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 1화
051
번쩍이던 검은 번개.
쿠쿠쿠쿠쿵!
흔들리는 던전.
“……!”
잠시 모든 것이 암전된 듯 시야가 뿌예졌다.
찰리는 즉시 마력을 일으키려 했지만.
“커억!”
오히려 마력이 역류해 그의 내장을 뒤틀었다.
‘무슨 일이지?’
이런 건 느껴본 적 있었다.
‘아득히 뛰어난 마력장, 그로 인해 부족한 마력을 지닌 헌터들의 마력이 뒤틀리는 일.’
설마 이정기가?
그렇다면 정말 이정기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단 말인가?
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마력을 안정시키려 애썼다.
“그만두지.”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으니, 더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는 마치 사신의 것처럼 들려왔다.
이정기가 아니다.
곧이어 일부나마 되찾은 시야.
“김…, 대정….”
금강이라는 코드명으로 활동하던 하이 랭커이자, 현재는 대한민국 협회의 협회장으로 있는 위인.
그의 목소리였다.
“어찌 당신이….”
그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팀장 레옹은?
“닥치는 게 좋을 텐데. 내가 분명히 경고한 거로 아는데.”
더욱더 싸늘한 목소리와 마력이 찰리의 목을 옥죄었다.
그리고 곧, 찰리는 더 크게 경악하며.
덜덜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 수밖에 없었다.
김대정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에 파고들었던 마력.
‘마력장과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마력을 뒤튼 마력장과는 다른 종류의 마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 화가 가장 난 분은….”
이윽고 사형선고와도 같은 김대정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타앗.
던전을 울리는 작은 발소리.
쿠쿠쿵!
하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 던전 전체가 무너질 듯 뒤흔들린다.
“여제시니까.”
“여…, 제….”
최명희, 그녀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커억!”
아직 최명희는 저 멀찌감치 있건만 복부에서 느껴지는 둔중한 통증.
“변명 따윈 필요 없다.”
“제, 발….”
“죽거라.”
콰아앙!
찰리의 내부에서부터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툭.
쓰러지는 찰리, 그는 피로 물든 시야 사이로 로베르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몸이 시뻘건 피로 도배되어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아아.’
이것이 여제.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고, 그저 발소리와 마력만으로 랭커인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존재 말이다.
* * *
‘여긴….’
이정기가 흐릿한 시야를 되찾으며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다.
사방은 시꺼먼 어둠.
‘의식을 잃었구나.’
이곳은 이정기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으로, 쥬피터의 훈련 중간 과정을 끝마친 후부터 기절할 정도의 고통을 받으면 눈뜨는 곳이었다.
쥬피터와 이건이 말하길 이곳은.
‘본질의 방.’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라고.
‘실패했나.’
이정기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마도 로베르트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거다.
두 할아버지를 제외하자면.
‘첫 번째 패배.’
솔직한 심정으로 로베르트가 그토록 강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주변에 존재하는 헌터들을 본 이정기였기에, 랭커라고 해봐야 이진석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하지만 로베르트는 달랐다.
‘마치 몬스터 같았어.’
인간의 육체를 가진 몬스터.
“랭커란 그런 것이구나.”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나는….’
아직 올림포스에 있을 때의 백 분의 일도 힘을 되찾지 못했다.
할아버지를 구하고자 나섰다고 했지만, 조금은 자만했다고 하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혹시 모를 여타의 상황에 대비했다는 것.
자신이 지금 본질의 방에 있다는 것은 패배했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다는 뜻.’
그건 이정기가 혹여 있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둔 보험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던전에 들어오기 전, 이정기는 모은 마력을 또 한 번 쥐어짜 황금 산양의 젖을 들고 최명희를 찾아갔다.
한 번 황금 산양의 젖의 효과를 본 할머니였지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다시 복용해도 일정량의 효과는 볼 수 있을 터, 이정기는 그것을 통해 할머니와 거래했다.
‘할머니.’
혹여 있을 최후의 상황, 그때의 도움.
그걸 위해 받아들었던 펜던트.
‘소환의 펜던트.’
사용자가 죽음에 이르기 전, 정해진 소환자를 불러다 주는 유니크 아이템을 마동철에게 받아둔 것이었다.
“후.”
다른 이는 몰라도 할머니라면, 상황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깨어난다면.
“……!”
그때였다.
화아악!
어두운 본질의 방에 환한 빛이 비치며.
