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57화 (57/284)

제3권 7화

057

대한민국의 헌터 협회.

원래도 청와대 못지않은 경호체계를 자랑하는 그곳이었지만, 오늘의 방비는 더욱 단단해 보였다.

협회의 건물을 중앙으로 사방이 통제되어 있으며, 협회의 엘리트 헌터들이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상황.

“네 놈의 길드원들이 헌터법을 어겨가며 던전을 공략하던 헌터를 습격했다.”

그 안에선 이성 길드와 대한민국 헌터 협회, 그리고 생츄어리의 대표가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정기.

그렇다면 이성의 대표로는 이성의 길드장 주형태가 왔어야 옳다.

그러나 상대는 뷔앙.

그에 걸맞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현 대한민국의 오직 하나.

“그리고 그 헌터는 다름 아닌 이성의 헌터이지.”

여제, 사신 따위로 불리는 전설적인 헌터 최명희뿐이었다.

“또한.”

싸늘하게 가라앉은 최명희의 목소리.

공식적인 석상, 한 단체를 대표하는 그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지만.

“내 손자를 공격한 것이기도 하다.”

최명희는 거침없었다.

“요리사. 이 책임을 어찌 질 거지?”

요리사, 그 호칭이 나오자 뷔앙의 얼굴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여제, 그 단어는….”

“닥쳐라. 머저리. 그것도 꽤나 참아주고 있는 거니까.”

오히려 뷔앙을 압도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최명희.

세간에 알려진 바대로라면 뷔앙은 시엘, 최명희는 제로 라인 그중에서도 최상위인 10번대 안쪽의 헌터이니 뷔앙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최명희는 결코 시엘에 못지않다.’

시엘들과 함께 해 온 경험이나, 세워온 전공 등을 따지면 최명희는 시엘의 칭호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이건이라는 거대한 가림막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을 뿐, 올림포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엘의 칭호를 받지 못한 것이 최명희였다.

“참고 있는 건….”

하지만 뷔앙 또한 달랐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의 그가 아니다.

이건의 그림자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뷔앙은 그동안 수도 없는 전공을 더 세워왔다.

뒤로 물러나 경영에 전념하던 최명희와는 다르다는 것.

“생츄어리는 특별한 뜻을 가지고 창설된 단체다.”

뷔앙은 화를 억누르듯 말했다.

“그 뜻은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올림포스의 경계 및 관찰. 감시다.”

싸늘한 어조.

피어오르는 마력.

“그리고 그 속에는 알다시피….”

뷔앙의 마력에 회의장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혼돈’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혼돈.

“그 혼돈을 찾기 위해 생츄어리는 전권을 위임받았고, 막대한 위험을 짊어졌다. 또한, 혼돈으로 추정되는 자가 있다면, 확인을 위한 모든 행위는 헌터법에도 저촉되지 않으며 모든 방법이 허락될 수 있다는 조약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겠지.”

물론, 그런 것이 있긴 했다.

다만.

“시엘 회의를 통해 저들끼리 정한 법, 그 법을 따라야 하는 이유가 있나?”

최명희의 말마따나 그러한 조건은 시엘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었다.

“억지로군. 여제.”

뷔앙의 입가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

“모두가 따르며, 모든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그걸 이성이, 아니 그대가 인정치 않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로군.”

치밀한 신경전.

회의를 주최한 김대정은 감히 끼어들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

갑작스러운 최명희의 말에 뷔앙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엘들이 정한 법, 그리고 그것을 따르는 세계. 하지만 시엘 회의에는 기본 조항 중 특별한 게 하나가 있지.”

“설마….”

“시엘 회의의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 언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전제에 깔린 한 가지 조건.

현대의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만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일.

“힘으로 굴복시키는 법 말이다.”

“미친…, 건가?”

뷔앙이 경악했다.

이성이나 최명희가 강력하다고 한들, 지금 최명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김대정.”

뷔앙이 김대정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최명희를 말리라는 말, 이대로 끝을 보겠냐는 뜻이었다.

그리고.

“길드전을 신청한다. 뷔앙 카르골.”

마침내 최명희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왔다.

“맙소사.”

뷔앙의 얼굴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 * *

-뷔앙의 내한, 그 목적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사들.

그리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기사의 내용이 급변했다.

-생츄어리의 습격.

뷔앙이 방문하기 전의 이야기들.

-한국에 머무르던 생츄어리의 길드원들이 현재 협회에 구류되어 있다는….

-그 이유로….

-철사자 레옹이 협회의 헌터들을 습격하였으며….

협회가 비밀로 하던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대상은….

그리고 다시 한번, 대한민국에 퍼져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이정기.

이정기의 이름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과 더불어 이정기의 존재가 밝혀진 순간부터 쏟아졌던 관심.

하지만 이성이 힘으로 억누르고 있던 그 이름이 다시 한국을 넘어.

