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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58화 (58/284)
  • 제3권 8화

    058

    “…….”

    알싸한 침묵이 서재에 감돌았다.

    “왜 그랬느냐.”

    먼저 터져 나온 것은 최명희의 질책이었다.

    “널 습격할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대비한 것이 고작 내게 준 펜던트 하나뿐이었더냐?”

    고저 없는 목소리, 감정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최명희가 말했다.

    “실망이구나.”

    실망이라는 단어가 이정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왔다.

    “죄송…, 합니다.”

    서재에 오기 전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이 단숨에 모래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느낌.

    할머니를 처음으로 실망하게 했다는 생각과.

    ‘그래도, 그래도…, 괜찮냐고 먼저 물어보시지는 않는 건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다쳤던 자신의 건강 상태 따위는 궁금하지 않은 것일까.

    “감정을 드러내다니….”

    최명희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리기까지 하구나.”

    또 한 번, 이정기는 가슴에 저릿한 통증을 느꼈다.

    묻고 싶었던 것도, 하고 싶었던 말도 모든 것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 어디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말거라.”

    “명심…, 하겠습니다.”

    울컥 솟아 나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이정기가 답했다.

    “또한!”

    조금은 높아진 최명희의 목소리.

    “다시는 무모한 짓을 하지 말거라.”

    “……?”

    “대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게냐?”

    “예…?”

    갑작스럽게 변한 목소리에 이정기는 일순 멍한 표정을 했다.

    “네 할미다.”

    “……!”

    “네게 그만한 위협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진즉 말해 대비를 해두었을 터. 그깟 소환의 펜던트를 쥐여주는 것이 내게 할 수 있는 전부였더냐?”

    “할머님….”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던 할머님의 말씀.

    하지만 그와 반대로 최명희의 얼굴엔 조금이나마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분노, 그리고.

    ‘슬픔.’

    할머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

    “이미 한 번 자식을 잃었다.”

    “…….”

    “또 한 번 내 핏줄을 잃고 싶은 생각 따윈 내겐 없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실망, 그제야 이정기는 그 실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무모함.’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할머니를 완전히 신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벌였던 일.

    그로 인해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할머님은 실망하고 계신 것이었다.

    스윽.

    거대한 책상 위에 올려진 그것.

    “받거라.”

    할머니의 말에 그것을 바라본 이정기의 동공이 떨렸다.

    “길드 전 당일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카드, 그 위에 그려진 두 개의 별.

    이정기는 이미 한 번 이것을 본 적 있었다.

    ‘마력 던전 출입증.’

    사사로운 이유로는 결코 성혈들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그것.

    이미 한 번 받았던 그것을 최명희는 다시 한번 건넨 것이었다.

    “한 달, 충분하겠느냐?”

    무엇이 충분하다는 것일까.

    이정기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할머니의 실망이 자신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새하얀 백지처럼 변했던 머릿속은 다시금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충분합니다.”

    이정기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그제야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정기의 감사 인사.

    “무엇이?”

    최명희가 이정기를 향해 물었다.

    이정기는 이제야 다시금 원래의 할머니와 자신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시험.’

    이 순간에도 할머니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할머니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지금, 그 시험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저를 걱정해주신 것에.”

    몸을 일으키며 답하는 이정기.

    “또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래.”

    돌아선 이정기를 향해 울리는 최명희의 목소리.

    “그래야 내 손자지.”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 *

    쏜살같이 흐른 시간.

    그동안 이성과 생츄어리의 충돌, 그리고 이정기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올랐으나, 누구도 이정기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이정기와 마주하지 못했다.

    이정기는 지금 경기도의 한 야산에 있었다.

    ‘할머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

    혼돈의 세대라는 것에 대해 정훈과 이진석에게 대충 들은 이정기.

    이진석은.

    ‘어쩔 수 없이 보고드려야 했습니다.’

    특별관리 던전에서 나오고 며칠 뒤, 자신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할머님의 명으로 자신이 혼돈의 세대인지 확인했다는 것.

    그리고 특별관리 던전에서의 일로 자신이 어쩌면 인류의 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할머님께 보고했다는 것.

    그럼에도 할머님은 그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말씀조차 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아니야.’

    그렇기에 이정기는 이 시간 전부를 자신이 할 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할머님이 주신 마력 던전 출입증을 이용해 다섯 개의 마력 던전을 이용한 이정기.

    그로 인해 이성의 마력 던전은 현재 전부 사용 불가능해진 상황이기도 했다.

    금액으로 환산하자면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

    이성의 예산을 생각해도 자신에게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쉬워.’

    그 결과는 이정기에게 몹시 아쉬운 것이었다.

    마력 던전을 네 개째 돌았을 때.

    ‘마력 성장이 멈췄어.’

    몬스터를 사냥해 얻는 마력의 성장이 멈추어버린 것이었다.

    호흡을 통해 얻을 수 있던 마력도 더 이상 흡수되지 않았다.

