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19화
044
호텔 오르펜.
이성 호텔과 더불어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호텔의 스위트룸에 몇 명의 남성이 모여 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그들의 정체는 생츄어리의 길드원들.
올림포스의 봉인을 살피고, 올림포스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드로 이건의 복귀와 함께 그의 흔적을 좇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이었다.
“로베르트. 인내심을 가져.”
“팀장!”
그리고 그들은 이건을 마주했던 팀, 레옹의 팀이었다.
“벌써 몇 달째인지 몰라요. 아무것도 못 하고 계속 이렇게 대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그들은 실제로 이건의 복귀와 발맞추어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동안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조용히 호텔에 머무르며 빈둥거리기만 한 것뿐.
“이건의 흔적은?”
레옹의 말에 팀원 중 하나인 이원형이 조심스레 말했다.
“마동철과 접촉한 것까지는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마동철은 계속 감시해.”
“알겠습니다.”
이건.
“후우.”
그 때문에 골머리를 가장 앓는 것이 바로 레옹이었다.
‘분명 그인 것은 확실하다.’
올림포스가 무너지고 돌아온 영웅.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 사안이 너무 컸다.
올림포스에서 이십여 년을 지내온 자.
‘과연, 그가 우리가 알던 이건일까?’
아니.
‘어떤 이건이든지 간에 위험해.’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귀한 이건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음은 물론 그와 관련된 어떠한 것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수상한바.
‘아직 생츄어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올림포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감시하며 살펴야 할 생츄어리의 일원으로서 이건의 흔적을 좇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레옹.
“그쪽은 어떻지?”
이번에는 또 다른 팀원, 찰리를 향해 말했다.
이원형은 이건의 흔적을 좇는 것이 임무라면, 찰리에게는 다른 임무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성장세야. 팀장.”
“그 정돈가?”
“A등급 헌터로 모습을 드러내고 벌써 던전 세 개를 공략했어.”
“벌써…?”
이정기가 그 정체를 밝힌 지 아직 일 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헌데 벌써 세 개의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아니.
괴물들 틈에서 성장해 이 자리에 있는 레옹도 그런 것은 본 적 없었다.
더욱 가라앉는 레옹의 눈빛.
“확실히….”
레옹은 생각을 마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쪽이 가장 수상하군.”
“…….”
상식을 벗어난 성장.
그리고 그가 올림포스에서 나타난 것임은 무엇보다 확실하다.
“하지만….”
이원형이 레옹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그쪽은 이성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이성.
세계에서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
그 구성원의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최상층부는 레옹도 인정하는 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 꼭대기.
‘여제, 사신.’
최명희, 그녀는 이성이라는 이름이 없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임무는 임무다.”
자신들, 생츄어리는 더욱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올림포스라는 거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완전히 지워내는 것.
“오늘부터 더더욱 자세히 이정기를 감시해라.”
그걸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레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때가 되면 접촉한다.”
* * *
세 개의 던전 공략.
그리고 오늘.
“공략 끝났습니다.”
이정기 팀은 마침내 네 번째 던전마저 공략에 성공했다.
“고생…, 하셨습니다.”
정훈은 조심스럽게 이정기를 향해 수고의 인사를 건넸다.
원래도 조심스러웠던 정훈은.
‘그 날이었지.’
이정기가 두 번째 던전 공략을 나서던 날부터 완전히 행동을 달리했다.
왼쪽 팔로 오른쪽 팔을 감싸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맞이하던 그의 모습은 마치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 같은 모습이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피식.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할머니.’
자신의 부탁을 할머니가 들어준 것이겠지.
그 이후부터 더 이상 협회의 방해는 없었다.
정훈도 따로 사과의 말을 전해오기도 했다.
“허억…, 허억….”
이정기의 뒤로 거친 숨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허억!”
“후….”
이정기의 팀원들, 그들이 이정기의 뒤를 이어 던전을 나온 것이었다.
“그럼 저희는 던전 정리에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가는 정훈.
“후우.”
“죽겠군.”
“…….”
최인해와 권신우, 안태민은 이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이 미친 던전을 일주일 만에 공략해낼 수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어….”
“누가 아니라고 할까.”
“나쁘지…, 아니, 조금은 힘들었군.”
던전 공략을 떠올리는 그들의 얼굴이 잠시 파래졌다.
그건 뭐랄까.
‘지옥.’
지옥이었다.
분명 다른 팀들처럼 평범하게 공략을 해나가면 그리 어렵지 않을 던전 공략이었을 진데, 이정기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우리…, 이젠 좀 쉴 수는 있는 거겠지?”
“이성을, 그만둘까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나약, 하진 않군.”
극한!
