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23화 (23/284)
  • 제1권 23화

    023

    캉! 카캉! 캉!

    시험장 안에서 끊임없이 불꽃이 튀기고 있었다.

    “허억…, 허억….”

    처음에는 여유를 보였던 정인섭도.

    “후우….”

    그에 잘 맞서던 이정기도 많이 지쳐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둘은 다시금 땅을 박차고 철검을 맞부딪혔다.

    캉!

    “미친….”

    헌터들 중 한 명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게 말이 돼?”

    정인섭은 B등급, 이정기는 D등급이다.

    등급을 생각하면 시험은 진작 이정기의 패배로 끝났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카앙!

    이정기는 더 이상 밀리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헌터의 등급은 가히 절대적인 수치나 다름없었다.

    등급을 뛰어넘는 천재들이 있다지만, 결국 그들 또한 등급에 짓눌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의 등급을 나누는 가장 큰 요인은 마력량.

    헌터에게 마력량은 근력, 체력, 완력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D등급이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는 거야?”

    “정인섭이 생각보다 약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넌 저기서 저렇게 싸울 수 있겠어?”

    카앙!

    이건 더 이상 시험이 아니었다.

    “개자식이-!”

    마치 목숨을 견 결투와 같은 모습.

    그렇다고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이 자리에서 저 싸움을 말릴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 최명희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최명희는 흥미롭게 시험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카앙!

    또다시 불꽃이 튀고 있었다.

    * * *

    “후우.”

    이정기는 숨을 골랐다.

    ‘확실히 등급의 차이는 절대적이야.’

    하지만 정인섭을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에겐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눈엔 정인섭의 부족함이 훤히 보였다.

    ‘날 너무 얕보고 있어.’

    자신을 얕본다.

    그렇기에 정인섭은 체력의 안배나 장기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을 끈다.’

    그러면 정인섭의 마력을 빠른 속도로 고갈될 것이다.

    그에 반해 자신은 최소한의 마력만을 사용해 버틴다.

    ‘살은 조금 내어주어야겠지.’

    아무래도 등급 차이가 있는 만큼, 아무런 피해 없이 정인섭을 지치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최소한의 상처와 최소한의 힘으로 정인섭을 지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

    ‘경험.’

    그건 절대적인 경험의 차이였다.

    정인섭이 다른 길드에서 헌터로서 생활한 경력이 있는 헌터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5년가량이라고 했다.

    그에 반해 이정기는 최소 10년 이상은 몬스터와 부대끼며 지내왔다.

    이정기가 싸워 온 몬스터의 수준이 결코 정인섭이 싸워온 것들에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정인섭이 싸운 몬스터들을 감히 이정기가 싸운 몬스터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한 번 던전을 공략하면 적게는 한 달, 많게는 몇 달가량도 휴식을 취하는 헌터와 달리 이정기는 거의 매일 같이 싸워왔다.

    또 하나.

    ‘강자와의 싸움은 익숙해.’

    이정기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에 무척 익숙해 있었다.

    이건, 쥬피터.

    자신보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강자들과 겨뤄 버텨내는 게 이정기의 반복된 일과였다.

    그러니 가능하다.

    카카카캉!

    “제기랄, 왜…, 안 쓰러지는 거냐….”

    그저 시간만 끌어도 정인섭을 쓰러트리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정인섭의 마력은 고갈된다.

    그에 반해.

    ‘내 마력은 반절 가까이 남아있어.’

    그렇게 승리를 취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 정신 나간 여자에게 가게 된다면, 꼭 그 여자의 마음에 들거라.’

    할아버지의 충고를 떠올렸다.

    지금 이 자리, 자신을 보는 시선에는 할머니 최명희의 것도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호기심이 담겨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은 화려하게 끝내도 좋지 않을까?

    ‘할머니의 기억에 남는 걸 보여드려야겠어.’

    카아앙!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정인섭의 말을 무시한 채 이정기는 생각했다.

    ‘신세대의 헌터들의 특별함은 색을 담은 마력입니다.’

    이진석이 말해주었던 신세대의 특별함.

    이진석은 분명, 붉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였다.

    그리고 아까 전, 최인해 또한 초록빛의 마력으로 모든 이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카아앙!

    이정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너…! 아직도 힘을…!”

    소극적으로 방어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이던 이정기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콰앙!

    빈 틈투성이로 검을 크게 휘둘러 정인섭을 내리찍는다.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체력이 고갈된 정인섭은 그 빈틈을 노릴 재간이 없었다.

    콰앙!

    두 번, 세 번, 네 번.

    마치 정인섭을 그 자체로 부술 듯 이정기의 검이 내리쳐졌다.

    “개…자…식이-! 이대로 끝날 것 같으냐!”

    마침내 정인섭도 겨우 보존하던 마력을 전부 검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

    ‘파괴강화.’

    정인섭이 사용하는 스킬로, 마력을 무기에 부여해 그 파괴력을 배가하는 것.

    지금껏 이정기는 저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자신의 철검이 저 공격에 맞았다간, 그대로 부서져 자신의 몸까지 뚫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휘익!

    하지만 지금 이정기는 아까 그랬듯 다시 크게 검을 휘둘러 정인섭을 내려치려 했다.

    당연히 이제부터 일어날 결과는 이정기의 검이 심하게 부서져 나가리라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

    곧이어 이정기의 검에 벌어진 변화에 헌터들은 입을 떡 벌렸다.

    화륵-!

    타오르는 소리가 났다.

    “저, 저건…!”

    휘둘러지는 이정기의 검, 그곳에 불꽃이 붙었다.

