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22화
047
타탓!
빠르게 움직이는 레옹의 팀원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뿐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은 한 시간.
이유야 간단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던전으로의 돌입.
하지만 이정기 팀은 정식으로 공략권을 받아내 던전을 공략하는 중인만큼, 협회가 던전의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첫 교전이 발생하면 곧장 협회에 연락이 취해질 거다. 근처 길드나 협회의 지원이 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
캐나다나 중국과 같은 커다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좁다란 대한민국.
그들의 인프라는 생각보다 훨씬 잘 되어 있어, 위기 상황 발생 시 유동적이고 긴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원형.
-네. 팀장.
-네가 시간을 끈다.
그들의 시선은 이원형이 끌 것이다.
결코, 모자라지 않은 실력, 이성의 공격대급이 오지 않는 이상 이원형을 막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한 시간.
-그동안….
문제는 더 있었다.
-협회의 헌터들과 정훈, 이진석을 마킹해야 한다.
그들을 돌파하지 않고서야 던전에 진입할 수 없다.
‘이미….’
이진석은 자신들을 눈치채고 급히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옹은 움직이며 팀원들을 보았다.
‘정훈과 이진석, 그 둘을 상대하며 협회의 헌터들까지 발을 묶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로베르트는 이진석급, 찰리는 랭커라고 하지만 지원 역할에 더 어울리는 헌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마킹한다.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드 라인의 랭커, 철사자 레옹.
자신의 실력이라면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며 시간을 끄는 것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 길이 열리면.
-로베르트와 찰리가 돌입한다.
-알겠습니다.
-드디어 날뛸 수 있는 거냐고.
절대 간단하지 않은 작전.
그리고 던전에 돌입한 이후도 중요하다.
-로베르트는….
모든 목적이 그 안에 있는 한 남자, 이정기를 위한 것이니까.
-이정기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녀석이 숨긴 게 없는지 알아봐.
-만일 숨긴 게 있다면?
레옹의 눈이 가라앉았다.
지금 로베르트가 묻고 있는 것은 교전 방침.
‘제압이냐….’
제거냐 하는 문제.
헌터 협회와 지원을 오게 될 자들은 당연히 제압해야겠지만, 이정기는 고민이 되는 대상이다.
-만일 올림포스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어 극히 위험하다 싶으면 죽여도 좋다.
-좋아….
-다만, 어지간해선 제압해라. 우린 그 비밀을 알아내야 하니까.
-알겠다고.
작전의 설명과 확인은 끝났다.
‘무리하기 짝이 없는 계획.’
레옹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츄어리의 아이템으로 모습을 바꿨지만, 실상 싸움을 지속하면 정체가 들킬 위험도 있을뿐더러 만일 들킨다면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의 협회와 이성이라는 벽 안에 숨어 있는 이정기를 확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대한민국과 이성의 입지는 과연 그 정도였으니까.
‘이대로 확인조차 못 한 채 시간이 흐른다면….’
만일 이정기라는 존재가 올림포스의 독이라면.
‘일은 걷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무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앗!
어느새 그들은 먼 거리에서 바로 던전의 입구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화륵!
타오르는 붉은 불꽃의 마력.
피슈우웅!
푸른 마력이 듬뿍 담긴 화살.
카앙!
레옹은 그것들을 쳐내며 말했다.
“너희들을 상대는 나다.”
이진석과 정훈, 그들이 서늘한 눈으로 레옹을 보고 있었다.
레옹은 그 커다란 대검을 꺼내 힘껏 휘둘렀다.
콰콰쾅!
넘실거리는 남색의 마력이 땅거죽을 뒤엎었다.
-지금이다. 던전으로 진입해라. 로베르트, 찰리.
-오케이.
-진입하겠습니다.
* * *
“…….”
무거운 공기.
이정기의 팀원들은 긴장을 한껏 부풀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S등급 헌터 둘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씨익.
최인해는 속으로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S등급 헌터 둘?’
분명 자신들이 상대하기에 위협적인 전력임은 맞았다.
이정기나 안태민이 강하다고 하지만 S급 헌터부터는 그 격 자체가 다르다.
눈치를 보아하니 안태민이 그 벽을 깬 듯했지만.
‘그래 봐야 이제 막 S등급 헌터가 된 거야.’
오히려 성장한 마력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나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최인해가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씨익.
“여기까지 오지도 못할 거 아니야?”
S등급 헌터 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겨우라는 말을 쓸 수도 있었다.
왜 자신들을 노리는지 모르지만 지금 던전을 지켜주고 있는 협회의 헌터는 다른 이도 아닌 정훈 정보부장이었다.
‘그 사람도 S등급 랭커지.’
현장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 경험과 마력이 어디 가지 않는 이상, 정훈은 훌륭히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거기다가 또 한 명.
‘이진석 헌터까지.’
이진석, 그는 대한민국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던 헌터.
붉은색의 마력을 흩뿌리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그의 모습에 매료되어 이성을 꿈꾸는 자들도 수없이 많았다.
거기다 그는 정훈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
‘오백 번대.’
중위권의 랭커였다.
애시당초 이정기를 노리는 두 명의 S등급 헌터들은 그들의 손에 의해 제지될 것이 분명했다.
만일 적들을 쓰러트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헌터를 보호하기 위한 협회는 급히 구원을 요청할 것이고.
스윽.
