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8화
033
두 개의 마력 던전을 공략한 이정기.
거기다 최명희가 준 권한으로 들어갔던 두 번째 마력 던전은 다른 이 없이 홀로 공략에 성공했다.
그 결과 이정기의 등급은.
‘A등급.’
마침내 목표했던 등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워.”
두 개의 마력 던전, 그중 하나는 독점.
그렇기에 사실 이정기는 S급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A.
‘생각보다 어려운 거였어.’
사실 이정기는 그저 시간이 지나 보니 S급이 되어 있었다.
그걸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었다.
‘A등급이랑 S등급은 벽이 있는 것처럼 차이가 커.’
하늘과 땅 차이.
이성 그룹에서도 S등급 헌터들을 추켜 세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S등급부터가 랭커에 들 수 있는 최소 조건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S등급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겠네.’
S등급에 필요한 마력량은 단순히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정제시켜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쌓여 있는 막대한 마력을 정제시키고, 정순하게 바꾸어 쌓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뿐이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벼락.’
쥬피터 할아버지의 유산.
얼마 전에서야 알았지만, 벼락이 자신의 몸 안에서 마력을 정순한 검은색 마력으로 바꾸어 쌓고 있음을 깨달았다.
“후.”
생각을 마치고 크게 기지개를 켠 이정기.
방금 던전에서 막 나온 참이라 더러운 몰골 그대로였다.
마침, 이정기가 던전에서 나온 것을 보고 받은 것인지 고수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서류와 옷가지 따위를 가지고 걸어오던 그는.
타앗!
저도 모르게 그것들을 손에서 놓쳤다.
덜덜덜.
무의식적으로 떨리는 손.
“서, 설마….”
그 또한 이성의 헌터, 이정기의 변화를 몰라볼 리 없다.
“A등급이 되신 겁니까?”
절로 나오는 극존칭.
단순히 이정기가 A등급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두 번째 마력 던전으로 향하겠다며 가져온 카드, 그것에 최명희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고수완은 알 수 있었다.
‘성혈.’
이정기가 성혈임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정기가 성혈이 아니었어도 존칭을 썼을 것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A등급 헌터가 된 자가 있던가?’
전혀, 결단코 없다.
헌터계 역사상 최고이자 최강이라 불렸던 이건?
그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에 고수완이 넋을 놓고 있을 때.
터벅.
이정기는 고수완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네.”
아주 간단하고도 간결한 대답.
이정기는 그러면서 떨어진 옷가지를 들고는 뒤돌아섰다.
“그럼 씻고, 가겠습니다. 다음에 봬요.”
“…….”
멀어져가는 이정기의 뒷모습.
“대체….”
이정기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 걸까?
기쁨 한 줄기조차 없어 보이는 얼굴은 너무 당연한 결과라는 듯 담담했다.
D급에서 A급으로 최단기에 성장한 헌터.
더욱이.
“성혈이라니.”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이성의 정식 길드원이 되기 위한 과정인 튜토리얼 기간과 마력 던전 기간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정식 길드원으로서 수습 기간을 거치고, 정식 길드원이 되는 것.
하지만 연속된 훈련에 휴식이 주어졌고, 이정기를 포함한 다른 신입들도 휴식 기간을 거치는 중이었다.
물론 완전한 휴식은 아니었다.
‘준비.’
정식 길드원이 된다는 것은 이성의 헌터가 된다는 것.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했고, 그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성이 말하는 준비, 그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이성의 모태가 원래는 헌터 무구 제작 기업인 블랙소드였습니다. 현재도 블랙 소드는 이성의 주요 기업으로 덩치를 더 불렸죠.”
“……….”
“블랙 소드의 제품은 단연 국내 최고, 국내를 벗어나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명품입니다.”
늘어놓듯 이야기하는 이진석.
“블랙 소드로 가시는 게 제일 좋을 듯싶습니다. 물론 그곳은 성혈이신 주인배 부회장님께서 경영 중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정식 길드원이 되는 이정기 님을 방해하려 얕은수를 쓰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정식 길드원이 되기 전, 준비이기 때문이었다.
‘장비.’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는 것.
그것은 헌터에게 있어 사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헌터의 마력이나 능력이 헌터의 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장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만으로 사냥하지 못하던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고, 죽음에 이르는 공격에서 버텨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정기의 생각은 달랐다.
‘장비?’
할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씀.
‘그건 말이다, 정기야.’
남다른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겁쟁이들이나 신경 쓰는 거다.’
‘자고로 헌터란 말이다.’
‘맨몸으로도 올림포스에서 버틸 수 있어야지.’
‘사람이 명검이 되어야지. 물건에 휘둘리면 안 된다.’
장비에 의존하지 말라던 아름다운 말씀.
그렇기에 이정기의 훈련도 장비 없이 진행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장비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었다.
‘그러니 이것들을 받거라.’
예전에 주었던 물품들.
그건 올림포스에 들어왔던 할아버지의 동료들이 사용한 물건들이라고 했다.
올림포스에 잔류하게 된 한국팀을 위한 선물이자, 죽은 동료들의 유품이라고.
하지만 긴 세월, 더욱이 올림포스의 강대한 마력 아래 장비들은 빛을 잃고 기능을 잃었다.
