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17화
042
“하아암.”
이정기가 던전에서 나오기 몇 시간 전, 정훈은 하릴없이 이정기의 던전 공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기, 부장님. 이러고 계셔도 되는 겁니까?”
협회의 다른 직원이 조심스레 정훈에게 다가와 물었다.
정훈이 누구던가.
‘S등급의 헌터, 하위권이라고는 하지만 랭커.’
거기다 대한민국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는 김대정 협회장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자가 바로 정훈이었다.
또한, 정보부장이라는 그 이름처럼 협회의 수많은 정보를 관리하며.
‘그가 만일 입을 열면 대통령도 바꿀 수 있다고….’
그가 아는 기밀은 대한민국을 한 손으로 뒤흔들 수 있을 정도라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그였다.
헌데 그런 정훈이 여기 던전 앞에서 멍하니 대기나 하고 있다.
물론 이 또한 헌터들의 안전을 위해 중요시되는 일이고, 협회의 최우선 지침이기도 하지만 이 일을 할 수많은 직원들이 있는 곳 또한 협회였다.
“안에 들어간 헌터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이정기 헌터 말씀입니까?”
정훈의 말에 직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들었습니다. 새로운 성혈….”
최명희의 자손.
하지만 세상을 더욱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이건 헌터의 손자라고.”
귀환한 이건의 손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최명희의 다른 핏줄들인 성혈들도 전부 헌터의 힘을 가지고 던전을 공략한 경험이 있었다.
과연 그 핏줄이 대단하긴 한 것인지, 누구 하나 모자랄 것 없는 대단한 헌터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정훈급의 고위급 인사가 던전 입구나 지키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 자네는 이번에 신입이었지.”
“저, 저를 아십니까?”
“협회 직원들 전원의 이름과 정보는….”
툭, 툭.
제 관자놀이를 치는 정훈.
“전부 머릿속에 있지.”
“아…, 감사합니다.”
직원은 곧 얼굴이 시뻘게져 정훈을 보았다.
동경하는 대상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법.
“거기다 신세대 헌터로 나름 촉망받는 헌터인 것도 알고 있지. 충분히 대형 길드의 스카웃을 받을 실력인 데다, 외국 길드로도 길이 열렸었다고.”
“별 볼 일 없는….”
“하지만 정말 아는 게 없군.”
와락.
갑작스런 말에 직원은 표정을 굳혔다.
‘무언가…, 실수라도 한 걸까?’
곧이어 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그가 누군가.”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헌터이자, 세계 최강의 헌터….”
“그리고?”
“…….”
피식.
정훈은 웃었다.
직원은 모르는 것이 아닐 터다.
‘파괴신.’
그저 그 별명을 입에 담기 힘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별명이 진짜인지 믿기도 힘들겠지.
“자네가 들은 전부가 사실일세.”
“마, 말도 안 되는…, 김대정 협회장님이 수발을 들고, 라면 셔틀….”
“그것도 알고 있나? 뭐 어쨌든….”
정훈이 던전 입구를 보며 말했다.
“최대한 신경 써야 할 대상이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정기 헌터의 부모와 할아버지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숨 쉬며 살 수 있도록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야.”
“아….”
“그러니 이 대우는 당연한 거지. 의심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하지만.
‘후우.’
물론 그런 이유들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훈이!’
이정기가 던전 공략권을 배정받기 위해 협회에 찾아왔던 날, 김대정은 이정기에게 호되게, 아니 굴욕적으로 당했다.
상대가 이건이라면 모를까, 그 손자에게 당했으니 김대정의 성격상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그리하여 짜여진 계획.
저 어린 청년을 길들이겠다며 짠 계획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정기가 들어간 던전, 이정기에게 설명키로는 B등급에 공략까지 2주가 걸리는 던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별한 던전.’
사실 던전의 난이도는 그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B등급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함정과 몬스터, 일반 던전보다 훨씬 높은 마력량을 보유한 탓에 수준급의 헌터들도 고역을 치를 만한 던전.
거기다 2주라는 공략 시간이 아닌, 한 달에 가까운 공략 시간을 필요로 하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정기 헌터는 이번에 던전을 처음 들어가는….’
정훈은 당연히 이 계획이 위험하다고 말렸다.
‘그러니까 자네가 도와야겠어.’
그 결과 이곳에 있게 된 것.
혹여나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직접 나서 그들을 구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목숨이 위험할 일이야 없겠지. 안태민도 들어갔으니까. 이정기와 다르게 그 녀석은 이미 숱한 던전 공략 경험이 있잖아?’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위험에 내몰자는 게 아니라, 우리 협회가 얼마나 필요한 곳인지. 또 도움이 되는 곳인지 알려주잔 말일세. 그래야 후에도 우리한테 호의적일 것 아닌가?’
거기다 꽤 그럴듯한 이유.
김대정이 얄팍해 보여도 꽤 속은 깊은 사람이기에, 이번만큼은 넘어가자고 생각했다.
꼬르륵.
근심이 깊어지니 배가 출출하다.
“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괜찮으시겠습니까? 헌터들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에 대기해야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2주는 걸릴 던전이야.”
적어도가 아닌 최대한 빠르게 공략하더라도.
정훈은 그 말을 숨겼다.
“그럼, 제가 끓여오겠습니다.”
“좋지. 난 매운 라면은 못 먹어.”
