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19화
069
이정기의 손에 쥔 검에서 치솟는 붉은 마력.
이정기는 뒤를 돌아 자신과 함께 정찰할 척후대를 살폈다.
‘총 다섯 명.’
자신을 제외한 네 명의 헌터.
그들의 수준은 공격대의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어딘가 하나가 부족해 보이는 그들.
그리고 그중 세 명은 딜러나 탱커도 아닌 지원 형태였다.
‘정찰과 땅굴 파괴에 적합한 것은 지원 헌터들입니다.’
강민혁의 말,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특공대의 총인원이 겨우 다섯 명이라면 말이 되질 않았다.
가장 위험한 임무나 다름없는 상황.
‘로베르트를 상대로 승리한 이정기 헌터라면 가능하겠죠?’
이정기를 추켜세워주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저 몰아세우기 위한 명분이었다.
덜덜덜.
떨고 있는 다른 헌터들.
“젠장….”
들리리라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그들.
“왜 우리가….”
“버림받은 거야?”
“도망치고 싶어….”
헌터들의 사기는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김윤태가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정기, 그와 함께 척후대가 되었다.
거기다 척후대의 구성을 보면.
“이건 그냥 버리는 카드인 거잖아….”
정말 척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지에 몰아넣고 죽으라는 구성 같았다.
한심하게 떨고만 있는 그들.
하지만.
‘바꾼다.’
생각이 바뀐 이정기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고 있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자고로 이건이 말했다.
‘치열하게 투쟁해라. 무엇이건.’
결코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이 눈앞에 닥쳐도, 포기하지 말란 말.
“맘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또한 말했다.
‘투쟁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자는 무시하거라. 인생에 있어서 하등 도움조차 안 될 테니.’
저벅.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이정기.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그의 등을 보며.
“…….”
헌터들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이대로 척후대의 임무를 포기하고 돌아가 봐야 백두 길드는 자신들을 순순히 거둬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따라가자.”
따라가는 수밖에.
타탓!
그들 또한 헌터.
멀리 사라져버린 이정기를 쫓아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대체 잠깐 사이에 얼마나 멀어진 거야?”
하지만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이정기.
그때, 가장 앞에서 선두로 달리던 헌터가 멈춰서 있었다.
턱.
그와 부딪힌 또 다른 헌터.
“멍하니 뭐….”
그가 서 있던 헌터를 나무라려 했으나.
“…….”
그 또한 멈춰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사방에 흥건한 피.
그 위로 즐비한 몬스터들의 시체.
백두 길드의 상위 공격대원들이 지원 헌터의 도움과 탱커들과의 연계로 수십 합은 주고 받아야 쓰러트릴 수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헌데.
“이 잠깐 사이에 이만큼을, 그것도 혼자서 사냥했다고?”
겨우 십여 분, 그 사이 이동을 시작한 이정기는 이만큼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이었다.
모든 몬스터가 붉은 마력에 당한 듯 붉게 물든 절단 부위가 그 증거.
경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근데 대체 이 사람은 어디 있는 거야?”
이만한 수의 몬스터를 상대하고도 아직 따라잡을 수 없는 이정기.
꿀꺽.
척후대로 편성된 헌터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빠른 속도로 달리는 탓일까.
심장이 거침없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이 심장은 달리기 때문에 뛰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
가능성.
“해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성공할 수 있는 기대감말이다.
* * *
‘처음 지구에 왔을 땐, 힘을 숨겨야 했다.’
올림포스에서 지구로 오며 일부의 힘을 잃어버렸고, 나약한 자신이 표적이 되면 안 되기에 쥬피터와 이건과 약속했었다.
때가 되어 힘을 되찾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바뀌었다.
‘할아버지를 위해 힘을 드러내야 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힘을 잃은 할아버지가 모든 관심을 끌고 있기에, 그 부담을 줄어주고자 조금씩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차피 드러났다.’
생츄어리와의 일, 길드전을 통해 이미 자신은 세상에 드러났다.
더 이상 무언가를 숨길 필요 자체가 없었다.
거기다.
‘바꾼다.’
마음 자체도 바꾸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서걱!
“키에에엑!”
이젠 거칠 것이 없다.
‘올림포스와 지구의 괴리.’
그것이 명확해진다.
‘둘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올림포스의 방식대로.
서걱! 퍼억! 콰아앙!
찢고, 부수고, 터트린다.
“후우.”
숨을 고르던 이정기가 뒤를 쳐다봤다.
“허억, 허억…. 허억….”
“헉…!”
한참 몬스터를 사냥하던 자신을 이제야 따라잡은 척후대들.
얼마나 젖먹던 힘을 다해 쫓아왔는지 눈에 보일 정도로 그들은 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정기는 다시금 시선을 회수하며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자, 잠깐만…!”
“숨만 조금 돌리고…!”
그런 이정기를 향해 애원하다시피 하는 헌터들.
“걱정마세요.”
“……?”
“잠깐 휴식할 겁니다.”
이정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그들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조금 걷던 이정기가 한 곳에 멈춰섰다.
“뭘, 하시려고…?”
이정기를 향해 조심히 묻는 헌터.
