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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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가 받는 치료의 목적은 인간의 허약한 육신을 힘에 걸맞은 육체로 바꾸는 것.
원래라면 이정기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힘에 알맞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야 했다.
그건 태생이자 종족, 결코 뒤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는 일, 치료라는 명목으로 하는 훈련도 그저 차후의 진짜 치료를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이정기의 새로운 육체, 그건 다름 아닌 쥬피터의 것이었다.
“너도 살 방법이 있나?”
당연하게도 육체를 잃은 존재는 죽는다.
쥬피터는 이정기의 치료가 끝나는 날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건에게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어차피 몬스터다. 이 녀석은.’
지금껏 사냥했던 것들과 다르다고 한들, 그 목적이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한들 녀석의 태생은 몬스터였다.
이건이 이정기에게 끊이지 않고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몬스터는 인류의 적.’
몬스터는 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녀석이 어떻게 되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네가 죽으면 정기가 슬퍼할 거 같다.”
정기가 녀석과 정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밀어내는 듯하지만, 정기는 조금씩 쥬피터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화할 상대라고는 자신밖에는 없는 고독한 올림포스에서 또 다른 지성체를 만난 데다, 그 지성체가 자신에게 호의적이니 말이다.
“방법은….”
쥬피터가 말했다.
“없다.”
단호한 목소리.
“역시나 그렇겠군. 뭐, 어쩔 수 없지. 다만 그렇다면 앞으로는 정기와 거리를….”
“올림포스에서는 없다.”
“뭐?”
이건이 눈을 부릅떴다.
“그 말은…?”
올림포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쥬피터가 부활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
“전에 말한 거라면….”
이건이 쥬피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정기가 잠든 야심한 밤, 녀석과 나누던 대화.
이건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쥬피터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아니 기억에 남겨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너희의 세상이 위험하다.’
지구가 위험하다는 것.
처음에는 그저 코웃음 쳤다.
‘뭘 모르나 본데.’
올림포스가 완전히 닫히진 않았지만, 첫 번째 핵을 파괴했으니 올림포스의 영향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한, 봉인했으니 올림포스의 영향으로 생성되던 게이트의 수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올림포스에 오던 날, 혹 실패를 대비해 무수히 많은 헌터들을 남겨두고 왔으니 그들이 게이트를 잘 막아내리라.
그것이 이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쥬피터는 그런 이건의 생각을 전면으로 부정했다.
‘너희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군.’
그에게 들었던 진실.
어쩌면 그 때문에 이건 또한 쥬피터가 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건 없는 절대 악이라고만 생각했던 올림포스의 보스가 녀석의 말대로라면 그리 나쁜 존재는 아닌, 오히려 그의 말마따나.
‘수호자.’
수호자였으니까.
“티탄과 너희 형제들을 말하는 건가?”
이건의 말에 쥬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특별한 힘을 지닌 형제가 있다. 그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부활의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쥬피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절대로 나를 돕지 않을 거다. 오히려 너희가 꼭 죽여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마라.”
“…….”
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 드리운 위협.
그 때문이라도.
“알겠다. 오늘의 대화는 이쯤 하지. 정기의 치료나 차질 없이 부탁하겠네.”
정기가 더욱더 강해져야만 한다.
* * *
치료라 부르는 이름의 훈련은 그날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훈련이 거듭될수록 이정기는 스스로의 몸이 변하고 있음을 더욱 잘 느끼고 있었다.
‘마력이 줄어들었어. 육체도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대상인 힘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몸이 가벼워.’
몸은 더욱더 올림포스의 지독한 환경에 걸맞은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육체가 강건했을 때보다, 마력이 넘쳐났을 때보다, 올림포스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도 전력의 향상으로 돌아왔다.
스윽.
정교한 움직임.
“덜어내라.”
예전보다 속도는 줄었지만, 빈틈 또한 줄어들었다.
“과한 것은 오히려 네 몸을 무겁게 할 뿐이다.”
눈이 밝아졌다.
밝아진 눈은 결코 볼 수 없던 것들, 할아버지나 쥬피터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힘은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할아버지의 방식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힘의 방출을 아끼지 않는다.
반대로 쥬피터는 힘의 방출을 최소화해 최대의 위력을 만들어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들은….”
할아버지의 교육과 쥬피터의 훈련이 충돌할 때면, 쥬피터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그에게 맞추어진 것이기에 아직은 네게 맞지 않는 것뿐. 네가 네 할아버지의 경지에 이르면, 전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이제 이정기는 훈련을 받으며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시 훈련이 놀이가 된 것이었다.
‘즐거워.’
하루하루가 즐겁다.
할 일이 있다는 게, 강해진다는 것이.
“허억!”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또 생겼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이정기의 훈련은 또 다음의 단계로 나아갔다.
“이제 기초적인 것들은 전부 끝났다.”
“그럼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지.”
그날은 조금 특별했다.
