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20화
045
“쟤 지금 이쪽 본 거 맞지?”
찰리가 몸을 흠칫 떨며 말했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자신이 누구던가, 세계를 위해 올림포스를 감시하기 위해 탄생한 생츄어리의 길드원이자 S등급 헌터이자 랭커인 그였다.
비록 상위가 아닌 라인에도 들지 못하는 랭커라곤 하지만 랭커는 랭커.
거기다 찰리의 특기는.
‘은신.’
모습을 감추고 마력장을 최소화해 스스로를 숨기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이런 자신의 기척을 느낀다는 것은 랭커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훨씬 높은 랭킹의 헌터들조차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한데.
‘아무리 성장세가 폭발적이라고 해도 아직 S등급도 아닌 헌터가 가능할 리 없지.’
거기다 이 먼 거리에서 자신을 발견했다면 더더욱 말이 되질 않는 이야기였다.
“후우. 내가 조금 긴장한 건가.”
찰리가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며칠 전 오르펜에서 있었던 작전 회의.
‘이정기를 확인해야겠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움직이기로 결정되었다.
타겟은 이건이 아닌 이정기.
‘말도 안 되는 던전 공략 속도와 성장 속도.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어.’
이정기에게 올림포스와 관련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판단한 것.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협회나 이성에 협력을 구해 조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김대정 협회장이 끔찍이도 싸고돈다고 했지.’
한국의 헌터 협회장, 그는 이건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존재.
이미 이정기의 모니터링을 위해 협회와 만남을 가졌지만, 김대정은 매번 이유를 대며 만남을 성사시켜주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협회장이라고 한들 헌터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는 노릇이오. 거기다, 내가 오라고 해봤자…. 아, 아니오. 못 들은 거로 하시오.’
거기다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 이성을 통한 접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혈이다.’
최명희, 그 여제이자 사신인 그녀의 핏줄로 이성 내부에서도 둘둘 감싸아져 있었다.
이정기의 출현으로 이성 내부에 분란이 있을지 모르기에, 그 틈을 노리려 했으나 이원형이 그것을 말렸다.
‘내부 싸움입니다. 내전에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는 짓을 했다간 평판이 깎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성 또한 이정기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는커녕 방해만 하리라는 것.
한국 출신이자, 한국의 생리를 잘 아는 이원형의 말인 만큼 레옹은 수긍했다.
결국, 긴 회의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올림포스와 관련된 비밀을 무엇인가 안고 있을 인물.
‘그 무엇보다 인류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던지겠다는 약속을 하고 들어온 곳이 바로 생츄어리였다.
찰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팀장.”
팀장, 레옹에게 보고를 위한 것.
“다음 던전 일정은 일주일 후인 것 같습니다. 예, 예, 블러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아까 전 느꼈던 께름칙한 시선.
찰리는 다시 고개를 흔들어 그 시선을 무시했다.
“저를 알아차렸을 리 없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레옹의 목소리.
-작전 결행은 일주일 후다.
작전의 날짜가 결정되었다.
띠익.
전화를 끊은 찰리.
“후우.”
작전의 개요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법은 물론 세계 표준으로 제정된 헌터법마저 어겨야 하는 상황.
더욱이 그로 인한 결과는 자칫 실수했다간 걷잡을 수 없는 것으로 변할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인류의 안전.’
난 그걸 위해 생츄어리에 왔으니까.
“일주일 후, 그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눈을 깜빡이는 찰나.
스윽.
찰리는 어느새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 * *
다음 던전 일정은 일주일 후.
지금껏 없던 일에 팀원들은 불안과 긴장에 떨고 있었다.
[최인해 : 대체 왜 그러는 거지…? 다음 던전 정보 없어?]
[권신우 : 던전 정보 관리는 팀장이 하는데, 지금껏 그 정보를 공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나.]
[최인해 : 아니 겁나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지금껏 팀원들의 휴식을 위한다며 삼일 간격으로 던전을 공략하던 일정이 처음으로 변경되었다.
그것도 마지막 던전을 앞둔 채.
[최인해 : 젠장,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겠어. 장비라도 맞춰둬야 할 거 같아.]
[권신우 : 던전 아홉 개를 공략하며 수당은 차고 넘칠 테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안태민 : 나는, 다른 던전을 공략해보겠다.]
지금껏 최소한의 긴장을 유지하던 안태민조차도 대화에 열심히 참여할 정도의 화두였다.
‘도대체….’
마지막 던전이 어떤 곳이기에.
[최인해 : 설마, S등급은 아니겠지?]
[권신우 : 그럴 리가.]
[안태민 : …….]
그에 대한 불안과 긴장은 그들 스스로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었다.
최인해는 마법 계열 헌터이기에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시키고,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구하는데 번 돈을 다 털어 넣고 있었으며, 권신우는 성장한 마력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안태민은 제 능력을 십분 이용해 다른 팀의 던전 공략에 한 번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릴 정도의 불안.
“…….”
그리고 그 불안감을 안겨준 이정기는.
‘잘하고 있네.’
그들의 행동에 만족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어도 좋겠지만, 알아서 잘하고 있는 그들을 지금보다 더한 긴장감을 불어넣어 망칠 순 없었다.
생각을 마친 이정기가 눈앞을 바라봤다.
이진석, 그가 서 있었다.
이정기와 이진석이 함께 있는 이곳은 이성의 저택 지하에 마련된 훈련장.
이곳은 최명희가 특별히 신경 써 만든 곳인 만큼, 성혈들의 훈련에도 파괴되지 않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곳이었다.
“진심이십니까?”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물었다.
“예.”
“정말, 진심이십니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이진석.
