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8화 (8/284)

제1권 8화

008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말이 치료이지, 그건 훈련이나 다름없었다.

“뛰거라.”

달리기.

태어나 기억하기 순간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해온 것이 달리기였다.

“보이느냐?”

콰쾅!

쥬피터가 손을 움직이자 벼락이 땅에 꽂혀 불길을 토해냈다.

“저곳까지 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에요?”

정기는 조금은 날카롭게 쥬피터를 향해 말했다.

‘경계하자.’

할아버지에게 수차례 배웠다.

의심을 풀지 말고 모두를 경계하라고.

누가 적이고, 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고.

할아버지는 이 자를 믿는 듯했지만, 자신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 전부다. 오늘은 저곳에 도착하면 끝이다.”

겨우, 이런 것이 치료라고?

역시 수상하다.

‘하지만…, 할 거야.’

그게 할아버지가 원한 것이고, 할아버지가 이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니까.

이정기는 눈을 부릅뜬 채 발을 뗐다.

발바닥에 밀려든 마력이 자신의 몸을 땅에서 밀어내며 단박에 불길까지 데려가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쿵!

이정기는 볼품없이 넘어졌다.

‘마력이…!’

자신의 육체, 그 일부나 다름없는 마력이 한순간에 소실되었다.

“말하지 않았나?”

쥬피터가 이정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력은 사용할 수 없다.”

“그런…!”

이정기는 분한 듯 눈을 치켜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면 못 뛸 줄 알고?’

마력이 아니어도 자신이 가진 능력이 많다는 것을 이정기는 알고 있었다.

몬스터의 특성.

그중에서도 와이번의 민첩함 따위만 써도 불길까지 가는 데는 겨우 몇 초.

“몬스터의 힘도 쓸 수 없다.”

“……!”

에잉, 그래도 괜찮다.

육체도 훈련했으니.

쿵!

이정기는 제 몸을 짓누르는 압박에 일으키던 몸을 다시 바닥에 처박았다.

“크윽!”

온몸이 거대한 돌덩이에 깔아뭉개진 것 같다.

일으키려 해도 몸이 일어서질 않았다.

“나의 마력장 안에서 뛰어야 할 것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 힘도 사용할 수 없는데, 그냥 마력장도 아니고 이런 마력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배웠다.

당연히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은 많다.”

쥬피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다릴 테니, 노력하거라.”

그것이 끝.

쥬피터는 이내 관심이 없다는 듯 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제발…! 움직여라!’

이정기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니 그 전에 자신의 자존심이 포기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라면….’

이 정도에 굴복하지 않고 몸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보란 듯 불길에 도착할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

꿈틀.

이정기가 손가락을 꿈틀대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또다시 치료를 빙자한 훈련의 시작이었다.

* * *

“정기가 네 후계자로 태어났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늦은 밤, 훈련에 지친 이정기가 잠들고 나면 이건은 쥬피터와 함께 공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

쥬피터, 그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애시당초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쥬피터의 기운과 눈빛은 또렷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

그러니 기분이 더욱 나쁘다.

“설마 우리 영아가….”

쥬피터의 후계자가 정기라는 말.

그건 얼핏 잘못 생각하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었다.

영아, 자신의 며느리이자 정기의 어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인지를 알고 싶은 것뿐이었다.

“너희가 부르는 게이트란 곳에서 생명은 잉태될 수 없다.”

“……!”

“그곳은 멈추어진 시간, 조각난 차원이니까.”

이건은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시간은 많다.’

어차피 정기가 치료될 때까지 올림포스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다.

천천히 알아내어도 좋다.

그저 녀석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너희가 올림포스라 부르는 이곳은 다르지. 이곳은 생명이 잉태될 수 있다. 다만, 오직 하나. 세대를 거쳐 태어난다.”

“그게 정기라는 건가?”

“내 후계자였어야 한다. 인간의 뱃속이 아닌….”

스윽.

“가이아의 뱃속에서 태어나야 했다.”

“가이아…?”

“하지만 너희 인간에 의해 계획이 어긋났다.”

쥬피터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너희가 봉인을 깨트렸고,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계획, 봉인.

알 수 없는 말투성이.

하지만.

‘그것이 진실.’

인간들이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게이트나 헌터에 대한 진실임을 깨달았다.

“그 결과 문제가 생겨 정기가 인간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그 알맹이는 내 후계에 걸맞기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쥬피터의 눈이 가라앉았다.

‘또군.’

무미건조한, 감정 없는 듯한 쥬피터.

그러나 정기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면 미세한 감정이 느껴졌다.

저것 때문이다.

녀석을 믿을 수 있는 것이.

‘적어도 정기에게 해를 끼칠 자는 아니다.’

그러니 귀 기울인다.

“그 육체가 잘 못 되었다.”

“육체가 잘 못 돼?”

“정기가 가졌어야 할 것은 나약한 인간의 육체가 아니다.”

피식.

이건이 비웃듯 입가를 말아 올렸다.

