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9화 (19/284)

제1권 19화

019

‘가족.’

그건 이정기에게 있어 많은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할아버지, 쥬피터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남자.

“적당히 굴러먹다 꺼지는 게 좋을 거야.”

자신을 향한 분명한 적개심을 표출하는 이자 또한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자였다.

하지만 이자에게 자신은 가족이 아닌 듯했다.

‘정기야. 지구에선 널 좋게 보는 이보다 아니꼽게 보는 이가 더 많을 거다.’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조언, 그럼에도 이정기는 새로운 만남에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현실은 할아버지의 말씀 대로였다.

꾸욱.

이마를 짓눌러오는 손가락.

“한 번 더 하면.”

가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기에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닐 듯싶었다.

할아버지의 조언.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그 말을 따라야겠다.

“그거 부러져.”

이마를 눌러오던 김윤태의 손가락이 멈춰 섰다.

“뭐…?”

당황한 것이 분명한 녀석의 목소리.

“푸…, 푸하하하하!”

하지만 곧 김윤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이정기는 그사이 다른 사촌들의 얼굴도 힐끗 보았다.

‘주병훈.’

주인배의 아들 주병훈, 녀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 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주안나.’

주형태의 딸인 주안나는 자신보다 동생이라고 들었는데, 마치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할머님은 대체 어디서 이딴 놈을 데려왔지?”

김윤태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너, E급 헌터라던데.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

“나는….”

스윽.

다시금 김윤태의 손이 천천히 이정기의 이마를 향해 짓쳐오고 있었다.

“A급이다. 머저리야.”

김윤태의 손가락이 다시금 이정기의 이마에 닿는 순간이었다.

이정기의 몸에서 순간 작은 마력이 발산되었다.

협회가 마련해준 숙소에서 며칠간 머물며 모았던 티끌만 한 마력.

“어…, 엇!”

김윤태도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손을 움직이려 했다.

“늦었어.”

그러나 이정기는 이미 김윤태의 손가락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김윤태가 무엇을 할 틈도 없이.

빠각!

김윤태의 손가락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 끄아아아악!”

김윤태가 순간 느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

“너 이 새끼가…!”

동시에 김윤태의 몸에서부터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의 살기 가득한 마력, 그것이 이정기의 몸을 노리고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동시에 김윤태도 멀쩡한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어 이정기의 안면을 강타하려 했다.

타앗!

하지만 김윤태의 주먹은 덧없이 막혀버렸다.

“그쯤 하시죠.”

“이 새끼가…, 안 비켜?”

김윤태의 주먹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이진석.

“더 소란을 피웠다간, 회장님이 그냥 보시지 않을 겁니다.”

“개 같은….”

최명희의 이름이 나오자 김윤태도 어쩔 수 없이 기운을 누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진석이 이정기를 이끌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김윤태의 엄포 같은 목소리에.

피식.

이정기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 정도 고통도 못 참으면서 무슨.”

“이….”

“그만해.”

다시금 김윤태가 나서려 하자, 이번에는 주병훈이 나섰다.

“미안하군. 그저 인사하러 온 것뿐인데, 윤태가 좀 흥분한 모양이야.”

“…….”

주병훈은 김윤태의 어깨를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안나.

“오빠. 재밌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사촌 간의 인사가 오붓하게 끝이 났다.

* * *

다음 날, 예고했던 대로 이정기는 저택을 벗어나 이성 길드 본부를 향해가고 있었다.

“후우.”

이정기를 수행하는 이진석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가요?”

“어제 사촌분들이랑 있었던 일 말입니다.”

이진석은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해선 피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정기를 맡았기에, 이진석도 이정기에 대한 정보를 대강은 알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 그분의 손자.

그리고.

‘E급.’

어떻게 E급 헌터가 그 지옥 같은 데에서 이십 년을 살아 돌아왔는지 모르지만, 그분이 함께였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정기에게 특별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최명희의 마력장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나.

‘어제 보여준 움직임.’

김윤태의 손가락을 부수던 것까지.

그건 일반적인 헌터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헌터들에겐 하나의 등급 차이가 절대적이다.

C급의 헌터라면 능히 E급의 헌터 다섯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

헌데 이정기는 E급의 헌터임에도 A급의 헌터인 김윤태의 손가락을 부쉈다.

그게 우연일까?

‘절대로 아니다.’

듣기에 김윤태는 반항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이정기의 행동에 당황하여 당한 것이라 말하는 듯싶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마력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멈추었어.’

이정기는 미세한 마력을 세밀하게 조종해 김윤태의 팔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마력으로 완력을 강화시키고, 힘을 집중해 손가락을 부수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기예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정기에게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뿐이다.

