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21화
021
“신세대의 헌터들이 특별한 마력을 사용한다면, 혹시 검은색의 마력도 존재하나요?”
이정기의 물음에 이진석은 눈을 크게 떴다.
“검은색?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검은색의 마력은….”
이진석이 고민 끝에 말했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세대의 헌터들이 탄생한 지 어언 24년, 그동안 드물다고 해도 여러 색의 마력을 쓰는 헌터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중 검은색의 마력을 쓴다는 헌터에 대해서는 들은 적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진석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검은색의 마력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뒤집힐 겁니다.”
검은색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검은색을 사용하는 헌터에게 온갖 관심을 보일 것이다.
“왜죠?”
“그건, 마력의 색이 짙으면 짙을수록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어떤 것이 더 진하냐에 대한 차이.
구세대의 헌터는 마력의 총량과 능력을 통해 등급을 나누었지만, 신세대의 헌터는 이 색깔의 진하기에 따라서도 총량이 낮을지라도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진한 검은색이라면, 그 위력이 가히 상상조차 되질 않네요.”
“…….”
이정기는 이진석의 말을 곱씹으며 창밖을 보았다.
‘검은색.’
그건 쥬피터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신력.
‘검은색의 마력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바로 네 사명使命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검은색을 눈여겨보라던 말까지.
하지만 세상에 검은색의 마력, 즉 신력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도 최대한 사용을 자제해야겠어.’
할아버지는 자신이 본래의 힘을 되찾을 때까지 최대한 정체를 숨기라고 했다.
이성에 온 날 그것이 잘되지 않을 듯싶었지만, 이진석이 말하길 자신의 정체는 아직 대외비로 이성, 아니 저택의 문밖조차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 개월.’
3개월간은 자신의 정체가 크게 두드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협회의 정훈이 준 정보였다.
‘이성이 3개월 동안은 올림포스로 인한 변화를 대비한다며, 외부에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거기다 이성의 튜토리얼 훈련을 받으신다고 했으니, 튜토리얼 기간과 중간 기간 정식 길드원이 될 때까지 크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정기는 이성 길드의 튜토리얼 훈련을 받으며 최대한 말을 아끼고 다른 이와 소통을 안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삼 개월, 삼 개월이 중요하다.
‘최대한 힘을 되찾아야 해.’
남들이 보았을 땐 빠르게 성장하는 듯하지만, 아직 자신의 기준에선 한참이나 멀었다.
적어도 삼 개월, 그 시간 동안.
‘A급.’
자신이 일곱 살쯤 가졌던 힘은 되찾아야 할 듯싶었다.
누군가가 이정기의 생각을 알았다면 미친놈이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평생을 노력해도 A급이 될 수 없는 헌터들이 수두룩하건만, 그걸 삼 개월 만에 자신의 의지로 오르겠다니, 헛소리라 치부하기 딱 좋았다.
그러나 이정기는 이미 그 이상의 수준에 도달했던 경험이 있었다.
‘방법을 찾았어.’
거기다 자신의 몸 안쪽, 텅 빈 마력을 빠르게 채울 방법을 알았다.
“아저씨.”
“말씀하시죠.”
“정식 길드원이 되면, 이성의 특별 던전을 들어갈 수 있다고 했죠?”
“특별 던전이라면, 마력 던전 말씀입니까?”
“네.”
이성이 오랜 기간 자원을 투자해 개발한 던전, 마력 던전.
인위적으로 던전을 만들어 그 안에 풍부한 마력을 풀어놓고, 사냥하게끔 유도해 헌터가 빠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말이 쉽지, 이 던전 하나에 들어가는 자원이 천문학적이었으며 일회성으로 한 번 공략이 끝나면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재생성해야 하기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의 길드원이라고 해도 정식 길드원이 되었을 때나, 특별한 공적을 세웠을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정식 길드원 채용 시험에서 순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력 던전의 수준도 높은 곳으로 고를 수 있고요.”
“예. 그리고….”
또 하나, 이진석은 말해주었다.
“만약, 수석으로 정식 길드원 승격에 성공하면 던전에 함께 들어가는 인원도 멋대로 고를 수 있습니다.”
