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23화
048
콰앙! 콰앙! 콰아아앙!
연달아 들려오는 폭발음.
쿠쿠쿵!
폭발에 던전이 무너질 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콰아앙!
또다시 들려오는 폭발음.
“대체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이정기를 향한 질문이 작은 소리로 들려왔다.
지금의 폭발, 이정기의 팀원들이 설치한 것은 없으니 아마 이정기의 짓일 것이다.
“설마 그래서…? 그래서 천천히 나아간 거야?”
“던전 벽에 마력 함정을 설치할 시간이 필요했어.”
“함정을 설치하는 기색은 없었는데?”
권신우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 정도의 폭발을 일으키는 함정은 꽤나 많은 도구, 혹은 수준 높은 아티팩트를 필요로 한다.
‘하긴. 녀석의 정체나 신분을 생각하면 이 정도 준비는 충분한 건가.’
그런 도구를 쉽게 챙겨올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정기가 위험을 미리 알았다면 구하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응? 아닌데.”
하지만 들려오는 이정기의 답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마력으로 만든 거야.”
“마력으로…?”
마력만으로 만들어진 함정이라고?
“그럼 스킬이란 뜻인가?”
그렇다면 스킬밖에는 없을 텐데.
‘이정기에게 이런 스킬이 있었다니.’
콰아앙!
지금도 들려오는 폭발음.
쿠쿠쿵.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
결코, 수준 낮은 함정이 아니었다.
이 정도의 능력을 지닌 스킬이라면, 절대 무시하지 못할 수준, 거기다 마력만으로 발동하는 함정이라면.
꿀꺽.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는 거냐?”
그 한계를 모르겠다.
“음.”
들려오는 폭발음 속에서 이정기는 말했다.
얼마나? 라는 질문.
“대충….”
마력 함정은 정확히 말하자면 스킬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을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했을 뿐.
그럼 이런 비슷한 능력을 몇 가지나 사용할 수 있냐는 권신우의 질문에 해줄 답은.
“모르겠는데.”
그것뿐이었다.
“모르겠다니. 한계를 모르는 건지, 또 숨기는 건지.”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지속될 수 없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 함정에 접근조차 못 하겠지만….”
콰아앙!
“계속 폭발음이 들려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인 듯싶군.”
던전이 뒤흔들릴 정도의 충격 속에서도 끊임없이, 아니 더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적.
결코, 방심해선 안 된다는 생각과 그를 상대할 대비책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치, 예전의 상황이 반대로 된 것 같군.”
안태민의 목소리.
마력 던전에서 안태민은 이정기들을 기다리며 함정을 파고 대기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
이정기가 함정을 파고 적을 기다리는 상황.
그때의 결과는 습격한 이정기의 승리.
“하지만….”
안태민은 작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것 같군.”
공격 측의 승리가 아닌 수비 측의 승리.
즉.
스르릉.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는 각오와 같은 다짐이었다.
“…….”
이정기도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호흡을 집중했다.
그리고.
“온다.”
폭발적인 마력이 지근거리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이 개자식들이! 감히!”
영어로 떠드는 시끄러운 목소리의 주인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끄으….”
“끄어어….”
엉망으로 너부러진 채 신음하는 그들.
언뜻 보면 이제 막 헌터에 입문한 초보 헌터들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은 협회의 베테랑 헌터들이었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
갑작스레 등장한 자, 오직 한 명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남색의 마력이 흩날리는 커다란 대검.
그 대검은 마치 쓰러진 헌터들을 조롱하듯 두꺼운 천에 휘감겨 있었다.
그런 괴인의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
“후우…, 훅.”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정훈.
“…….”
그래도 호흡만큼은 지키고 있는 이진석이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웅.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겁니까?”
정훈이 괴인을 향해 사납게 말했다.
“당신은 협회의 헌터들을 공격했으며, 헌터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던전….”
하지만 정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부우웅!
다시금 휘둘러지는 남색의 마력을 품은 대검.
정훈은 급히 발을 떼며 뒤로 물러났고.
콰앙!
이진석은 붉은 마력이 일렁이는 두 주먹으로 대검을 막아냈다.
“크읍!”
하지만 힘의 격차는 명확했다.
파앙!
남색의 대검에 밀려 쏘아지듯 튕겨져 나간 이진석.
꽈드득!
그는 허공에서 두 바퀴를 돌아 땅을 밀어내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진석이 정훈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뿐만이 아니라, 두 명의 헌터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정기가 있는 던전으로 향했다.
“알고 있습니다.”
두 명의 헌터는 지금 자신들이 막아서고 있는 이 남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결코 무시하지 못할 실력자들임은 확실했다.
쿵.
다시금 남색의 대검이 땅바닥에 박혔다.
고오오.
일렁이는 공기의 흐름.
“제가 막아보겠습니다.”
“……!”
이진석의 말에 정훈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틈을 만들 테니, 던전으로 향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정기 님을 구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정훈의 눈이 떨렸다.
남색의 대검을 쥐고 있는 남자.