-대한민국에 방문한 심판자의 목적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올림포스를 감시하며, 인류의 안전을 지킨다고 알려졌던 생츄어리가 사람을, 그것도 이건의 손자를 습격했다.

또한, 이건의 손자라면.

‘최명희의 손자.’

대한민국의 또 한 명, 입지전적인 헌터인 최명희의 손자를 습격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세계를 휩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생츄어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공식적인 성명 발표를 한 것.

-생츄어리는 인류의 안전을 위한다는 목적과 올림포스의 감시를 위한다는 목적을 위해 이정기 헌터에게 적법한 확인 절차를 거쳤을 뿐이다.

이성이 세계에 그 명성을 드리운 길드라 한들 한계는 분명했다.

시엘을 보유하지 못한 길드.

그에 반해 생츄어리의 길드장은 시엘임과 동시에.

-미시랭은 생츄어리의 의견을 존중한다.

세계 십 위권 길드인 미시랭의 길드장이기도 했다.

언론을 통한 치열한 공방전.

‘진실이 무엇인가.’

포커싱은 그곳에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성과 생츄어리!

그간 없었던 두 거대 세력의 충돌.

-여제와 심판자!

근 이십여 년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거물들의 충돌.

게이트의 소멸 이후 평화에 물든 세상에 다시 한번 피가 끓을 거대한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관심은 곧 또 한 명에게로 이어졌다.

-이정기.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이를 향해.

* * *

“길드전 발발.”

이진석이 뉴스 기사를 읽으며 얼굴을 굳혔다.

헌터가 아닌 민간인들이나 이 소용돌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헌터들에게는 더없이 큰 이벤트일지 몰라도.

“정말…, 이렇게 됐군요.”

당사자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회장님답지 않습니다.”

이진석은 이정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이 거침없는 분이라고 한들, 언제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이진석은 곧 몸을 흠칫 떨었다.

자신의 방금 한 말이.

‘손자인 이정기가 다친 것에 대한 복수 따위에 최명희가 이렇게 움직일 리 없다.’

그런 뜻으로 들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곧이어 사과하는 이진석.

“아니에요.”

이정기는 고개를 저었다.

특별관리 던전에서 귀환한 후 또다시 시간이 흐른 며칠 후.

이정기는 그간 생츄어리와 뷔앙에 대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며 보냈고, 동시에 할머니에 관한 옛 기사나 이야기들을 읽어보기도 했다.

“이진석 헌터의 말이 맞아요.”

“그렇다면….”

“할머님께서 다른 목적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혹시, 따로 들은 바가 있으신 겁니까?”

이진석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사건이 커지는 동안 최명희는 단 한 번도 이정기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정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추측뿐.

‘이진석 헌터의 말대로야.’

할머니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실 분이 아니다.

‘물론 자신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은 싫어하시는 성격이신 것 같지만….’

그렇다면 자신을 습격했던 이들을 처벌하고, 뷔앙에게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거기다.

‘뷔앙과 할머니는 껄끄러운 관계야.’

예전의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된 내용.

‘요리 잘하는 녀석이 있었지.’

할아버지가 예전에 해주었던 요리사가 뷔앙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정기는 뷔앙이 자존심이 강할지언정 할머니가 무언가를 요구하면 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태는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있었고.

“오는 28일, 생츄어리와 이성의 길드전이 국내 한 던전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아예 길드 전이 발발하였으며, 일정마저 잡혀버렸다.

이건 돌이킬 수 없다.

물론 길드 전의 시작 바로 직전 멈추고, 그 전에 요동치는 주식이나 여타 다른 것을 챙기려는 속셈일 수도 있지만.

“할머님이나 뷔앙, 두 분 다 자존심이 강한 분들이시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길드 전은 결국 치러질 것이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겠죠.”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정체는 최명희의 심복이자 비서실장인 박윤태였다.

“이정기 군.”

나지막이 입을 연 박윤태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무게감.

“회장님이 호출하셨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역시나 이정기가 예상했던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가지, 시간이 별로 없으니.”

“다녀오십시오.”

박윤태를 따라 나온 이정기.

그의 눈앞에 언제나 그랬듯 기다란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오늘따라 더욱 길고 어두워만 보이는 복도.

저벅, 저벅.

박윤태와 이정기는 말없이 그곳을 걸어 나갔다.

“…….”

복도에서 느껴지는 공기가 다르다.

평소와 다른 박윤태의 호흡도 이정기의 귀에 크게 들려왔다.

‘오늘 이곳을 지나가면….’

그런 예감이 들었다.

‘많은 것이 바뀌겠구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님의 행동.

그리고 지금 이어진 호출은 아마도.

‘시험.’

또 하나의 시험이리라.

“난 이곳에 있겠네.”

마침내 도착한 복도의 끝, 할머님의 개인 서재.

끼익.

그 문이 열리고 이정기가 들어섰다.

“어서 오너라.”

“할머님을 뵙습니다.”

이정기는 저도 모르게 솟구치는 긴장감에 목이 옥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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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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