    아니.

    “붉은 마력!”

    파괴력을 따지자면 그 무엇보다 강하다는 붉은빛의 마력이 이정기의 검에 깃든 것이었다.

    곧이어.

    콰아아앙!

    두 검이 부딪혔다.

    산산이 부서져 조각난 것은.

    “대결 종료.”

    정인섭의 검이었다.

    이정기의 검은 정인섭의 미간 앞에 멈춰서 있었고, 정인섭은 그대로 공포에 질려 기절한 듯 보였다.

    “이정기 헌터의 승리다.”

    고수완이 승자를 발표했다.

    * * *

    1차 시험이 끝났다.

    대결을 통해 승자는 2차 시험의 준비를, 패자는 탈락을 했다.

    웅성웅성.

    2차 시험 준비가 한창이어야 할 헌터들은 준비는커녕, 제대로 집중조차 못 하고 있었다.

    “붉은 마력의 헌터는 오랜만 아니야…?”

    “이정기가 붉은 마력의 소유자였다니.”

    “젠장!”

    1차 시험에서 보여주었던 이정기의 붉은 마력이 소란의 원인이었다.

    신세대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색의 마력, 그건 발현하는 것조차 드문 힘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색이 존재했다.

    ‘붉은색과 보라색.’

    상위의 힘이라고 불리며 아주 소수의 헌터만이 가진 힘이었다.

    그 많은 헌터를 보유한 이성에서조차 붉은 마력을 보유한 헌터의 수는 스무 명이 채 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또 다른 붉은 마력 소유자의 탄생에 소란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주인공인 이정기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행이야.’

    사실 붉은 마력을 사용하는 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할머니에게 제대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도박.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특별한 색의 마력이 존재합니다.’

    ‘검은색은…, 없습니다.’

    이진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이후, 이정기는 색깔을 지닌 마력에 관해 연구해 보았다.

    그 결과,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의 색깔 변화라면, 그로 인한 힘의 변화라면.

    ‘이미 검은색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신력으로의 변화는 이미 이정기가 훈련을 통해 습득한 능력이었다.

    그 색을 달리하는 것이라면, 그 효능이 무엇인지도 안다면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애초에 따라 하는 것은 이정기의 특기였다.

    몬스터의 특성도, 할아버지의 능력도 베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해보았다.

    결과는 성공.

    ‘붉은 마력은 확실히 신력과는 조금 다르네.’

    이정기는 남들이 뭐라 하건, 마력에 관한 생각에 깊게 잠겨 있었다.

    -곧 2차 시험을 시작하겠다.

    그때 2차 시험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2차 시험에 앞서….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

    -2차 시험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이루어지기에, 팀을 짜 보고하도록.

    “……!”

    처음으로 이정기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2차 시험에 앞서 팀을 짜는 것, 이것이 바로 튜토리얼 시험에 숨겨진 또 다른 단계였다.

    “팀 구성 끝났습니다.”

    “저희도.”

    “저희도 끝났습니다.”

    “꼭… 팀을 짜야 합니까?”

    이정기가 고수완을 향해 말했다.

    “팀을 짤 필요는 없다만, 그래서야 혼자 몬스터를 사냥해야 된다.”

    “아 그럼 혼자도….”

    “하지만 팀을 못 이루는 게 감점 요인은 되지.”

    덜컥, 이정기가 멈춰 섰다.

    “홀로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도 있지만, 여긴 길드야. 대부분은 팀 단위로 던전을 공략하지. 그런데 튜토리얼부터 제대로 팀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제대로 다른 헌터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뜻이지.”

    길드에서 그런 헌터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그렇기에 팀을 이루지 못하면 감점.

    “아직 팀 구성이 전부 끝난 게 아니니, 그래도 시도는 해 봐.”

    평소 다른 헌터들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기에 고수완은 쓰게 웃으며 이정기의 등을 떠밀었다.

    긁적.

    ‘팀이라니, 감점이라니.’

    몬스터 사냥이야 특기인 만큼 혼자서도 충분할 거로 생각했는데, 감점을 받는다면 1등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1등을 하지 못한다면.

    ‘마력 던전의 선택권에서 밀리게 될 거야.’

    좋지 않다.

    그건 이정기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한테 말하지?’

    평소 대화도 잘 나누지 않은 헌터들이 자신과 팀을 이뤄줄까?

    팀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단순히 강하다는 이유로 끼워 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중간하게 강한 헌터 한 명은, 팀에 독이 된다.

    개인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합이 잘 맞지 않아 몬스터에게 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배운 것이었다.

    역시나, 대부분의 헌터는 원래 친밀하게 지내거나 합을 맞춰본 다른 헌터와 팀을 이루고 있었다.

    이정기는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해야. 정말 괜찮아?”

    “응. 난 됐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때, 조금은 낯익은 얼굴이 이정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팀 못 구성한 거지?”

    최인해, 초록빛의 마력을 사용해 헌터들의 관심을 받았던 헌터였다.

    “…….”

    “말할 줄 몰라? 고수완 훈련관님이랑은 잘만 대화하던데.”

    “아니. 할 줄 알아.”

    “그럼….”

    최인해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나 네 팀에 끼워줄래?”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잠시 당황한 이정기.

    ‘귀엽네.’

    최인해는 그런 이정기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분명히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부분에선 어려워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때.

    “그럼….”

    작게 웅얼대는 이정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해줄 건데?”

    “뭐라고…?”

    “내가 널 팀에 끼워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거냐고.”

    웅얼거리던 목소리는 어느새 또렷하게 변해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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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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