    모든 성장이 멈춘 것이 네 번째 던전의 특별함 때문일까, 마지막 던전까지 돌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다른 변화가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그 이유는 넥타의 레벨 탓입니다.]

    던전 게이트에서 처음 목소리를 내었던 존재.

    ‘메티스.’

    그 목소리가 이따금 이정기의 질문에 답을 던져온다는 것이었다.

    [신력이 활성화된 순간부터는 넥타와 마력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만일 이게 어긋난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전해주지 않는 존재.

    [당신은 당신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나를 잃어버린다고?’

    [그렇기에 제가 마력의 흡수를 막아두었습니다.]

    왜 그런 짓을.

    ‘돌려놔.’

    아무리 그렇게 요구해봐야 메티스는 말을 들어줄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또다시 침묵하는 메티스.

    ‘대체….’

    왜 저런 것이 자신의 안에 있는지, 또 저렇게 멋대로 행동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까앙!

    그때 청명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끝났다.”

    들려오는 둔중한 목소리.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목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작은 키와 앳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마동철.’

    할아버지의 유일한 대장장이가 일을 끝마친 것이었다.

    “후우.”

    숨을 내뱉으며 망치를 내려놓는 그의 발아래로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겨있다.

    ‘저게 전부 땀이라니.’

    마동철이 밥조차 걸러 가며 망치질을 하길 수일.

    일반인이라면 탈진해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마동철은 달랐다.

    ‘그 자체로 랭커급 헌터.’

    거기다 특수한 스킬 덕분에 대장질할 때는 보정을 받는다든가 했었다.

    “이제야 첫 수리가 끝났구나.”

    마동철이 지친 목소리로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냐?”

    이제야 묻는 그의 말에 이정기가 피식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런 건…, 나도 처음 본다.”

    여지껏 만들어놓고 완성시켜 놓고서야 이런 말을 하는 건가.

    ‘대체 이 귀물은…!’

    처음 이정기가 그것을 가져왔을 때 당황하며 놀라던 그.

    그리고 그는 곧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수리하던 물건과 함께 이정기가 가져온 그것.

    ‘사자왕의 가죽.’

    그것과 함께 무구의 수리를 서둘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이제야 마동철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이런 물건이 존재한다는 건 듣지도 못했다….”

    마동철이 제가 만든 것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통상적으로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레전더리 아이템의 강화는 불가능하다 알려져 있지.”

    일반적인 아이템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강화가 가능하다.

    더 강한 금속을 추가한다던가, 상위 등급의 아이템과 합성을 한다던가, 마력석을 먹여 품은 마력을 증가시키는 방법 따위.

    하지만 최고 등급으로 알려진 레전더리 아이템은 그 강화가 어떤 방식으로도 불가능하다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이정기가 가져온 네메아 사자의 가죽, 사자왕의 가죽은.

    “레전더리 아이템을 강화시킬 수 있는 귀물이라니.”

    레전더리 아이템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레전더리 아이템과 사자왕의 가죽, 그 두 가지를 합쳐.

    “받거라.”

    새로운 아이템이 탄생했다.

    “당분간은….”

    주저앉았던 그가 완전히 드러누워 버렸다.

    “쉬어야겠구나.”

    “고생하셨습니다.”

    이정기가 받아든 것은 건틀렛.

    손가락을 제외한 손등부터 팔뚝 전부를 가리는 그것은, 손등에는 당장이라도 살아 포효할 것 같은 사자가 양각되어 있었고, 팔뚝 부위로는 하얀색 가죽이 뒤덮여 있었다.

    “이름을 지어주거라.”

    “예?”

    원래 이것의 이름은 사자왕의 철권.

    시엘인 톰 포터가 사용했던 레전더리 아이템이었다.

    “그건 전혀 새로운 것이나 다름없어. 또한, 이름을 부여받기에 마땅한 무구다. 그러니 이름을 지어주거라.”

    이름.

    한참을 생각하던 이정기는 하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네메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정기가 건틀렛을 끼자, 네메아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공명했다.

    “그리고….”

    마동철이 허리를 일으키며 말했다.

    “아이템의 사용에 유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 * *

    수많은 인파, 한국의 기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소식을 들은 외국의 기자들 또한 한국에 들어와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우우웅.

    물론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빠르게 나아가는 자동차, 이성의 마크를 지니고 있어야만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엔 수많은 협회 측 인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끼익.

    멈춰선 자동차.

    이진석이 열어준 문을 통해 내린 것은 이정기였다.

    “…….”

    이정기의 등장에 잠시 술렁이던 협회 사람들 중 한 명, 대표자가 이정기를 향해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정훈 정보부장.

    “그리고….”

    그가 앞서 걸어 나가며 이정기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멈춰선 그곳은 던전.

    이곳은 특수한 던전으로 하나의 목적을 두고, 협회가 방치하는 곳이었다.

    ‘길드전.’

    길드끼리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길드전이 치러지는 장소.

    “무운을 빕니다.”

    이정기가 막힘없이 던전을 통과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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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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