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62화 (62/284)

제3권 12화

062

푸슈우욱-!

자욱이 퍼져나가는 독연이 콜로세움 전체를 감쌌다.

김대정의 배리어에 갇혀 독연이 꿈틀대는 모습은, 마치 보랏빛 뱀들이 꿈틀대는 것처럼 기괴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독연의 내부.

“끄, 끄아아악!”

이정기를 치료하던 헌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한 줌 핏물로 산화하고 있었다.

로베르트가 죽은 것에 분개하던 뷔앙이지만, 그 또한 다른 헌터를 아무런 감정 없이 마구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엘.’

이 시대의 최강자라 불리는 시엘들의 진면목이었다.

세상을 구한 구원자.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

그런 호칭으로 불리지만, 그들도, 세상도, 이미 모두 안다.

‘폭군.’

그들은 숭고한 뜻을 지니거나 한 점 부끄럼 없는 양심을 지닌 성인군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살기 위해 몬스터를 죽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살해하는 자들.’

그들이 선택받은 이유는 단 하나, 강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택받은 그들은 세계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올림포스의 공략을 강요받았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던 그들이 올림포스에서 살아 돌아왔을 때.

‘세상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기적인 그들이 세상을 구해낸 그 대가를 말이다.

“끄, 끄어어….”

마침내 녹아 핏물이 되어버린 헌터들.

그들을 위해 이정기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 후우….”

그저 하염없이 몸을 헤집는 독연을 몰아내는데 온 신경을 써야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정기는 최명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할…, 머니….”

넥타 보유자인 뷔앙, 그러지 못한 할머니.

그리고 그 결과는.

쿠쿠쿠쿵!

할머니의 패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

하지만 상황은 이정기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무거웠던 이정기의 몸이 편안해지면서.

[독연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메티스가 독의 정화를 재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곧이어 이정기의 사방으로.

푸슈우우웃!

독연이 밀려 나가고 있었다.

조금은 맑아진 정신.

그제서야 이정기는 최명희가 누구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구에 와서 찾아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할아버지에 대한 전설과 같은 일화들.

그리고 그것 못지않은 것들이 있었으니.

‘여제.’

최명희에 대한 것들이었다.

시엘은 아니지만, 쉽게 믿을 수 없는 설화와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단순히 이성이라는 한 집단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우우웅.

여제라 불리던 이유.

그건 그녀가 이성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따위 독연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밀려 나가 멈추어버린 독연, 그건 마치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을 침범하려는 악마들처럼 일정 공간 바깥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공간 지배.’

그것이 바로 최명희가 여제라 불리는 이유다.

그녀의 유니크 스킬인 공간 지배를 통해 그녀만의 영역이 발생하면, 그녀는 그 영역을 지배한다.

저벅.

지배하는 공간 속에서 그녀는 황제나 다름없다.

파슷!

마력으로 이루어진 독연은 그대로 흩어지고.

쿠쿵!

그녀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영역의 중력은 최명희가 원하는 대로 몇 배가 된다.

지배 영역 속에서 가히 황제는 무적!

“울며 떨거라.”

그녀가 나아가는 발걸음을 통해 그녀의 영역이 점점 더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그게 너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요리사.”

“여제…!”

* * *

절대자이자 지배자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두 사람의 싸움.

독연이 지배한 공간과 마력이 지배한 공간이 맞부딪히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최명희의 공간 지배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녀의 마력이 유지할 수 있는 한 영역 내에서 최명희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파슈웃!

어찌어찌하여 독연이 영역을 뚫고 침범하더라도.

화르륵-!

독연은 최명희의 마력에 타올라 흩어져버렸다.

서로의 영역을 점거하기 위한 싸움, 어찌 보면 지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주륵.

그 싸움의 진면목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놀고 있던 것은 아니었구나. 요리사.”

이마를 향해 흐르는 땀이 최명희의 마력에 의해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그래도 제법 알싸한 요리를 할 줄 알게 되었어.”

“여제,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해라.”

뷔앙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 오만이 아직까지 통용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그 순간, 뷔앙의 기세가 바뀌었다.

독연을 앞세우며 연무를 조정하는 데만 집중을 하던 뷔앙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힘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면….”

콰앙!

“애초에 이 길드전을 받아들이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콜로세움의 바닥이 부서지며 비산하는 파편.

그 혼돈 속에서.

쿠콰콰콰쾅!

뷔앙이 회전하며 클로를 휘두르고 있었다.

최명희가 지배하는 공간에 들어오지 못한 채 폭발을 일으키는 보랏빛 향연.

우우우우!

최명희의 지배 공간이 떨리기 시작했다.

“……!”

충격이 거세질수록 미세하게 줄어드는 최명희의 공간.

이유야 간단했다.

‘공격을 막아내는 충격으로, 할머니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어!’