“그 나약한 인간에게 얻어맞은 것은 잊은 모양이군.”

“너는…, 아니다. 어쨌든 정기의 알맹이와 육체가 알맞지 않다. 정기의 문제는 그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은 전에도 들었던 정기의 치료법을 말했다.

“정기의 육체를 바꾼다고?”

“그렇다.”

쥬피터는 말했다.

“인간의 육체에 쌓여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육체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그 대가로 정기는 일순 힘을 잃게 될 것이지만, 곧 잃은 것을 되찾을 것이다.”

이것이다.

또 하나, 녀석을 믿을 수 있는 이유.

‘인간의 육체를 바꾸고, 새로운 육체로 거듭나게 한다.’

그건 감히 훈련이나 모종의 약물 등을 통해 육체를 강화시킨다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육체를 바꾸는 일.

쥬피터,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정기는 나의 육체를 가질 것이다.”

녀석은 정기의 치료를 위해 스스로 죽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기간은?”

이건은 말했다.

천천히 눈을 감는 쥬피터, 그의 입이 조금씩 움직였다.

“사 년. 그리고 정기가 완전해질 때….”

그가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너희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 *

“허억…, 허억….”

정기에게 훈련은 놀이였다.

뛰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하물며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이건에게 얻어맞는 날이 있어도 전부 놀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기에게는 달랐다.

“크억!”

쥬피터의 훈련이라는 또 다른 비교 대상이 생겼다.

지금까지의 훈련이 놀이라고 생각했던 이정기의 생각은 옳았다.

지금 받는 훈련에 비하면, 그때의 훈련은 겨우 놀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커억!”

쥬피터의 마력장에서 걸어서 움직이는 것.

아직도 이정기는 그 일 단계조차도 해내지 못했다.

꽈아악.

지독한 고통이 온몸을 짓누른다.

반항하려 하면 할수록 몸을 짓누르는 압력은 더더욱 거세졌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

“네가 지금 하는 것은 완벽한 신체를 가진 자라고 한들 쉬이 할 수 없는 것. 오히려 벌써 걸었다면 그것이 말이 되질 않는 것이지.”

“크으…, 윽.”

“시간이 걸릴 거다.”

쥬피터는 말했다.

“너희의 시간으로 두 달 정도. 그쯤이 되면 아마 걸어 나갈 수 있을 거다.”

도대체 이 훈련의 어떤 것이 치료란 말인가!

그저 울화통이 치민다.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자신에게, 이런 상황을 만든 쥬피터에게!

하지만 더욱 울화통이 치미는 것은 따로 있었다.

평생토록 이런 적이 없었거늘.

“하하하!”

“끄응….”

“정기야 이것 제법 재밌구나!”

할아버지, 이건에 대한 분노였다.

“두 달이나 걸린다고? 에잉. 너무 정기를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기쁜 듯 뛰어다니는 할아버지.

“우리 정기를 몰라서 그러는데, 한 달. 아니 일주일이면 충분해!”

이정기는 이건의 입을 막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봐라! 나도 이렇게 이틀 만에 뛰어다닐 수 있지 않느냐! 우리 정기가 얼마나 천잰데!”

며칠 전부터 자신이 받는 치료에 할아버지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원래는 진짜 보스를 찾는다는 목적으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할아버지였는데 목적을 달성한 데다 지금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 결과.

‘우리 손주한테 헛짓거리하는 건 아닌지. 내가 한 번 체험해 봐야겠군.’

그런 말과 함께 훈련에 동참한 것이었다.

조건은 동일하다.

아무런 능력도 쓰지 못한 채 쥬피터의 마력장에서 걸어야, 뛰어야 한다.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이건이라도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건만.

“정기야! 이 몸을 짓누르는 기이한 압력! 아주 상쾌하구나! 마치 지구에 온 듯해!”

할아버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정기가 울상을 지은 채 쥬피터를 바라봤다.

혹여 그가 할아버지는 봐준 것이 아닐까.

“그건…, 네가 이상한 거다.”

하지만 쥬피터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경악 따위가 아닌 황당함이 가득한 얼굴.

“수호자의 역사에서 최고라 불렸던 나조차 이 훈련에 합격하는데 족히 삼 주가 걸렸다.”

“삼 주? 쯔쯧. 나보다 못했군.”

“큭.”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이정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할아버지는 이틀, 아니 훈련에 제대로 참여한 것이 이틀이지 이따금 마력장에 들어온 것을 치자면 일주일.’

쥬피터는 삼 주.

그렇다면.

까득!

“나는…! 두 주일 만에 해낸다!”

묘한 호승심.

원래 비교 대상이라곤 할아버지밖에 없는 데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듣고 보았으니 알 수 있다.

하지만 저 노인! 쥬피터에게도 밀린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씨익.

그런 정기를 보고 웃는 이건.

“끄아아악!”

이정기는 안간힘을 쓰며 발을 떼고 있었다.

그렇게 삼일 뒤.

이정기가 훈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 하고도 삼 일째 되는 날.

저벅!

이정기가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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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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