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56화 (56/284)

제3권 6화

056

[네메아의 사자를 사냥하셨습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이정기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이게 무슨…?”

난데없는 일, 이런 적은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자신이 무언가에 당한 것일까.

아니면.

‘할아버지?’

쥬피터 할아버지?

그렇다고 하기엔 목소리는 중성적이라곤 하나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누구야…?”

이정기의 물음.

[제 이름은 메티스.]

그리고 놀랍게도 그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당신의 힘인 신력. 넥타에 깃든 의지로 당신에게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

[당신이 쓰러트린 존재, 네메아의 사자는 옛 신화시대 신의 힘을 받아들인 몬스터의 일부로 당신은….]

이정기의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목소리가 울렸다.

[사냥의 대가로, 전리품을 취할 수 있습니다.]

메티스의 말이 끝나자.

화아악!

그 커다랬던 네메아의 사자의 몸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네메아의 사자가 품고 있던 마력.’

그 일부가 이정기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헌터로서의 마력이 상승합니다.]

성장, 그것이 체감될 정도의 마력 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우웅.

네메아의 사자가 있던 자리 중앙, 잉여의 마력을 모두 방출한 그 자리에 검은 구가 둥둥 떠 있었다.

“……!”

이정기는 한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검은색 마력.’

다른 말로 신력.

그리고 메티스가 말했던 넥타가 바로 저것이라고.

[넥타를 취하십시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경계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정기는 본능적으로 메티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타앗.

서서히 회복하는 몸을 움직여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검은 구를 향해 나아간 이정기.

[손을 뻗어 넥타와 접촉하십시오.]

이정기는 메티스의 말대로 검은 구에 손을 댔다.

꿀렁.

검은 구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며 팽창하고 수축하기를 반복했다.

그 뒤 수축을 반복한 검은 구는 마치 액체처럼 변해 이정기의 손바닥으로 기어들어 오기 시작했다.

“……!”

느껴지는 격통에 이정기가 눈을 부릅뜬 것도 잠시.

[넥타의 흡수가 진행됩니다.]

울긋불긋 돋아나는 검은 핏줄 사이로 황홀하다는 말이 어울릴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그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정기.

그리고 곧 이정기는 그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파짓. 파짓.

심장의 옆, 명치 부근.

쥬피터 할아버지가 주었던 벼락이 넥타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하아.”

모든 흡수가 끝나고 숨을 내뱉자.

파짓.

이정기의 주변으로 전류가 섬칫 섬칫 터져 나오고 있었다.

[넥타의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메티스의 목소리.

[넥타 – Lv1을 달성하셨습니다.]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느껴지는 거력, 헌터로서 마력을 모으며 성장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

시야가 선명해지고 근육이 섬세해진다.

주변을 떠도는 마력이 눈에 보이는 이 현상은.

‘올림포스.’

그곳에서 가졌던 힘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타앗.

검은 구가 있던 자리에 어떤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최인해는 파리한 안색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특별관리 던전,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리라.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선명한 믿음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정기.’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헤쳐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할 수 있다고.

거기다가 각오도 했다.

‘짐이 되지 않겠어. 도움이 되겠어.’

생츄어리의 사건 이후로 마음을 다잡았던 최인해와 팀원들.

그러나 그들의 각오는 무색할 정도로.

“젠장!”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열려버린 게이트, 도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젠장, 결국 또 도움이 되지 못했어….”

절망감.

최고라고, 최고가 되겠다고 자부하고 다짐했던 그들의 프라이드에 다시 한번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성이나 협회에 연락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인해가 이진석을 향해 말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이진석은 외려 그들을 말릴 뿐이었다.

“도대체, 왜!”

“지금 이 사실이 이런 식으로 알려졌다간 이정기 님의 상황만 악화될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털썩.

그저 기다리는 것이었다.

게이트는 닫혀, 다시금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대로 던전을 클리어하면 될까 생각했지만, 이진석은 그래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했다.

결국, 게이트가 열렸던 그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길 열두어 시간.

쿠쿠쿵!

또 한 번 변화가 시작되었다.

“준비해라.”

안태민이 태도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전에는 아무것도 못 했지만….”

안태민의 눈이 살벌한 기세로 번들거렸다.

“이번에는 달라야지.”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이상 이따위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군.”

죽으면 죽었지, 무기력하게 있고 싶지는 않았다.

스윽.

