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6화 (16/284)
  • 제1권 16화

    016

    “그래서 우리가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겠나?”

    김대정이 정보부장 정훈을 향해 물었다.

    “…….”

    김대정이 가장 신뢰하며, 언제나 만족스러운 답을 주었던 정훈도 이번만큼은 쉬이 답하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엮여 있는 문제였다.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정훈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따로 없었다.”

    푸욱, 한숨을 쉬며 김대정이 말했다.

    “그저 당분간 정체를 숨기고, ‘그 분’에게도 비밀로 하라는 것. 그게 전부였지.”

    “‘그분’이라면…, 제가 생각하시는 그분이 맞습니까?”

    김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훈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눈을 감았다.

    ‘이번 일은 탄탄대로를 밟아 온 내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

    지금껏 정훈이 헤엄치던 물과는 전혀 다른 대양의 일이나 다름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건의 의중이 무엇일까.’

    보이는 것들만 생각해선 안 된다.

    나아가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더욱 나아갈 수 있고.

    ‘살 수 있다.’

    그 정도의 일이었다.

    “협회장님.”

    “오, 뭔가 복안이 떠올랐나?”

    정훈은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실상 정기 군의 정체를 계속 숨기는 건 무리입니다.”

    “……그렇겠지.”

    이미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관한 관심으로 크게 쏠려 있었다.

    다행히 올림포스의 봉인진에서 노출된 것은 이건뿐이기에, 누구도 손자가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정기 군의 얼굴이나 그 비범함을 생각하면….’

    언제 누가 눈치를 채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보호의 명목으로 이정기를 가둬놓기만 하는 것을 이건이 원할 리가 없었다.

    세상에 내보내되, 드러나지 않게 하라.

    “이미 생츄어리에서도 한국으로 인원을 파견했고, ‘이리스’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네.”

    “‘이리스’도.”

    “아무래도 이건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이정기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분’에게도 비밀이고요?”

    “그래. 허, 이 나라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 뭐 두 분의 사이를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그래도 정기 군은 그분에게도….”

    “협회장님.”

    정훈이 이제는 완전히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야. 내가 물어본 것은 어떻게 이 부탁을 완벽히 들어줄까이지, 편법을 찾자는 게….”

    “편법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방패막이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김대정 또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훈의 말이었다.

    밑바닥에서부터 능력을 보여 자신이 직접 중용한 인재.

    랭커의 끝자락에 닿아있는 실력이었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는 듯이 전 세계에서 관심을 보인 자가 바로 정훈이었다.

    “저희가 살기 위해선….”

    정훈은 말했다.

    “그분을 이용해야 합니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겠지?”

    “어차피 그분께는 알려야 하는 일입니다. 이건께서 부탁하신 것이 당분간 그분에게도 정체를 숨기라 한 것이지만.”

    씨익.

    “그 당분간의 기준을 정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훈은 이미 생각을 정한 듯했다.

    “자네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그래.”

    김대정이 전화기를 들었다.

    “좋아. 자네 말대로 하지. 다만, 책임은…, 자네가 져야 할 걸세.”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협회장의 자리에 있는 김대정이 면피를 위해 부하인 정훈에게 책임소재를 떠넘기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대정의 표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날 것이다.

    김대정은 떨고 있었다.

    한국 헌터의 협회장이라는 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진심으로 두려워 떨고 있었다.

    사실상 정훈에게 허락해준 것 자체가 파격적인 처사였다.

    “물론입니다.”

    정훈 또한 받아들였다.

    말했듯.

    ‘이건 위기이자 기회.’

    결과에 따라서.

    ‘더 높은 곳으로.’

    정훈은 아직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오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정기 군에게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제발, ……만전을 기하게.”

    * * *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탄 정훈이 회장석에 앉아 있는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이정기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보기에 여념 없었다.

    지구에 온 이후 처음으로 외출을 하는 것이었다.

