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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14화 (14/284)

제1권 14화

014

“이…, 이건?”

김대정은 가빠지는 호흡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엔,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서 있었다.

“이건?”

이건이 그런 김대정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알던 김대정이가 아닌 건가? 아니면….”

싸늘하게 가라앉는 눈빛.

“미친 건가?”

“……!”

김대정은 이건의 가라앉은 눈빛에 순식간에 과거를 떠올렸다.

‘으아아악!’

‘끼에에엑!’

‘꾸어어억!’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한 비명 소리들.

몬스터의 것으로 착각할 만큼 괴상망측한 그 비명 소리들은 전부 자신의 입에서 나오던 것들이었다.

트라우마처럼 각인된 기억들.

“저, 정말 이건이십니까?”

육십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사람들이, 헌터들이 우러러보는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김대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떨며 말했다.

“내가 좀 늙었지?”

“후…, 후욱.”

김대정은 숨을 골라 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올림포스에 생겼다는 변화.’

그리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쉽게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림포스에서 생환한 시엘들에게 듣기로, 올림포스는 그때까지 존재했던 게이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곳이라 했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의 모습을 한 괴물일 수도 있다.’

김대정은 긴장을 푸는 척 팔찌를 매만졌다.

그건 신호였다.

협회에 있는, 자신의 지근거리에 있는 헌터들에게 자신을 지키고 적을 제거하라는 신호.

“호오.”

이건은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헌터들을 보며 흥미롭다는 소리를 내었다.

“김대정이가 변하긴 변했어.”

“감히…! 그분을 사칭하지 마라!”

“이제는 나한테 칼도 들이밀어 보겠다, 이건가?”

일촉즉발의 상황.

“협회장님….”

그 사이에도 생츄어리와 연락을 취하던 협회원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올림포스 쪽에서 이건이 목격되었답니다.”

그 말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영이나 꿈은 아니라는 뜻.

“진짜…, 일수도 있습니다.”

이건은 이 모든 상황을 그저 여유롭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다시 숨을 고른 김대정.

“증거.”

그가 이건을 향해 말했다.

“당신이 진짜 그분이라는 증거를 대실 수 있겠습니까?”

“증거라…, 좋지.”

김대정이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가짜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건이 가짜라 판정한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이건이라면.

‘절대로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이건이라면.

“증거면, 이것으로 충분하겠지.”

퍼억!

순식간에 날아든 주먹.

협회 내에서 최고라 불리는 헌터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건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이미 소리가 들린 순간 김대정의 허리가 반쯤 고꾸라져 있었다.

“내 주먹맛은 네 놈 몸이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커흑!”

터져 나오는 김대정의 비명.

“감히…!”

“협회장님을 지켜라!”

헌터들이 급작스러운 상황에 무기를 꺼내 들어 이건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그만!”

김대정의 고함이 방을 쩌렁거리며 울렸다.

자신이 아는 이건이라면, 이러한 요구에 절대로 응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이건이라면.

‘젠장.’

이 남자, 진짜다.

“이제야 기억이 좀 나나 보구만. 김대정이.”

“오, 오랜만입니다.”

* * *

‘전부 물려, 생츄어리 쪽에는 내 얘기 꺼내지 말고.’

이건은 김대정이 자신을 진짜라고 생각하자 곧, 명령을 내렸다.

감히 한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정부와도 별개의 권력을 가지며, 협회장 스스로도 2백 번대의 랭커, 세컨드 라인의 랭커였다.

하지만 이건은.

‘괜히 이야기 나누는 도중에 뷔앙 같은 것들이 오면 골치 아프다.’

그런 김대정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전부 물러나.’

김대정의 명령에 헌터들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벌어진 일 입 밖으로 꺼냈다간, 나도 책임 못진다.’

김대정의 엄중한 경고와 협회의 정보부, 집행부가 이 광경을 목격한 자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

이제 협회장실에 남아있는 것은 이건과 김대정 단둘뿐.

스륵.

이건이 등에 메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놨다.

방금 전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것.

아마 이건이 그 존재감 자체를 숨겨버렸던 것이 분명했다.

김대정은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굴뚝같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필요하다면 이건이 직접 설명할 것이다.

“정말…, 이건이십니까?”

“왜? 한 대 더 맞아야 알 것 같아?”

“그게 아니라….”

김대정이 푸욱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십사 년 만에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올림포스, 그 지옥 같은 곳이라 알려진 곳에서 이십사 년을 보내신 거라면….”

죽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안 죽고 살아왔다. 왜 불만이야?”

“아니…, 자꾸 왜 그러십니까?”

이건이 피식 웃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이빨을 드러낸 게 아니꼬워서 그런다. 왜?”

“그거야 제가 진짜라고 생각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진짜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김대정은 이건의 말에 뜨끔했다.

이건의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었다.

이건을 처음 본 순간, 김대정은 어느 정도 직감했다.

‘진짜다.’

