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9화
059
던전, 콜로세움.
각국에 한 개씩은 꼭 존재하는 특수 형태의 던전으로 이성의 마력 던전과도 비슷한 인공 던전이었다.
게이트가 왕성하게 나타나던 시기, 세계는 인간성을 잃고 힘에 의해 지배받던 시절도 있었다.
점점 강력해지는 헌터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집단인 길드를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길드전은 그때 정해진 룰이었다.
‘길드전을 통해 길드 간의 분쟁을 해소하고, 힘으로 합의를 한다.’
힘으로 무릎 꿇리는 것.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길드전은 혼란의 시대를 지나,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 유일한 길드 간의 분쟁 해결 방법이었다.
‘단.’
예전처럼 무차별적인 전투는 허용치 않는다.
‘인공 던전을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한다.’
인공 던전 콜로세움에서만 길드전을 허용한다.
또한, 규칙은 더 있었다.
‘헌터들은 국가적 재산과도 마찬가지. 혹시 모를 또 다른 위협을 대비하는 전략 자원.’
그렇기에 헌터들의 희생 또한 최소화한다.
그 방법으로 길드전은 몇 가지 방식을 권고했는데.
“……….”
이번 이성과 생츄어리의 길드전에서 책정된 방식은 결투였다.
‘일 대 일.’
그리고 세 번의 싸움.
두 번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길드전은 승리로 이어질 것이다.
웅성웅성.
콜로세움의 관객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
한쪽에 있는 이들의 가슴에는 모두 별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이성.’
이성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중했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 있는 헌터들의 가슴에는 빛나는 성이 그려져 있었다.
‘생츄어리.’
그 외는 심판을 봐줄 협회 측 인물, 김대정과 뒤늦게 들어온 정훈.
그리고 허락받은 몇 안 되는 기자들뿐이었다.
‘공기가 무겁다.’
수많은 헌터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일 할이 넘는 헌터들이 모두 랭커였다.
거기다가.
‘할머님.’
최명희, 그리고 당연하게도 길드전이라는 이벤트인 만큼 이성의 길드장 주형태와 그의 딸 주안나.
백두 길드의 주영은과 김윤태가 앉아 있었다.
‘이성 그룹의 주인배와 주병훈은 없다.’
서 있는 이정기에게 이성 길드의 강경필 이사가 다가와 말했다.
“이정기 군, 자네는 이쪽으로 오게.”
무거운 얼굴의 그를 따라간 곳.
“크흠.”
그곳엔 성혈들과 할머니가 함께 있었다.
“낯짝도 두껍네.”
이정기가 도착하자 싸늘한 눈초리와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주안나.
“이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이 그렇게 고개를 펴고 다닐 수도 있고 말이야.”
“…….”
“뭐, 네가 싼 똥이니 네가 치우는 게 맞겠지?”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것도 잠시.
“앉거라.”
최명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주안나.”
“네. 회장님.”
“지금 이 길드전이 단순히 정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낮고 싸늘한 목소리.
움찔.
그에 주안나가 몸을 떨었다.
“길드전은 나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내가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 이성의 이름을 걸고 이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최명희가 자신을 나무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주안나는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회장님. 제가 자식 교육을 잘 못 했나 봅니다. 양해해 주시죠.”
그제야 주형태가 나서 상황을 수습했다.
“쯔쯧.”
울려 퍼지는 최명희의 혀 차는 소리에 주안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에게도 묻겠다.”
최명희의 시선은 어느새 이정기에게 향해 있었다.
“내가 생츄어리와 길드전을 벌인 까닭이 온전히 너 때문만이라고 생각하느냐?”
시험.
‘방금 주안나는 할머니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자신에게 왔다.
“팔 할.”
“……!”
“팔 할은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당당한 이정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혈이 다쳤습니다. 그것도 습격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죠.”
이정기는 더욱 거침없었다.
“성혈이 피를 보았다면, 상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성이 중요하지만, 성혈이야말로 이성의 기둥이니까요.”
이성은 기업이 아니다.
‘길드.’
길드의 속성과 기업의 속성은 엄밀히 다른 법.
길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명의 인재나 시스템이 아니었다.
‘기둥.’
길드를 대표할 수 있는 강자, 헌터, 그리고 상징성.
만약 이게 무너진다면.
‘길드를 구성하는 헌터들을 뿔뿔이 흩어진다.’
어차피 이성에 속해있는 헌터들은 이성이 아니어도 갈 곳이 많다.
부와 명예? 마력 던전?
이성의 상위 헌터들이라면 그 정도를 줄 수 있는 길드는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이라는 이름.
그리고 이성을 받치고 있는 성혈들이었다.
“나머지 이 할은?”
최명희의 입가에 미묘하게 번지는 미소.
주형태가 그것을 못 볼 리 없었다.
이정기는 말을 이었다.
“그건….”
타악.
이정기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당연히 승리를 통해 가져갈 이성의 이득이죠.”
“…….”
“하지만 이 또한 남은 이 할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정기는 최명희만을 보며 입을 오므렸다.
무언가 말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진 못했다.
그리고.
“하하하하!”
최명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옳다!”
