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21화
046
던전에 들어선 이정기의 팀.
꿀꺽.
최인해를 비롯한 이정기의 팀원 모두는 한껏 긴장한 채 주변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몬스터 반응 없어.”
“특별한 함정도 없는 것 같군.”
지금껏 던전을 대했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중함.
“후.”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이정기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던전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직도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던전 마력량도 특별할 것 없어. 보고 받은 대로 A등급 던전이야.”
A등급 던전.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마력 던전을 공략하고 그간 빠르게 던전들을 공략하며 성장한 그들.
‘최인해는 B등급, 권신우는 A등급….’
그리고 안태민은.
‘S등급인가.’
S등급에 이르러 있었다.
저번까지만 해도 아직 벽을 넘지 못했을 진데.
‘던전 공략에 성공했다더니, 그곳에서 벽을 넘은 모양이야.’
일주일의 준비 기간 중 생긴 변화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이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소리칠만한 일이었지만, 이들이 지나온 길을 안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물론 단순한 노력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팀원들의 빠른 성장 속도, 그건 분명 어느 정도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그저 한계에 치닫는 계속된 경험 탓에 가능한 일로 치부하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벼락.’
이정기의 심장 근처에 자리 잡은 쥬피터의 유품, 인간을 벗어난 신의 도구가 자연스레 마력을 빨아들이며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뭐, 말해주지 않는 이상 모르겠지만.’
이정기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
별로 중요치도 않은 진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은 그들의 빠른 성장에 별 감흥이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저 녀석이 있으니까.’
이정기.
상식을 벗어난, 아니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이정기를 보며 그들의 성장 속도는 평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퇴로도 확실해.”
이따금 게이트 형 던전이 발견되며 던전 밖으로 향할 수 있는 출구가 닫히는 일이 있기에 팀원들은 그것마저도 확인했다.
“포션 다시 확인해볼게.”
“장비를 살펴보지.”
“……정찰 해보겠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던전 초입일지라도 보스 방을 앞둔 이들처럼 행동하는 그들.
그들은 모든 점검을 마치고 다시 모였다.
“아무런 이상 없음.”
“마찬가지다.”
“나도.”
그들이 보기에 던전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던전의 난이도가 팀원의 수를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으나, 이미 이런 던전 공략은 아홉 번이나 해낸 지 오래였다.
“대체….”
최인해가 투구의 눈을 가리는 바이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정기가 일주일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휴가가 필요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대화를 나누는 최인해와 권신우.
“이정기의 검을 봤나?”
안태민이 조심스레 말을 했다.
“검?”
“그간 우리와 공략을 하면서도 수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 아니 수리가 필요 없었으니까.”
일격에 몬스터를 처치하는 이정기.
던전의 보스라해도 일격에 처치할 순 없어도, 검을 이용해 방어한다기보다 보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며 움직여 검의 손상이 극히 적었었다.
하지만.
“수리 흔적이 있다.”
“……!”
그런 이정기의 검에 수리한 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간 검이 상할 정도로 무언가를 했었겠지.”
그렇다면.
꿀꺽.
“이 던전에 뭐가 있긴 있다는 거네.”
“그렇겠군.”
“…….”
최인해가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정말 말 안 해줄 거야?”
차라리 속 시원히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려라도 주면 좋을 텐데.
이정기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후. 어쩔 수 없지.”
타악!
최인해가 올렸던 바이저를 다시 닫으며 말했다.
“일단 공략해보자고.”
* * *
이정기가 신경 쓰는 무언가가 던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
“이상 무.”
“이상…, 무.”
“없다.”
그들은 계속해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긴장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천천히 나아가잖아?’
던전의 공략 속도가 전과 다르다.
거기다.
“갈래 길이야.”
언제나 그랬듯 나타난 던전의 갈래길.
“우리가 오른쪽으로 가면 돼?”
당연히 지금껏 그래왔듯 갈래 길에서 나누어 공략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른쪽 길로 함께 갈 겁니다.”
“뭐?”
당황스러운 일.
하지만 어차피 이정기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곳에 이정기마저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으로 목숨마저 잃을 위협이 있다면 이성을 떠나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니까.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최인해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안 돼.’
그 신념은 이정기를 만나고 변했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영역과 삶.
이정기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황금 동아줄을 버릴 수야 없지.’
이정기의 신분과 정체.
그것을 알고 있는 이상, 이정기의 팀에서 나가게 될 수도 있는 일을 벌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상 없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그들은 계속 나아가 마침내 중간 보스마저 쓰러트렸다.
“이제는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금껏 이정기를 채근한 적 없었던 안태민, 그가 이정기를 향해 물었다.
끄덕.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인 이정기의 고개.
“전 여기 남아 방어를 구축할 겁니다.”
“뭐?”
“세 분은 함께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러 가시면 됩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최인해가 발끈하며 나섰다.
