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16화
066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술에 취한 운전자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말하던 정훈.
‘첫째, 최명희 회장님께 이 사실을 보고 드린다. 둘째….’
이정기나 이진석이 나설 것도 없던 일 처리.
‘통제된 도로에 들어온 것에 대한 헌터법 위반 처벌 및 헌터 폭행 등…, 이에 대해 합당한 절차를 통해 처벌을 받는다.’
정훈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둘째! 둘째!’
스피커폰을 통해 다급히 소리치는 목소리와.
‘아아….’
그저 주저앉아 신음하는 운전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으로 일련의 헤프닝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빚을 진 셈이군.”
고속도로에 앉아 이정기와 권신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괜찮나?’
안태민에게 들었던 것도 있기에 수긍한 이정기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빚이라 할 건 없지 않아?”
작게 울리는 이정기의 목소리에 권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지껏 네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
무거운 목소리에 답하기 힘들어하는 이정기.
“사실, 지금까지 던전 공략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오롯이 네 덕분인 걸 알고 있다. 그것도 빚이다.”
자동차와 멀어져 다시 진중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까.
권신우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가 아닌 우리.
이정기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결론을 내렸다.”
그 우리라는 단어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정기.”
“말해.”
“우린 당분간 팀으로서 활동을 못 할 것 같다.”
꽈악.
“네 부덕이나, 잘못이 아니다. 그저….”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오히려 깊게 그늘이 드리워진 권신우의 얼굴을 보니 다시 한 번 말문이 턱 막혔다.
“우리가 너무 부족하단 것을 깨달은 것뿐이다.”
부족함.
“네게 도움만 받았다.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던전에서 로베르트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우리는 널 돕지 못했다.”
그들은 로베르트는커녕, 찰리조차 이겨낼 수 없었다.
“그건….”
“두말할 것 없는 부족함이다. 나도, 최인해도, 안태민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번 길드전에서….”
길드전.
허락받은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었던 행사였다.
하지만 권신우들은 이정기의 팀원 자격으로 콜로세움에 들어와 있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이정기에게 말조차 붙이지 않았다.
“우리는 더욱더 부족함을 느꼈다.”
“…….”
“성혈들과 함께 있는 네게 다가가 말을 걸 수도, 길드전을 치러야 할 네게 도움을 줄 수도, 길드전이 끝난 네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조차도…, 할 수 없었다.”
격차.
그 커다란 격차가 족쇄가 되어 그들의 발을 묶은 것.
“그러니….”
권신우가 이정기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다.”
“…….”
“하지만 약속하지.”
서서히 일어서는 권신우.
“더욱더 강해지겠다고. 그래서 당당히 네 앞에 나타나겠다고.”
일어선 권신우가 이정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꽈악.
맞잡은 두 손, 그 손을 지탱해 일어서는 이정기.
“그게 우리가 네게 하고 싶은 약속이자, 부탁이다.”
* * *
졸지에 이정기는 팀원을 모두 잃게 되었다.
물론 아직 소속은 이정기의 10팀으로 되어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파견을 명목으로 다른 팀으로서 활동하길 이성에 요청했다고 했다.
홀로 남은 팀장.
던전 공략을 하려면 할 수 있다.
‘아직 던전 공략권이 남아있어.’
던전 습격 때의 이유로, 추가 던전 공략권을 얻은 이정기.
그 때문에 공략할 던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팀원들이 없다지만, 홀로 던전을 공략할 실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공략을 해도 좋았다.
그러나 이정기는 당장 던전 공략을 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마력은 최대치야.’
더 이상 성장이 안 되는 마력.
지금 이정기가 성장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넥타의 레벨 업.’
넥타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정훈과 이야기를 한 것이기도 했다.
‘이정기 헌터는 절차대로 혼돈의 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특별관리 던전을 통해 증명된 사실.
‘혼돈의 세대들은 협회의 기밀 중, 기밀로 특별히 관리되며 그들은 필요에 의해 협회의 요청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혼돈의 세대의 의무.
그건 아무리 성혈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었다.
‘적이 아니라는 증명.’
협회의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세계에 이바지하고, 특별한 그들이 인류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 때문이라고 했다.
이정기는 수락했다.
그리고.
‘적당한 던전이 있습니다.’
정훈은 새로운 특별 관리 던전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그것이 지금 이정기가 이곳에 와 있는 결과였다.
수군수군.
이정기를 보며 속닥대는 사람들.
근신이 끝난 이정기는 지금.
“이정기 헌터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백두 길드의 제3 공략팀장, 김규한이라고 합니다.”
백두 길드에 와 있었다.
‘백두 길드.’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길드.
또한.
‘이성과 한 핏줄.’
이곳은 이성의 이름을 쓰지 않지만, 이성의 것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백두 길드의 원 길드장이었던 김한산.
하지만 길드장은 십여 년 전 바뀌어.
‘주영은.’
주영은이 되었다.
주영은과 김한산이 정략결혼을 통해 백두 길드가 이성에 흡수된 것이었다.
이정기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협회 측으로부터 파견 소식은 들었습니다.”
