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9화
034
“그 개자식의 손자라고!”
마동철의 목소리를 대신하던 땅딸보 인형.
그건 붉게 변해 이정기가 있던 자리에 달려들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
겨우 인형에 불과했지만 방금 전의 폭발력만큼은 상당한 수준.
“이런!”
하지만 인형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쾅! 쾅! 쾅!
산 곳곳이 패이며 무너질 듯 흔들렸다.
공격은 빠르고 육중했다.
노리는 것은 오직 이정기.
인형은 이진석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이정기 님!”
이진석이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소리치곤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진석의 역할은 이정기의 보필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를 경호하는 것이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듯한 붉은 마력.
그것이 이진석의 손에서 피어올라 줄기를 만들며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인형과 부딪히자 폭발하는 이진석의 마력.
과연 S등급 헌터이자, 세계가 눈여겨보는 헌터에 걸맞은 파괴력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파스스.
열이 식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피어오르더니.
콰앙!
그 속에서 인형은 다시금 나타나 이정기를 노렸다.
“말도 안 돼!”
이진석은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저것이 마동철의 인형이기에, 적당히 기능을 정지하는 수준으로만 부술 생각이어서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힘의 3할이다.
그런데 부서지기는커녕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니.
“아다만티움입니다.”
이정기가 인형의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아다만티움!”
무엇인지 안다.
아니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희소한 금속 중 하나로 아다만티움을 가공하면 무조건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탄생한다고 알려진 물건.
마력 흡수율이 높아 무기로서도 방어구로서도 최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천상의 물건이 바로 저것이었다.
헌데.
“그 아다만티움을 저렇게 통짜로? 그리고 인형으로…!”
말도 안 되는!
“어이. 이진석이. 너는 그냥 조용히 가면 못 본 척해주마.”
인형은 더욱더 붉게 달아올라 이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안 돼.”
“그럴 순 없습니다.”
결국, 이진석이 양손을 부딪치며 붉은 마력을 흘렸다.
쿵.
거세게 일어나는 파동에 이진석의 붉은 마력이 너울처럼 넘실거렸다.
“……!”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이번의 공격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임을 인형도 깨달은 듯 잠시 주춤 물러섰다.
“제 역할은 이정기 님의 보호….”
이진석은 눈까지 붉게 물들어 마력을 흩뿌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만, 파괴하겠습니다.”
“뭐!”
인형과 이진석이 마주 보고 대치하던 그때.
“그럴 필요 없어요.”
어느새 인형의 뒤에 나타난 이정기가 인형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손을 뻗었다.
“……!”
인형은 그제야 이정기를 눈치채 움직이려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콰악!
그 작은 목이 이정기의 손에 잡혀버린 상황.
그와 동시에.
파짓!
전류가 인형의 온몸에 흘러댔다.
* * *
“……….”
이진석은 멍한 얼굴로 이정기와 땅딸보 인형을 보고선.
“하.”
허탈한 듯 작은 숨을 토해냈다.
방금 전까지 미친 듯 날뛰던 인형은 더 이상 가동을 멈춘 채 바닥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고장이 확실해 보였다.
‘기껏 전력을 쓰려 했건만.’
꼴이 우습게 됐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인형, 그 파괴력과 내구도는 이진석조차 당황하게 하는 것이었다.
전력을 발휘해야만 파괴는 못 하더라도 겨우 가동 불능으로 만들겠다고 판단했건만, 이정기는 단순히 인형을 들어 올려 능력을 사용한 것으로 인형을 멈추었다.
‘그 전류, 무슨 능력이지?’
자신조차 파악하기 힘든 깊이의 능력.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요.”
“……?”
“그 괴팍한 노인네가 만드는 인형은 생긴 거랑 다르게 강력하지만….”
피식.
“목덜미만 잡으면 꼼짝 못 한다고요.”
“겨우….”
저런 대단한 인형의 약점이 그것뿐이라고?
“어이, 이진석이!”
그때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겨우라고 말했지!”
또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게 서 있는 땅딸보.
방금 전 인형과 비슷한 크기, 하지만 생동감이나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진석도 이정기도 알 수 있었다.
‘마동철.’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겨우는 무슨! 저 인형 뒷덜미 잡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
“순간 가속은 랭커 못지않고, 등 뒤에도 무기가 달린 데다….”
갑작스레 나타나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그.
결론은 이것이었다.
“겨우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못하는 거라고 임마! 그리고 그런 약점마저도 아는 자도 거의 없고.”
어느새 마동철은 이정기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큰 키의 이정기, 작은 키의 마동철은 그와 비교되어 더욱 작게만 보였다.
거기다 외형도 특이했다.
한국인답지 않은 갈색 머리칼에 이국적인 얼굴, 수염은 길게 늘어져 땋아 있는 것이.
“드워프?”
영락없는 드워프였다.
이정기의 그 소리에.
팟!
마동철은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탁!
이정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누구보고 드워프래! 어린 눔의 새끼가!”
씩씩대는 마동철, 그 얼굴이 마치 아까 인형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것과 똑같았다.
