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2화
052
일주일.
이정기가 마지막 던전에서 로베르트의 습격을 받아 정신을 잃고 흘러간 시간이었다.
‘이정기 님을 습격했던 자들은 현재 협회에 구류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펜던트를 통해 공간 이동되었던 할머니와 김대정 협회장에 의해 제압되어 협회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게 참 의외란 말이야.”
침상에 누워있는 이정기를 향해 들려오는 목소리.
우물우물.
“나는 회장님이 단박에 둘을 죽일 줄 알았거든. 분명 회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최인해가 입안 가득 쿠키를 집어넣은 채 말했다.
“그래도 살려주신 것은 아마 생츄어리의 일원이기 때문이겠지?”
우물우물.
“그럴 거다. 차라리 회장님 혼자셨다면 모를까, 김대정 협회장이 함께 있었으니 그런 식으로 처리하시긴 힘들었겠지.”
이어지는 목소리는 권신우의 것.
쩝.
“내 생각은 다르다.”
마지막은 안태민이었다.
그 또한 쿠키를 입에 넣어 우유까지 마시며 말했다.
“아버님께 들어왔던 회장님의 성정이라면, 협회장님이나 다른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을 모두 죽였을 거다.”
안태민의 아버지, 공대장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관심이 그곳에 집중되었다.
“아마 회장님께서 그들을 죽이지 않고 구류로 끝낸 이유는….”
꿀꺽.
“죽음이 너무 가벼운 형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군.”
“그건 너무 중이병적인 발상 아니야?”
이정기는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팀원들을 살폈다.
아까 전.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진석의 말과 함께 방문한 그들.
팀원들이었다.
“……….”
이정기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지구의 생활.
자신은 분명 그들에게 위험을 전가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 후엔 그들이 떠날 것으로 생각했건만.
“그래도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너무 멀쩡한데?”
“초주검에 이르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연.”
오히려 먼저 자신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달려온 것이었다.
‘이건 뭐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를 기이한 감정.
하지만 해야 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마워.”
“…….”
“…….”
“…….”
고맙다는 말.
“뭘, 고마워해? 다 받을 게 있어서 그런 건데.”
한참이 지난 후 최인해가 말했다.
“이번에 더욱 절실히 깨달았어.”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이 지금 이정기의 팀원이지만, 그 이전에 이성의 길드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성은 최고만을 원한다.
또한.
‘이성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은 최고가 되고 싶어한다.’
그저 부귀만을 누리기 위해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고.
그 구름 같은 것을 잡기 위해 이성에 들어왔다는 뜻.
“우리는 부족해. 그것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처음으로 있었던 랭커와의 격전.
이정기야 비등비등 다투었다고 해도, 그들은 찰리에게 농락당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형편없이 깨져버렸다.
그 경험으로 인해 랭커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최인해가 말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네 옆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아.”
“동감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이정기를 향해 오는 목소리.
“앞으로도 잘 부탁해. 팀장.”
* * *
‘뷔앙이 오고 있습니다.’
팀원들이 떠나고 이진석이 전해온 소식이었다.
생츄어리의 길드원들이 협회에 구류되어 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김대정 협회장과 할머니가 뷔앙에게 물었다는 것.
그 결과 뷔앙이 한국으로 출발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는 것이었다.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뷔앙이 누구인가.
하이 랭커라 불리는 최고의 헌터들인 제로 라인.
그 위에 설 수 있는 오직 일곱명의 인간인 시엘 중 한 명이자 올림포스의 생환자이기도 한 그였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성의 최명희도 뷔앙의 명성과 비교하기엔 흠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까지 휴식을 취하라는 명입니다.’
휴식을 취하라는 할머니의 전언.
하지만 이정기의 생각은 달랐다.
“휴식을 취해야 하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정기를 향한 목소리.
협회의 정보부장인 정훈이었다.
이정기의 전화 한 통에 달려 나온 그는, 퍼렇게 죽은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이정기는 다짜고짜 그를 향해 말했다.
“부탁이라면…?”
“던전의 공략권이 필요합니다.”
이정기의 말에 정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죄송하지만 어렵겠습니다.”
단박에 거절하는 정훈.
“다짜고짜 공략권을 달라는 걸 보니, 지금 당장 던전으로 들어가실 생각인 것 같은데 너무 위험합니다.”
“…….”
“이번에 이정기 헌터를 습격한 자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닙니다.”
딱딱한 표정의 정훈.
“생츄어리, 랭커들이자 뷔앙의 길드원들입니다.”
정훈은 진심이었다.
“또 어떤 습격이 있을지 모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사실 정훈은 지금 이 상황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최명희와 김대정, 둘은 서로 협력하에 이번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여제가 노했다.’
최명희의 분노는 비단 생츄어리만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뷔앙과의 일이 끝난 후, 너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김대정.’
최명희의 협회를 향한 분노.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를 보호해야 하는 협회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데다가….’
게다가 이정기를 구한 것 또한 협회가 아닌 최명희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정기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꿀꺽.
자신이 보았던 로베르트와 찰리의 꼴은 자신의 꼴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뭘 걱정하는지 압니다.”
