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63화 (63/284)

제3권 13화

063

하얗게 센 머리칼.

그러나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은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다는 백금발처럼 빛났기 때문이었고, 선명한 이목구비에 뚜렷한 눈동자는 감히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오랜만이야.”

그가 바로.

“정신 나간 여편네.”

최고이자, 최강이라 불렸던 사내.

“할아…, 버지!”

이건이었다.

뷔앙의 머리통을 바닥에 처박은 이건.

잊어선 안 되었다.

‘할머니의 공간 지배.’

이건이 그 영역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랜만이다. 요리사.”

이건은 짓누른 뷔앙의 귓가를 향해 속삭였다.

“개 잡종….”

최명희 또한 입가를 말아 올리며 이건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아아.

움직이는 마력과 공기의 흐름, 그 모든 것이 시간이 감속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최명희는 그제야 공간 지배를 풀어헤쳐 그녀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네…, 네가….”

공간 지배에서 벗어난 뷔앙이 머리통을 돌려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긴.”

콰앙!

“네가 우리 귀여운 손자를 괴롭힌다는 소식을 듣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기 위해 왔지.”

“하지만 넌….”

뷔앙이 부들거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분명 죽었어야…!”

“올림포스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못 들은 게냐? 아니면….”

콰앙!

다시금 짓눌러져 터질 듯 폭발한 지반.

“‘그 녀석들’을 말하는 게냐?”

“……!”

뷔앙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방금 전 이건의 말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

‘뷔앙과 한 편인 어떤 자들이 할아버지를 노렸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 성격 몰라서 그래?”

“말도 안 돼! 아무리 네가 이건이라 해도 그들은…!”

“전부 갈아 마셔 줬지.”

씨익.

이건의 주먹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듯했다.

콰쾅!

뒤늦게 일어나는 폭발.

“죽이지 마.”

그 폭발 뒤로 최명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규칙상, 요리사 녀석이 죽으면 이성이 패배하니까.”

가라앉아 들려오는 목소리.

그제야 폭발은 멈췄고, 폭발을 일으킨 장본인인 이건은.

스윽.

기절해버린 뷔앙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도대체….”

최명희가 그런 이건을 보며 읊조렸다.

“더 얼마나 괴물이 된 거냐. 개잡종.”

* * *

감속되던 시간은 마침내 완전히 멈춘 듯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 발휘되서가 아니었다.

[저자는…, 누, 누구입니까….]

겁먹은 메티스의 목소리.

메티스의 놀라움처럼 시간을 지배하는 이 능력은.

‘단순한 마력장.’

그저 마력을 통해 최명희의 공간 지배처럼, 아니 그보다 더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올림포스에서 힘을 한 번 잃고 지구로 돌아왔던 할아버지는.

‘힘을 되찾으셨구나.’

힘을 되찾은 것은 물론, 그간 모종의 성장이 있는 듯했다.

털썩.

기절한 뷔앙을 내려놓은 이건.

그가 당당한 걸음으로 이정기를 향해 다가왔다.

“욘석, 오랜만에 보는데 꼴이 이게 무어냐.”

“할아…, 버지….”

아직 채 독이 해독되지 않은 이정기.

할아버지는 힘을 되찾은 것은 물론 더욱 강해졌는데, 아직 완전히 힘을 되찾지도 못한 자신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욘석.”

다시금 따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할애비랑 비교하는 거냐?”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이건.

그가 이정기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비교할 걸 하거라.”

꿀렁.

가슴에 닿은 손으로 이건의 핏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변해버린 혈관과 손.

마침내 이건이 손을 떼어냈을 때.

뚜욱.

그것들은 다시금 손바닥으로 몰려나와 방울져 떨어졌다.

파스스스스스!

끝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독.

뷔앙의 독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잘하고 있다.”

“할아버지…!”

“그래도 더 열심히 해. 너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니.”

이정기는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가 너무나 반가워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다.

멈추어진 시간 속, 시간의 흐름을 허락받은 것은 자신과 쓰러진 뷔앙.

“개 잡종….”

그리고 할머니였다.

“크윽.”

이제야 긴장이 풀린 것인지 독이 퍼져 신음하는 최명희.

하지만 그녀는 곧 공간 지배를 자신의 몸에 한정시키더니.

타타탓!

독을 태워 증기화시켜 날려버렸다.

아까 전은 힘을 집중할 수 없기에 독을 중화시키지 못한 것일 뿐, 힘을 집중시킬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집중할 수 있던 것이었다.

“여편네, 많이 유해졌네.”

“네 놈이야말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나야….”

이건이 이정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 귀여운 손주 놈 데려가려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뭐, 데려가?”

거리가 꽤 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능력이라면 1초도 걸리지 않아 사라질 거리.

그 사이를 둔 채 둘의 눈에 불똥이 튀기는 것 같았다.

