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8화 (18/284)

제1권 18화

018

“할머님이 왜 부르신 거지?”

“몰라서 묻는 거냐?”

기다란 식탁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성혈.’

이성가의 핏줄들.

“아마도 올림포스의 이야기겠지.”

“그 이건이 목격됐다던가 하는 헛소리?”

“헛소리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야.”

식탁의 가장 끝에는 현재 이성의 3세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앉아 있었다.

최명희의 손자들.

그리고 그 옆에.

“형님은 뭐 들은 거 없수?”

“나도 갑작스레 호출받은 것뿐이다.”

최명희의 두 아들 내외.

“오빠들도 모르는 거면,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최명희의 딸과 그 남편이 앉아 있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어머니가 왜 부르신 건지.”

“누군 안 바쁜가.”

“조용히 해라.”

대에엥.

6시를 알리는 괘종시계의 울림이 퍼졌다.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던 성혈들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최명희는 결코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이미 모여 있었구나.”

드르륵.

최명희가 나타나자 곧 식탁에 앉아있던 성혈들은 몸을 일으켜 말했다.

“할머님을 뵙습니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오늘 만찬은 가족 간의 식사, 고리타분한 호칭은 넣어두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딱딱하고 긴장되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스윽.

성혈들을 둘러보는 최명희.

할머니, 혹은 어머니일지라도 그녀는 이성의 주인이었다.

언제나 성혈들을 평가하고 질책하거나 칭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앉아라.”

최명희의 말에 겨우 성혈들이 의자에 착석했다.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형님 말이 맞습니다. 정기 모임은 아직 열흘이나 남았을 텐데요.”

이제는 장성한 두 아들, 주인배와 주형태가 최명희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최명희는 그저 입을 다물고 그 둘을 볼 뿐이었다.

그 뜻은 분명했다.

직접 맞추어 보라는 뜻.

‘시험.’

또 하나의 시험인 것이었다.

“후우, 보나 마나 뻔하지. 올림포스의 일 때문인 것 아닙니까.”

성질이 급한 셋째, 주형태가 말했다.

“이건. 그자가 정말 돌아온 겁니까?”

뒤이어 주인배가 물었다.

이제 아직도 한 마디를 꺼내지 않은 것은 막내딸, 주영은뿐이었다.

“그 아이 때문이군요.”

처음으로 최명희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났다.

둘째인 주인배는 이성 그룹을, 셋째인 주형태는 이성 길드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이 보유한 또 다른 길드, 백두를 맡고 있는 막내, 주영은만이 최명희의 표정을 드러나게 한 것이었다.

“그 아이?”

“영은이 너 아는 거 있었어?”

주영은은 딱히 어떠한 말 없이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들어 오라고 해라.”

최명희의 명령이 떨어졌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정장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진석이?”

“어머니가 쓸 때가 있다더니. 여기 있었습니까? 근데….”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한 청년.

“저건 뭐지?”

일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주인배도, 주형태도, 그나마 주영은만이 입술을 작게 깨물 뿐이었다.

“내가 할까. 직접 하겠느냐?”

최명희의 목소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 청년, 정기에게로 향했다.

정기는 잠시 주먹을 쥐었다.

‘그 정신 나간 여편네.’

할아버지의 말로 할머니의 성격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시험.’

할머니는 매 순간 누군가를 시험한다고 했고, 그 시험이 자신에게도 주어진 것이었다.

저벅.

생각을 마친 이정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말했다.

“안녕하세요.”

당당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제 이름은 이정기, 할머니의 손자로 당분간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

조용했던 식탁에 잠깐의 소란이 일었다.

* * *

“올림포스의 봉인이 풀리고, 소멸하였으니 변화가 생길 거다.”

“안 그래도 올림포스의 존재 때문에 존재하던 생츄어리에도 변화가 생길 듯싶습니다.”

“이미 녀석들이 몇 명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가족 간의 만찬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보고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들어온 생츄어리의 헌터는 철사자 레옹, 그리고 로베르트와 이원형을 포함한 육 인입니다.”

“제법이구나.”

계속된 이야기.

그럼에도 힐끗힐끗 시선은 이정기를 향하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하지만 이정기는 그런 것들은 관계없다는 듯 음식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맛있어.’

맛있다.

지구에 와 먹은 음식들은 하나같이 뛰어났지만 지금 먹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사르르.

입에서 녹는 이게 무엇인지, 달콤하기 그지없는 음료가 무엇인지 이정기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그저 가리지 않고 접시를 비우고, 부족하면 손을 들어 더 달라고 했다.

“…….”

“헤에.”

“천박하긴.”

3세들 쪽에서 나타난 반응들.

하지만 이정기는 그런 것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머니.”

주인배가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주시지 않을 겁니까?”

최명희의 눈빛에 아무런 물음도 하지 못했지만, 주인배는 이제 한계였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인지도 모를 녀석이 손자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앉아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있다.

