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24화
024
“무, 뭐라고?”
“널 내 팀에 끼워주면 뭘 해줄 거냐고 물어봤는데.”
최인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팀 구성을 못 해서 그러고 있던 거 아니었어?”
“맞아.”
“근데….”
도대체 무슨 반응일까.
팀 구성을 못 하면 감점이기에 같이 팀을 하고자 찾아왔건만, 저런 태도라니.
최인해는 당황을 지우며 말했다.
“마치 팀을 구성 안 해도 좋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아?”
“그건 아니야. 팀을 구성 못 하면 감점이니까. 팀을 갖추는 게 좋다는 건 알아. 다만, 내 팀이 되면 분명한 이점이 있으니 대가를 받아야지.”
“이점?”
이제 최인해는 당황하기보다 흥미롭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면이 있었어?’
튜토리얼 기간 내내 말이 거의 없는 데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도 않았던 이정기.
그러니 지금 보이는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무조건 합격할 테니까.”
“무조건 합격한다고?”
하지만 최인해는 곧 당황을 넘어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2차 시험은 몬스터 사냥, 네 그 붉은 마력을 믿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몬스터 사냥이 헌터와의 대결보다 쉽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오히려 1차에서 붙은 헌터들조차 2차의 벽을 못 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너, 그래 봐야 D등급이야. 정인섭이야 경험이 부족해서 이겼지만, 몬스터한테도 통용될까? 상대 몬스터는 적어도 C등급 이상일 텐데?”
“가능해.”
“허.”
다시 코웃음을 친 최인해.
하지만 이정기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이 녀석 진심이야.’
진심으로 2차 시험을 무조건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은 나 혼자만 해.”
“뭐?”
보자 보자 하니 가관이다.
“팀을 구성해놓고 혼자 사냥하겠다고?”
“그게 편하니까.”
“…….”
이제 최인해는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
선택의 시간.
‘그냥 붉은 마력의 소유자랑 친분이나 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오기가 생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아직 최인해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제안 나도 유효한가?”
또 다른 헌터가 이정기와 최인해 사이에 껴 목소리를 내었다.
“권신우?”
1차에서 나름 실력을 보였던 건틀렛 사용자.
“네가 왜?”
다른 이라면 모를까, 권신우는 제법 헌터들 사이에서도 인망이 있는 자였다.
실력과 인망 둘 다 갖추었으니 원한다면 누구와도 팀을 이룰 수 있을 텐데, 갑자기 나타나 이정기의 제안을 물어보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네가 뭘 줄 수 있는지만 말해주면.”
또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말하는 이정기.
“정식 길드원이 되어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거다. 그때 도움을 주지. 그거면 되겠나?”
“그 정도면…, 충분해.”
“좋아.”
어느새 권신우가 이정기의 옆에 섰다.
“뭐야, 정말 이렇게 된다고?”
오히려 최인해가 당황하는 상황.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은 상황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익. 나도, 나도 그렇게 할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
“좋아.”
“팀 구성은 끝났나? 너희가 마지막이다.”
권신우가 이정기에게 다가와 말했다.
“끝났습니다.”
* * *
2차 시험, 그건 튜토리얼의 헌터들이 팀을 이뤄 배정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몬스터의 배정은 팀을 이룬 헌터들의 평균보다 더 강한 수준으로 배정된다.
“오우거야!”
“젠장, 어렵겠는데.”
이미 2차 시험이 시작되고, 정해진 순번에 따라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헌터와의 대결에서도 승리한 합격자들이었건만.
“중지.”
2차 시험의 벽을 못 넘는 자도 꽤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는 상대해 본 경험이 없는 헌터들 일수록, 등급이 높더라도 사냥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몬스터를 보게 되면 느껴지는 위압감, 인간이 아닌 괴물을 본다는 공포가 그들의 머리를 잠식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훈련했던 것과 같은 정석적인 움직임을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
‘살육.’