‘지구로 가게 된다면….’
그리고 해주었던 말씀.
마침내 이정기는 생각을 마쳤다.
“마동철.”
“……!”
“마동철 제작자는 어디 있나요?”
이정기의 말에 이진석은 몸을 흠칫 떨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 이정기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진석은 이정기의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었다.
최명희 회장이 갑자기 데려온 손자.
그리고 이정기의 성씨.
더욱이.
‘이건이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건의 귀환.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정기가 이건의 핏줄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동철, 그 이름이 이정기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혹시 마동철 제작자에게 장비를 맡길 생각입니까?”
“네.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그분만큼 뛰어난 제작자가 없다고 했어요. 있다고 해도 제가 필요로 할 제작자는 그뿐이라고.”
“……하지만.”
이진석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은 더 이상 제작을 하지 않으십니다.”
“……!”
“블랙 소드에서 거금을 들여 그분을 영입했지만, 그 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연봉만 축내고 있다고….”
전설적인 제작자 마동철.
하지만 그는 이건이 올림포스에 들어간 이후 나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그를 찾는 헌터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어 봐야 무얼 하나, 결국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한량이나 다름없는 존재일진대.
“수많은 헌터들이 거금을 들고 그분을 찾아뵀습니다. 희귀한 광물이나 아이템을 들고 간 적도 있죠. 하지만 전부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이정기라면 다르지 않을까?
이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 소문이 맞을 거야.’
소문이 없었다면 이정기에게 희망을 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다.
마동철에 대한 소문.
‘병신이 됐다더라.’
그가 제작을 그만둔 것은 그의 뜻이 아니다.
그저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더 이상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래도 찾아가실 겁니까?”
이진석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네.”
역시나, 이정기의 대답은 당연하다는 듯 예스였다.
* * *
경기도의 한 외딴 산골.
“뭐 이런….”
차로도 갈 수 없는 산을 이정기와 이진석, 둘이 오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니.”
시대가 어느 땐가.
예전이야 자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산골에 들어가 홀로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런 이들은 거의 사라졌다.
헌터가 나타나고 게이트가 나타나던 시절, 게이트 오픈에 휘말려 몬스터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잦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게이트가 사라지고 던전이 탄생했다지만, 지금도 산골에 홀로 들어가 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동철.’
마동철은 이런 곳에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잘못 온 걸까요?”
마동철의 소재를 파악한 것은 이진석이었지만 그도 믿기지 않는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아뇨. 분명 제대로 온 걸 거예요.”
이정기가 답했다.
“……?”
대체 무엇을 보고?
이진석은 그런 의미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정기는 달랐다.
‘인간의 마력.’
분명히 이 산속에서 느껴진다.
동시에….
‘다른 것들도.’
분명 마동철은 이곳에 있다.
확신한 이정기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빠른 건지.”
이진석은 그런 이정기의 뒤를 쫓으며 허탈함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거의….”
거의 다 온 것 같다.
그렇게 말하려던 이정기가 눈을 치켜뜨고 속도를 급감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
이진석도 마찬가지.
그는 순식간에 움직여 손날에 마력을 두르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푸욱! 탕!
하나는 바닥에 꽂히는 소리, 하나는 튕겨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화살?”
날아든 것은 화살.
그것도 쉽게 눈치챌 수 없을 속도로 쏘아진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살상이 목적이 아닌지, 화살의 끝이 뭉뚝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아무리 끝이 뭉뚝하다고 하나 이런 속도라면 일반인은 즉사, 어지간한 헌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병원 신세를 질 정도였다.
“취미가 고약하군요.”
이진석이 인상을 일그러트렸지만.
“잘 찾아왔다는 뜻 아닐까요.”
이정기는 담담하기만 했다.
“보고 계시죠?”
이정기가 허공을 향해 목소리를 내뱉었다.
“제작을 맡기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투투투투.
바닥이 흔들리더니, 무언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골렘?’
작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쇠 인형.
하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나 부드러워 상위 몬스터의 일종인 골렘인 것처럼 보였다.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인형의 입이 열리며 걸쭉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응? 거기 넌 이진석이 아니냐?”
“절 아십니까?”
“꽤나 유명했던 녀석이니 모르겠나? 어쨌든 이성에서 온 걸 테군. 그럼 못들은 게냐?”
인형은 표정마저 자유롭게 변하며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곤 말했다.
“난 더 이상 제작 안 한다. 뭔 일로 온 건지 모르겠지만, 꺼져. 뭐 연봉이 어쩌니저쩌니 그딴 소리 할 거면 그러라고 하고.”
이미 이성에서 여러 번 그를 찾아왔지만 까칠하기 그지없는 태도.
역시 이진석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오질 않았다.
“저는….”
이정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이정기라고 합니다.”
“이정기? 그게 뭔데. 그게 뭔데 내 앞에서 이름을 들먹여? 이거 웃긴 놈일….”
“이건 할아버지의 손자입니다.”
그때였다.
콰아앙!
붉게 변한 인형이 이정기가 서 있는 자리로 달려들어 폭발을 일으켰다.
“그 개자식의 손자라고!”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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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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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