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38화 (38/284)

제2권 13화

038

“이것으로 확인이 되셨습니까?”

장내는 찬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방금 이정기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이 누군가.

‘전설 이강.’

이성의 원래 길드장이자, 이성 그룹마저 쥘 것이라 명성이 자자했던 그.

또한, 그는 정의롭고 강력한 헌터로써 수많은 헌터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영웅과 같은 자였다.

그가 올림포스에 잔류해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대한민국은 거의 몇 달을 그를 추모하며 슬픔에 잠겨있을 정도였다.

이성 길드에는 그런 이강을 동경해 들어온 헌터들도 수두룩했다.

거기다.

‘최명희.’

살아있는 전설, 이성의 주인, 여제라 불리는 헌터.

그녀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우며 당황스러운 것은 다른 이름이었다.

‘이건.’

모두가 그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전설?

그는 전설 따위가 아니다.

‘신화.’

헌터들에게도 일반인에게도 신과 같은 존재.

그를 추앙하는 사이비 종교가 탄생한 것도 수십 번, 그것을 이건이 깨부순 것도 수십 번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저 어리디어린 청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그들의 핏줄이라고.

그리고 놀라고 있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정말이야.’

이정기, 그 또한 놀라고 있었다.

‘이름의 힘.’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란 그가 겪어본 힘은 오직 무력뿐이었다.

자신에게 덤비는 몬스터를 죽도록 패 무릎을 꿇릴 수 있는 힘.

누구보다 빠른 번개, 강인한 근육과 강력한 검과 같은 것들.

하지만 지금 이름 몇 자로 이들 전부의 입을 한 번에 다물게 했다.

‘이게 지구.’

지구.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존재한다던 또 다른 힘들을 직접 체감한 것이었다.

“저, 정말….”

5팀장, 김세린.

그녀가 이정기를 향해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그 말씀들이 사실….”

어느새 말투조차 극존칭으로 바뀐 상황.

“개소리!”

그때 강신우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주 네 놈이 완전히 미쳐버렸구나!”

활활 타오르는 그 두 눈으로, 강신우는 온몸으로 마력을 풀풀 풍겨대고 있었다.

“감히 사칭할 것이 없어서…, 그분들의 이름을 사칭해! 지금까지야 고약한 장난이라고 생각해줄 수 있겠으나….”

확실하다.

“그냥. 죽어라.”

강신우는 진짜 자신을 죽일 셈이다.

진짜 그렇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게 만들려는 기세.

제9팀장, 강신우.

그는 불같은 성격 탓에 문제가 많았지만 그래도 이성의 팀장 자리를 꿰찬 인재였다.

숫자가 낮을수록 낮은 등급의 팀이기에, 10팀 이전에는 최약의 팀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팀.

하지만 강신우의 실력만큼은.

화르륵!

진짜배기였다.

A등급, 하지만 그냥 A등급이 아니다.

S등급을 앞두고 있다는 AAA등급.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S등급에 오를 것이라 확실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강신우.

그는 어느새 검을 빼 들고, 마력을 덧씌우고선.

타앗!

이정기를 향해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이름의 힘.’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대단한 힘은 맞는 듯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듯싶습니다.”

카앙!

어느새 이정기도 품 안에 작은 단검을 꺼내 강신우의 검과 부딪혔다.

가라앉은 이정기의 눈.

‘강하다.’

한 번의 맞부딪힘으로 강신우가 얼마나 실력자인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고전을 면치 못할 상대라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에겐 문제가 있었다.

‘나를 얕보고 있어.’

신입 길드원 중 하나라는 소리에 그런 것인지, 자신의 실력을 얕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의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분노.’

왜인지 모르게 그는 지금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커다란 움직임으로 큰 공격만을 해대고 있었다.

마치 한방에 상대를 쳐 죽이려는 듯이 말이다.

카앙!

그렇다면.

‘쉽지.’

어렵지 않은 상대다.

강신우의 검을 밀어친 이정기.

강신우는 이정기의 단검에 그런 거력이 서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한껏 밀려나며 자세가 망가졌다.

그 틈을 놓칠 이정기가 아니었다.

타앗!

바닥을 차고 강신우의 앞에 선 이정기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내리찍었다.

캉!

“…….”

튕겨 나온 이정기의 검.

강신우의 짓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팀장들.

이성의 다른 팀장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이밀며 강신우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다.

“확인해 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그렇게 싸움이 일단락되었다.

* * *

“신입 길드원들에게 소개하지.”

스물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머리는 깔끔히 포마드로 넘겨 인상적인 외모를 자랑하는 사내였다.

“나는 제1팀장, 배선호라고 한다.”

1팀장, 팀장 중에서 최강.

동시에 몇 년 안으로 새로운 공격대의 대장이 될지 모른다는 인재.

“일전의 소란은 사과하겠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전달 체계에서 혼선이 있던 모양이다.”

그는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

“확인한바….”

그는 곁에 있는 이정기를 슬쩍 보며 말했다.

“이번 튜토리얼 기수의 합격자인 이정기가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다.”

웅성웅성.