이정기는 다시 창밖을 봤다.
그리고.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력 던전.’
그곳에 갈 수 있다면 3개월 안에 A급 헌터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었다.
* * *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할아버지.’
그 사이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이 이건의 흔적을 좇고 있었지만,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올림포스의 봉인이 풀리던 그날, 이건이 목격된 것은 그저 강력한 마력의 농도로 인한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도 돌고 있는 지경이었다.
이건이 돌아왔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기뻐했지만,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조금은 식고 있었다.
다만, 저번에 찾아온 협회의 정훈에게 들어보면 그래도 할아버지를 쫓고 있는 세력이 꽤 있고, 그들이 흔적을 찾아 한국까지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얼마 전부터 이성에도 찾아왔었지.’
하물며 저택에 할머니를 보러 온 자도 있었다.
물론, 저택에 들어올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한 달.
이정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제 완전히 D급이야.’
밤마다 쥬피터 할아버지가 알려준 호흡법으로 마력을 모으고, 튜토리얼 훈련으로 육체의 재활 훈련을 한 결과 D급까지 오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된 거지?’
고수완은 이정기가 D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낮은 등급의 헌터 중에서는 첫 측정 때 몸 깊숙이 숨어있던 마력이 추후 발견되어 등급이 상승하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기에 그런 경우로 치부하는 듯했다.
그런 와중 이정기를 향한 동료들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벌써 D급이라고?’
‘애초부터 D급이었겠지.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등급을 속인 거 아니야?’
‘D급이었으니 무기도 E급에 비해 잘 다룬 거겠지.’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만 질투심은 이따금 인간의 눈과 생각을 막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흐른 한 달.
웅성웅성.
오늘은 마침내 이번 회차의 튜토리얼이 종료되는 날이었다.
튜토리얼 종료와 함께 치러지는 시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성 길드에서 방출되거나 다음 회차 튜토리얼을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시험에서 합격하면 이성 길드의 정식 길드원이 될 수 있었다.
매 튜토리얼 회차 중 정식 길드원으로 승격하는 자들은 전체 인원은 일 할가량.
매 회차가 100여 명이 정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단 열 명 정도만이 이성의 정식 길드원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미 시험에 오기까지 훈련관의 지도에 따라오지 못한 사십 인은 탈락했다.
“시험에 대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 번 설명해주지.”
이번 튜토리얼의 총 책임자인 고수완이 말했다.
“시험은 총 두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 같은 회차의 튜토리얼을 받은 헌터와 겨뤄 이길 것.”
그것만으로 절반의 헌터가 탈락한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나면 남을 헌터는 삼십 명.
“두 번째, 팀을 이뤄 포획한 몬스터와 싸워 사냥을 성공시키면 된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시험.
꿀꺽.
이성에 견습 길드원으로 채용되어 튜토리얼 훈련마저 견뎌낸 헌터들이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럼, 대진표가 완성되는 한 시간 후에 시험을 시작하겠다.”
이제 시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
쿠구구궁.
훈련장의 커다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음?”
튜토리얼의 시험 당일, 훈련장은 혹여 있을 불미스러운 일을 대비해 철저히 봉쇄한다.
감히 이성의 시험을 망칠만한 자가 없을 텐데.
웅성웅성.
문이 열린 곳에서부터 헌터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왜, 저분이?”
“오늘 무슨 날인 거야?”
열린 문을 통해 일련의 무리가 훈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헌터들의 경악스러운 반응에 무언가 말하려던 고수완도 문을 통해 들어온 자들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
“회장님!”
최명희, 이성의 진짜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길드장님도 계셔…!”
최명희를 대신해 이성 길드를 경영하고 있는 주형태까지.
그것만으로 까무러치게 놀라운데, 또 한 명 다른 이가 함께 있었다.
“……혀….”
왜…?
“협회장님?”
한국 헌터 협회장이 이성의 튜토리얼 시험장에 왔냐는 것이었다.
* * *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시다니,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최명희와 주형태, 협회장 김대정의 난입에 튜토리얼 책임자 고수완뿐만이 아닌, 그 윗급의 길드원들이 급히 불려와서 최명희 일행을 보필했다.