우르르르릉, 콰아아아앙!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본질의 방에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처음 있는 일.
“하….”
이정기는 문득 느껴지는 그리운 감정에 번개를 바라보며 입을 떨었다.
“쥬피터 할아버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것이 쥬피터의 번개라는 것을.
우르르릉.
다시 한번 내리치는 천둥, 번개의 섬광 속에 이정기에게 너무나 그리운 얼굴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정기야.
“할아버지!”
쥬피터!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목소리!
-네가 가진 힘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란다.
“할아버지! 살아계셨던 거예요?”
-너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 스스로를 깨닫거라.
“할아버지!”
-그리고 곧….
우르르르릉!
-그들이 네게 나타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하거라.
멈추지 않는 섬광 속에서 쥬피터의 모습은 점차 흐려져만 갔다.
* * *
“끄…, 끄응.”
신음과 함께 남자가 눈을 떴다.
“여긴….”
급히 모든 것을 체크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프로답다 할 수 있었다.
찰리.
“협회…, 군.”
느껴지는 마력들, 온몸을 옥죄이는 마력 구속구들.
싸늘한 시선까지, 이곳이 협회라는 것을 찰리는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팀장!”
엉망이 되어버린 팀장, 레옹.
그 외에도 이원형.
“로, 로베르트.”
엉망을 넘어 넝마나 다름없는 모습, 살아있는 것인지 의심이 될 몰골의 로베르트가 함께 있었다.
“깨어난 거냐.”
레옹의 목소리가 찰리의 귓가를 간질였다.
“어떻게 된 건진 말해주지 않아도 되겠지.”
서포트 역할의 찰리다.
상황 판단이 누구보다 빠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누구에게 당했는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장을 뒤흔들었던 격통.
그저 최명희가 죽으라는 말에 담긴 마력에 자신은 그대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로, 로베르트는 죽은 겁니까?”
“누가…, 죽었다는…, 겁니까….”
찰리의 목소리에 가느다란 로베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그제야 찰리는 숨을 내쉬었다.
목숨만은 건졌으니 이 정도면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최악일지도.’
최명희, 김대정.
애초부터 각오하고 덤볐다고 하나.
“이정기에게 숨기는 게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반쯤 성공인 건가.”
이정기가 생각하던 존재가 아니라면 그것으로 되었다.
원래 그것을 확인하고자 일을 벌인.
“아니.”
그때 레옹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공이다.”
“성공…, 이란 말씀입니까?”
찰리는 레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이정기가 위협 요소가 아닌 특이 케이스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성공했다고 하는 건가.
인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레옹이라면 과연.
“이정기는 위협 요소가 맞다.”
“……예?”
찰리가 말했다.
“로베르트가 이정기를 거의 고문하다시피 내몰았습니다. 그럼에도 별다른 특별함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잠시 헷갈리긴 했지만, 그건 이정기가 아닌….”
김대정과 최명희의 힘이라고.
“……!”
아니, 과연 그럴까?
찰리는 순간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소름을 느끼며 다급히 로베르트를 쳐다봤다.
“로베르트, 뭐에 당했는지 알고 있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애초에 그것 때문에 제가 이 작전에 투입된 거 잖습니까?”
버서크 상태의 로베르트, 그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치명상에도 정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분명 봤습니다….”
“……!”
로베르트가 턱턱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여 말했다.
“검은, 번개. 그건 김대정 협회장이나 여제의 힘이 아닙니다.”
“검은 번개…!”
“분명 이정기에게서 뻗어 나온 겁니다.”
검은 번개, 그건 들어본 적조차 없는 힘.
아니.
“검은….”
검다는 것은.
“그들이군요.”
자신들이 찾는 위협 요소라는 뜻이었다.
“그래.”
레옹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삐 움직이는 협회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뷔앙께서 올 거다.”
* * *
“…….”
이정기는 조용히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알 수 없는 기계 장치와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포션 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벌써 깨어나신 겁니까?”
벽에 기댄 채 이정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진석이 반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정말…, 어떻게 된 몸인지.”
이정기가 바라본 이진석의 몸은 상처투성이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습격해 온 생츄어리라는 작자들과 한패인 이들에게 당한 것이리라.
“아무리 하이 포션을 들이부었다고 해도, 이 정도 회복력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거의 반죽음에 이르셨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정기가 이진석을 향해 말했다.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겁니까?”
이정기의 물음에 이진석이 손가락 하나를 펴며 말했다.
“일주일입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