‘변장 아이템.’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이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쯤은 확실하다.
변장 아이템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는 그는 확실한 강자.
“할 수 있겠습니까?”
정훈이 아는 이진석과 남자의 격차는 꽤나 큰 것이었다.
“할 수 있겠느냐고요.”
이진석이 두 주먹을 맞댔다.
화륵!
타오르기 시작한 붉은 마력이 두 주먹은 물론 팔뚝까지 치솟아 올라갔다.
동시에 붉은 마력은 이진석의 두 눈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깨비.’
그것이 이진석의 이명.
신체와 스킬의 능력을 강화하는 붉은 마력을 수준급으로 사용하며 마력의 운용이 고급 단계에 이르러야 가능하다는 신체에 마력을 덧씌우는 것까지 가능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붙여준 이명이었다.
‘이진석의 두 눈과 두 팔이 붉은 마력에 휩싸일 때.’
그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남색의 마력.’
그건 아이템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마력으로, 저 대검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결코 낮은 수준의 무구가 아닐 듯했다.
거기다 괴인 자체도 수준급의 실력자임이 분명하니, 그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할 수 있고말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정훈이 신호를 기다리며 마력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파슷!
분명 땅에 대검을 꽂아 넣었던 괴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딜.”
괴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등 뒤.
아무것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정훈은 등을 점령당한 것이었다.
‘아뿔싸.’
피할 방법이 없다.
대검에 서린 마력은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수준이라 이대로 한 방이라도 허용한다면 최소가 기절, 최대가 사망일 것이 분명했다.
빠르게 마력을 끌어올려 최대한의 방어에 치중하려던 그 순간.
“지금입니다!”
이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쾅!
정훈의 뒤편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아득한 충격.
정훈이 곧장 정신을 차렸을 때.
화르르륵!
남색과 붉은 마력이 서로 뒤엉킨 채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
정훈이 눈을 부릅떴다.
이진석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는 몇 해 전부터 던전 공략에 나서지 않은 채 모습을 숨겼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진석의 실력은 그때에 멈춰있거나, 퇴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쿠쿠쿵!
하지만 아니었다.
붉게 물들어 있는 이진석의 머리칼.
‘저건…!’
마력 운용이 한 단계 더 진일보했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지금의 이진석은 대검의 괴인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듯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묶어두고 있는 상황.
“뭘 하는 겁니까!”
이진석이 정훈을 향해 으르렁대듯 소리쳤다.
“얼른 던전으로…!”
겨우 만든 틈, 그저 넋이나 놓고 그러고 있을 것이냐는 외침.
하지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정훈은 멈춰선 채 그들을 보며 말했다.
“……? 지금 무슨 소리를….”
“철사자 레옹.”
덜컥!
정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대검의 괴인이 몸을 떨었다.
“지금 이곳으로, 협회의 정예 헌터 삼십 인이 곧 도착할 겁니다.”
“……!”
“모를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안으로 들어간 두 명의 헌터, 로베르트와 찰리. 그리고 이원형은 이곳으로 향할 협회의 헌터들을 막는 것이 계획이었겠지요.”
콰앙!
폭발과 함께 이진석과 괴인이 거리를 벌렸다.
“이미 눈치채고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력의 싸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만을 보였던 정훈.
그가 가느다란 눈으로 괴인, 레옹을 보며 말했다.
“얌전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스륵.
어느새 협회의 마크를 단 헌터들이 하나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완전히 포위된 상황.
머리칼까지 붉은 마력으로 덧씌우며 투기를 일깨우던 이진석이 당황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의 정보부장을 너무 무시했던가.”
괴인은 목소리를 내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스르륵.
그의 몸을 휘감았던 붕대가 풀리며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미친! 끝까지 갈 생각입니까!”
그의 대검에 싸여 있던 붕대마저 풀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기운.
남색의 마력은 레옹의 대검을 타고 레옹의 한쪽 팔과 가슴께까지 빛내고 있었다.
완연한 전투 의지.
“팀원들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팀장으로서의 책임이니까.”
“대체….”
아득.
정훈이 어금니를 깨물며 레옹을 노려봤다.
저 남자 자신들 전부와 싸울 생각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진석 헌터의 전력이 예상 이상.’
헌터의 삼십 인도 정예인 만큼 절대 꿇리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그 철사자 레옹이라면.
‘이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더 많은 인원을 투입했어야 했나?
하지만 그랬다간 저들이 눈치채고 움직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삼십 인만을 불렀다.
‘오만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투항한 레옹을 뒤로하고 던전의 다른 헌터들마저 제압하려 했건만.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이정기 팀은 두 명의 랭커를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
“정훈 정보부장님.”
이진석이 다시금 정훈을 불렀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레옹은 제가 막을 테니.”
화르륵!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한 붉은 마력.
“던전으로 들어가십시오.”
콰앙!
“삼십 명 전부.”
콰콰콰쾅!
이진석의 주먹이 레옹을 향해 거침없이 내질러지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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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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