‘만일 김윤태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내가 없었다면.’

이정기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가족인데, 그렇게까지 하나요?”

“말씀드렸듯, 이성은 일반적인 가족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진석의 말에 이정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봐서 충분히 알아요. 다만.”

이정기가 말했다.

“어제는 이진석 님….”

“편하게 부르고 싶으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있었으니까요.”

“……!”

“아저씨의 임무는 저를 지키는 거라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이진석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이정기를 바라봤다.

‘게이트에서만 자랐다고 했는데.’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결코 지구의 삶을 모르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게이트에서 자랐기 때문인가?’

이정기의 특별함이 대충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짐승.’

짐승과도 같은 감각과 눈치, 그리고 판단 능력.

“무모한 짓은 안 해요.”

“그래도 조금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봤다.

“오늘부터 이성 길드의 길드원으로 훈련받으실 테니, 미리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 *

올림포스에 있을 때, 이정기는 지구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그건 이건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지 지구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

그곳에서의 삶.

특히나 이정기가 궁금했던 것은 따로 있었는데.

‘헌터.’

바로 헌터였다.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자신에게 소중한 이들이 모두 헌터였다.

특별한 힘을 지닌 인간들.

그들이 얼마나 특별할지, 모두 할아버지와 같은지 궁금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길드.’

그런 헌터들이 모여 있는 길드도 궁금했다.

지금 이정기는 그가 궁금했던 것을 모두 보고 있었다.

이미 몇 명의 헌터들은 만났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헌터들을 보는 것은 처음.

“던전에서 너희를 지켜줄 것은 오직 실력뿐이다.”

훈련을 받는 헌터들을 지도하던 남자가 이정기를 발견하곤 다가와 말했다.

“오늘 새로 온다던 그 특챈가?”

지금 이진석은 없었다.

‘길드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깥에서 기다릴 테니 필요하면 호출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선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정기. 맞지?”

“네.”

“흐음.”

남자는 이정기의 모든 걸 뜯어보듯 천천히 살폈다.

“들었던 대로 E급이군.”

남자는 말했다.

“대체 E급을 왜 특채로 채용한 건지….”

남자는 손을 내뻗었다.

“낙하산이겠지. 친지 중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런 건 하나도 통용되지 않는다. 내 이름은 고수완, 당분간 널 담당할 튜토리얼 훈련관이다.”

이정기는 미리 이진석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처음 길드에 가면 튜토리얼부터 받을 겁니다. 헌터로서 활동하기 위한 모든 것, 이성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한 모든 것을 배울 겁니다.’

헌터로서 활동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들.

“무기는 뭘 쓰지?”

“…….”

“아직 주 무기도 안 정한 건가?”

고수완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얼마나 뒷배가 좋기에.’

이성 길드의 신입은 신입이되 신입이 아니다.

이를테면 중고 신입, 경력이 있는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따금 정말 신입이라 부를 헌터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각성 레벨부터가 다른 진짜배기들이었다.

그때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검…, 검이나 창, 방패. 건틀렛, 활….”

이정기의 입에서 나열되는 무기들.

“후우. 내가 말하는 건 무기의 종류가 아니라, 주 무기를 말하는 거다. 아직 안 정해져 있으면 검부터 시작해보지. 거기. 목검 하나 가져다줘.”

곧, 헌터 한 명이 목검을 가져와 이정기에게 건넸다.

“이론이나 그런 건 이미 기간이 끝났으니, 당분간 무기 훈련부터 받아야 할 거다. 다만, 주 무기도 안 정해져 있으니 좀 봐주기로 하지.”

이성에 특채로 들어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겨우 E급의 헌터가 특채로 들어왔다는 건.

‘최소 뒷배가 팀장급이나 임원급이겠지.’

그 정도라면 조금 신경 써 주어 나쁠 것은 없었다.

“한 번 휘둘러 봐.”

고수완의 말에 이정기가 목검을 들어 올렸다.

‘무거워.’

들고 있는 목검이 무겁다.

하지만 이건 목검이 무거운 게 아니라, 내가 약해진 것이었다.

‘아직 마력도, 육체도 자리를 못 잡았어.’

거기다 지구의 희박한 마력, 이성 길드 훈련장의 특별한 마력은 더욱 몸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뭐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고수완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내리쳤다.

휘익.

작게 이는 바람.

“…….”

고수완은 그 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듯 말했다.

“다시.”

휘익!

“다시.”

휘이익!

마침내 고수완이 말했다.

“대체….”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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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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