“강 이사.”
“예. 회장님.”
“내가 오면 안 될 곳에 온 건가?”
“그건…!”
“요즘 나 대신 형태 상대하느라 많이 힘들지?”
“회, 회장님.”
최명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불려온 강경필 이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내가 내 길드에 온 거야. 내 길드의 새로운 길드원이 될 인재들을 보러 온 거고, 마침 시험이라기에 들른 건데. 뭐, 내가 오면 시험이 바뀌고 그러나?”
“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래. 은퇴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괜히 신경 긁지 말고.”
“옙!”
급히 최명희들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고수완이 다가와 최명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이번 튜토리얼 책임관 고수완이라고 했나?”
고수완이 눈을 떨었다.
자신이 튜토리얼 책임자라 한들, 말단에 불과한데 최명희가 이름을 기억해주니 놀란 것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와 미안하네. 그래도 자네한테는 알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래서야, 강 이사 같은 자들이 괜한 준비를 할까 봐 말이야.”
“무, 물론 문제없습니다.”
“그래. 우리는 그냥 신경 쓰지 마. 늘 하던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불려왔던 이들이 물러나고, 최명희의 시선이 앞을 향했다.
“그래도 제법 길드를 장악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머니 손바닥 안이네요.”
“뭘, 네 어미가 대접받는 게 그리 고까우냐?”
“아, 아닙니다.”
“허허.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최명희와 주형태의 대화에 김대정이 끼어들었다.
“솔직히 회장님은 아직 현역 아니십니까? 일선에서 왜 벌써 물러나신 건지….”
“어이. 김대정이.”
최명희가 김대정을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결국, 나한테 데려왔다고 해도, 며칠간 나한테 숨긴 건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야.”
“그, 그게….”
“그래도 나한테 데려오라 한 게 자네니까. 이번은 넘어가 주지.”
“감사합니다.”
최명희, 그녀의 절대적인 권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득하게 쌓아 올린 부, 그녀의 명령에 따를 수많은 헌터가 있다는 권력.
그리고 그녀 자체로도 한국의 제일을 다투는 헌터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바쁜데, 제가 이런 곳까지 와야 하는 겁니까?”
주형태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쯧.”
최명희가 혀를 차자, 주형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니, 그렇잖습니까. 안 그래도 이번에 해외에서 한국에 지부 설립하겠다는 길드가 많은데….”
“모자란 것.”
“어, 어머니….”
“튜토리얼 시험이라는 게 결국 우리 이성의 기반이다. 저들이 성장해 팀을 이끄는 팀장이 되고, 공격대를 이끄는 공격대장이 되는 거다.”
최명희는 말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있기에 이성을 지킬 수 있는 거고.”
튜토리얼 시험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말.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명희의 눈이 어딘가를 향했다.
“네 조카 녀석이 정식 길드원 시험을 치르는데, 숙부가 되어 참관 정도는 해주어야지.”
“애초에 저 녀석이 진짜, 후-.”
주형태는 말을 골라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번 시험에서는 통과하지도 못할 텐데 뭐 하러 그럽니까.”
주형태는 시험장에 모인 헌터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이번 튜토리얼 인원은 십여 년간의 기간 중 최고 수준입니다.”
시험 전에 사십여 명의 헌터가 탈락했다.
하지만, 평소 튜토리얼에선 육십여 명 가까이가 탈락하곤 했다.
“애초에 저 녀석이 이 중에서 제일 약체입니다.”
더욱이 헌터들의 평균등급도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어차피 녀석은 2단계 시험을 못 치러요.”
시험이 총 2가지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했다.
헌터와 겨루는 것,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하지만 그 중간, 하나의 단계가 더 존재했다.
이정기는 결코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 주형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평가가 최악입니다. 다른 헌터랑 말도 안 섞고, 특채라는 이유로 고깝게 보는 헌터가 대부분이라더군요. 어머니께 더 설명 안 해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시끄럽다.”
최명희는 조용히 이정기를 보았다.
김대정 또한 마찬가지.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일.
-튜토리얼 시험을 시작하겠다.
튜토리얼 시험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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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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