을 사방으로 흘려내고 있어.’
타격기로는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 힘들다는 것.
거기다 성장한 자신의 능력으로도 피해를 주기에는 약간 부족하다는 것.
‘볼텍스로 히드라를 쓰러트리려 했다간 금방 마력이 고갈될 거야.’
쥬피터의 번개?
하지만 그 또한 아직은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방법이 없을까.
[있습니다. 방법.]
그때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넥타.]
넥타를 통해 무언가 또 할 수 있는 게 있단 건가?
[네메아에 넥타가 깃들어 있습니다.]
“……!”
메티스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마동철이 사자왕의 철권과 네메아를 합치며 했던 말.
‘특이한 핵이 있더군.’
자신이 흡수한 넥타를 제외하고도 결정체가 네메아 안에 남아 있다는 것.
마동철은 그것이 광기를 일으키는 주범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넥타는 넥타와 공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메티스는 지금 그 핵의 또 다른 사용법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빨리.’
추락하고 있는 지금, 히드라가 몸부림치는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네메아를 켜십시오.]
메티스의 말에 이정기가 네메아에 막대한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정말 괴물같이 마력을 먹어치우는군.’
네메아를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마력은 S급 헌터의 마력 전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
그것을 먹어치운 네메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투캉.
이정기의 팔뚝을 타고 오르며 금속 같은 가죽을 만들어내는 네메아.
그리고 그것은 이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자의 대가리를 만들어내 이정기의 머리마저 덮었다.
여기까지는 뷔앙과의 격전에서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후우.”
막대한 마력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큼, 그만한 성장감이 느껴지는 이 능력.
또한, 자동으로 붉어진 두 눈은 버서크가 활성화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이정기는 광기를 억누르며 말했다.
“어떻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파앙!
이정기는 히드라의 동체를 다시 한 번 걷어차며, 허공에 몸을 날렸다.
[넥타를 활성화해주십시오.]
그니까.
‘그걸 어떻게….’
[벼락.]
메티스가 말했다.
[번개를 쏟아내는 것이 아닌 움켜쥐는 것입니다.]
“……!”
메티스의 그 한마디에 이정기는 뇌리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쏟아내는 것이 아닌 움켜쥔다.
‘번개를….’
파슷.
피어오르는 전류.
하지만 그것은 곧 검은색의 마력으로 바뀌어 네메아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투캉!
네메아의 주먹 위로 칼날이 솟구쳤다.
이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정기가 사냥했던 그 커다란 화이트 라이언, 네메아.
“녀석의 이빨이야.”
그저 단순한 이빨이 아니다.
이정기의 마력과 넥타, 레전더리 아이템의 힘까지 먹어치운 이 이빨은.
씨익.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파괴력을 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휘이익!
추락하는 이정기가 바람을 느끼며 양 주먹을 뒤로 길게 빼냈다.
파아앗!
더욱더 열기를 더하는 붉은 마력.
원래라면 그저 색만 붉을 뿐, 아무런 성질도 갖지 못하는 것이 마력이었지만.
화르르르륵!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타오르고 있었다.
‘정기야.’
떠오르는 할아버지의 말씀.
‘기술은 이름을 가져야만 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란다.’
그래, 이름이 필요하다.
이정기가 당겼던 양팔을 뒤로 쭉 폈고, 쭉 뺐던 팔을 다시 발사하듯 앞으로 내뻗었다.
콰드드드드드득!
무언가 갈려 나가는 소리.
그리고 터져 나온 화염이 히드라의 머리를 향해 짓쳐들어갔다.
“네메아.”
그것이 이 기술의 이름이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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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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