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권 5화
030
몬스터를 몰이한다.
던전의 공략권을 구매하거나 낙찰받아 사냥하는 던전보다 게이트가 존재하던 구세대에서 많이 사용되던 수법이었다.
여러 헌터들이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기에 게이트의 공략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곤 했고, 그 와중에 다른 헌터나 길드를 밀어내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방법.
하지만 그건 대개 길드 단위의 다툼인 길드 전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몰이를 한다는 건 그만한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
몰이한 몬스터가 상대를 밀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많아야 하는데, 그만한 수를 몰이하기 위해선 몰이를 하는 헌터 또한 위험에 노출된다.
만일 그만한 수위 몬스터를 몰이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냥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낫지.’
그런 이유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 바로 몰이 사냥이었다.
그러나 이정기는 몰이를 사용해 김상혁을 몰아냈다.
처음 이정기가 그 의견을 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실제로 그 결과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말도 안 된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에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이정기.
“오크 계열의 몬스터들은 원래 부락이나 부족 단위로 움직여요.”
던전의 형태인 지금과 달리 게이트에서 출몰하던 오크의 특성은 분명 이정기의 말대로였다.
“그래서 녀석들은 혼자서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적이 나타나면 다른 오크들과 힘을 합쳐 적을 사냥하기 위해 움직이죠.”
교과서적인 대답, 하지만 그것이 이정기가 선보인 기적과도 같은 일에 대한 해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넌 제 자리에 서서 오크들을….”
이정기가 한 일이 믿기지 않는 까닭.
“조종했다.”
마치 테이머 계열의 스킬을 지닌 것처럼, 그냥 멀찍이 서서 아무런 위협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오크들을 움직였다.
테이머 계열의 스킬을 지녔다고 해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D등급의 헌터가 저 정도 수준의 오크 열 마리 이상을 멀찌감치서 조종한다면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어떻게…?”
“간단해요.”
이정기는 또 한 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 오우거 계열인데. 그 오우거의 울음소리를 김상혁 팀이 있는 곳을 향해 퍼트린 것뿐이에요.”
“아까 불었던 휘파람이 그럼…?”
오우거의 울음소리란 말인가?
“그게 가능해?”
이번에는 잠자코 있던 최인해도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우거의 울음소리를 아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걸 따라 할 수 있다고?”
어불성설.
들어본 적도 없는 기예였다.
물론.
‘불가능하겠지.’
이정기 또한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특성을 베낄 수 있던 자신의 능력으로 오우거의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
또 단순히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고.
‘피어.’
약간의 피어를 섞어 오크의 공포심을 자극해야만 했다.
“하긴, 뭐 더 놀랄 것도 없겠지.”
최인해는 이제 뭐가 됐든 관계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폭죽이 터졌고, 김상혁 팀이 낙오된 것이 확실시됐다.
“이제….”
그렇다면.
“안태민 팀도 이렇게 처리할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마력 던전은 그야말로 이정기 팀이 독점하게 되는 셈이었다.
지금도 오크 한 마리를 잡으면 흡수되는 마력량이 상상 이상인데, 던전을 독점한다면.
꿀꺽.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셈이었다.
“아뇨.”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정기도 다른 생각이 있는 듯했다.
“제가 몰이할 수 있는 오크의 수로는 안태민 팀을 궁지로 몰아넣긴 힘들 거예요.”
오히려.
‘화만 돋우겠지.’
튜토리얼 기간 내 김상혁은 안태민과 그가 서로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듯하지만, 이정기의 생각은 달랐다.
‘안태민은 강해.’
1차 시험에서도, 2차 시험에서도 결코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그와 그의 팀이라면 열 마리 정도의 오크는 어떻게든 버텨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더 많은 수의 오크를 몰이한다면 오히려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도 튈 수 있다.
그러니….
“어차피 주어진 마력 던전 공략 기간은 총 일주일, 시간은 많아요.”
“그렇지.”
“최대한 사냥에 열중할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그쪽이 먼저 움직일 것 같으니까.’
* * *
김상혁의 팀이 포기를 선언하고 이정기와 권신우, 최인해는 본격적인 사냥에 돌입했다.
공략 루트를 공유하던 김상혁 팀이 사라지니, 이정기 팀이 그 루트를 독점한 셈.
“하압!”
적절히 몬스터를 끌어내 사냥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상대하는 오크는 총 네 마리.
사실상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위험부담이 큰 녀석들이었지만.
“정권!”
권신우는 과연 뛰어난 헌터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 마리의 오크를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파앗! 파앗! 팟! 팟!
매섭게 몰아치는 건틀렛은 오크의 온몸을 찜질해주었다.
빠르고, 묵직한 주먹.
취익!
오크는 글레이브를 휘두르며 저항하려 했지만 권신우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무리였다.
글레이브 속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난타하자, 곧 오크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푸른 입자로 변했다.
“바인딩!”
그리고 최인해의 활약 또한 돋보였다.
서포트 계열에서만큼은 최고의 효율을 보인다는 초록빛의 마력 소유자.
그녀가 사용하는 스킬은 오크를 묶고, 나무를 성장시켜 오크의 겉부터 부숴나가는 치명적인 방식이었다.