그가 다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지금껏 비정상적인 속도로 성장하신 것은 압니다.”
분명 처음 만난 이후로 반년도 채 되지 않았건만, 이정기는 D등급에서 AAA등급 헌터가 되어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
이성과 협회가 아직 이야기가 새는 것을 막고 있지만 결국 이 사실은 세간에 밝혀질 것이고.
‘분명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헌터들이 등장한 지 반백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정기가 세운 업적은 그런 것이었다.
“또 등급과 어울리지 않는 실력을 갖춘 것도 알고요.”
또한, 이진석이 본 이정기의 특별함은 단순히 성장 속도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력.’
그의 전투를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었지만 듣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정기의 실력 그 자체만으로도 등급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올림포스에서의 경험이겠지.’
이건이라는 세계 최강자와 함께 지내온 이십 년, 거기다 그곳이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싸움을 강요받는 세상이라면?
어린아이도 살아남기만 한다면 역전의 전사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진석은 진심으로 이정기를 인정했다.
다만.
“저는 S등급, 정확히는….”
그것으로 허물 수 없는 것이 있다.
“SS등급으로 오백 번대의 랭커입니다.”
압도적인 마력차.
그건 경험만으로 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 경험 자체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진석은 어린 나이에 헌터로 각성해 숱한 경험을 쌓아 이 자리에 오른 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었다.
“진심으로 상대해달라고요?”
이정기가 그런 자신과 진심으로 대련을 원하고 있었다.
“예.”
간결한 대답.
이정기가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해주셔야 합니다. 어중간하게 봐주는 건 소용 없습니다.”
“하지만….”
“죽여버린다는 각오로 임해주세요.”
죽일 각오, 진심으로 대련에 임해달라는 것.
“안 됩니다.”
이진석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련에야 어울려 드릴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만큼은…, 아니 죽일 각오로 임하는 것만큼은 불가능합니다.”
이진석에게 중요한 것은.
“제 임무는 이정기 님의 보좌와 경호입니다. 헌데, 경호원이 경호해야 할 대상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것이었다.
“죄송하지만….”
“던전까지 함께 들어가실 겁니까?”
“……!”
이진석의 눈이 가라앉았다.
“무슨, 위협이라도 있던 겁니까?”
이진석이 물었지만, 이정기는 무시한 채 말했다.
“던전에서는 저를 지켜줄 수 없을 겁니다. 경호원의 임무는 제가 외부에 있을 때만 국한되는 것이지, 던전에서는 저를 지켜줄 수 없죠.”
“…….”
“하지만 제가 던전에서 상처 입거나 사망한다면 이진석 헌터님한테도 피해가 가겠죠.”
사실이었다.
“몬스터한테 당한 것이라면 모를까, 헌터에게 당한 것이라면….”
“말씀해주십시오. 무슨 일인지.”
“그러니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정기는 답해줄 생각이 없는지 검을 들었다.
대련용으로 제작된 철검이 아닌,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사용하는 마동철 표 롱소드.
“할아버지를 제외한 인간과 싸워본 경험이 너무 적습니다.”
인간과 싸워 본 경험.
“그 간극을 메꾸는 데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
“그건….”
이진석이 말했다.
“명령입니까?”
무언가 담겨있는 듯한 목소리.
“예. 명령입니다.”
이정기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륵!
“알겠습니다.”
어느새 이진석의 양손에 붉은 마력이 타오르고 있었다.
* * *
던전의 공략이 예정되어 있던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겨우 일주일, 그 짧은 시간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지만.
“훗”
변화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간 벌어놓은 돈을 깡그리 쏟아부었단 말이지.”
자신 있게 말하는 최인해의 꼴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갑옷인가?”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풀 플레이트아머를 두르고 있는 최인해.
“마법 계열 헌터는 빠른 움직임과 마력 수발을 위해 가벼운 경장갑 계열 아이템이 좋을 텐데?”
권신우의 질문에 최인해는 검지를 치켜들며 흔들었다.
“무슨 소리.”
“……?”
“그거야 일반적인 팀에서의 이야기고.”
“그럼?”
“지금은….”
분명 방금까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던 최인해가 몸을 흠칫 떨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
공포, 이정기가 일주일이나 준비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이번 던전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딱딱딱딱!
최인해는 그 공포에 몸을 떨며 제대로 된 사고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지 몰라…. 살아야만 해…. 살아남아야만 한다고….”
“그럴 거면 차라리 이번 던전 공략은 포기하지 그랬나.”
안태민의 물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최인해가 안태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이성 전체가 우리 팀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데, 나 혼자 던전 공략을 포기해봐. 다른 팀에서 날 끼워줄 것 같아?”
“그건, 그렇군.”
“방어! 방어야! 마력 수발도 자유로우니 걱정 마. 이만한 값에 방어력과 마력 능력을 챙기려고 모든 돈을 쏟았으니까.”
헌터의 수당은 절대로 적지 않다.
이성의 급여만으로도 천문학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던전 하나를 공략하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상상을 불허했다.
헌데, 일반적인 팀 단위인 열 명을 넘어서는 인원도 아닌, 겨우 네 명으로 이루어진 팀.
거기다 이정기는 제 몫을 나머지 팀원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인 돈은 이미 평생을 펑펑 쓰며 살아도 될 수준.
그 돈을 모두 쏟아부어 최인해는 장비를 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두 가지를 챙기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이런 아이템뿐이었지만….”
쑥스러운지 몸을 꼬는 최인해.
“준비가 철저하니 다행이군. 나도 이번에는 준비를 확실히 했다.”
무언가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권신우.
이정기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그의 변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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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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