상대를 죽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 그 살기에 노출되어 몸이 굳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성의 튜토리얼 헌터들은 대부분 경력이 있는 자이기에 몬스터의 피어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콰아앙!
이성의 몬스터는 다른 곳보다 수준이 높아 그 자체로 애를 먹곤 했다.
시작된 2차 시험.
“저 녀석이 붉은 마력의 소유자였을 줄이야.”
주형태는 아니꼽다는 얼굴로 이정기를 보고 있었다.
원래 주형태는 이번 시험에서 이정기를 통과시킬 생각이 없었다.
미리 아랫사람을 시켜 정인섭이 이정기를 상대하게 했고, 당연히 B등급의 정인섭은 이정기를 능욕하다시피 몰아붙였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정기가 붉은 마력의 소유자임이 밝혀지며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
“단순히 붉은 마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최명희의 물음.
“큭. 아닌 것 저도 압니다.”
주형태는 답했다.
“실전 경험이 정인섭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로 보이더군요.”
주형태 또한 최명희의 피를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성 길드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형태, 그조차도 제로 라인, 0번대의 헌터였다.
“도대체 스무 살짜리가 어디서 저런 경험을 쌓은 건지.”
그렇게 말하며 주형태는 입술을 짓씹었다.
모르지 않는다.
이정기가 누구인지, 누구의 손자인지, 어디서 왔는지.
하지만 지금껏 가짜일 것이라는 것에 가능성을 크게 두고 있었는데.
‘진짜일지도.’
저런 경험을 저 나이에 가지고 있다면 진짜일 가능성이 몹시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신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하지만 그 지옥에서 버텨온 것 치고 등급이 너무 낮아.’
아무리 이건이 도와주었어도, 겨우 D등급의 헌터가 올림포스에서 이십 년을 생존했다?
말이 되질 않는다.
‘젠장.’
거기다 주형태의 계획은 하나 더 어긋났다.
혹시 1차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2차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팀을 구성하는 게 옳았다.
팀을 구성하지 못하더라도 시험을 치를 수야 있지만, D등급의 헌터가 혼자 시험을 치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인해와 권신우 등 튜토리얼에서 두각을 드러낸 헌터가 둘이나 붙었다.
‘분명 외톨이라고 들었는데.’
초록색의 마력을 쓰는 최인해와 건틀렛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권신우가 함께라면 아마 이정기는 2차 시험도 어렵지 않게 통과할 듯싶었다.
“협회장이 보기엔 어떻지?”
최명희는 이번에는 김대정을 향해 물었다.
“…….”
김대정은 말을 아꼈다.
사실.
‘큭.’
아까 1차 시험에서 이정기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일이 기억난 것이다.
“누가, 떠오르는 전투법이더군요. 방어보다 공격에 치중하는, 파괴적인 전투법.”
이건.
그와 똑 닮아있다는 것을.
그때였다.
-이정기, 최인해, 권신우. 2차 시험을 시작하겠다.
마침내 이정기의 2차 시험 시간이 다가왔다.
시험장에 들어가 선 세 명.
“시험 몬스터는….”
곧이어 몬스터가 바닥의 구멍을 통해 올라왔다.
“이것도 네 짓이더냐?”
이번에는 조금 낮게 가라앉은 최명희의 목소리가 주형태를 향했다.
“아, 아닙니다.”
주형태는 최명희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말했다.
“저는 애초에 녀석이 1차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차는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주형태가 말했다.
“시스템이 판단한 겁니다.”
이성의 튜토리얼 시스템, 헌터들의 등급과 수준을 파악해 그와 걸맞은 대상을 내보낸다.
“흠.”
그리고 이정기 팀의 상대는.
쿠웅!
B등급, B등급의 보스 몬스터 격인 홉 오우거였다.
* * *
“미친!”
최인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홉 오우거라고?”