“어딜 감히, 데려다 놓을 때야 네 맘대로였겠지만 데려가는 건 아니다.”

“정기의 귀여움에 이미 푹 빠진 게야? 그래 봐야 다른 손주들도 있으면서.”

최명희의 얼굴이 일그러지던 찰나.

“하나 있는 내 손주 놈은 내가 다시 데려갈 거다. 어쨌든….”

조금씩,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건이라 한들, 마력만을 통해 시간을 감속하는 데는 엄청난 부하가 걸리는 것이 사실.

전투가 끝났기에 이건이 마력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조심해라. 뭐, 치매는 아직 안 걸린 것 같으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스윽.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건의 손.

“저것들은 생각보다 무시할만한 녀석들은 아닌 듯하니까.”

“어딜….”

최명희가 이건을 향해 손을 내뻗으며 공간 지배를 펼치려던 때.

파슷!

이건은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정기야. 조급해하지 말거라.

이정기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이건의 목소리.

-할애비 걱정도 하지 말고.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 목소리에 이정기는 긴장이 풀려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털썩.

뒤이어 이정기도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금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

“………!”

그제야 독연이 걷힌 콜로세움을 보게 된 이성과 생츄어리의 헌터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쓰러진 뷔앙, 그리고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 있는 최명희.

결과는.

-이, 이성의 최명희…, 여제의 승리….

너무나 뻔해 보였으니까.

* * *

이성과 생츄어리의 길드전.

그건 근래에 없던 세기의 이벤트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가 났다.

-이성의 승리.

대한민국이 들썩인 것은 물론, 전 세계가 흥분할만한 대사건이었다.

이성과 생츄어리의 길드전.

길드전의 방식이 총력전이 아닌 PVP 형태로 진행되었기에 이성의 승리를 점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상징성이 중요한 법이었다.

‘시엘 뷔앙 카르골.’

시엘을 보유한 곳과 그러지 못한 곳의 차이.

여제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심판자에 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추측.

또한, 아무리 주형태 길드장을 포함해 이성에 절대강자가 포진해 있다지만, 이번에 주형태나 안인회 등이 출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루머들이 돌아서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새로운 서드 라인 랭커의 탄생? 주안나.

철사자 레옹이, 이제 겨우 랭커 끝자락에 이름을 올린 주안나에 의해 패했다.

-역시 이성.

이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거대하고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각인된 것이었다.

하지만 주안나에 대한 뉴스를 짓눌러 버린 것이 있었으니.

-드디어 베일이 밝혀진 이건의 손자.

이정기에 대한 것이었다.

-유니크 스킬인 버서크를 사용했다?

-헌터 등록 기준 D등급의 헌터,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오백 번대 랭커를 꺾다.

-사라졌던 톰 포터의 레전더리 무구, 사자왕의 철권이 이정기의 손에 쥐어져 있다?

-로베르트와의 격전, 마치 짐승을 보는 듯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사들.

베일에 쌓인 이정기가 과연 이건과 이강, 유영아의 명성을 이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들이 판을 치던 때.

-최강의 핏줄.

이정기는 스스로를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문제도 존재했다.

-길드전 중 일어난 사고.

-로베르트의 죽음.

-과연 사고인가.

-혹은….

이정기와 로베르트의 결전에서 사망한 로베르트.

-과연 이건의 핏줄인가.

로베르트의 사망을 일부러 이정기가 유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들이었다.

하지만 이정기가 버서크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이성의 공식 발표로 이어지자, 이정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사라졌다.

버서크의 능력이 무엇인지, 이미 유명한 로베르트를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정기에 대한 소식이 화젯거리라고 한들 묻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여제의 승리.

최명희의 승리.

그것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시엘의 첫 패배.

최강이라 불리는 천외천, 랭킹 밖의 존재들.

시엘이 공식적인 석상에 처음으로 패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예상보다 더욱 컸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현재의 시엘 체제.

그리고.

-새로운 시엘…?

조심스레 새로운 시엘이 탄생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부….”

이정기가 핸드폰의 뉴스를 모두 보곤 말했다.

“할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됐네요.”

최명희가 생츄어리와의 대결에서 원하던 모든 것들.

자신이라는 존재의 부각, 이성의 명성, 주안나의 위치, 시엘의 위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할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부르기 위해 나를 이용하신 건가?’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만은 아닐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최명희, 자신의 할머니는 단순한 할머니도 헌터도 아니었다.

이성의 지배자.

‘여제.’

그녀의 모든 행동에는 수십 가지의 이유가 동반되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더 강해져야 해.”

가야 할 길이 더욱 확실해졌다.

강해져야 한다.

“혼돈의 세대, 아니 쥬피터 할아버지가 말한 티탄들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이어졌던 이건의 목소리.

-녀석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건 분명한 경고였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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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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