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41화 (41/284)
  • 제2권 16화

    041

    “하하. 정기 군. 다시 한 번 협회에 찾아와준 것을 감사하네.”

    협회장실, 어떤 헌터도 쉬이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곳.

    선택받은 최고의 헌터들만이 김대정의 초대를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꿀꺽.

    그곳에 이정기는 물론, 최인해와 권신우, 안태민 그리고 이진석이 함께 있었다.

    “자네가 얼마나 곤욕을 치렀을지 내 잘 알고 있네.”

    김대정은 질렸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기자들 때문에 힘들었지? 그래도 어쩌겠나. 민주주의, 이 평화의 시대에 내가 어찌 기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있겠어.”

    기자들이 몰려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얼굴만큼은 사진으로 알려진 적 없는 이정기가 제대로 밝혀지는 것은 이번이 계기가 될 터였다.

    띠링. 띠링.

    안 그래도 벌써 기사가 올라갔는지, 함께 사진이 찍혔던 최인해와 권신우의 스마트폰은 불이라도 난 듯 울려댔으니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성의 길드원이기에, 아무도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 않나? 정훈이?”

    “…….”

    김대정의 말에 정보부장 정훈은 침묵으로 답했다.

    이 모든 것은 김대정의 전략이자 계략이었다.

    ‘다음 협회장 선출이 코앞이야.’

    협회의 협회장은 5년마다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워낙 강력한 권력을 지닌 자리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김대정은 바로 다섯 번 연속 재임에 성공한 협회장이기도 했다.

    이제 또 한 번의 협회장 선거.

    김대정은 물러날 나이가 충분히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하지만 오랜 독재와 같은 경영으로 말이 많이 터져 나오던 상황, 이번에 재임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던 때.

    ‘옳지.’

    이정기는 한 줄기 희망이자 빛이었다.

    그냥 그런 성혈이 아니다.

    ‘이강, 유영아, 이건.’

    그리고 최명희까지.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입지를 생각했을 때, 이정기가 가지는 가치는 가히 어마어마하다.

    이건의 엄포 탓에 이정기의 신분 유출에 조심에 조심을 기했지만, 이정기가 먼저 신분을 드러낸 지금이라면 말이 다르다.

    ‘잘만 이용하면….’

    이정기와 친분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또 다른 도약을 약속하며 재임에 성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삐질.

    정훈은 그것을 말렸다.

    ‘생각하시는 그런 청년이 아닙니다.’

    이정기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김대정은 정훈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 봐야 게이트에서 나고 자란 애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

    그런 이유로 벌어진 사달이었다.

    “협회장님. 제대로 인사를 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그래. 그래. 아니지. 정기 군, 아니 정기야.”

    김대정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불편하게 협회장이 뭔가?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이- 하고 불러 보게.”

    “…….”

    “해보라니까? 할아버지이….”

    하지만 싸늘해진 장내.

    그 적막을 깬 것은 이정기였다.

    “이성의 제10팀장으로서 요청 사항이 있어 부득이하게 협회를 찾아왔습니다.”

    김대정은 그때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잘못됐다.

    * * *

    “그, 그래? 크큼.”

    이정기의 말에 마른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은 김대정.

    “그렇다면 나도 공적으로 대해주어야겠지.”

    김대정은 평소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그래. 이성의 제10팀장께서 협회에 부탁할 일이라는 것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성의 던전 스케줄에 남아있는 던전은 없습니다.”

    “헌데?”

    “제가 공략할 던전이 필요합니다.”

    이정기의 말에 김대정은 씨익- 웃으며 턱을 쓸었다.

    “하지만 이성은 이미 필요한 만큼의 던전 공략권을 모두 챙겨갔을 텐데?”

    칼자루를 손에 쥔 자가 누구인가를 다시금 깨달은 것이었다.

    칼자루를 쥔 자는.

    “더 원한다고 해도 그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일세.”

    바로 김대정, 자신이었다.

