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6화
031
“온다!”
안태민이 빠르게 접근하는 기척을 느끼며 소리쳤다.
‘기척은 하나.’
분명 이정기의 팀은 권신우와 최인해, 이정기까지 셋인데 느껴지는 기척은 하나였다.
‘나머지는?’
비밀이 많은 듯한 이정기가 은신 계열 스킬이 있을지 모르지만, 권신우와 최인해에게 은신 스킬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권신우!’
지금 다가오는 거대한 마력은 녀석의 것이 분명했다.
최인해는 C등급, 이정기는 D등급.
아무리 마력 던전에서 사냥을 통해 성장했어도 상식상 한 단계 이상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스윽.
권투사를 상대하기에 알맞은 자세로 변경한다.
안태민의 무기는 커다란 태도.
‘제법 머리가 도는 녀석이었어.’
커다란 무기는 막강한 파괴력과 리치를 가지고 있지만, 짧은 거리 속으로 파고드는 권투사에게는 약한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얼뜨기한테나 통하는 이야기다.”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경험 속에서 헌터로서 교육받은 자신은 이미 그 약점을 상쇄했다.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문제라면.
드드득.
애초에 거리를 좁힐 수 없게 만들면 그만이다.
“나머지 둘이 보이지 않으니 대비해!”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안태민은 태도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내보인다.
‘죽여도 돼.’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정한 사냥꾼은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최선을 다하는 법.
우우웅.
마력이 주입된 태도가 공명하며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안태민, 그가 가장 잘 사용하고 자랑하는 스킬.
“발도.”
늘어뜨렸던 커다란 태도가 순식간에 횡으로 움직여 허공을 갈랐다.
부우우웅!
태도에서 빛나는 마력이 그 궤적을 따라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스윽.
상대도 공격을 눈치채고 자세를 바꾼 모양이지만.
‘아직.’
한 번 더 남았다.
부우우웅!
이번에는 종으로 움직인 태도.
그대로 쏘아진 마력의 검기는 십자의 형태로 빈틈없이 상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막으려고 했다간 검기에 먹힐 것이고, 피하려고 했다간.
‘파동에 균형을 잃을 것이다.’
자! 어쩔 테냐.
쾅!
뒤이어 검기가 충돌하며 폭발음이 울렸다.
“어리석긴.”
감히 자신의 검기를 막으려고 하다니, 검사였다면 차라리 검과 함께 신체 일부만이 잘려나갔을 테지만, 권투사인 권신우라면 몸이 사 등분 되는 것을 막지.
“……!”
안태민이 눈을 치켜뜨며 빠르게 태도를 들었다.
콰앙!
안태민의 태도와 부딪혀 이는 폭발음.
희뿌옇게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이정기…?”
붉은색의 마력이 번뜩였다.
자신이 느낀 그 거대한 마력이 이정기라고?
이정기는 겨우 D등급 헌터, 아무리 마력 던전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파앗!
다시 한 번 태도로 공격을 막자 이는 풍압에 연기가 걷히고, 상대의 얼굴도 드러났다.
태도와 부딪힌 무기는 검.
그리고 그 검을 쥔 상대는 이정기였다.
또한.
“……!”
자신을 노려온 것은 이정기 하나가 아니었다.
쿵!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
“큭!”
안태민은 급히 몸을 틀어 충격을 완화하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쿠쿠쿵.
발밑에서 솟구친 나무뿌리가 어느새 자신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권신우라 생각했던 적은 이정기.
양동작전으로 치고 들어오리라 생각했건만, 셋 모두 동시에 자신을 노렸다.
스윽.
목에 겨눠진 칼날.
“팀장!”
그제야 팀원들이 움직여 봐야 소용없었다.
“크으윽!”
이미 왕은 잡힌 뒤였으니까.
* * *
안태민과의 충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튜토리얼에서 수석을 차지한 안태민….’
이진석이 이야기해주었다.
‘이성의 제1 공격대장인 안인회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주안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입니다.’
주형태의 딸, 주안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헌터.
‘뭐, 어차피 마력 던전은 따로 들어갈 테니 문제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마력 던전에 같이 들어가게 되는 것을 안 이후, 이정기는 안태민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안태민의 등급은 A, 그것도 상위권.
그에 비해 자신들의 전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김상혁이야 오크 몰이로 낙오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안태민의 실력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았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해.’
A등급 상위권의 안태민, 그리고 그의 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안태민.’
녀석만 잡으면 된다.
녀석의 팀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탓에 제법 실력이 좋았지만, 2차 시험에서 살펴본 바로 안태민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큰 듯했다.
그렇다면 안태민만 잡으면 끝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힘이 부족해.’
그렇다고 하나 힘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은 순서를 정해야만 했다.
‘먼저 김상혁을 낙오시키고 시간을 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최대한 성장한다.
그것만으로 안태민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태민은 강해.’
