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9화
009
이정기는 당초 쥬피터가 예상했던 일 단계 훈련 시한인 두 달이 아닌 이 주, 그것도 채 이 주가 되기 하루 전에 모두 과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쥬피터의 마력장에서 걷기 시작한 지, 삼 일 후 훈련을 완료한 것이었다.
“후!”
만족스러운 듯 숨을 내쉬는 이정기.
“…….”
쥬피터는 그런 이정기를 복잡미묘한 눈으로 보았다.
“말했지?”
그의 곁에 다가온 이건.
“녀석의 재능은 상상을 초월한다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뛸 수 있던 너는 뭐지?”
“나야….”
피식.
“그저 정기 할아버지일 뿐이지.”
“…….”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쥬피터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정기의 훈련이 끝나면, 밤에 이건과 대화를 나눈다.
쥬피터가 원해서는 아니었다.
이정기의 할아버지인 이건이 원해서였다.
“나도….”
가라앉은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던 이건.
“할아버지! 저 해냈어요!”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이정기의 목소리에 표정을 바꾸며 손을 흔들었다.
“욘석, 고생했다.”
기뻐하던 이정기의 얼굴이 조금씩 시무룩해졌다.
“그래 봐야 할아버지에 비하면 한참이나 늦었잖아요.”
“감히 누구랑 누굴 비교해?”
“흐….”
“네가 더 뛰어나지. 이 할아버지는 그저 요령으로 해낸 것뿐이다.”
“요령이요?”
다가온 이정기를 향해 이건이 말했다.
“흐름.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흐름….”
무언가 감이 잡힐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이정기 또한 해냈기에, 이건이 말하는 그 흐름을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력장이라는 건 결국 마력으로 이루어진 결계 같은 거다. 그 안에는 마력을 구사한 자의 흐름이 있지. 그걸 빨리 깨닫고 몸과 동화시키면 금세 움직일 수 있는 거다.”
그리고.
“그게 쉬울 리가….”
쥬피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되었건 이제 본격적인 치료를 받을 준비는 끝난 것 같군.”
이정기를 향해 칭찬 한마디 없이 본론을 말하는 쥬피터의 직설화법.
이정기는 그런 쥬피터의 말에 괜스레 울컥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근데 치료라는 거 정말이에요?”
“정말이다.”
“그럼…, 그때 제 목을 좼던 건 왜죠?”
치료, 그의 목표가 그것이라면 왜 첫 만남에 숨통을 졸랐을까.
이정기는 그것이 걸렸던 듯했다.
“그건, 속성이었다.”
“속성?”
“널 치료하겠다고 해도, 네 할아버지가 그걸 믿어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쥬피터는 말했다.
“네 할아버지가 치료를 거절한다면 너는 결국 죽게 될 터, 그가 나타나기 전에 널 고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할아버지가 왜요?”
“모르는 게냐?”
쥬피터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할아버지는 말이 통하질 않는 자다. 예전, 내가 아르고스의 눈을 통해 보았던 네 할아버지는 인간들 사이에서….”
“어허.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건이 둘을 비집고 들어와 말했다.
“정기야. 고생 많았다. 어쨌든 오늘 잘 해냈으니, 먹고 싶은 것을 먹자꾸나.”
* * *
일 단계 훈련이 끝났다.
하지만 쥬피터가 말하길 그건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고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바로 다음 날부터 다른 것들을 해야만 했다.
‘숨 쉬는 법.’
이건에게 배웠던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 방식도, 방법도.
“끄으으윽!”
강도도 다르다.
아니 애당초 두 개는 아예 다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쥬피터가 가르쳐준 숨 쉬는 법은 고통 그 자체였다.
도대체 숨을 누가 이런 식으로 쉰단 말인가?
이건 숨을 쉬라는 게 아니라 질식해 죽으라는 것 같았다.
“인간이라면…! 이런 식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고요!”
절규해도 소용없었다.
자신의 어리광을 조금이라도 들어주는 이건과 달리 쥬피터는 독불장군이었다.
무조건 그가 생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치러야 한다.
더욱이 열이 받는 것은.
“정기야! 이거 제법 좋은 것 같구나!”
할아버지, 이건이었다.
“마력의 순환이 더욱 빨라진 느낌이야! 오호.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또 먼저 성공해버린 할아버지.
“일 단계보다 더 어려운 훈련이다. 제대로 쉬기까지 석 달은 족히 걸릴 거다. 그리고….”
연달아 나오는 쥬피터의 목소리.
“나는 한 달이 걸렸다.”
“이익!”
해낸다. 해내고야 만다!
이정기는 각오 끝에 삼 주 만에 해낼 수 있었다.
“수고했다.”
다른 훈련들도 비슷했다.
“정기야! 이거 좋구나!”
“정기야! 얼른 해 보거라!”
“욘석 할 수 있는데, 왜 못해?”
“이 쉬운 걸 못하는 게냐?”