    “만일 추가 공략권을 원한다면, 던전 공략권 공식 입찰장에 찾아가야 할 일이지. 나를 찾아올 일은 아닌 것 아닌가?”

    이거.

    ‘잘만 하면 더 이용할 수 있겠어.’

    빚을 지우고, 그 은혜를 갚도록 한다.

    전에 보았던 때, 이건이 이정기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보았다.

    이정기의 부탁이라면.

    “끌끌끌.”

    이 미친 노인네가 자신에게 공손히 ‘부탁’을 해 올 수도 있는 노릇 아니던가.

    핑크빛 꿈에 부푼 김대정.

    “미안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협회장님.”

    “으, 응?”

    “분명 이진석 헌터께서 협회에 제가 방문한다고 미리 연락을 드렸다는데, 혹시 모르셨습니까?”

    “큼!”

    이크, 이게 아닌데?

    “이진석 헌터님의 말은 기자분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혹시 모르셨나요?”

    “그, 그랬나?”

    “사실, 제 얼굴이 대중에게 알려진다 해도 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그치.”

    김대정은 천천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 제 신분이야 할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셨어도 제가 직접 밝혔고. 얼굴이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였으니까요.”

    “그래! 그렇지. 헌데….”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이정기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제가 원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것도 제가 원하지도 않은 때….”

    “음?”

    “그것도 협.회.장. 님께 제대로 인사를 드리려던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뇨.”

    “무, 뭐가?”

    “수치심이 듭니다.”

    “……!”

    이정기의 말에 김대정은 물론 방 안의 전부가 턱 굳어버렸다.

    갑자기 왜 이런 소리를?

    “그걸 제 할아버지라도 아시는 날에는….”

    “자,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제가 할아버지께 죄송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언제나 당당히 살라 하셨는데, 고개를 숙이며 카메라를 피하던 제 모습에 할아버지가 얼마나 상심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김대정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니, 제가 먼저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이건 님과 연락이….”

    “방법이야 찾아봐야죠. 어차피 공략할 던전도 없는 길드의 팀장이 뭘 하겠습니까? 그저 할아버지를 찾아 할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요.”

    삐질 거리며 흐르던 식은땀 한 방울이 무심히 굴러 콧잔등에 떨어졌다.

    추욱.

    이제 그 땀은 김대정의 온몸을 적신지 오래였다.

    ‘마, 만약….’

    이건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찌 될까.

    자신이 그 손자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자신으로 인해 손자의 얼굴이 세상 전체에 까발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히이이이이익!”

    김대정은 평소 중요시하던 체통이고 뭐고 간에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미, 미안하네! 미안해!”

    이정기를 향해 소리치는 김대정.

    “제발! 그것만은…! 아니, 내가 그러려던 게 아니고…, 그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다간 마치 이정기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려던 모양새였다.

    씨익.

    물론 이정기에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협회장님.”

    “그, 그래. 뭔가! 말이라도 해보게!”

    “던전 공략권이 필요합니다.”

    칼자루?

    애초부터 그건 이정기의 손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이건이라는 칼자루 말이다.

    * * *

    “미친놈.”

    최인해의 감상평이었다.

    “협회장을 협박하는 헌터라니, 본 적도 없어.”

    그날, 협회에서의 일이 뇌리 깊숙이 각인된 모양이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지.

    부르르.

    몸까지 떠는 권신우.

    “협회장님이…, 그런 분이셨구나.”

    “그분에 대한 환상이 깨졌군.”

    김대정, 그는 다섯 번이나 재임에 성공한 역대급 협회장이었다.

    그가 단순히 정치적인 능력만으로 그렇게 되었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이건과 함께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며 쌓아온 공적, 그 스스로의 강함, 그리고 무엇보다 헌터를 위한다는 정의감.

    그런 것들이 그를 다섯 번이나 협회장의 위치에 앉혀놓은 것이었다.