또한, 똑똑하다.
‘먼저 수비가 아닌 공격.’
수비를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절대적 강자를 상대로는 어림없다.
반대로 공격을 하는 상황을 만들어 상대의 행동을 제한한다.
‘그러면 안태민은….’
아마 자신들 한 명 한 명을 무시하지 않고 대비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팀의 진형은 갈릴 것이고, 그 선두에는 안태민이 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허를 찌를 방법.’
안태민의 눈을 속이는 방법이었다.
그 또한 생각해둔 방법이 있었다.
‘안태민은 지금 내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D등급, 아무리 성장했어도 C등급이라고 생각할 터.
그 허점을 노려야 한다.
또한.
‘퀸 레이스.’
올림포스에 유령형 몬스터 중 하나로 퀸 레이스라는 것이 있었다.
유령계의 여왕 정도 되는 녀석인데, 녀석의 능력 중 하나는 나풀거리는 마력의 치마 안에 자신의 새끼 레이스들을 숨기는 능력이었다.
가장 큰 마력으로 작은 마력들을 숨기는 은신 계열 능력.
‘정기야.’
쥬피터 할아버지는 말했다.
‘육체를 완성하게 되면, 몬스터의 특성을 따라 하는 것 따윈 별 것 아니게 될 거다. 오히려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몬스터의 고기를 먹지 않아도, 퀸 레이스가 가진 능력의 원리와 사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준비는 끝났고.
슥.
이것이 그 결과였다.
“안태민.”
이정기가 안태민의 목에 검을 겨눈 채 말했다.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권신우는 안태민의 옆구리에 건틀렛을 가져다 둔 상태였고, 최인해의 바인딩이 안태민의 발을 묶어두었다.
벗어나려면 벗어나지 못할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려다간, 팔 한 짝 정도는 내놓아야 할 거다.”
팔 하나는 버려야 할 터였다.
그것이 이정기가 생각하는 최악의 한 수.
‘겨우 승기를 잡았지만….’
팔 하나를 잃은 안태민이라도 자유로워져 팀원들과 합류한다면 오히려 자신들이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정기는 안태민이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안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점.’
녀석의 성격은 고지식하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명예롭다.
그러니.
“큭. 이렇게 당할 줄이야.”
최악의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팀장!”
“됐다.”
안태민은 제 손에 들고 있던 태도를 툭 내려놓았다.
“변명의 여지 없는 우리, 아니 내 패배다.”
역시.
“이정기.”
안태민은 이정기를 또렷하게 보며 말했다.
“그어라.”
“……!”
“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황한 최인해가 끼어들었지만, 안태민은 최인해에게 관심 하나 주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널 죽이려 했다.”
“…….”
오롯이 안태민의 눈은 이정기를, 이정기 또한 안태민의 눈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그어라.”
간단한 말.
권신우와 최인해, 그리고 안태민의 팀원들은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했다.
그와 대비되게 조용히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이정기와 안태민.
잠시 뒤.
스윽.
이정기는 검을 내렸다.
“살려주는 거냐? 널 죽이려 한 난데?”
“던전에서 나가. 그 정도면 충분해.”
“…….”
잠시 이정기를 보던 안태민.
“알겠다.”
그는 말없이 떨어트렸던 태도를 다시 들곤 가슴팍에 있던 폭죽을 꺼내 들었다.
파앙!
터지는 폭죽, 그건 누가 뭐라 해도 던전을 포기하겠다는 신호였다.
* * *
“도대체 안태민, 그 자식 뭐야?”
최인해는 어이없다는 듯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그대로 죽이라고? 그거 진심이었지?”
“…….”
진심.
맞다, 안태민은 진심이었다.
녀석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라 말한 것이었다.
“도대체 그딴 짓을 왜…? 너한테 죄책감이라도 심어주려는 걸까? 아니면 자기가 죽어서 공격대장을 움직여 복수하려고?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이정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
이정기는 안태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을 인정한 것이었다.
강한 헌터로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만일 진짜로 목을 그으려 했으면….’
아마 녀석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무기를 들었을 것이다.
‘시험.’
안태민은 자신을 시험한 것이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지 아닐지.
그걸 통해 미래를 보려던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주안나와 충돌하게 될 자신.
그리고 만일 주안나가 패배한다면, 그녀를 살려줄 것인가를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시험은 합격, 녀석은 자신이 훗날 성혈들의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주안나를 살려달라며 물러난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생각과 자신은 조금 달랐다.
이정기가 녀석의 목을 긋지 않은 것은 그저 녀석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
녀석의 검기에 조금 더 살기가 짙었다면.
‘죽였어야겠지.’
그렇게 배웠으니까.
“뭐가 됐든.”
이정기가 말했다.
“이제부터 던전은 저희 겁니다.”
던전에는 이정기 팀만이 남아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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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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