그렇게 급히 가져온 라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며 던전 앞에서 라면을 먹기 시작한 그들.
“호호.”
뜨거운 라면을 불어 한 입 먹으려 할 때.
“공략 끝났습니다.”
“예…?”
들려선 안 될 목소리, 보여선 안 될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 * *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2주가 걸릴 거라 예상.
‘아니, 한 달은 족히 걸렸어야 한다.’
한 달은 충분히 넘길만한 수준의 던전이었다.
수준급의 헌터들도 고역을 치를만한 난이도의 던전.
하지만 공략을 끝냈다며 나타난 이정기가 걸린 시간은.
‘고작 3일.’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수많은 정보를 다루며, 꽤 많은 경험을 한 정훈의 머리로도 결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던전에 들어가기 전, 헌터들의 안전을 위해 헌터들의 상태 체크는 필수.
그 과정에 그들의 등급과 마력량 또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모든 것을 상정하고, 이정기의 특별함을 예상해 혹시나 공략을 할 수 있다면 3주는 걸릴 것이라 예상했건만.
“정말이군….”
정말 던전은 공략되어 있었다.
“와아.”
함께 공략된 던전에 들어온 직원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헌터들의 던전 공략이 끝나면, 던전 안으로 들어가 마력석과 몬스터들의 사체,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을 정산해야 하는 자격으로 들어온 것.
던전은 정말 공략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원래라면 직원들만 들여보내도 충분한 상황, 하지만 정훈은 직접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정기가 어떻게 공략을 했는지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이정기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줄 것 같지만, 공략 방식에 대해서는 기밀 사항이나 다름없기에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지라 직접 온 것이었다.
“되짚으며 나아간다. 혹시 잔류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니, 조금은 긴장해.”
“알겠습니다.”
정훈은 직원들과 함께 던전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은 무난한 사냥이었군.’
팀을 이룬 헌터들이 상대 가능한 수의 몬스터를 유인해 사냥한 흔적.
몬스터의 상처나 주변의 변화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특별한 점을 굳이 꼽자면.
‘수준급이야.’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을 이정기의 팀이 가지고 있다는 정도.
하지만 곧 정훈은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음?”
흔적들, 몬스터를 사냥한 흔적에 이정기의 것이 없었다.
알기로 이정기는 검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주먹, 그리고 마법 계열 스킬, 그리고 태도.’
이정기가 사용하는 적당한 크기의 검에 의한 상처는 몬스터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뭐지?’
팀원들만을 이용해 사냥한 것인가?
왜?
그런 의문을 가지고 정훈은 조금 더 나아갔다.
“부장님.”
정훈을 부르는 목소리.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직원의 목소리에 따라간 정훈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이게 뭐야?”
그곳에 있는 것은 여섯 마리의 몬스터 시체.
꽤나 높은 난도의 던전이니 팀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세 마리 정도만 한꺼번에 사냥이 가능했을 것일 터다.
헌데 여섯 마리.
“위험했겠….”
위험했을 것이라 생각하던 와중.
그제야 정훈은 직원이 왜 자신을 부른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흔이 전부 똑같습니다.”
몬스터들에게 난 상처들이 전부 동일하다.
“검…, 검 한 자루.”
주먹도, 태도도, 마법의 흔적도 없다.
오롯이 검 하나.
그것만으로 여섯 마리의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흔이 오직 하나뿐이야.”
일격, 몬스터들은 단 일격에 생을 달리했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생명력이 강인하다.
게임처럼 레벨 높은 플레이어가 툭 건드려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은 현실에서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전부 일격에, 그것도 순식간에 처치되어 있었다.
“맙소사….”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부장님!”
또다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이쪽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쿵! 쿵! 쿵!
정훈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눈치챘다.
또 뭐가 있는 것일까.
이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을까?
아니.
‘있다.’
분명 이런 사냥 실력이라면 던전의 공략은 물론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말이 되지만, 그렇다 해도 겨우 3일은 말이 안 됐다.
던전을 공략한 또 다른 비밀이 있을 것이다.
쿵! 쿵! 쿵!
어쩌면 올림포스에서 배운 비기나 이건의 비밀일지도.
만일 그렇다면.
꿀꺽.
그 가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일 것이다.
타닷!
정훈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훈이 도착한 그곳, 그곳에도 몬스터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갈래 길.”
던전에 무조건 있다는 갈래 길.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만나는지가 달라지는 만큼 헌터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선택지.
혹시 이곳에 비밀이.
“부, 부장님.”
“…….”
정훈은 입을 다물었다.
직원의 보고를 받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이 헌터들….”
갈래 길, 그리고 이어진 핏자국.
“나눠서 전진했습니다.”
수준급의 헌터도 공략하기 힘든 던전.
그 던전의 갈래 길을 지나 나타날 더욱 강대한 몬스터들.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나눠서 전진했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더 큰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전력이 나누어지기에 몬스터의 사냥 속도도 더욱 느려진다.
하지만 이정기는 팀을 나눴다.
그것도.
“한쪽은 단 한 명의 헌터가 진입한 모양입니다.”
“미, 미쳤군. 맙소사…, 미쳤어.”
진부한 감탄사, 정훈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이정기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는가?
그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건 헌터 팀이 아니야.”
아주 단순한 이유.
“최소 팀 단위로 공격대식 운용을 하고 있잖아…?”
힘.
막대한 힘으로 모든 것을 쳐부수며 나아간 것이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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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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