이정기가 남고, 셋이 보스 몬스터를 공략한다고?
이상하긴 해도 납득할 수는 있었다.
모종의 이유로 그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이정기였으니까.
하지만.
“방어진을 구축한다고?”
그건 마치 무언가 공격해 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잔류 몬스터가 있는 건가? 몇 번을 확인했을 텐데.”
“아니, 애당초 잔류 몬스터를 신경 쓰는 녀석이 아니잖아.”
이정기를 향해오는 시선.
“죄송합니다.”
“그니까, 왜!”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답답함에 다시 소리치려던 최인해는 이정기의 눈빛에 몸을 흠칫 떨었다.
“적일지…, 흑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저희를, 정확히는 저를 노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정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적, 그건 인간이라는 소리지?”
끄덕.
“던전 공략 초반부터 따라붙은 시선입니다. 처음에는 기자나 제게 호기심을 가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등급이 오르니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달라지니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
“그런 것 같진 않더군요.”
S등급의 헌터가 그저 자신의 사진이나 찍자고 그 긴 시간을 쫓아다니는 것은 아닐 것이니까.
“S등급 헌터입니다.”
“뭐, 뭐라고?”
“혼자가 아니더군요. 최소한 한 명의 동료가 더 있습니다. 수준은 비슷할 것 같고요.”
이정기는 거침없이 말했다.
“최선은 여러분과 던전에 함께 오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랬다간….”
먼저 이빨을 드러낸 듯한 저자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먼저 움직이기에는 저들의 전력이 너무 강했다.
자칫했다간 자신이 당한다.
그렇기에 저들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연기하며.
‘구덩이로 유인해야 해.’
그 과정에서 팀원들을 빼버렸다간, 저들도 눈치를 채고 꼬리를 숨길지 몰랐다.
“그러니까….”
최인해가 투구를 벗어던지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S등급 헌터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지?”
“맞습니다.”
“그리고 너는 그걸 일언반구도 없이 우리를 휘말리게 했고.”
싸늘한 눈빛.
“…….”
이정기도 안다.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이지.’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잘못인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어.’
자신을 노리는 그 시선이 쥬피터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들이라면,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접촉해야만 했다.
“미친 새끼.”
냉정하게 들려오는 최인해의 욕설.
“넌 팀장으로서 실격이야.”
“최인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결국 우리의 목숨을 그냥 이용한 거잖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무거워진 분위기.
이정기는 힘겹게 말했다.
“던전을 나가려 했다간 오히려 적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세요. 그 전에 제가 적들을 쓰러트려 보겠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보스를 쓰러트려 던전이 공략되고 우리는 도망칠 수 있다, 이건가.”
권신우의 말이 바로 이정기의 계획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말해주었다.
“후, 그렇다 이거지.”
최인해가 내던졌던 투구를 다시 집어 흙을 털어냈다.
“만약 전부 무사히 빠져나간다면 이번 일은 꼭 책임….”
“책임져야지.”
탁!
투구를 쓴 최인해.
“돈으로 줘. 너 때문에 장비 사느라 돈 다 썼으니까.”
“최인해…!”
“그리고 이용할 거면 어설프게 굴지 말고 끝까지 확실히 이용하고.”
그녀는 이정기의 옆에 섰다.
“그게 네가 여태껏 해왔던 우리와의 거래잖아.”
거래.
손길을 뻗듯 그들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이정기.
도움을 주려던 것임을 알지만.
‘위험해.’
쥬피터 할아버지가 말한 적들과 엮이면 이들도 위험할 것이 자명하기에 밀어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우정인 건가.’
관계가 무엇인지.
동료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최인해가 마력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기서 무사히 돌아가면 그 같잖은 존댓말부터 집어치우라고. 그게 내가 바라는 대가다.”
그녀는 더 이상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러 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여기 남아 이정기와 함께 싸우겠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뜻이었다.
“나도 대가를 바라야겠지. 뭐가 좋을까. 그래, 네 차, 한 번 운전해볼 수 있겠나?”
권신우.
그도 함께 섰다.
“나는….”
안태민, 그도 옆에 섰다.
“이진석 헌터와의 대련을 주선해주면 좋겠군.”
“…….”
그들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문 이정기.
“후.”
그는 짧은 숨을 토해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좋아.”
처음으로 이정기가 마음을 연 순간이었다.
* * *
“던전 진입 여섯 시간 경과. 협회 측은 최소 인원을 남겨둔 채 돌아갔습니다.”
“…….”
“나머지 협회의 헌터들은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정훈 정보부장. 그는 분명한 랭커입니다.”
보고.
“그리고 또 한 명….”
“이진석이겠지.”
레옹, 그가 찰리의 보고에 답하며 말했다.
끄덕.
그들은 지금 이정기 팀이 들어간 던전이 보이는 언덕에 서서 기척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좋아.”
기척을 풀어헤치며 마력을 개방했다.
“돌입한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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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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