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24화
049
검과 주먹.
콰쾅!
두 개를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했다.
인간의 몸으로는 쇠를 자를 수도, 부술 수도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
하지만 헌터의 세계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다.
쾅!
주먹으로도 검을 이길 수 있다.
물론 아이템의 보정을 받는 검의 소유자가 더 유리하겠지만.
콰아앙!
이진석이 주먹만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도깨비군.”
이진석을 향해오는 레옹의 목소리.
“하지만….”
그의 눈이 남색의 빛깔로 물들며.
콰앙!
이진석의 몸을 말 그대로 날려버렸다.
“검을 들지 않은 채 주먹만을 사용했다간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다.”
이진석은 권투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검을 잘 다루는 검사.’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검을 들지 않았다.
“그 소문이 아무래도 진짜….”
레옹이 이진석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끝까지 잇지는 못했다.
콰콰쾅!
다시금 이진석의 주먹이 짓쳐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히 일반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속도, 그 주먹 하나하나는 맹렬한 기세가 서려 있었다.
‘붉은 마력.’
헌터의 신체 능력을 월등히 향상시키며, 공격 계열의 스킬에 보너스를 부가하는 마력.
희소한 마력 중에서도 삼대 마력으로 불리는 것이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하지만.
터억!
남색의 마력 또한 그에 못지않다.
아이템의 효율을 극한으로 상승시켜주며.
“철사자….”
그 방어력 또한 월등히 향상시켜 주는 그 마력은 근접 계열 헌터들에게 붉은 마력만큼이나 효용이 대단한 것이었다.
“검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소문, 진짜인가 보지?”
“……!”
“그래서 던전 공략에서 은퇴했다는 것도, 모두 진짜인가 보군.”
레옹의 대검이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천둥이 울리는 것과 같은 소리, 동시에 대검에서 발산된 마력이 이진석을 집어삼켰다.
‘사자 포효.’
남색의 마력과 더불어 레옹에게 철사자라는 이명을 준 기술.
레옹의 성명절기와 다름없는 기술이었다.
“더 이상 놀아줄 시간은 없다. 정체도 밝혀졌으니….”
레옹이 기절한 듯 쓰러진 이진석을 뒤로 한 채 등을 돌렸다.
“지원 가야 하겠군.”
정훈과 협회의 삼십인.
그들이 이진석에게 발이 묶인 틈을 이용해 던전으로 들어갔다.
‘로베르트와 찰리라면 능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정기가 걸렸다.
확실히 해야 하는 상황.
정체마저 들킨 지금, 제대로 이정기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면 생츄어리의 위상은 물론 자신들의 모든 것이 부정당할 수도 있었다.
스윽.
던전을 향해 레옹이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서걱!
남색의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던 레옹의 등에서 섬뜩한 소음이 울렸다.
카앙!
다시금 뒤돌아 대검을 든 레옹.
“…….”
그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진석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기절해있었던 듯한 이진석.
그가.
스릉.
붉게 빛나는 검을 쥔 채 레옹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던 건가?”
방금 전의 일격.
그건 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파괴력이 담긴 것이었다.
남색의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던 자신의 육체에 기다란 자상이 난 것이 그 증거였다.
“아니.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진석이 말했다.
“검을 사용하지 못했지.”
어느 날, 검을 쥐면 이성을 잃게 되어버렸던 자신.
그건 헌터들에게 흔히 일어나지 않는 스킬 각성을 통해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버서크와 같은 패시브 스킬.
‘귀검.’
분노에 이성을 잃는 버서크처럼, 살의에 이성을 잃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본능만이 남는 스킬.
이진석은 그 스킬을 제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당최 나아지지 않는 그 현실에 좌절하며 던전 공략을 포기했었는데.
‘진심을 다해 보세요.’
그런 자신에게도 한 줄기 빛은 남아 있었다.
‘원래 검을 잘 다루셨다고 했죠? 이유가 있나요?’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련과 훈련을 요구했던 이정기.
‘과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가 말했다.
‘걱정은 하지 말고 검을 드세요. 제가 말한 진심은, 그것이니까요.’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했다.
‘상처입힐 수 없다.’
이정기와 자신의 격차를 분명히 알고 있는 이진석이었기에, 자신이 검을 들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 이정기는 큰 부상을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결코 검을 들지 않겠다.
그렇게 시작된 대련, 하지만 이진석은 결국 깨달아야만 했다.
‘검을….’
검을 들어야겠다고.
그리고 그 일주일의 훈련.
이진석은 몇 년 동안이나 해내지 못했던 일을 마침내 해낼 수 있었다.
고오오오!
잠시뿐이라고 하지만, 일시적으로나마 귀검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붉게 물든 머리칼이 중력을 거스르듯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시뻘건 눈과 양팔, 그리고 가슴에 붉은 마력의 불씨가 치솟았다.
“이런….”
그것을 바라보며 레옹이 말했다.
“위험하겠군.”
* * *
“마, 말도 안 돼!”
최인해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이정기가 준비한 함정이 치명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상처는 냈을 것이라 생각했던 최인해.
그러나 폭발을 뚫고 나온 헌터는 작은 생채기밖에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격돌.