이정기는 그런 헌터를 향해 답을 하지 않고는.
푸욱!
지반을 향해 마동철이 준 또 다른 검을 꽂아넣었다.
“……?”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유심히 살피던 헌터들.
화륵-!
그때 또 다시 이정기가 꽂아 넣은 검을 통해 붉은 마력이 치솟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뒤이어 흔들리기 시작한 땅.
헌터들은 그제야 이정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따, 땅굴!”
척후대의 임무 중 하나였던 땅굴 파괴.
그에 앞서 이정기가 땅굴 하나를 찾아낸 것이었다.
“어떻게…!”
헌터들이 경악했다.
무리도 아닌 일, 원래 몬스터들이 다니는 땅굴은 극히 찾기 힘든 것이었다.
그걸 찾기 위한 탐색 전용 스킬이 있거나, 전용 아이템이 있거나.
‘엄청난 마나 감응 능력.’
상식을 벗어날만큼 마력에 예민해야만 가능한 일.
그러나 이정기가 스킬을 사용하거나 아이템을 사용한 것은 아닌 듯하니.
꿀꺽.
상식을 벗어난 마나 감응 능력을 통해 땅굴을 찾아낸 것이었다.
“자, 잠시!”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경악도 잠시, 그래도 나름 공격대에 속한 헌터들인만큼 그들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땅굴을 찾았다면 파괴해야 한다.
땅굴의 파괴는 땅굴을 찾는 것과는 또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전용 아이템을….”
전용 아이템을 땅굴에 집어넣고, 기다려 폭파시켜야 한다.
헌터 하나가 전용 아이템을 꺼내 들었을 때.
“필요 없습니다.”
자그마한 이정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땅굴 파괴.’
이 또한 특별한 스킬이 존재하거나 아이템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땅굴을 찾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방법이 더 있었다.
‘막대한 마력을 일점에 집중해….’
단숨에 파괴시키는 것.
하지만 그런 능력이 아무에게나 존재할 리도 만무하고, 만일 존재한다고 해도 당연지사 그러한 스킬은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던전의 한 가운데서, 땅굴 파괴를 위해 마력을 쏟아부었다가 마력이라도 고갈됐다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정기는 다르다.
아주 간단한 방법.
‘볼텍스.’
이건의 기술을 약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정확한 조절과 힘의 분배.
그걸 통하여.
투투투-퉁…. 콰아아-앙!
땅굴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됐습니다.”
할 일을 마치고 검을 뽑아낸 이정기가 헌터들을 바라봤을 때.
“아….”
그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침을 흘리고 있었다.
* * *
척후대가 떠난지 벌써 몇 시간.
“슬슬 움직이자고.”
김윤태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이동을 시작했다.
‘로베르트를 쓰러트렸다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던전은 그저 강하다고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적절한 도구와 인원, 경험이 없다면 공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던전의 난이도가 낮은 편도 아니니.
‘잘만하면….’
강민혁을 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잘 처리될 가능성도 있었다.
“자자! 내 사랑스런 사촌 동생님께서 얼마나 길을 잘 닦아놨는지 볼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친 김윤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윤태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몬스터 수거 시작하겠습니다.”
즐비한 몬스터의 시체.
“함정도 하나도 남김 없이 해제되었습니다.”
찾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숨겨진 함정들도 파괴되어 있었다.
“땅굴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여기, 파괴된 흔적이 있습니다.”
땅굴마저.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지급한 땅굴 파괴 아이템은 세 개가 전부인데….”
“파괴된 땅굴은 다섯 개야.”
거기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을 일까지.
장담할 수 있다.
이건 척후대의 다른 헌터들이 개입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젠장할-!”
이정기 혼자서 해낸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으아아아아!”
짜증스럽게 고함을 내지르는 김윤태.
“진정하시죠. 공격대장님.”
부공격대장이 김윤태를 말리며 나섰다.
“공격대원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제야 침착을 되찾기 시작한 김윤태.
공격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척후대를 보냈고, 그 척후대가 제대로 된 구성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헌데, 그 척후대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아니 완벽 그 이상으로 해냈다.
공격대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젠장….”
그들 또한 이 모든 것을 해낸 것이 이정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으리라.
그리고 하나 둘.
“대단하잖아…?”
“로베르트를 쓰러트린게 운은 아니란 거겠지?”
“역시 성혈….”
“그분의 손자다워.”
이정기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하긴.”
동시에 슬쩍 슬쩍 김윤태를 향하는 시선들.
당연하게도 너무나 다른 둘의 모습에 비교가 되는 것이리라.
애시당초 백두 길드의 공격대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이익을 위해, 약속받은 이권을 위하여 일정기간 김윤태가 공격대장으로 있는 제2 공격대에 봉사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정기 헌터가 이끄는 공격대는 대단하겠지?”
바뀌는 시선들.
“후….”
김윤태는 화를 삭히며 부공격대장을 향해 말했다.
“척후대 불러들여.”
“알겠습니다.”
터져나오는 마력 폭죽, 그것이 길을 따라 척후대에게 신호를 보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군수군.
이정기가 헌터들과 함께 돌아왔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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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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