    또, 할아버지께 듣고 영상으로만 보았던 자동차를 직접 타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걸 타는 거에요?”

    하지만 막상 타보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헌터들이 자동차보다 빠르지 않나요? 굳이….”

    이런 것을 탈 이유가 있나?

    그저 뛰는 게 더 빠를 듯싶었다.

    정훈은 그런 이정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 전부가 헌터인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 처음으로 헌터가 탄생한 이후, 지금에 이르러 협회에 등록된 헌터의 수는 5천만에 가깝다.

    하지만 세계 인구를 생각해보면 겨우 1퍼센트도 채 되지 못하는 수일 뿐이었다.

    헌터들이야 뛰는 것이 자동차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또한, 지구에는 일반인과 헌터들이 공존하기 위한 규칙들이 있습니다.”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뛸 수 있는 헌터들.

    그들이 도로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실수로 누군가와 부딪힌다면, 어떤 사고라도 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보호해줄 방패막이가 있는 자동차가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훈은 이 순진한 청년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창밖의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네.”

    “그들이 저희를 보고 있다는 것도 느껴지십니까?”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입니다.”

    “으음.”

    정훈은 말했다.

    “저희가 타고 있는 이 자동차는 수억을 호가하는 고급 차량입니다. 또한, 번호판에는 ‘협’자가 쓰여 있지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의 이정기.

    “지구,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나라입니다. 돈을 벌어 고급 차를 산다는 것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고, 주변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수단입니다.”

    “과시? 관심….”

    “거기다 협회 차량은 협회에서도 탈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기에 권력을 뜻하는 것이고요.”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잘 이해가 가진 않아.’

    이미 할아버지에게 배운 내용이긴 했다.

    ‘누구나 헌터를 선망한다.’

    지구에 오기 전, 지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이정기가 이해하기는 힘든 부분이긴 했다.

    다른 인간을 겪어보지 않았던 이정기에게, 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던, 그저 사는 것 자체가 가치였던 이정기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

    “앞으로 느끼게 되실 겁니다.”

    정훈은 그것으로 대강의 이야기를 끝마쳤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금 저희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제가 당분간 기거할 곳이라고….”

    끄덕.

    “그리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정기 군을 지킬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리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그럴 수 없었다.

    특히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훈과 김대정은 수십 번을 고민하고 번복했다.

    ‘이게 맞는 걸까.’

    자칫 잘못했다간.

    ‘파국.’

    모든 것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렸다.

    “길드라는 곳입니다.”

    “뭔지 알아요.”

    이정기가 말했다.

    “헌터들이 특정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집단.”

    “예. 맞습니다.”

    끼익.

    자동차가 멈추었다.

    “이곳은….”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저택.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길드의, 길드장이 계신 곳입니다.”

    길드 이성.

    한국 길드 랭킹 1위.

    세계 길드 랭킹 8위에 빛나는 헌터들의 성지.

    철컥.

    누군가 차 문을 열며 고개를 숙였다.

    “내리시면 됩니다.”

    정훈 또한 긴장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 * *

    작금, 대한민국에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자는 몇 없었다.

    한때 대한민국은 헌터 강국이라 불렸지만, 이십사 년 전,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한국팀만이 돌아오지 못한 이후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것이 바로 길드, 이성이었다.

    한국 랭커의 태반을 보유한 거대 길드, 세계에 스물여덟 곳의 지부가 있으며 해외의 랭커들 또한 다수 속해 있는 곳이 바로 길드, 이성이었다.

    하지만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길드의 최상위 인물들이었다.

    이성이 가진 국내 유일 타이틀 중 가장 가치 있는 것.

    ‘제로 라인.’

    영 번대, 랭커 중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하이 랭커를 무려 여섯이나 보유한 곳이라는 것.

    저벅.

    지금 이정기와 정훈은 그런 이성의 본가.

    길드장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을 걷고 있었다.

    꾸욱.

    정훈은 긴장한 채 주먹을 쥐고 있었다.