자신보다 먼저 성공하는 할아버지.
“나는…, 두 달.”
“두 달 반.”
“반년.”
자랑하듯 말하는 쥬피터.
“이이이이익!”
이정기는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며 치료이자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쥬피터가 말하는 치료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몸이….’
몸이 가볍다.
숨 쉬는 것이 편하다.
달리는 것이 경쾌하다.
전과 달라졌다.
그리고.
‘두통이 사라졌어?’
이따금 머리를 짓누르던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말이었다.
‘치료.’
치료한다고 말하던 쥬피터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전의 자신의 몸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몸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해요.”
육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마력이…, 줄어들었어요.”
그에 반해 마력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특성을 사용할 수도 없어요.”
할아버지가 칭찬했던 자신의 자랑인 몬스터의 특성도 어느 순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몸은 가벼웠지만, 결국 약해졌다.
그것이 이정기가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였다.
“당연한 일이다.”
그에 쥬피터는 말했다.
“그걸 위해 지금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니까.”
“네…?”
“그런 잡스러운 것들은 이제 네겐 필요 없다.”
“…….”
“네 치료가 완전히 끝난다면.”
이정기의 치료가 끝나고, 육체가 바뀌는 날.
“몬스터의 특성 따위는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될 거다.”
“……!”
“아니 그보다 근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 날부터였다.
훈련이 끝나면 이정기는 쥬피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감사합니다!”
이정기가 쥬피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 * *
또 다른 밤.
콰아앙!
거센 폭발이 조금 자라난 묘목들을 전부 갈가리 찢어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이정기가 잠들고, 이건과 쥬피터는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젠 대화에 그치지 않고 대련을 하고 있었다.
오늘의 대련이 끝났다.
“몸이…, 예전 같지 않군.”
이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몸의 변화를 느끼는 건 이정기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참 전부터 그랬다.
‘정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기 그 이전부터….’
이건은 스스로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이정기의 몸에 변화가 생겨서 빨리 올림포스를 나가고자 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몸 상태 때문에도 있었다.
‘홀로 남겨둘 순 없어.’
정기를 이 지옥 같은 곳에 남겨둘 수 없다.
그러던 중 쥬피터를 만난 것이었다.
녀석은 정기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내 몸의 이상도 알 수 있나?’
자신의 몸에 생긴 문제도 알 수 있느냐고.
쥬피터의 대답은 간단했다.
‘물론.’
녀석은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있었다.
‘너 또한 정기의 상태와 같다.’
‘뭐? 하지만 정기는 네 후계로 태어나야 할 힘이 깃들어서라고 하나, 나는 왜?’
‘너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
쥬피터가 말했었다.
‘육체의 성장 또한 괴랄하기에 버틸 수 있었으나, 이대로면 결국 붕괴할 거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지구로 가게 되면 분명 죽을 거다.’
정기와 함께 밟고 싶던 고향 땅.
녀석은 자신이 그 땅을 밟는 순간 죽을 것이라 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차원의 조각, 게이트가 오픈되기 전까지는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을 나올 수 없지. 왜 그런 줄 아느냐?’
‘지구의 마력 밀도가 다르기 때문 아닌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차원의 융합 정도에 따라 다른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강맹한 마력 속에서 나고 자란 몬스터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지구 땅을 밟으면 마력 밀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괴된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이미 너는 몬스터나 다름없다.’
‘…….’
‘거기에 게이트가 봉인되기까지 했으니, 차원 융화가 이루어질 시간조차 부족했지. 너는 분명 죽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홀로 남은 정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혹 방법이 있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네게 달렸다.’
그렇기에 정기에겐 감시한다고 말하며 훈련에 참여하고 있던 것이었다.
정기처럼 쥬피터의 신체를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한낱 기적에 맡겨 자신의 육체가 탈바꿈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원의 역사 속에서도 그 경지에 이른 존재는 몇 없다.’
그러나 포기하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 변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결국…, 성공할 수 있겠군.”
쥬피터가 말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을 거다. 네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한테, 너무하는군.”
“그래도,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을 거다.”
쥬피터의 말에 이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지구에 돌아간 순간부터 당분간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다. 그에 따른 대비는 해두는 게 좋겠지.”
“충고는 감사히 듣지.”
몬스터, 처음 이건은 이정기처럼 녀석을 몬스터로 보았다.
정기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몬스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녀석의 제안을 쉽게 승낙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흠, 나도, 너무 외로웠던 것인가.”
이제는 녀석이 인간처럼 보인다.
정기가 있다고 한들 올림포스에서 보내온 그 긴 세월.
사람의 향기가 너무나 그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인 듯했다.
그러니 이럴 수밖에.
처음에는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기 녀석만 걱정했는데.’
이제는 조금은 다르다.
“너도….”
이건이 쥬피터를 향해 말했다.
“너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하지만!
이정기의 치료가 완료되는 날, 쥬피터는 죽는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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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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