일반적인 오우거는 B등급, 사실 오우거만 해도 어려운 상대였다.
한 번도 합을 맞춰보지 않은 자신들이 B등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제법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냥 오우거도 아닌, 오우거보다 머리통이 하나는 더 큰 홉 오우거라니.
“저건 B등급 보스 몬스터야.”
보스 몬스터는 동일 등급 수준인 헌터가 최소 세 명에서 열 명까지도 사냥하는 몬스터였다.
침착한 듯했던 권신우도 눈살을 찌푸리며 홉 오우거를 보고 있었다.
“설마….”
최인해가 말했다.
“저걸 혼자 상대하겠다는 건 아니지?”
분명 이정기는 팀을 구성하기 전, 홀로 몬스터를 사냥할 것이라 단언했다.
“겨우 그딴 대가를 받겠다고 이상한 짓거리를 할 생각은 말아. 홉 오우거면 D등급인 너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곤죽으로 만들 테니까.”
그러나.
“야!”
이정기는 말없이 걸어 나가고 있었다.
“미친 거냐?”
“아무도 도와줄 필요 없어.”
들려오는 이정기의 목소리.
“충분해.”
“뭐?”
“……허세가 심하군.”
권신우까지 한마디를 거들었지만, 이정기는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듯 홉오우거 앞에 선 채 검을 뽑아 들었다.
쿵! 쿵!
마력강철로 만들어진 사슬에 묶인 홉 오우거가 이정기를 보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이 상황이 고수완도 어이가 없던 것인지 방송을 통해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팀과 함께….
“혼자서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객기야.
고수완이 무어라 더 말리려 했지만, 저쪽이 소란스러웠다.
아마 최명희가 그대로 진행하게 하라고 지시하는 듯했다.
“젠장. 일단 서포트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말해.”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군.”
최인해와 권신우도 이정기의 옆까지는 아니어도 뒤에 서서 말했다.
이정기는.
스윽.
눈을 감았다.
홉 오우거, 저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수준으로 상대하기에 불가능한 적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등급이 가진바 힘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었다.
애시당초, 몬스터가 헌터보다 근력이나 체력이 강한 것은 동 등급이어도 당연한 일이다.
‘원래 몬스터는 격차를 이겨내야 사냥할 수 있는 거야.’
7살 무렵, 그때부터 몬스터를 사냥했다.
이정기가 처음으로 사냥한 몬스터.
“하아.”
그건 A등급의 블랙 오크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럼 시작하겠다. 문제가 생길 시 바로 중단할 테니 그렇게 알도록.
촤릉.
사슬이 풀리는 소리.
촤아아아아!
한 번 풀리기 시작한 사슬은 빠른 속도로 풀려, 완전히 팽팽해졌다.
그 순간.
카앙!
홉 오우거가 사슬을 힘으로 뜯고 이정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시험장 전체가 울리는 듯한 소리.
이정기는 이제 눈을 똑바로 뜬 채 홉 오우거를 노려보고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애초부터 격차를 이겨내야 가능한 것.
하지만 갓난아기가 어른을 이길 수 없듯,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함도 분명히 인정한다.
“이정기!”
“돕겠…….”
지금 홉 오우거와 자신의 격차가 그러하다.
하지만 한순간, 단 한 순간의 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정기야.’
믿는 것이 없다면 이따위 일을 할 리가.
이정기가 이십 년간 교육받은 것은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게 아닌, 생존하는 법.
목숨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다면 도망치라 배웠다.
그럼에도 이정기가 홀로 홉 오우거 앞에 선 것은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네가 내 육체를 완전히 갖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리셋된 후의 너라면 자주 사용할 순 없겠지만, 필요할 때 도움은 될 수 있겠지.’
쥬피터 할아버지는 이 힘을 그렇게 말했다.
“피어.”
쿵!
순간-!
이정기를 향해 달려오던 홉 오우거가 그대로 두 무릎을 꿇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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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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