    그런 김대정을 존경하며 협회에 들어가는 헌터들도 수두룩했건만.

    “…….”

    그날의 협회장은 자신들이 알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

    최인해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셨지….”

    무언가 씁쓸함이 가득하게 느껴지는 말.

    “저 녀석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동시에 그 감정은 이정기에게 이어졌다.

    “잊은 건가?”

    권신우가 최인해를 향해 말했다.

    “우리와 거래하던 거나, 마력 던전에서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태민을 향하는 눈.

    “저기 호되게 당한 자가 또 있지.”

    “하긴.”

    뭐,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좋은 일이었다.

    이정기는.

    ‘주마! 줄게! 줄 테니 제발!’

    협회 자체에서 해결하려던 던전 공략권을 몇 개 가지고 왔다.

    또한, 앞으로도 잉여의 공략권은 따로 이정기를 위해 빼둔다고 했다.

    누군가 알면 특혜에 대한 논란으로 말이 많겠지만, 이정기의 신분은 그 모든 것을 입 닫게 할 것이었다.

    이건에 대한 공포나 최명희에 대한 굴복이 아니었다.

    ‘영웅.’

    대한민국, 그것을 넘어 세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

    그들의 핏줄인 것만으로 유공자를 위한 혜택은 충분한 것이었다.

    아니 부족할 듯싶었다.

    그렇게 던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정기가 갖게 된 던전 공략권.

    “총 열 갠가?”

    열 개.

    어쩌면 일 년 내내 던전 공략을 해도 될 수준이었다.

    그 수준 또한 절대로 낮지 않았고, 협회 자체 공략을 준비하던 만큼 보상도 꽤 괜찮은 던전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우리가 처음 공략할 던전인가?”

    이정기 팀의 시작을 알리게 될 B등급 던전이었다.

    “다시 뵙는군요.”

    던전 앞에는 던전을 관리하는 협회의 직원들을 이끌고 정훈이 나타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협회의 정보부장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이정기의 모습에 협회 직원들이 잠시 몸을 떨었다.

    하지만.

    “저 사람이….”

    “잘생겼네.”

    “크, 다 가진 사람.”

    이정기의 얼굴이나 정체가 까발려진 지금 이상함을 느낄 자는 없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규칙상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정훈은 일전의 일을 이야기할까 봐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던전의 공략시간은 협회가 세운 기준에 따라 측정되었습니다. 던전 공략자들은 이 시간을 엄중하게 지켜야 하며, 만일 시간이 초과될 경우 공략권은 파기. 추가 공략대나 협회 측이 직접 움직여 구출대를 보낼 겁니다.”

    위험한 던전, 그 공략의 시간이 협회의 기준을 초과하면 안 된다.

    “그동안 다른 공략대는 던전에 접근할 수 없으며, 만일 접근한다면 협회 측이 제지할 겁니다.”

    공략권이 인정되는 기간 내에 던전은 공략권을 가진 자들의 것.

    만일 그들의 허락이 없으면 누구도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

    “지켜야 하는 룰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번 B등급 던전의 공략 산정 시간은 협회의 기준으로 이 주일.”

    “이 주일….”

    꽤나 큰 던전이라는 뜻.

    그 수준을 알 수 있었다.

    “그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해도 좋다는 말.

    “그럼 안전한 공략을 기원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정훈이 물러섰고, 길이 열렸다.

    이정기는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첫 던전.’

    마력 던전과 같은 인공이 아닌 실제의 던전.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것은 조금은 두렵고 가슴 설레는 일.

    “같이 가.”

    그 뒤를 따라 최인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팀으로서 활약하게 될 첫 던전 공략인 만큼 다른 이들도 조금씩 설렘을 안고 있는 듯했다.

    스윽.

    마침내 이정기를 선두로 그들이 던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삼 일 뒤.

    “던전 공략 끝났습니다.”

    “예, ……예?”

    라면을 먹고 있던 정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흙투성이가 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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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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