준비한 대로 최인해의 서포트와 권신우 안태민이 달려들어 발을 묶었고, 이정기가 치명타를 날렸어야 했다.
그러나 한순간.
“미…, 쳤군….”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고오오.
랭커들 중 일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마력의 특별한 운용, 마력 폭발.
그 단 한 번의 마력 폭발로 그에게 달려들었던 권신우나 안태민은 물론 멀리 떨어져 있던 자신까지 한순간 마력이 소실되는 것을 느꼈다.
“랭커….”
그냥 S등급 헌터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겨루게 된 랭커.
“……이건 못 이겨.”
그 격차는 가히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다.
이성에도 수많은 랭커가 존재한다.
특히나 안태민은 제 아버지, 안인회도 퍼스트 라인의 최상위 랭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심을 다한 전력을 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랭커와 헌터, 아무리 빠른 성장세를 달리고 있는 루키들이라 해도 그 격차는 무시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이만큼이나 압도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레들의 발악은 이게 전부야?”
영어로 지껄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기에 무어라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크윽!”
하지만 몸을 짓누르는 마력은 최인해가 입조차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얼굴을 붕대로 가린 로베르트가 말했다.
“한 놈은 서 있군.”
로베르트의 시선이 향하는 그곳, 마력 폭발 속에서도 꿋꿋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정기였다.
“네가 이정기로군.”
으르렁대듯 말하는 로베르트.
“감히 함정을 파놨겠다. 쉽게 끝날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마라.”
경고와도 같은 말에.
“이정기! 널 노리고 있어!”
이정기가 게이트에서 나고 자란 것을 아는 최인해가 급히 말을 전하기 위해 소리쳤다.
“날 왜 노리는 거지?”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이정기의 입에서 나온 것은 또렷한 영어.
“너희들….”
이정기가 배운 언어는 한국어뿐만이 아니었다.
영어, 불어나 일본어 등.
‘이건.’
이건이 할 수 있는 언어는 모두 올림포스에서 습득했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헌터이기에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들.
“‘그들’인가?”
이정기의 목소리에 로베르트가 몸을 꿈틀했다.
“들켰나. 하긴 이건의 손자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겠지.”
그러면서 로베르트가 얼굴의 붕대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생츄어리의 일원 중 하나인 로베르트다.”
“광전사!”
“그리고 너는 올림포스에서 나와 세상을 어지럽힐 종자일 가능성이 있지.”
로베르트가 창을 꺼내 들어 이정기를 노려보았다.
“네 놈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 주겠다.”
“생츄어리…?”
하지만 이어진 이정기의 목소리는 너무 의외라는 듯했다.
“그건 올림포스를 감시하기 위해 창설된 길드 아닌가?”
“너….”
로베르트의 안색이 붉게 변했다.
“날 가지고 논 거냐!”
알지도 못한 채 아는체한 것에 제 발이 저려 정체를 드러내게 된 꼴이 된 로베르트.
그의 분노가 더욱 치솟고 있었다.
붉은 마력이 치솟아 로베르트의 창과 양팔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죽여 버린다!”
이정기를 향해 치닫는 로베르트.
“이런 제길.”
뒤늦게 따라온 찰리가 그 모습에 머리를 짚던 순간.
쿠웅!
로베르트와 찰리는 온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 * *
“이게 무슨…!”
뒤늦게 합류한 찰리가 경악하며 소리쳤고.
“뭐야!”
로베르트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기세 좋게 이정기를 향해 달려들던 로베르트,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찰리.
둘 모두 강력한 힘에 의해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설마? 마력장?”
찰리가 경악하며 말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힘이 숙련된 헌터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력장이라고?
하지만 마력장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행동을 일부 억제하거나, 스킬의 위력을 반감시키거나 하는 것 따위.
그러나 지금 자신들을 짓누르는 힘이 마력장이라면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헌터에게는 마력에 대한 반발력이나 저항이 있었고, 헌터를 상대로 한 마력장은 큰 효용을 갖지 못한다.
마력장이 헌터에게 사용이 가능하다면.
‘서로가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경우.’
즉, 자신들을 상대로 이러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말도 안 되는!”
이정기의 마력장이 적어도 SS등급, 퍼스트 라인 대의 마력장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도, 이정기가 SS등급일 리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지금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마력장은 분명한 현실.
이정기의 마력장의 효용은 자신들을 짓누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윽.
몸을 일으키는 이정기의 팀원들.
“마력 폭발로 소실됐던 마력이….”
“회복됐어?”
소실되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그들, 하지만 소실됐던 마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야.”
거기다 안태민은 또 하나를 느낀 듯싶었다.
“마력이….”
손을 펴며 놓쳤던 태도를 손에 쥐는 안태민.
“증폭되고 있어.”
그들이 평소 다룰 수 있는 마력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이 온몸에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이정기, 그가 해낸 일.
이정기를 향하는 시선들.
“생츄어리가 왜 날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이정기는 가라앉은 눈으로 마력장에 짓눌리고 있는 로베르트와 찰리를 향해 말했다.
“날 죽이려고 한 거지?”
분명 로베르트는 말했다.
‘죽여버리겠다.’
그렇다면.
고오오.
“그에 걸맞게 상대해줄게.”
자신 또한 그러한 각오로 나설 것이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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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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