파견의 명목이었다.
협회의 요청에 따라 백두 길드가 공략하게 될 던전에 이정기를 포함시키라는 것.
이성의 라인인 백두 길드가 협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겠지만, 최명희의 한 마디가 함께였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이정기 헌터가 파견받은 공략팀은….”
그때였다.
웅성웅성.
아까보다 더욱 소란스러워진 백두 길드 하우스.
스윽.
이정기의 눈이 자연스레 소란의 중심지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헌터들이 길을 연 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그건 결코 보기 좋은 형태는 아니었다.
터벅.
하지만 그 중간, 열린 길을 통해 걸어오고 있는 자만큼 보기 좋지 못한 것은 없었다.
스물 후반의 나이, 얼굴에 깃든 거만함과 자만심이 가득했고.
“시끄럽게.”
길드의 헌터들을 대하는 모습은 마치 시종을 대하는 듯했다.
열린 길을 통해 이정기의 앞에 선 남자.
“엄마한테 얘기는 들었어.”
스물아홉의 나이에,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 심상치 않은 그 남자.
‘김윤태.’
그가 바로 주영은의 아들이자, 백두 길드의 제2 공격대장.
그리고 자신과도 피가 일부나마 섞인 사촌지간의 남자였다.
그와의 첫 만남, 그건 이성 저택의 복도에서 그가 시비를 걸었던 것이었다.
‘나는 A등급이다. 머저리야.’
자신을 향해 시비를 걸던 녀석의 손가락을 부러트렸던 이정기.
그날 이후, 백두 길드에서 절치부심하여 S급에 올랐다는 소식은 이진석에게 들었다.
A급에서 S급이 되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몰아주기였을 겁니다.’
이성의 이름이라면, 성혈이라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었다.
오히려 스물아홉의 나이에 S급에 오른 김윤태가 너무 늦은 것이었다.
“우리 공격대에 파견을 왔다지?”
“…….”
혹시 또 한 번 시비를 걸려는 것일까?
이정기가 가느다란 눈초리로 김윤태를 바라볼 때.
“좋아. 잘 왔다. 동생아.”
녀석이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이번 던전 공략 잘 해 보자고, 그리고 그 기념으로 말인데….”
씨익.
“오늘 시간 되나?”
* * *
“젠장!”
김윤태는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이정기, 단순히 할머니가 불러들인 녀석이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이성 호텔에서 했던 3세 회의, 가장 맏형인 주병훈이 했던 말이었다.
‘정말 이건의 손자임이 확실한 듯해.’
그저 할머니가 자극을 위해 데려온 인형이 아닌 진짜라는 것.
그 정도는 김윤태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가 녀석을 생각하는 특별함.
그리고.
쾅!
“젠장!”
녀석의 성장 속도.
그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어떻게 된 녀석이 E등급에서 S등급.
‘아니.’
중상위의 랭커인 로베르트를 쓰러트리는 데까지 겨우 일 년도 채 걸리지 않는단 말인가.
‘괴물.’
마치 괴물을 보는 것만 같다.
성혈로 태어났지만, 성혈 중 가장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김윤태.
길드의 지원이란 지원은 다 받아 성장했지만 스물아홉의 나이에 겨우 S급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그런 김윤태에게.
“후우….”
이정기는 정말이지 죽여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윤태야.’
어릴 때 엄마가 매일같이 자신에게 하던 말.
‘넌 누구보다 강해져야 해.’
세뇌와 같은 말들을 들으며 지원받았지만, 한계에 도달한 자신과 달리 녀석은 이성의 큰 도움 없이도 괴물 같은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말인데.’
그런 김윤태에게 그날의 회의에서 주병훈이 했던 말은 너무 달콤한 것이었다.
‘한 번 접근해 봐.’
‘접근?’
‘대한민국도 아닌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란 녀석이다. 거기다 분명한 이건의 손자인 데다, 녀석의 성장 속도나 현재의 수준은 가히 경악할 수준이지.’
자신의 자존심을 긁던 말.
‘그러니 우리와 함께 갈 수 있을지 한 번 떠보란 말이다. 녀석이 백두 길드로 파견 간다는 소식이 있으니까.’
그따위 말을 김윤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말.
‘그리고 만일….’
주병훈은 말했다.
‘녀석이 우리와 정반대되거나, 결코 섞일 수 없는 녀석이라면 참교육을 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겠지.’
참교육.
‘하지만 녀석은 로베르트를 쓰러트렸다고! 무슨 수로!’
‘강민혁을 빌려주지.’
‘강민혁!’
‘이정기가 백두 길드로 파견 나갈 때, 지원 형식으로 녀석을 빌려주겠다. 그 뒤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씨익.
절로 치솟는 입꼬리.
“물론이지.”
김윤태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향해 말했다.
주병훈이 빌려준다는 강민혁.
그는.
‘세컨드 라인.’
자그마치 세컨드 라인의 랭커였으니까.
“뭐, 그래도 시늉은 해야겠지?”
김윤태는 화장실을 나서며 걷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쿵!
온몸이 떨리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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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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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