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15화
015
“깨어나셨습니까?”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
이정기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타앗!
바닥을 박차고 몸을 회전시킨다.
혹시 모를 공격을 흘려내기 위해서였다.
“무슨…!”
동시에 그 회전력을 주먹에 담아낸다.
이미 육체와 마력이 정상이 아님을 확인했기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파괴력을 내고자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꽈아악!
그렇게 내뻗어진 이정기의 주먹은 남자의 손에 가로막혀 있었다.
손바닥을 펴, 이정기의 주먹을 받아내었다.
이정기는 당황하지 않고 다리를 뻗으며 몸을 비틀었다.
붙잡힌 손을 빼고 후속타를 가하기 위해서였다.
“무, 뭐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적이 아닙니다!”
남자가 후속타를 피하며 겨우 소리쳤다.
대치하듯 선 이정기.
“……!”
이정기의 눈빛이 남자를 고요하게 보고 있었다.
‘무슨 눈빛이…!’
남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다는 청년, 그 청년의 눈빛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잠들었던 이정기의 몸을 이미 점검했기 때문이었다.
육체도, 마력도 겨우 헌터에 발을 걸칠 수 있는 수준.
찌르르.
하지만 그가 내뻗어낸 주먹에 담긴 위력과 저 눈빛은 겨우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군가.
서드 라인이나, 상위권에 위치하지는 못했다곤 하지만 랭커의 끝자락에 이름을 올려놓은 자신이었다.
헌데 초보 헌터나 다름없는 이정기의 움직임은 자신을 한순간 당황하게 했을뿐더러, 작지만 분명한 충격마저 주었다.
‘이 청년이….’
이건의 손자.
“죄….”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급히 고개를 숙이며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남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방금은 죽일 것처럼 달려들더니, 이제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사과한다.
“오해가 풀렸다면 괜찮습니다.”
남자는 호흡을 정리하며 말했다.
“저는 한국 헌터 협회 정보부장 정훈이라 합니다.”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 헌터 협회….”
이정기가 정훈의 말을 곱씹었다.
“한국 헌터 협회.”
“네. 한국 헌터 협회입니다.”
“당신은 정말 인간인가요?”
이정기의 물음에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야 당황스러웠다고 하나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었다.
이정기가 누구인지 안다.
‘올림포스의 아이.’
게이트 속에서 태어나, 게이트 속에서 스무 해를 보냈다.
그곳에 다른 인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청년은 지금 이건을 제외한 다른 인간을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네. 저는 인간입니다.”
정훈은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그리고 여긴 말씀드렸듯, 대한민국.”
“…….”
“지구입니다.”
“지구….”
이정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이 지구….”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고향, 그리고 원래 자신이 속했어야 할 땅.
정말로 그곳에 온 것이었다.
* * *
이정기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진정한 듯했다.
“할아버지는….”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훈의 말에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야. 돌아가면….’
이미 지구에 돌아오고 난 이후의 계획에 대해 어느 정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자에게 맡긴 후, 힘을 되찾고 시선을 끌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되니 마음이 이상했다.
올림포스에서 이정기가 이건과 떨어져 있던 시간은 손에 꼽을 수 있었다.
언제나 함께, 든든하게 자신의 곁에 있어 주던 할아버지가 당분간은 없다.
“후우.”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
이정기는 눈앞을 바라봤다.
투명하게 빛나는 저것은 유리, 이미 지구의 많은 것에 대해 배웠기에 알 수 있었다.
“…….”
그러나 들은 것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그건 이정기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인공적으로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들과 불빛.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저 땅 위로 수많은 인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워.’
처음 올림포스에서 안전지대, 오아시스를 보았을 때와 같다.
쥬피터 할아버지의 숲을 보았을 때와 같았다.
아름답다.
감상에 빠진 이정기를 향해 정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사과드리지만, 주무시는 동안 저희가 임의로 몸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정훈은 계속 말했다.
“게이트에서 태어나…, 게이트에서 자라셨다고 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혹여 이정기 님의 건강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야 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닐 거다.
‘정기야 인간은 그리 착하지 않단다.’
할아버지에게 인간에 대해 배웠다.
‘아마도 게이트에서 나고 자란 내게 혹시나 지구에 위협이 되는 질병이 있을지 확인해야 했겠지.’
그 외에도 저들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검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저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꽈악.
그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 할 일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야 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조심스레 물어오는 정훈.
이정기는 그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정훈은 이정기가 이곳에서 지낼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음식은 끼니마다 직접 배달이 올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또한,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이정기에게 주었다.
“언제든 연락 주시면 됩니다.”
틱.
정훈은 리모컨을 건드려 티비를 틀어주었다.
“이건 티비라는 것인데….”
설명을 하려던 정훈은 설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정기가 티비를 또렷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너무나 익숙하다.
“할아버지….”
현재가 아닌 과거였을 적의 할아버지.