C등급에 불과한 그녀였지만, 오크를 사냥하며 늘어난 마력량으로 한 마리의 오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마리의 오크는.
탓! 타닷!
이정기 홀로 맡고 있었다.
“내 눈에 치료 마법을 써 줄 수 있나?”
“뭔 헛소리야?”
“내 눈이 잘못된 것 같아서 말이지.”
먼저 사냥을 끝낸 권신우와 최인해가 대화하며 이정기를 보았다.
탓!
이정기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기예에 가까웠다.
아무리 성장했다고 한들, 오크와 분명한 힘의 차이가 있을 진데.
스윽.
이정기는 그야말로 오크의 글레이브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가며 녀석들을 공략하고 있었다.
오히려 두 마리의 움직임을 유도해 서로 부딪히게 만든다든지.
팟!
땅을 박차 허공에서 오크의 글레이브를 때리는 힘을 반동 삼아서 자세를 바꾼다든지.
“…….”
저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건 단순히 천재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경험을 쌓은 것인지.”
끝없는 전투, 그 속에서 쌓아 올린 경험.
무엇이 불가능한지, 무엇이 가능한지.
또한,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오크의 움직임과 무기를 다루는 방식마저 훤히 꿰고 있는 느낌이야.’
이건 마치.
“설마…!”
“왜?”
“이정기가 여지껏 스킬을 사용한 걸 본 적 있나?”
“……!”
스킬을 사용했었던가?
헌터라면 무조건적으로 갖게 되는 스킬.
“그거라면, 붉은 마력이야 스킬이 아니고, 2차 시험…?”
“혹시….”
이정기가 각성한 스킬이.
“미래 예지?”
최고등급의 스킬로 분류되는 예지 계열의 스킬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실상은 그런 능력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정기의 움직임은 신비로웠다.
푸욱! 푹!
마침내 치명타를 적중당해 쓰러지는 오크.
거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후우.”
저렇게 격렬하게 싸웠음에도 그리 가쁜 숨을 내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인해야 모르겠지만, 딜러로서 직접 몸을 움직이는 권신우는 저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낸다.
저건 헌터의 방식이 아니었다.
마치, 끝없는 전쟁 속에서 살아온 야수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아아.
이정기가 쓰러트린 오크가 푸른 입자로 변해 이정기의 몸에 스며들었다.
꽈악.
집중하여 마력의 방출을 최대한으로 막는 이정기.
‘됐어.’
벌써 사냥에 몰두한 지 삼 일.
그들이 쓰러트린 오크만으로 던전의 길 한쪽을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간의 결과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던전의 버프를 받으면….’
이정기가 검에 묻은 오크의 피를 털어내며 조용히 읊조렸다.
“B등급 정도인가.”
아직,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군.’
더 나아가면 곧 다른 통로와 이어지는 길이 나타날 듯싶었다.
* * *
“마력장 설치 끝났나?”
“예.”
안태민의 팀은 김상혁의 팀과는 전혀 달랐다.
튜토리얼 기간 내내 친분을 다져 가까워진 김상혁의 팀과 달리, 안태민의 팀은 철저하게 안태민을 위해 함께 만들어진 자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성의 공격대장의 아들로 자라, 이성 바깥에서 그 실력을 쌓고 미리부터 팀을 결성한 안태민.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성에 들어온 그였다.
하지만 그는 잊을 수 없는 치욕을 맛보아야만 했다.
‘큭.’
튜토리얼 시험.
그날 분명 예정에 없는 이성의 길드장 주형태와 이성의 회장 최명희, 협회장 김대정까지 참관하러 왔다.
안태민은 그것이 분명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
‘그거, 이정기 때문일걸?’
까득.
겨우 D등급의 헌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녀석이 자신이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받아버렸다.
‘그 녀석, 새로운 성혈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노력해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따르기로 맹세한 주안나의 말이 아니었다면, 결코 몰랐을 이야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팀원의 말에 안태민은 눈을 부라리며 그를 봤다.
“시험을 못 봤나 보지?”
“그건, 속임수나 우연….”
“오유중.”
“죄, 죄송합니다.”
안태민은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우연으로 B등급 헌터를 꺾고, 속임수로 홉 오우거를 쓰러트린다고?”
“…….”
“오유중, 너는 할 수 있나? 그 어떤 방법을 쓴대도 이성의 시험장에서?”
“그건….”
결국, 오유중이라 불린 팀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녀석이 D등급이라는 건 분명해. 하지만 녀석에겐 무언가 있다.”
그리고.
‘녀석이 숨긴 게 뭔지 알아봐.’
그것을 알아내는 게 자신의 역할이었다.
이성의 길드장, 주형태의 딸 주안나가 내린 밀명.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정기….”
자신이 받은 치욕을 설욕할 기회였다.
김상혁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멍청한 녀석은 이미 낙오한 듯했다.
‘그것도 이정기의 짓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녀석을 기다릴 수밖에.
안태민은 잠시 눈을 감고 주안나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성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 그것이 주는 위압감.
그렇기에 안태민은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눈앞에 떠오르는 주안나의 얼굴, 그 얼굴은 분명 만연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여도 돼.’
그렇다면 간단하다.
파앗!
두 눈을 부릅뜬 안태민.
“온다!”
그들을 향해 헌터가 내뿜는 기척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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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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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