이진석 또한 망설임 없이 이성에 연락을 취할 것이다.
‘낙승!’
차라리 진작 말해주지, 그랬다면 이런 방어구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만일 그들의 벽을 뚫고 던전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거대 길드는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의 손자이자 최명희의 손자인 이정기를 거대 길드가 노리고 행동을 취한다고?
‘말도 안 되지.’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의 잠깐뿐.
‘근데, 이걸 모를까?’
한껏 긴장하고 있는 이정기를 보며 최인해는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정기.”
“……?”
“왜 적이 노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구원을 요청하지 않은 거야? 이성이나 협회에 말하면 되었을 텐데?”
다른 이가 그랬다면 헛소리나 피해망상으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이정기야.’
다른 이도 아닌 이정기다.
그의 말이라면 협회는 물론, 이성에서도 급히 인원을 파견해 보호했을 것이 분명했다.
“적들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설마.”
그때였다.
권신우가 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협회나 이성이 그 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최인해는 권신우의 말에 총알이 머리를 관통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를 노리는 적이, 협회나 이성이라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더 큰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안태민이 말했다.
“성혈들의 싸움은 치열하고, 이정기는….”
던전 공략에 나서기 전, 협회를 찾았던 이정기와 팀원들.
“협회장님께 수치심을 줬었으니까.”
“아, 아니,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애시당초 S등급 헌터가 왜 이정기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만약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맙소사.’
최인해의 짐작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었다.
덜덜덜.
“몰라.”
이정기가 마침내 답을 주었다.
“그럴 수도, 저럴 수도. 다만 나는 적을 끌어들여야 했고, 도움을 요청할 이유는 없었을 뿐이야.”
“그, 그럼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최인해는 눈을 꾹 감았다.
“후우….”
거친 숨을 토해낸 최인해.
‘어차피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거야.’
이대로 혼자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고자 나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준비는 확실한 거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질문.
“아마도.”
“그런 어중간한….”
그때였다.
“들어왔다.”
사납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정기가 말했다.
* * *
“로베르트, 안태민은 조심해야 해.”
찰리가 던전을 빠른 속도로 나아가며 로베르트를 향해 경고했다.
“이정기야 아직 S등급의 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안태민은 그 벽을 넘었을 수도 있어.”
틱, 톡.
시간은 흐른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 그 시간을 초과했다간.
‘테러리스트.’
그들은 인류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생츄어리의 길드원들이 아닌 죄 없는 헌터들을 살육하려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힐 것이다.
“찰리.”
로베르트가 낮게 으르렁대며 말했다.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로베르트.”
“벽을 넘었다고 해도, 이제 막 넘은 녀석에게 내가 고전할 거로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어려운 녀석.
찰리의 로베르트에 대한 평가였다.
신세대의 헌터, 어린 데다, 경험도 부족하다.
하지만.
“뭐, 걱정할 건 없겠지.”
그 실력만큼은 진짜다.
‘천재.’
타고난 천재라 말하는 것은 바로 로베르트와 같은 이를 말하는 것.
처음 헌터로 각성했던 로베르트의 등급은 겨우 D.
천재의 영역을 논하기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마력량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각성한 로베르트는 튜토리얼 따윈 없어도 고블린의 두개골에 검을 박아넣고, 뒤이어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오크를 사냥했다.
‘타고난 싸움꾼.’
아니 전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한 자.
“피가 끓어. 찰리.”
광전사 로베르트.
그것이 녀석을 부르는 말이었다.
“드디어 날뛸 수 있다고!”
“조용히 해. 아무리 그래도….”
“찰리 넌 겁이 너무 많다니까. 그래 봐야….”
씨익.
“햇병아리들이라고.”
“칫.”
말이 통하질 않는다.
결국, 찰리는 다시 한 번 경고할 뿐이었다.
“그래도 즐길 시간은 없어.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나가야 한다고.”
“물론이….”
그 순간.
“피햇!”
찰리가 급히 소리쳤다.
콰콰콰콰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치솟는 화염, 던전의 양 벽에서 터져 나온 화염이 그 둘을 집어삼켰다.
파앗!
마력을 통해 화염을 밀어낸 둘.
“이게 무슨….”
찰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내가, 함정을 몰랐다고?’
지원 계열의 엘리트,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S등급의 던전이라도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함정은 없었다.
헌데 겨우 A등급의 던전에서 함정을 발동시켰다니.
“로베르트!”
찰리가 급히 로베르트를 불렀다.
“이거 던전의 함정이 아니야!”
던전의 함정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함정.
즉.
“이미 녀석들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단 소리다!”
그렇다면 당연한 대비를 했을 터.
‘아니 알면서도 던전에 들어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의구심이 들던 찰나.
“하아.”
로베르트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함정의 화염 때문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그을린 자국 하나 없었으니까.
꾸구국.
다만 온몸에 올라오는 핏줄, 충혈되어버린 두 눈.
‘아뿔싸.’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다.
“로베르트! 안 돼…!”
“개자식들 다 갈아 마셔 주겠어.”
버서크, 로베르트의 고유 스킬이 발동해버린 것이었다.
찰리를 내버려 둔 채 빠르게 나아가는 로베르트.
콰콰쾅!
그의 움직임에 따라 더 많은 함정들이 계속해서 발동하고 있었다.
“제길.”
찰리가 급히 로베르트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콰앙!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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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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