    정보부장이라는 협회에서 제법 높은 직위에 올랐다고 하지만 이 저택에 초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사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

    헌터 협회의 소속인 자신에게 감히 허튼짓했다가는 목과 몸이 분리될 것이라 경고를 하는 듯한 기운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진.’

    밟고 있는 이 저택 전체에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마력진이 발동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문득, 정훈은 이정기의 표정이 궁금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본 이정기는.

    ‘허.’

    정훈이 속으로 헛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랭커라 불리는 자신도 사지가 떨리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

    협회의 정보부장임에도 사자의 아가리에 들어온 것처럼 겁이 난다.

    헌데 이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은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그 수준이 너무 낮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 눈빛에 날이 서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언제라도 맹수가 그를 덮쳐온다면, 그도 반대로 맹수가 될 수 있는 준비.

    ‘과연, 그의 손자란 것인가.’

    안내해주던 자가 멈추었다.

    “회장님. 들어가겠습니다.”

    잠시 후, 커다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정훈이 열린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큽!”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신음.

    정훈은 자칫 무릎을 꿇을 뻔, 몸을 휘청였다.

    ‘마력장이…!’

    방 전체에 마력장이 펼쳐져 있었다.

    랭커인 자신조차 무릎을 꿇릴 듯한 강력한 마력장.

    ‘안 돼!’

    정훈이 곧장 생각난 것은 이정기였다.

    자신도 겨우 설 수 있을 지경인데, 아직 마력이 부족한 이정기라면 큰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젠장! 실수다!’

    보안을 위해 그분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탓.

    “너…?”

    이정기를 본 정훈은 두 눈을 터질 듯 부릅떴다.

    자신조차 무릎을 꿇을 정도의 마력장, 그런데 이정기는 꼿꼿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력장이 비껴간 건가?’

    아니다.

    이정기의 피부가 잘게 떨리는 것을 보면 분명 마력장의 권역 안이었다.

    즉, 이정기는 자신조차 무릎 꿇리는 마력장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호오.”

    그때, 흥미롭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아아.

    정훈과 이정기를 짓누르던 마력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법이구나.”

    평가하는 듯한 목소리, 정훈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회장님을 뵙습니다.”

    “정훈인가?”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한국 헌터 협회의 정보부장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늙었단 뜻인가?”

    “제가 감히….”

    잠시 감도는 적막.

    정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농일세.”

    뒤이어 이어진 목소리에 그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래. 그 아이겠군.”

    목소리는 이제 이정기를 향해 있었다.

    “김대정이, 그 늙은 여우가 내가 꼭 봐야만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던데. 내 마력장에도 버티는 걸 보니 꽤 근성은 있군.”

    정훈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하지만 부족해. 육체도, 마력도. 그런데도 꼭 내가 봐야 할 특별함이 있다는 겐가?”

    정훈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마치 목소리가 정기를 봐야 할 이유가 충분치 않다면 용서치 않겠다고 협박을 하는 듯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훈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이정기의 정체를 듣는다면, 목소리의 주인도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이제부턴 돌이킬 수 없다.’

    정훈은 마음을 가다듬은 채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길드, 이성의 주인.

    그리고 국내 유일, 세계 헌터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초강자.

    과거 시엘의 자리까지 넘보았다고 알려지는 존재.

    ‘최명희.’

    정훈이 그녀에게 이정기를 소개하려 할 때.

    저벅.

    이정기가 허락 없이 발을 움직여 나아갔다.

    “저, 정기야.”

    정훈이 정기를 말릴 틈도 없던 찰나.

    “하….”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할머니시죠?”

    “……!”

    “……?”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들었어요.”

    쿠쿠쿠쿠쿠쿠쿠!

    지진이라도 난 듯, 모든 것이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아까와는 다르다.

    분명히 성이 난 목소리.

    “지금 무어라 했느냐?”

    사나운 암사자가 이정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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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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