-올림포스의 봉인이 깨어졌다는 소식입니다. 올림포스의 봉인이 깨어지고 소멸반응이 확인되었으며….
낯선 목소리는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시엘 이건이 목격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틱.
정훈이 채널을 돌렸다.
-이건….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 월드 클래스급의 헌터 이건이….
-그의 가족으로는 랭커 이강과 유영아….
-정말 그가 돌아온 것일까요?
-현재 확인 중….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화면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 이건뿐이었다.
“티비는…, 더는 볼 게 없겠군요.”
정훈이 말했다.
정훈의 목소리에도 이정기는 우두커니 티비만을 보고 있었다.
피식.
그 모습이 아까 전 자신에게 덤벼들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 잠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 편히 쉬시길.”
정훈이 떠나고도 한참, 이정기는 티비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 * *
삼 일이 흘렀다.
아직까지도 티비에는 ‘이건과 그의 생애, 그리고 정말 그가 돌아왔다면’이라는 것들의 주제만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정기는 더 이상 티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강! 그는 누구인가, 이건의 아들이자 랭커였던 헌터의 생애.
-세계 최고 커플의 탄생, 이강과 유영아의 결혼 소식에 미 대통령….
-이강은 이건과 달랐다. 이건이 패왕이었다면, 이강은 성군이었다.
정훈이 준 스마트폰을 통해 미튜브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있었다.
이정기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건 보다는 이강과 유영아.
바로 그의 부모님이었다.
“…….”
태어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얼굴.
스윽.
이정기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보기도 했다.
“닮았나.”
스스로에게 되묻고 답도 내려보았다.
‘닮았다.’
자신은 부모님과 그리고 할아버지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이정기가 빠져 있는 것은 미튜브 뿐만이 아니었다.
와그작.
지구의 음식.
호로록.
그건 정말 새로운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쥬피터 할아버지의 벼락에 정통으로 맞은 것과 같은 느낌.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평생을 몬스터 고기로 연명하던 이정기에게 지구의 음식은 정말이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휴식에 취해있던 것만도 아니었다.
“끄으응.”
육체를 단련하고, 마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홀로 하는 운동이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백오십…, 육백팔십…, 천이백….”
육체는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마력.’
마력이 문제였다.
지구의 마력은 올림포스에 비교하자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력 속에서 태어나 평생을 마력을 머금고 살아온 이정기에게 이 차이가 주는 느낌은 매우 컸다.
마치 심해 깊숙한 곳에서 수영을 하는 듯한 기분.
쥬피터 할아버지에게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제대로 버티는 것조차도 힘들었을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씩 마력이 모이고 있어.’
티끌이라고 하지만, 텅 비어버렸던 자신의 몸에 마력이 조금씩 차고 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했다.
또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뭐지?’
자신의 몸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스며들어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순간 어느샌가 자신과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쥬피터 할아버지….”
그것이 무엇인지.
그건 몇 번 쥬피터 할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힘의 정수이자 원천, 쥬피터 할아버지의 근원이라는 것.
‘벼락.’
쥬피터 할아버지에게서 자신에게로 이어진 것이었다.
조금씩 흘러가는 시간.
이정기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지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 * *
“그 아이는 뭘 하고 있지?”
김대정이 보고하러 온 정훈을 향해 말했다.
단, 며칠 동안 김대정은 몇 살이나 더 늙은 듯 초췌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의 관심이 전부 한국에 쏠려 있었다.
‘이건, 이건, 이건, 이건.’
올림포스에서 발견된 이건이 사라졌고, 그가 갈 곳이라면 한국이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부정할 수조차 없을 터였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인간의 이기는 커다란 마력의 흐름을 좇아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발전해 있었으니까.
‘더 괴물이 되었어.’
하지만 이건은 그런 감시 체계조차 따돌리고 한국에 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어찌 됐건 세계 헌터들과 정부의 관심이 한국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진실을 밝히기도 힘든 상황인 만큼 김대정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티비에 빠져 있는 것 같더니,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음식 먹는 걸 즐기고, 부모에 관해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김대정은 눈을 감았다.
정훈의 보고가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는 운동과 명상 같은 것을 하는데….”
“하는데?”
“육체 발달이 말이 안 되는 속도고, 명상을 통해서는 마력을 조금씩 흡수하는 듯합니다.”
“뭐….”
김대정이 감았던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육체 발달이야 이정기가 헌터로 확인된 만큼 이상할 것 없었다.
발달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뭐, 헌터의 능력 정도로 생각하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마력을 흡수하고 있다고?”
“예. 분명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맙소사.”
사냥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 마력을 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육체를 극한으로 내몬다거나, 특별한 아이템을 섭취한다거나, 계기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마력을 흡수한다니, 그건 평생 한 번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과연, 그 괴물의 핏줄이라는 건가.”
김대정은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이것이 사실상 김대정을 가장 초췌하게 만든 고민이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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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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