이정기가 말했다.
“하지만 신경 써야 할 것은 할머니뿐만이 아닐 텐데요.”
“……네?”
“결국, 그 당사자는…, 할머니가 아닌 저니까요.”
이정기는 말을 이었다.
“협회가 던전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입니다. 거기 더해, 저희는 결국 던전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
설마.
그제야 정훈은 이정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협회 측의 실수로 던전 공략에 실패한 경우….”
헌터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계약 조건.
“협회는 실패한 공략에 대한 열 배의 배상을 지불한다.”
분명 확실히 있는 조건.
“그 대가를 산정하고, 소송을 걸어야겠지만 지금 던전 공략권 다섯 개만 넘기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공론화시키지도 않겠습니다.”
생츄어리의 습격, 뷔앙의 방문.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간에 공표되지 않은 보안 사항이었다.
최명희의 뜻이었으나, 협회 또한 생각은 같았다.
‘만일 이 사실이 밝혀지면 협회에 대한 신뢰는 추락한다.’
그리고 그 추락은 협회장인 김대정에 대한 불신과 협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협회는 완벽한 약점을 잡힌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
이정기의 협박.
“할머니의 문제는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회유.
정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조금 지나.
“좋습니다.”
마침내 정훈이 답했다.
“하지만 조건을 달아야겠습니다.”
수긍의 뜻.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기는 단 하나의 손해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수명의 사람들.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던전의 공략 시도는 저희끼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인 겁니다.”
말을 하던 남자가 뒤집어쓴 후드를 벗었다.
하나둘, 후드를 벗은 그들은 정훈과 이정기, 그리고 이정기의 팀원들.
“특별 관리 던전이라니.”
이진석이었다.
특별 관리 던전.
그건 이미 던전의 생성을 협회가 확인했지만, 대외적으로 아직은 발표하지 않은 채 특별히 관리하는 던전을 뜻했다.
어떠한 이유가 있어 특별히 관리되는 던전.
그 던전을 공략할 적격자에게만 자격을 주는 던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개되지도 않았고, 그 존재 자체도 절대 비밀이다.
“괜찮은 겁니까?”
얼마 전 있었던 습격, 그리고 이어 오는 곳이 특별 던전이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이정기 헌터의 던전 공략 사실은 최대한 숨겨야 하고, 동선조차 관리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특별관리 던전은 최고의 보안을 필요로 하는 만큼 가장 안전할 수 있었다.
더욱이 특별관리 던전은 던전을 관리하기 위해 협회의 상위 헌터들이 상시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지만, 던전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특별히 관리하는 이유가 있는 법.
특별관리 던전의 경우 난이도 자체도 상당하지만.
‘어떤 특수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몬스터 외적인 위협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진석도 특별관리 던전을 들어가 본 경험은 전무한 상황.
“물론 선택은 오롯이 이정기 헌터의 몫입니다.”
선택권은 이정기에게로 향했다.
애초부터 이정기가 원한 일, 이정기를 위해 벌인 일이었다.
“…….”
생각에 잠긴 이정기.
“좋습니다.”
그가 마침내 답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뒤이어 팀원들을 향해 묻는 이정기.
“좋아.”
“특별관리 던전이라. 기대되는군.”
“나도 이곳은 처음이야.”
긴장이 가득하지만, 설렘 또한 품고 있는 듯한 목소리.
‘변했구나.’
이정기는 그들의 마음가짐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병문안을 와 그들이 했던 이야기.
‘부족해.’
‘강해지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
그게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한 마디들이었다.
“그리고 던전에는 당연히….”
정훈이 말했다.
“저와 이진석 헌터도 함께 들어갈 겁니다.”
지금까지의 던전 공략과는 다르다.
“공략에 직접 도움을 주진 않겠지만,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설 겁니다.”
특별관리 던전의 특수성이나 헌터법에 의한 던전 공략권에 의해 팀원이 아닌 정훈과 이진석은 공략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감시자이자 보호자의 신분으로….’
상위의 헌터가 하위의 헌터의 안전을 위해 동행하는 것은 헌터법에도 허락되어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해 얻는 마력이 그들에게 나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보호자의 브로치.’
그들이 협회에서 받아 착용한 아이템은 사냥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한 몬스터를 사냥한 마력을 공유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턱.
걸어 나가기 시작한 이정기.
그 뒷모습을 정훈이 바라보았다.
‘이정기가 던전 공략권을 요청했다고.’
당연히 윗선에 보고했던 정훈.
그리고.
‘특별관리 던전을 개방해주지. 그곳에 함께 가보도록 해.’
김대정은 정훈에게 따로 명령을 내렸다.
‘이정기는….’
정훈이 뒤늦게 이정기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특별관리 던전이 반응하겠지.’
특별관리 던전이 가진 진정한 뜻을 알고 있는 정훈.
이번 던전 공략은 뷔앙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 이정기에게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턱.
‘확인해 봐.’
이진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별관리 던전에 들어가, 던전이 반응한다면….’
최명희가 따로 내린 밀명.
‘정기는 그들 중 하나일 거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행보였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