어느 날부터 종종 모습을 감추던 할아버지도 나와서 훈련을 참관했다.
이정기는 뒤바뀐 공기의 흐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이 절로 삼켜질 정도의 긴장감.
이정기는 본능적으로 지금부터 자신이 어떤 훈련을 받게 될지 깨달았다.
“대련이다.”
쥬피터가 말했다.
“오늘부터 너는 매일 나와 하루의 절반을 대련으로 보낼 것이다.”
“절반이나요…?”
“네 새로운 힘과 육체에 적응하는데 이만큼 빠른 것은 없지.”
그리고 이미 치료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정기의 육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
요즘 훈련이 끝나면, 이곳에 있는 쥬피터의 거처인 신전에서 치료를 받았다.
새로운 육체.
“네 할아버지와 하던 것이랑은 다를 거다.”
그에 익숙해지는 것.
“실전이라 생각해도 좋다. 나를 죽일 각오로, 아니 죽여도 좋다.”
쥬피터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뜻 모르게 가라앉은 눈빛.
하지만 그 속에 몰아치는 것을 이정기는 분명 보았다.
‘번개.’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
“덤비거라.”
쥬피터의 말이 끝나자, 이정기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선수필승.’
해야 한다면 꼭 먼저 움직이라던 이건의 말.
‘몸이 빨라!’
비록 마력과 육체 능력은 약해졌다고 하나, 과거보다는 빠른 몸.
거기다 이정기는 쥬피터와 한 번 겨뤘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움직임을 분명히 기억한다.
‘번개만 조심하면 돼.’
쥬피터가 보여주었던 능력 대부분은 번개.
그것만 피할 수 있다면.
파짓!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속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콰르르르릉!
뒤늦게 울리는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이정기의 귓가를 때렸다.
콰앙!
이미 내리친 벼락이 폭발과 함께 화염을 토해냈다.
찌르르.
이정기의 몸에서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커흑!”
분명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이정기는 피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떨어질 벼락의 궤적을 생각하며 요리조리 움직여보았는데 벼락을 피해내지 못했다.
“벼락은 섬광이다.”
쥬피터가 말했다.
“소리를 듣거나, 불을 보면 이미 늦지.”
그 말대로였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전에도 느꼈지만 이런 힘은 반칙 아니던가.
더욱이 힘을 사용하기 전 준비조차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저 서서 눈짓을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
“이, 이런 걸 대체 어떻게 피해요!”
나약한 소리는 그만두기로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할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미 느낀다면 벼락이 자신의 몸을 꿰뚫은 뒤인데 어쩌란 말인가.
“할 수 있다. 정기야.”
그때 이건이 나섰다.
“나한테 해보게.”
벼락을 한 차례 맞은 탓에 지쳐 숨을 내뱉고 있는 이정기의 앞으로 이건이 서서 말했다.
“전과는 다를 텐데.”
쥬피터가 경고했다.
아직 이정기는 눈치채고 있지 못하는 듯했지만, 이건에겐 큰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실제로 그의 육체가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정기가 그렇듯, 이건 또한 힘을 상실하고 있었다.
즉, 전에 상대했을 때보다 이건은 약해져 있는 상태란 것이었다.
그런 몸 상태로 자신의.
‘벼락.’
벼락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뭐, 맞아봐야 짜릿한 정도 아닌가.”
흠칫.
이건의 그 말이 쥬피터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일까.
“후회해도 소용없네.”
저 높은 하늘 위로 검은 뇌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말 많긴, 그냥 덤비게.”
쾅!
이미 한 차례 벼락이 내리쳤다.
파스스-.
부서진 땅에서 먼지가 일었고, 화염이 일었다.
파앗!
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 이건은 뛰쳐나와 움직이고 있었다.
한 치의 그을음도 없는 이건의 몸.
“겨우 그 정도인가?”
이건은 도발하며 다시금 쥬피터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쾅! 콰콰콰쾅!
하늘에서부터 벼락이 쉴 새 없이 내리쳤다.
“……!”
이정기 또한 놀랬다.
‘그때는 봐준 거였구나.’
이정기가 상대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아니 방금 전과도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벼락은 말 그대로 벼락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 몸에 내리꽂는 것이 정상인 벼락.
거기다 그 수와 파괴력 또한 가히 상상을 불허했다.
“그런데….”
이정기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 그만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콰콰콰쾅!
연달아 떨어지던 벼락, 그것을 피해내는 이건.
그 결과.
화르르륵!
겨우 다시 꽃 피기 시작했던 푸른 나무들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허허. 이거 내가 좀 흥분했나 보군.”
폭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건.
그리고 그의 몸 곳곳은 그을려 있는 자국이 분명히 나 있었다.
* * *
“이제 벼락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이 더 흘러, 이정기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벼락을 겨우 한 번 피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으로 훈련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이젠 벼락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마.”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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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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