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5화
055
-쿠오오오오!
상대하던 화이트 라이언과 비교해서 백배는 큰 괴물이 크게 울부짖자 세상이 떨어 울리기 시작했다.
“커…, 커억!”
포효에 담긴 마력에 정훈은 숨이 막히는 듯 물러섰으나.
“…….”
이정기는 꼿꼿이 서 사자의 두 눈을 바라봤다.
이정기의 귀에 포효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정기야.
들리는 것은 오직 쥬피터 할아버지의 목소리.
-아직 나의 가르침은 끝나지 않았다.
환청 같은 것이 아니다.
분명 쥬피터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
오직 이 공간에 홀로 있는 듯 모든 것이 단절되어 검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일순, 본질의 방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전번처럼 커다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보았던 듯한 모습의 쥬피터가 서 있었다.
“정기야.”
고저 없고 감정 없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온 이정기는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따뜻하다.
“나의 가르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림포스에서 지내온 시간, 쥬피터의 가르침을 받았던 시간.
하지만 쥬피터는 그 모든 것을 가르쳐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
이정기에게 벼락을 건네며 자신의 의지 또한 넘겨둔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는 쥬피터가 아니다.
그저 쥬피터의 의지 한 조각.
‘나를 생각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
그것이었다.
“네 힘은 지금 네가 가진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도대체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다.”
“할아버지….”
또다시 반복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네가 그동안 내 훈련을 받은 이유를 기억하거라. 너는….”
쥬피터가 이정기를 훈련시킨 까닭.
그건 인간을 넘어서는 육체.
‘신체.’
신의 육체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이되, 신이다.”
“……!”
“인간의 강함만이 네 전부라 생각지 말거라.”
인간의 강함, 이정기는 쥬피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헌터.’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강함이다.
육체를 단련하고, 마력을 쌓아 올리고, 그 마력을 사용하는 존재.
쥬피터는 이정기에게 그런 인간으로서의 힘만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신이다.”
신.
“네가 받은 육체는 수억 개의 차원에서 가장 진화한 존재이자, 최초의 존재. 신들의 육체일지니….”
쥬피터의 신형이 서서히 사라지며 짙었던 어둠이 걷혀나가기 시작했다.
-신으로서 강해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마.
쿠오오오오!
어느새 이정기의 눈앞에는 보스로 보이는 화이트 라이언이 아가리를 벌린 채 집채만큼이나 커다란 이빨을 보이고 있었다.
-사냥하거라.
스릉.
-신의 힘을 가진 존재들을 말이다.
* * *
“이…, 정…, 기…, 헌터….”
정훈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앞을 보며 흐릿한 시야를 비볐다.
‘이게 던전 게이트.’
특별관리 던전, 그리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던전 게이트.
게이트의 위험 자체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달은 헌터들은 게이트를 닫고자 수없이 시도했다.
하지만 열려버린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게이트를 연 자.’
선택받은 자, 혼돈의 세대만이 보스를 처리하고 게이트를 닫을 수 있었다.
혼돈의 세대보다 훨씬 강한 헌터라도, 수없이 많은 헌터가 있어도 할 수 없었다.
던전 게이트 속에서 나온 몬스터는 말 그대로 몬스터.
‘신화나 다름없는 듯한 위용과 힘을 뿜어내며 헌터들의 몸을 마비시킨다.’
마치 그들이 진정한 마력의 주인이라는 듯이 말이다.
타앗!
혼돈의 세대만이 움직일 수 있고, 혼돈의 존재들을 상대할 수 있다.
던전 게이트가 열렸고, 지금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이정기는.
타타탓.
분명한 혼돈의 세대였다.
크오오오오!
울어 젖히는 화이트 라이언.
탓!
이정기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붉은 마력을 팔까지 두르고 있었다.
부우웅!
마침내 움직이는 사자의 앞발.
그것은 너무도 거대한 탓에 피해낼 틈이 보이지 않았다.
‘막고, 흘린다.’
이정기는 앞발을 막아내고, 흘려낼 생각을 했다.
그리고 뒤이어 틈을 놓치지 않은 채 역공을 할 것이라고.
아까 전까지만 해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나는 완벽하진 않아도 올림포스의 힘을 일부나마 되찾았다.’
지금이라면.
카카카카카캉!
마침내 부딪힌 사자의 앞발과 이정기의 검.
터져 나오는 불꽃과 함께.
“끄으으으아!”
이정기는 더욱더 마력을 토해내며 검의 각도를 비틀었다.
수도 없이 반복해온 전투의 경험과 기억이 이 순간 최선의 경로를 찾아내려던 때.
투캉!
충돌과 비교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
사자의 앞발을 흘려내려던 이정기의 검이 그대로 부서졌다.
더욱더 가까이 오는 앞발.
이정기는 그 앞발을 보며 몸을 비틀면서도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간과했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막대한 힘을 품고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고.
늘상 쥬피터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사냥하거라, 신의 힘을 가진 존재들을.’
이 몬스터는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 온 것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콰아앙!
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소리.
“이정기 헌터!”