최명희의 기분 좋은 웃음에 주형태와 주안나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주영은은 입술을 꾹 씹었으며 김윤태는 대놓고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드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김대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길드전이 시작되었다.
콜로세움에 착석한 두 길드들.
말했듯 길드전의 방식은 결투였다.
‘생츄어리는 이 싸움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
여제를 무시할 수 없기에.
하지만 그 이유뿐이라면 뷔앙은 어떻게든 싸움을 피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생츄어리가 이 싸움을 받아들인 이유는….’
이 싸움에서 그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
그렇다면 손해만 보는 싸움에서 그들 또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투의 대전상대는 이미 상호 합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
김대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전사가 이미 정해졌다.
-순서만 추첨하도록 하죠.
세 명의 대전사, 2승을 먼저 챙기는 자가 승자이기 때문에 순서 또한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뷔앙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성이 먼저 2승을 챙긴다면 그대로 이성의 승리이기에, 마지막 주자가 뷔앙이라면 뷔앙과의 대전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서로의 대전사는 알고 있었다.
‘이성은 나,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슬쩍.
주안나.
그리고 생츄어리는.
‘레옹과 뷔앙.’
마지막으로 로베르트.
김대정은 추첨을 한다고 했지만, 그 추첨이 정상으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아마 그 부분도 최명희와 뷔앙이 합의했을 터.
‘정해진 그림.’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누가 먼저 싸울까 하는 순서만큼은 진짜일 터.
타앗!
마침내 순서가 결정되었다.
-첫 번째 결투는 이성의 주안나….
그렇다면.
-그리고 생츄어리의 레옹입니다.
웅성웅성.
콜로세움이 시끄러워졌다.
대전사를 미리 알고 있던 성혈들과 달리 일반 길드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철사자 레옹과….”
“주안나 님이라고?”
“말도 안 돼….”
부정적인 반응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이성 측.
그에 반해 생츄어리는.
스윽.
웃음 짓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레옹은 누가 뭐래도 서드 라인의 랭커, 이번 습격에서도 이진석과 정훈을 동시에 상대했고 이진석에게 시간을 끌었었다.
그에 반해 주안나는?
“주안나 님이 이번에 랭커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라스트 라인이야.”
마지막 번호 대.
둘의 격차는 가히 하늘과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안나야. 네 차례다.”
주형태의 부름에 일어서는 주안나.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모두의 걱정과 달리.
“알겠어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타앗!
자리를 박차고 뛰어내린 주안나.
그리고 상대편에는 마찬가지로 레옹이 서 있었다.
협회에서 구류되었던 그는 길드전을 약속함과 동시에 풀려나 모든 상처를 회복한 상태였다.
“이거…, 착오가 있는 건 아닌지.”
레옹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주형태 길드장이나, 적어도 안인회 공대장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네가 출전한다는 건 우리를 방심시키기 위한 블러핑이 아니었던가?”
설마하니 정말 주안나가 출전할 줄은 몰랐다.
상호간 협의를 했다고 하나, 모종의 이유를 들어 출전자를 바꾸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마스터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뷔앙의 대비책은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았다.
레옹은 생각했던 상황과 달라진 현재에 진심으로 난감해함과 동시에.
빠득.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체급이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다.
거기다, 최명희가 나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주형태 길드장급은, 로베르트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레옹의 눈이 이정기를 향했다.
이정기, 그의 성장세가 무섭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최명희의 성격상, 이번 길드전에 이정기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안나가 나왔다면, 이정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낫겠지만.’
이정기가 ‘그들’ 중 하나임은 확신한다.
하지만 그 힘은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없을 터, 로베르트에게 처참히 패한 이정기라면 굳이 나와 패수를 늘릴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절대 봐주진 않겠다.”
쿠웅.
레옹이 제 대검을 꺼내 땅에 처박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주안나.
쿠우웅!
그녀는 레옹의 것보다 더 커다란 대검을 꺼내 땅에 박았다.
“아저씨.”
대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주안나.
“말이 많아.”
화아아악-!
그녀에게서 곧장 넘실거리는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푸른 마력이 주안나의 양팔을 타고 흘러.
“마나 아머!”
어깨까지 치솟았다.
동시에 그녀의 눈썹까지 마력에 물들기 시작했다.
“알려진 것과 다르군.”
저 정도 수준의 마나 아머라면 라스트 라인이 아닌 오백 번대 랭커 정도의 실력은 될 것이다.
과연 이성, 주안나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
파앗!
마력의 색이 다르게 변모했다.
“퍼플 마나….”
보라색 마력.
붉은 마력과 더불어 상위에 속하며, 특수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력.
“그 정도면….”
파앗!
레옹 또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자랑인 남색의 마력이 넘실거려 몸에 타고 흘렀다.
“십 분은 버틸 수 있겠군.”
“과연 그럴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주안나.
타앗!
그런 그녀가 폭발적인 속도로 레옹을 향해 접근해나갈 때.
[저 여성체….]
이정기의 머릿속에는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넥타를 보유하고 있어요.]
“……!”
넥타를 보유했다.
그 뜻은.
‘혼돈의 세대.’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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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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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