진짜 이건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 지옥이라는 올림포스에서 긴 세월을 보냈을 테니 혹시 약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반기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건과 김대정의 관계는 복잡하면서도 오래되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김대정이 느끼는 이건에 대한 감정은.

‘애증.’

애정과 증오가 함께 있었다.

별 볼 일 없던 협회의 헌터인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된 이유가 바로 이건 덕분이었다.

그저 그런 헌터였던 자신이 세컨드 라인의 랭커가 될 수 있던 것도 바로 이건 덕분이었다.

으리으리한 집, 수조 원을 넘어가는 재산.

엄밀히 말하자면.

‘전부 그의 덕분이다.’

그것만큼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에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자신이 가장 했던 노력.

‘끄어어억!’

‘끼에에엑!’

‘커허어억!’

지금도 선명하게 들리는 자신의 비명소리.

이건의 매타작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리를 잊는 것이었다.

부르르.

그때의 생각이 나자 몸을 떤 김대정.

“오래 이야기할 시간은 없다.”

그런 김대정을 향해 이건이 말했다.

“네가 날 불편해하는 것도 알겠고, 괜한 소란 일으킬 생각도 없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한국의, 세계의 영웅이 생환했는데 또 어딜 가신단 말씀입니까?”

“입꼬리 올라가는 거나 감추고 말해라.”

김대정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곧 이어진 이건의 말에 김대정의 얼굴 또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날 노리는 녀석들이 있다.”

“어느 미친놈이…, 이 지구에 말입니까?”

끄덕.

“정확한 정보나 그런 건 모른다. 나도 이제 지구에 돌아온 지 한 시간쯤 되었으니까.”

“…….”

“녀석들의 시선을 돌리려면 움직여야 한다.”

또한, 지금도 이건의 힘은 계속해서 소실되고 있었다.

벽을 넘어 지구로 왔기에 그의 마력과 육체가 붕괴되고 있었다.

이것을 안정화시키고, 본래의 힘을 되찾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네 녀석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무, 뭡니까?”

이건이 시키는 일이 정상적일 리 없다.

김대정은 이십사 년 만에 돌아온 이 괴인이 자신에게 시킬 일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스륵.

그때, 이건이 내려놓았던 검은 천을 풀어헤쳤다.

거기서 나타난 것은.

“그, 그 잠깐 사이에 또 누굴 납치한 겁니까?”

“납치하긴 누가 뭘 해? 얼굴을 제대로 봐.”

“얼굴을….”

김대정이 천속에서 나온 청년의 얼굴을 봤다.

미남이라 불러도 무방할 얼굴, 따뜻해 보이는 눈과 입매.

청년이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이와 영아의 아들이다.”

“그 말은….”

“내 손자고.”

“허억!”

김대정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랐다.

이건을 보며 놀랐지만, 청년을 보며 더 놀랐다.

그들에게 후계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경악할 일이었지만 그 말인즉슨.

“게, 게이트에서…?”

게이트에서 탄생한 아이라는 소리이기도 했으니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다고 했을 텐데.”

“후우. 계속 말씀하세요.”

“이름은 정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정기를 부탁한다.”

이건이 몸을 일으켰다.

“궁금한 게 있다면 정기한테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당분간 정기가 내 손자라는 것도 숨기고.”

이건은 바로 떠날 듯 뒤돌아섰다.

“가끔 연락을 취할 테니 언제나 통신 선상에서 대기하고. 알겠어?”

“며,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완전히 떠나려는 듯 움직이는 이건.

김대정은 급히 그를 불렀다.

“혹시!”

김대정의 목소리에 잠시 멈춰선 이건.

“그, 그분에게도 비밀입니까?”

이어진 김대정의 말에 이건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랬다간 분명 네 녀석이 죽겠지. 말해도 좋다. 다만, 당장은 아니야.”

“어떻게….”

김대정이 또 질문을 꺼내려 했을 때.

스륵.

이미 이건의 모습은 사라진 후였다.

“후우.”

김대정은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폭풍이 휘몰아친 후와 같은 느낌.

마치 지독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열린 창문, 소파에 고이 누워있는 흑발의 청년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김대정이 팔찌를 매만지며 말했다.

“정훈, 들어오라고 해.”

* * *

‘할아버지!’

‘……너 지금 뭐라고 말했느냐?’

‘할아버지라고요. 저를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해요.’

‘…….’

쥬피터, 그의 신형이 점차 흐릿해졌다.

‘할아버지!’

자꾸만 멀어져 가는 그.

그의 입이 무엇을 말하는 듯 웅얼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안 들려요!’

아무리 불러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쥬피터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사랑한다.

뒤늦게 들려온 목소리.

“허억!”

이정기는 그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허억…. 허억….”

악몽을 꾼 것만 같다.

“크윽.”

온몸에서는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급히 몸을 살펴보자 몸 안에 가득했던 마력이 바닥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건했던 육체가 약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여긴…?”

이정기는 주변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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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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