이정기는 그대로 수백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몸을 처박곤 뒹굴고 있었다.
“커헉!”
겨우 자세를 잡은 이정기가 한 움큼 핏물을 토해냈다.
마동철의 검이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몸은 버텼다.’
로베르트 때와는 다르다.
그때를 기점으로 자신의 몸 안에 무언가 깨어난 듯한 느낌.
그리고 이곳, 던전 게이트에서 깨어난 무언가가 더욱더 활성화되는 느낌.
그래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공격을 몇 번이고 받아낼 수 있는 건 아니야.’
거기다 자신은 유일한 무기인 검을 잃어버렸다.
“후…, 후우….”
곧게 선 이정기.
그러나.
스윽.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눈동자엔 선명한 자신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은 로베르트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너무 오랜만에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려 했던 탓에 몸이 그 부하를 견디지 못했어.’
그러나 지금이라면.
그리고.
‘정기야.’
무기가 없는 자신.
‘네게 무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은 지금 네가 나약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자고로 최고의 무기는….’
꾸욱.
“내 몸뚱이.”
두 주먹만큼 강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준비는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쿠쿠쿠쿠쿵!
저 커다란 녀석을 쓰러트리면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수십 가지의 능력.
‘그것들은 보조의 역할밖에 못 해.’
무언가 더욱 마음이 끌리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화륵.
마침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상처 입으면 상처 입을수록, 강대한 적이면 강대한 적일수록 강해지는 능력.
“버서크.”
로베르트, 광전사의 고유 스킬을.
콰아앙!
이정기와 화이트 라이언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 * *
가히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사자, 그에 비하자면 개미나 다를 바 없는 인간.
하지만.
퍼어어엉! 콰아앙!
그 둘의 싸움은 그저 두 마리의 맹수를 가져다 놓은 듯했다.
퍼어엉!
사자의 앞발이 내리찍어지면, 이정기는 그것을 피하지 않은 채 마주했다.
이정기의 뒤로 터져 나오는 파공성과 충격파.
“쿨럭!”
당연하게도 그 데미지를 입은 이정기는 피를 토해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어둠 트롤의 회복.’
부족한 면은 다른 스킬로 대체하면 된다.
그렇게 데미지가 쌓여가며 붉어진 눈동자의 이정기는.
콰아앙!
주먹을 힘껏 당겼다가 내 뻗어 사자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폭탄이 터지는 것만 같은 소리.
처음에는 신음조차 내지 않은 채 버텨내던 사자는.
크오오오!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며, 일순 비틀거렸다.
이정기에게 축적된 데미지, 그리고 고통이 마력으로, 그 마력은 곧 육체의 강화로 이어졌다.
콰아앙!
비틀거리는 사자, 더 이상 이정기는 녀석에게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콰아앙!
떠오른 상태로 여러 번 사자의 얼굴을 가격하며 그 충격으로 공중에 체류했다.
콰아앙!
그대로 이어지는 공격들이 거대한 사자의 아가리에 계속해서 명중하고 있었다.
크오…! 크오오오오!
이번에는 이빨을 드러내며 반항을 시도해본들.
쾅!
이미 늦었다.
‘스킬 버서크’
데미지가 축적될수록, 고통이 심각할수록, 이성이 마비될수록.
콰아앙!
반대로 그 시전자는 강해진다.
시전자의 육체가 버티는 한, 시전자는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렇기에 로베르트는 한낱 헌터에서 몇 년 안에 중상위권의 랭커가 될 수 있었으며, 레옹의 팀에서 딜러를 전담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올림포스의 힘을 일부나마 되찾은 이정기가 버서크 상태가 되었다.
콰아앙!
그 상대가 아무리 신의 힘을 일부 가지고 있는 보스 몬스터라고 한들.
쿠우우웅.
상대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침내 기울어지며 무너지는 사자.
하지만.
‘부족해.’
이대로는 녀석의 숨통을 완벽히 끊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계야.’
수많은 몬스터들의 스킬을 뒤섞고, 버서커 상태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고 한들.
“쿨럭!”
이정기의 몸은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에 반해 사자는 축적된 충격에 균형마저 잃었지만, 아직 싸울 힘이 있어 보였다.
‘끝을 낼 최후의 한 방.’
그것이 필요하다.
그 절박한 순간에 떠오른 것은.
휘이이이이이잉!
자신이 아는 최강의 기술 중 하나.
“볼텍스.”
이건의 볼텍스였다.
휘몰아치는 마력이 주먹을 감싸고.
파아아앗!
그 색을 변모해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파짓!
그리고 그것은 약간의 푸른 전류를 띈 채.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 이정기의 손에서 나아갔다.
“하아…, 하아….”
거의 모든 마력을 상실한 이정기가 겨우 두 발로 선 채 지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런 이정기의 앞에는 입안부터 뻥 뚫린 채 숨통이 끊어진 커다란 사자가 쓰러져 있었다.
정신이 희미해지는 순간.
[네메아의 사자를 사냥하셨습니다.]
이정기의 머릿속으로 처음 듣는 생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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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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