그런 안태민의 뒤로 선 최인해와 권신우.

“좋은 마음입니다.”

그 뒤로 이진석이 서며 말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

이진석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게이트를 겪어본 적 없는 세대이니 모르겠지만, 저는 게이트를 겪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반응은….”

우우웅!

푸른 게이트가 마침내 열렸다.

그러나 처음 열렸을 때와 다르게 훨씬 작아진 사이즈.

“게이트가 공략되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 속에서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탓.

사뿐히 착지한 남자.

“왜 그런 표정들이야?”

이정기가 의아한 얼굴로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허.”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토해내는 그들의 어벙한 얼굴은 곧 완전히 변해버렸다.

고오오.

끓어오르는 공기.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점.

“너….”

이정기.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정기의 등 뒤로 지독한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변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키가 좀 자란 것 같은데…?”

“머리 색이나 눈동자도 좀 진해진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

“그 옷은 또 뭐고…?”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가죽을 이정기가 두르고 있었다.

사자의 머리통이 후드처럼 이어져 있는 가죽이.

* * *

촤촤촤촤촤촤!

수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촤촤촤촤!

플래시 세례는 정말 끝도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일,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보면 절대로 과하지 않은 일이었다.

“뷔앙!”

“뷔앙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것은 이십 년 전 이후로 처음이신데….”

“방문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심판자 뷔앙.

그의 풀 네임은 뷔앙 카르골.

과거와 현재의 시엘이며 랭킹 바깥의 절대자 중 한 명이 한국에 들어온 것이었다.

“…….”

뷔앙은 열 명의 수행원들을 앞에 둔 채 말없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촤촤촤촤!

수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처럼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지만, 뷔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아아!

마력을 살짝 흩뿌릴 뿐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뚝!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플래시 세례와 질문 세례가 멈추었다.

일반인을 향한 마력 발산.

그건 헌터들에게 있어 금기로 여겨지며, 헌터법에 의해서도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꿀꺽.

하지만 뷔앙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라 할 수 있었다.

과거 게이트에 의해 지구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았던 때, 단 일곱의 최강자에게만 주어졌던 칭호 시엘.

그리고 그들의 올림포스 행과 공략의 노고를 인정받아 그들은 또 하나의 특권을 얻었다.

‘법의 바깥의 선 자들.’

세상의 모든 법이 그들을 속박할 수 없다.

그들은 원한다면 살인도, 방화도, 강도도 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누가 그들을 제지할까.’

최강.

과거에도 현재에도 최고로 군림하는 그들.

오직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스스로뿐.

시엘들 중 하나가 도를 넘어서는 일을 하면 시엘 회의가 소집되어 그들의 선택과 결정으로 처벌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조금 피곤하군.”

그럼에도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존경받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마침 마중 나왔나.”

뷔앙의 작은 목소리가 이어지자.

촤아악!

개떼처럼 몰려있던 기자들이 일순 파도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처억! 척!

열린 길을 통해 걸어오는 정장을 입은 사내들.

그 맨 선두에 흰 머리를 포마드로 잘 넘긴 김대정이 서 있었다.

그들과 뷔앙은 서로 마주 본 채 늘어섰고 김대정이 손을 내밀었다.

“대한민국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뷔앙은 김대정의 손을 잠시 바라볼 뿐, 맞잡지 않았다.

김대정은 노련함을 발휘해 어색하지 않게 손을 회수하곤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뷔앙.”

“그래. 오랜만이군.”

작게 말려 올라가는 입.

“이건의 애완동물.”

“…….”

일국의 협회장은 대통령과 비슷한 위치에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건만, 많은 눈앞에서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뷔앙.

그러나 김대정은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은 채 잠시 옆으로 비켜섰다.

그제야.

움찔.

뷔앙의 눈꼬리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척! 처억!

협회의 인사들이 왔던 것처럼, 열린 길을 통해 걸어오고 있는 자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도, 자신감도 전혀 다르다.

가슴을 쫙 편 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으며 그 발걸음에는 물러섬 하나 없었다.

정장을 입은 그들의 가슴팍에 뚜렷하게 그려져 있는 두 개의 별.

그리고 그 맨 앞.

“오랜만이군….”

그녀를 본 뷔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제.”

최명희, 그녀가 뷔앙의 앞에 서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오랜만이긴 하구나. 요리사.”

꿈틀.

순간 오만하게 미소짓던 뷔앙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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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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