“또한, 정식 길드원이 되기 전의 공적들로 팀장의 자리로 발령받은 것이 맞다.”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진실.

“정말…, 새로운 성혈이야?”

“그분의 아들이라고?”

“그분의….”

이정기를 향해오는 수많은 시선들.

“손자라는 거지?”

소란은 거셌지만, 모두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소란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돌아왔다는 이건, 그는 아직도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밝혀진 바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그에게 손자가 있다는 사실은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공언했다는 것은, 이성의 주인 최명희 또한 인정한다는 사실.

그는 정말 이건의 손자일 것이다.

‘…….’

그것을 보며 이정기도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이것은 할아버지가 원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속일 수 없는 일.

거기다.

‘네 할아버지 소식이 궁금하지 않더냐?’

자신에게 팀장의 자리로 시작하라던 최명희가 끝에 말해주었던 것이 있었다.

‘마동철을 찾아간 모양이더구나.’

듣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소식.

‘장비라면 치를 떨던 그 개 잡종이 마동철에게 장비 제작을 부탁했다는군.’

그것으로 소식은 전부.

하지만 이정기는 최명희의 말에 내포된 뜻을, 그리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고전하고 있다.’

원치 않던 장비마저 손을 대야 할 정도로.

그렇다면.

‘내가 아직 부족하지만 도와야 해.’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쏠릴 적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분산시켜야 한다.

할아버지는 절대로 원하지 않으시겠지만.

‘할아버지. 저에게는 방패가 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이곳.

이성이 자신의 방패가 되어 당분간은 자신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 계산이었다.

“팀장급이라는 데에 대한 실력도 증명한 것 같으니 소개는 이쯤 하도록 하지. 다들 혼란스러울 테니….”

배선호는 포마드로 기름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파티를 즐기고 다시 모이도록 하겠다.”

* * *

쿵! 쿵! 쿵! 쿵!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홀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신입 길드원들이 정식 길드원들이 되는 날, 그날은 단순히 소개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튜토리얼 동안 지쳤을 신입 길드원들에게 주는 선물.

파티를 즐기고 이성에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뭐, 그것만이면 좋겠지만.”

이정기에게 다가온 여자.

이정기가 정체를 밝혔던 순간 당황한 나머지 극존칭으로 이야기했던 제5팀장 김세린이었다.

“이성이란 곳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거든요.”

그는 아직도 이정기를 향해 말을 높이고 있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이정기가 그녀를 향해 말했지만, 김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할머니 때문이라면….”

“그분 때문만은 아니에요.”

김세린은 작게 웃으며 샴페인 잔을 홀짝였다.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문인가?’

하지만 이어져 나온 김세린의 말은 너무나 의외의 것이었다.

“유영아.”

“……!”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제가 가장 존경하던 분이거든요.”

“…….”

“최명희 회장님도 여자 헌터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지만, 유영아 헌터 그분은….”

슬쩍 웃는 김세린.

“헌터가 아닌 여자로서 닮고 싶은 분이셨어요. 우아하고, 아름답고, 언제나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꽃.”

김세린은 말했다.

“그분 때문이에요.”

이정기는 쉽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

당연하게도 찾아본 존재.

그리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다.

어머니 또한 대단한 분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성에서 다른 이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어머니와 이성은….’

남다른 사연이 있었으니까.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에요.”

“그럼?”

“약간의 호의랄까?”

김세린이 다시 생긋 웃었다.

“이 파티, 단순한 파티가 아니에요. 알고 있을지…, 아니 모르겠죠. 새 팀장에 대한 얘기가 전달조차 안 될 걸 보면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까.”

김세린은 서서히 등을 돌리며 말했다.

“파티, 그 또한 하나의 시험이에요. 모르지 않겠죠?”

멀어져가는 그녀.

“이성이 어떤 곳인지.”

할머니께서 만드신 곳.

그리고.

‘매번 시험의 순간들, 그렇게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들의 성.’

최고들을 위한 곳이었다.

알고 있다.

이 즐거워 보이는 파티도, 무언가 남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다른 이들과 시간을 보내보는 게 좋을 거예요.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김세린의 목소리.

그제야 이정기는 주변을 둘러봤다.

웅성웅성.

제각각 모여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

헌터들에게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대화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의 시선을 느꼈다.

‘전부 나를 보고 있어.’

모든 헌터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후.”

아무도 자신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찍힌 건가.’

알고 있다.

지구에서 남다른 신분이 결코 좋은 영향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이성에서라면.

‘줄타기.’

아마 자신의 곁에 다가서는 순간, 지금 가장 큰 권력자인 주형태 길드장의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

권신우, 최인해 또한 마찬가지.

그들은 저쪽 한 무리에 껴 대화를 나누며 이정기를 바라볼 뿐,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약간은 쓴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결국, 파티의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이정기의 곁으로 다가오는 이는 몇 없었다.

온다고 해도 그저 작게 인사만을 건네며, 부모님의 이야기를 할 뿐.

뚝.

완전히 끊긴 음악.

“자, 즐겁게 파티를 끝냈다면 다들 모이지.”

그리고 새로운 시험이 시작됐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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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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