그것이 고깝지 않다면 사실이 아닐 터였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어머니!”

“시끄럽다.”

달그락, 달그락.

“대체 언제 숨겨둔 겁니까? 그런데 성씨가 이 씨라면….”

주형태가 말했다.

“혹시.”

사아아.

급격히 가라앉은 분위기.

“이건의 손자…, 이강 형님의 아들인 겁니까?”

현재 이성을 이루고 있는 성혈들.

그들은 이건의 핏줄이 아니었다.

이건과 최명희는 결혼 후 슬하에 자식 하나를 두고 곧장 이혼했으며, 최명희는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한국 헌터 무구의 육십 퍼센트를 생산하는 블랙소드의 사장인 주용과 재혼했다.

지금의 성혈들은 모두 주용과 최명희 사이에서 탄생한 아이들이었다.

“맙소사. 정말 이강 형님의 아들이면….”

“게이트에서 태어났다는 건가?”

다시금 이정기에게 관심이 돌아갔을 때.

구구구.

모두를 짓누르는 마력장이 펼쳐졌다.

“크윽.”

“큭!”

거센 마력에 주인배나 주형태도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고, 주영은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며, 3세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곧 힘은 사라졌다.

“궁금한 것들이 있다면, 알아서 하거라.”

최명희는 통보하듯 말했다.

“정기야.”

“네. 할머니.”

“저 녀석…, 어머니의 마력장에 영향을 안 받은 건가?”

주형태가 경악하며 읊조렸지만, 최명희는 무시한 채 말했다.

“내일부터 이성 길드에 나가거라. 필요한 건 이진석이가 다 준비해줄 거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없었다.

식사는 거기서 끝이었으니까.

* * *

“감사합니다.”

이정기는 디저트로 나왔던 음식들을 받아들며 감사를 표했다.

“벼, 별말씀을. 언제든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주방장은 그런 이정기의 반응에 손사래를 쳤다.

“모시겠습니다.”

그런 이정기를 향해 이진석이 다가와 말했다.

저벅.

이정기의 방을 향해 나아가는 둘.

“괜찮으십니까?”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뭐가요?”

“만찬 말입니다. 처음일 테니 힘드셨을 텐데….”

“음.”

이정기는 주방장이 챙겨준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괜찮았어요.”

이정기는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 있었던 만찬을 생각했다.

비록 할아버지는 다르다고 하지만 할머니의 피가 함께 흐르는 자들.

조금 멀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가족의 경계 안에 드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강했지.’

그들은 지구에 와서 보았던 자들 중 제일 강하다 할 수 있었다.

눈앞의 이진석이나, 협회의 정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

하지만 그런 감상은 되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사실 가족이란 것에 대해 이정기는 남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쥬피터와 보냈던 시간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렸던 것들.

아무리 할아버지에게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다곤 하지만 조금은 기대했던 게 사실이었다.

“원래 가족이란 게 이런 건가요?”

“이성의 가족은 조금 특별합니다. 그리고….”

이진석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 씨는 이 씨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있지 않습니다.”

“왜….”

이진석에게 물으려던 이정기가 말을 멈추고 스윽 앞을 봤다.

딱, 딱, 딱.

그곳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아까 전 만찬에서 자신과 함께 앉아 있던 자들.

자신과는 사촌지간이라던 자들이었다.

“이진석 씨.”

그 중 주영은의 아들이자 이정기와 동갑인 김윤태가 이진석을 향해 말했다.

“외부인에게 이성의 일을 발설하는 게 허락되었나요?”

“이정기 님은 외부인이….”

“헛소리.”

김윤태가 성큼성큼 이정기와 이진석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를 이딴 녀석이 성혈이라는 겁니까?”

김윤태는 이정기보다도 더 큰 키에 근육질로 다부진 몸을 가지고 이정기를 내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선 분명 이정기 님을 인정하셨습니다.”

“할머님이…!”

김윤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실 최명희가 허락한 것을 김윤태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말이 통할 상대였다면 이렇게 시비를 걸 이유도 없었다.

“할머님이 저희를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죠.”

“그건…, 억측입니다.”

“모르는 일이죠. 이진석 씨는 할머님의 의중을 전부 아신다는 겁니까?”

이진석이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띠는 김윤태.

김윤태는 이정기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꾸욱.

이정기의 이마를 누르는 손가락.

“할머님이 바라는 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 모를 뼈다귀를 저희가 어떻게 잘 처리하는지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죠.”

미친 소리.

이진석은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꾸욱.

“그니까…, 괜한 짓 하지 말고.”

이번엔 이정기를 향한 말.

“적당히 굴러먹다가 꺼지는 게 좋을 거야.”

“…….”

“뭐, 네가 안 꺼진다고 해도 내가 꺼지게 할 테지만.”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있는 김윤태.

그가 다시금 이정기의 머리를 손가락을 밀치려 할 때였다.

“한 번 더 하면.”

마침내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그거 부러져.”

“뭐…?”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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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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