한두 마리를 유인해 사냥해야 할 몬스터를 그 두 배, 세 배를 동시에 사냥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휴식?
“끄으응.”
그런 게 있을 리가.
이정기는 마치 뒤에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치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는 것만도 힘들었는데, 문제는 갈래 길이 나오면서부터이다.
“끔찍해.”
갈래 길에서 이정기는 무조건 팀을 나누었다.
나누는 팀은 이정기, 그리고 나머지.
처음엔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나누어진 팀, 이정기의 속도를 따라갈 이유도 없고 그저 천천히 공략해나가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몬스터를 학살하며 나아가는 한쪽.’
몬스터들은 마침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나머지를 쫓아오는 그것들.
거기다 너무 빠르게 몬스터를 학살하는 탓에 던전의 마력이 불안정해져 갑작스레 몬스터가 강해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권신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며 주먹을 뻗어 보였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군.”
꽈악!
주먹에서 느껴지는 힘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성장.’
헌터들의 성장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건만, 던전을 공략해나가며 그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뭐, 사실이긴 하지.”
최인해 또한 마찬가지.
살기 위해 쉴 새 없이 마력을 쏟아붓다 보니 마력의 활용이나 사용법, 마력의 한계치마저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태민의 성장이 눈부셨다.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군.”
이정기를 대신해 팀원을 지켜야 하는 안태민.
그는 이정기에 비교할 순 없지만, 나머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더욱이.
‘누군가를 지키며 하는 싸움.’
그건 안태민에게 있어 완전히 다른 방식의 무언가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위해 마련된 팀, 자신의 명령에 움직이며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훈련한 팀.
하지만 지금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런 것을 겪어본 적 없는 안태민에게, 이정기와의 던전 공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뭣보다….”
“저 녀석이지.”
그들의 시선이 이정기를 향했다.
지독한 던전 공략이 끝나, 체력이 완전히 방전 상태에 이르렀건만, 이정기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몸이야?”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마력량이 더 늘었다.”
이정기의 마력량이 이전과 비교해 눈에 보일 정도로 늘었다.
헌터의 성장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가능한 걸까?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S등급이 될지도 모르겠군.”
D등급에서 S등급.
그리고 그 기간이 1년 내.
“미친 소리겠지.”
“뭐….”
“말이 안 되진 않을 것 같군.”
이제 포기다.
이정기를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포기한다.
그 대신….
“빨아먹을 수 있는 만큼 빨아먹어 주겠어.”
“포기할 수 없다면 즐겨라. 아주 좋은 자세다. 최인해.”
“따라 잡아보겠다.”
그들의 열의는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다섯 번째 던전.
여섯 번째 던전.
…….
‘여덟 번째 던전.’
그리고 오늘.
“후우.”
아홉 번째 던전의 공략마저 끝마쳤다.
총 9개의 던전을 공략하는데 걸린 시간.
‘단 이 개월.’
돌아버렸다.
그들을 보고 모두가 그런 소리를 했다.
공적을 공유하고 자극을 주겠다는 이성의 뜻으로, 그들의 공적은 실시간으로 이성에 전파되고 있었고, 모두가 그들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협회는 물론, 그들의 기행과도 같은 공략에 관한 이야기가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해냈어.”
해냈다.
이제 더 이상 이정기를 제외한 팀원들마저도 지친 모습으로 너부러져 있지 않았다.
아홉 개의 던전을 공략하며 성장했고, 이정기의 페이스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물론.
“죽을 것 같군.”
단순히 너부러지지 않는다는 것뿐.
온몸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익숙해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거기다 자신들만 성장한다면 모를까.
이정기는 자신들의 속도와 비교해도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듯했다.
“이정기 헌터. 공식적으로 AAA등급에 이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정훈의 말.
“허.”
“역시 해냈네.”
“…….”
이정기의 성장이 눈에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업적.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정기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
외려 관계없다는 듯 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기까지 하고 있었다.
혹시 무언가 있나 마력을 일으켜봐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다음 던전 공략 일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처럼 삼 일 후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정훈의 말에.
“아뇨.”
이정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지금껏 삼일 간격으로 던전을 공략해나가던 이정기.
그가 처음으로 그 일정을 깬 것에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이번 던전은….”
이정기는 그런 반응과는 관계없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준비가 필요할 듯싶네요.”
“예? 마지막 던전은 그나마 공략 난이도가 평이한 수준입니다만.”
“다들 지친 모양이니까요.”
“그도 그렇군요.”
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언제가 좋으시겠습니까?”
언제라.
“일주일 후가 좋겠네요.”
그때면 준비가 되었을 테니까.
* * *
“설마 지금 이쪽 본 거야?”
생츄어리의 길드원 찰리가 흠칫 몸을 떨며 말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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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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