“인간이다! 인간! 키가 작은 것뿐이고!”
“머리나 수염은….”
“미용이야! 염색, 너 염색이 뭔지 몰라? 이 자식아!”
그것이 이정기와 마동철의 첫 만남이었다.
* * *
“진짜 네가 그 개자식의 손자라는 거냐?”
사실 마동철과 이건이 인연이 있다는 것은 이진석조차 알 정도로 알려진 이야기였다.
장비를 거의 혐오하다시피 하는 이건이지만, 사용하는 장비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배낭이었다.
거의 컨테이너 수십 개에 필적할 정도의 마법 공간을 지닌 그 특별한 배낭은 이건이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트려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을 제작한 것이 바로 이 마동철이었다.
“정말이냐?”
그렇기에 당연히 이정기가 찾아가면 호의적이지는 못해도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짜고짜 공격한 것에 이진석은 적잖게 당황했었다.
“정말 네가 그놈 손자라고?”
하지만 그 비밀이 밝혀졌다.
“목덜미를 잡아채는 약점을 아는 건 정말 몇 안 되는데, 이건 그 녀석은 분명 올림포스에 가 못 돌아온 데다, 그눔 자식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 남자, 마동철.
“…….”
“그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돌아오셨습니다.”
“뭐!”
“올림포스가 무너지고, 이건 님께서 지구로 돌아오셨습니다.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진석은 곁눈질로 이정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자분이신 이정기 님도 함께 지구로 귀환하셨고요.”
“…….”
“…….”
싸늘한 적막.
“허.”
마동철은 머쓱잖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정말이냐?”
“네.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저한테 마동철 할아버지를 만나면 전하라는 말씀이 있었어요.”
전하라는 말.
“이 개똥 난쟁이 녀석아. 그놈 내 손자니까, 헛소리 말고 잘 대해줘. 안 그러면 그 신발 안에 있는 비밀….”
“그만!”
마동철이 다시금 얼굴을 붉히곤 소리쳤다.
“크, 크큼…, 큼…. 그, 그, 개자식 손자놈이 맞긴 맞구만.”
“…….”
“성격도 지 할애비를 똑 닮았어.”
이제야 마동철은 정말 이정기가 이건의 손자라 믿는 듯했다.
“후. 그래서 왜?”
마동철이 말했다.
“날 왜 찾아온 게냐?”
“제가 이번에 이성의 정식 길드원이 되어서요. 장비 제작을 의뢰하려고 찾아왔어요.”
“뭐? 네가 정식 길드원?”
마동철이 의아한 얼굴을 하곤 말했다.
“최명희가 미쳤나? 너 정도면 팀장급은 되어 보이는데, 아무리 제 핏줄 혹독히 훈련한다고 해도 겨우 정식 길드원? 허.”
“그건….”
이진석이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뭐. 좋아. 다만….”
하지만 밝았던 마동철의 목소리는 다시금 어두워졌다.
“제작 의뢰는 미안하지만 못한다.”
“그게 정확히는 제작이 아닌 수리….”
“그래도 안 돼. 아니 못 해.”
마동철은 그렇게 말하며 제 두 손을 뻗어 보였다.
“봤냐.”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
그건 말 그대로 돌덩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아다만티움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던전에서 이 꼴이 되었지.”
“이런….”
소문이 진짜였다.
마동철이 더 이상 제작을 하지 않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저런 손이라면, 아무리 대단한 대장장이도 그 무엇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나를 그래도 챙겨준다고 최명희가 데려왔지만, 이미 쓸모없어진 지 오래다. 이런 산속에 숨어서 노망 난 늙은이처럼 굴면 내다 버릴까 했는데, 놓질 않는구나.”
최명희.
‘할머니에게 그런 면이 있구나.’
철혈이라는 말이 어울릴 그녀였는데, 그래도 과거의 동료를 챙겨주는 듯싶었다.
“후, 어쩔 수 없군요.”
결국, 이진석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거기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고치지 못한 병이라면 지금 자신들이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최명희가 그를 챙겨주었는데, 그 손을 고칠 방법을 찾지 않았을 리 만무했다.
결국, 자신들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
“다른 제작자를 찾아보는 편이….”
이진석이 어렵게 말을 꺼낸 그때.
“이 개똥 난쟁이 녀석아.”
이정기가 갑작스레 마동철을 향해 말했다.
“뭐? 이 어린 눔의 새끼가…!”
“네 놈 손을 고칠 방법을 찾았다.”
“……!”
덜컥.
이정기의 말에 고장 난 인형처럼 멈춰선 마동철.
“메두사한테 당한 그 손, 고칠 방법을 찾았단 말이다.”
“지, 지금….”
“정기. 내 손자한테 부탁해라. 물론 부탁할 때 그 작은 키로 정기 신발이라도 핥던가.”
싸늘한 적막.
그 적막을 깬 것은 또 한 번 이정기였다.
“여기까지가 할아버지가 전해주란 말씀이었어요.”
그리고 이정기가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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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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