그러니 당연히 지배하는 공간의 크기도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야, 네 그 막대한 마력을 소진시킬 방법이 없다지만….”

화아악!

클로에서 솟구치는 마력.

“지금은 다르지.”

그 마력 사이로.

[넥타입니다.]

검은 기운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까 전, 여성체와는 전혀 다른 순도의 넥타입니다.]

“……!”

마력을 증폭시키는 넥타.

[베타급, 그리고…, 넥타의 레벨이….]

메티스가 두려움에 떨 뜻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콰아아앙!

검은 기운과 함께 더 큰 폭발을 만들어내는 클로.

쿠쿵!

곧이어 최명희의 공간이 더 빠른 속도로 작아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결국, 할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공간을 잃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다.

여제, 최명희.

그녀의 능력이 그저 공간을 지배하여 수비하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결코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웅.

그녀의 능력은 수비에도 절대적이었지만, 공격 또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커흡!”

거듭 터져 나오는 뷔앙의 비명.

어느새 최명희가 만들어서 지배하던 공간은 위치를 뒤바꾸어 뷔앙을 옥죄이고 있었다.

“숨 쉬지 말거라.”

진공.

“옥죄어져….”

짓누르는 중력.

“터져 죽거라.”

최명희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뷔앙, 그는 바닥에 발을 박은 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면서도.

씨익.

그의 입꼬리만큼은 올라가 있었다.

뻐금거리는 뷔앙의 입.

‘누…, 가?’

이정기는 그 입 모양을 읽었다.

‘오래 버티는지 보자?’

그리고 뒤이어 눈에 밟히는 최명희의 모습.

퓨수우우웃!

그녀가 지배하던 공간의 힘을 뷔앙에게 집중한 탓에, 뷔앙이 뿜어낸 독연이 최명희에게로 스며들고 있었다.

* * *

“…….”

꽉 깨문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

푸르게 변한 안색과 신체.

옷가지들마저 녹아내리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

최명희는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으며 뷔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둘의 싸움은 전투력에서 지구력의 싸움이 되어버린 상황.

최명희의 공간 지배 속에서 뷔앙이 언제까지 멀쩡할 수 있을까?

갑자기 전투는 뷔앙의 독연 속에서 최명희가 언제까지 멀쩡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싸움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그 누구도 개입할 수조차 없었다.

개입했다간.

“길드장!”

“회장님!”

그들조차 이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될 터였으니까.

그저 싸움의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이정기였다.

‘젠장!’

독에 중독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혹여 할머니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염려.

아니.

‘안 돼….’

이대로라면 분명 패배하는 것은 할머니가 될 것이다.

넥타를 보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 거기다 뷔앙이 가진 넥타의 레벨은 3.

자신조차 해독하지 못한 독은.

‘할머니가 이기게 되더라도…,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을 거야.’

아직 중화되지 못한 독.

이정기는.

“끄, 끄으으윽!”

고통을 참아내며 두 발로 일어섰다.

이제부턴 길드전이나, 승부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가족.’

자신과 피를 함께 한 이를, 적어도 사랑을 보였던 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이를 앙다물고 일어선 이정기.

-쉬거라.

이정기의 머릿속으로 최명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믿거라.

“……!”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 이정기는 조금의 냉정을 되찾았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알고 있다.

-내가 이번 길드전을 통해 얻으려던 마지막이 무엇인지 말이다.

할머니가 무리하게 생츄어리와 길드전을 하며 얻으려던 것.

그래.

꾸욱.

이정기는 주먹을 쥐며 바로 섰다.

하지만 더 이상 최명희를 향해 달려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눈을 똑바로 뜬 채 할머니를 바라봤다.

‘마지막 목적.’

왜 잊었을까.

“언제까지….”

이정기가 메마른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예요!”

공허한 외침.

“크윽…. 이제 더 이상….”

이정기의 입가에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무엇을,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그때였다.

쿠쿠쿠쿵!

콜로세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흔들린 것이 콜로세움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

쿠우우웅!

던전!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마력이 치솟기 시작했으며.

“으윽!”

헌터들이 짓눌려 신음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여기서 열 명도 되지 않은 이들뿐.

씨익.

적어도 입가를 말아 올리는 최명희나.

‘어떻게.’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입가를 움직이며 경악하는 뷔앙이나.

“……!”

환히 웃는 이정기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파앗-!

온 세상이 암전되는 것과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사아아.

볼 가를 스치는 바람이, 몸을 헤집는 독의 흐름이 느려진 것이 느껴졌다.

‘시간의 감속.’

시간이 느려진 것.

행동은 자유롭지 못해도, 쥬피터의 훈련 속에서 이정기는 이 시간의 흐름을 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앙!

폭발이 일었다.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

그 속에서.

“오랜만이야. 이 정신 나간 여편네야.”

뷔앙의 머리통을 바닥에 처박은 이건이 마력에 휩싸여 서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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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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