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7화
007
* * *
정기가 깨어나기 몇 시간 전.
고오오오.
이건과 노인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볼텍스를 막아냈다.’
이건은 긴장하고 있었다.
정기를 납치했다는 생각에 죽이려고 손을 썼지만, 노인은 공격을 막아냈다.
“쿨럭.”
물론 완벽히는 아니었다.
찢긴 옷가지, 그 속에 상처가 가득했다.
‘아니, 아니야.’
무언가 이상했다.
‘저건 내가 낸 상처가 아니다.’
원래부터 노인의 몸에 존재하고 있었을 상처.
이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
올림포스에 대해 제법 많이 안다고 생각했건만 지하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저 노인의 존재가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올림포스에 자신과 정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은 이미 수차례 확인했다.
만일 있다고 해도.
‘저런 자는 본 적 없다.’
자신의 볼텍스를 막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를 못 알아본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미세한 기운.
“인간이 아니군.”
그건 노인이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몬스터.
‘말도 안 되는.’
솔직히 놀랐다.
이건이 최강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얻고서도 사냥해온 몬스터의 종류는 그 어떤 헌터보다 많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한 인간형의 몬스터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노인은 달랐다.
‘인간, 그 자체라고 보아도 좋다.’
그 속이야 어떻건 외형만큼은 말이다.
“대답하지 않는 겐가?”
이건은 잡념을 털었다.
노인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긴 것은 사실이긴 하나.
“대답하면 고통은 최대한 줄여주려 했건만, 어쩔 수 없군.”
그가 정기를 노렸다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죽인다.’
방금 전의 볼텍스는 혹여 정기가 다칠까 힘을 조절한 것이었다.
전력!
전력을 다한다면 노인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은 내려졌고, 행동은 신속했다.
구구궁-.
숲은 물론이거니와 올림포스 전체를 떨어 울리는 듯한 굉음.
이건의 몸에서 흩날린 마력이 전부 이건의 주먹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죽어라.”
이건이 주먹을 내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이대로면….”
마침내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정기는 죽는다.”
이미 늦었다.
콰콰콰콰콰쾅!
이건의 주먹은 벌써 뻗어 나가 사방 천지를 부수고 있었다.
파스스-.
곧이어 폭연이 걷혀나갔다.
흠칫!
이건이 몸을 떨며 정기를 안아 든 채 발을 굴렀다.
파짓!
하지만 이건의 속도보다도 빨리 날아든 무언가가 이건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따끔거리는 볼.
주륵.
흘러내리는 피.
“이거 얼마 만에 상처를 입어 보는 건지 모르겠군.”
연기가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 풍성했던 숲은 올림포스의 여느 곳과 다르지 않게 황량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건은 그제서야 노인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힘을 드러내며 노인이 숨겼던 무언가가 드러났다.
노인은.
‘내가 찾던 것.’
이건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
‘올림포스의 핵!’
올림포스의 진짜 보스!
시엘들과 함께 처치한 가짜가 아닌 진짜 올림포스의 보스임을.
그런 이건에게로 다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나를 죽이는 건 관계없다.”
무척이나 담담한 목소리.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아이를 살릴 방법은 절대로 없을 거다.”
수없이 많은 수라장을 겪어왔기에, 그만큼 많은 인간을 겪어왔기에.
이건은 알 수 있었다.
“거짓이 아니군.”
노인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를 들어보지,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넌 죽는다.”
으름장을 놓는 이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노인은 더욱 담담히 말했다.
“그 아이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
* * *
정기가 깨어나기 전 이건과 스스로를 쥬피터라 소개한 노인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건은 결국 노인의 말이 진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노인이 정기의 목숨을 입에 올렸을 때부터 느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이년 전.
이건이 정기의 몸 상태가 수상함을 느낀 시점이었다.
‘무언가 달라졌다.’
정기의 마력이, 육체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몬스터의 특성을 흡수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듯했다.
이건은 정기의 상태를 살피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이건은 사냥꾼이지, 의사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변하고 있는 이정기의 육체.
‘붕괴.’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어도, 그 끝이 좋지 않음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이었다.
이 년 전, 그날부터 이건이 올림포스를 벗어날 방법에 더욱 열중하게 된 것은.
‘오늘부턴 타이탄의 고기를 먹을 거다.’
극히 위험하기에 아직은 이르다고만 생각했던 타이탄의 고기를 먹인 것은 전부 그런 이유였다.
“할아버지.”
이정기는 이건을 향해 말했다.
“저 할아버지가, 올림포스의 진짜 보스 몬스터라면, 할아버지가 계속 찾던 것 아니에요?”
이건은 이정기에게 대략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저 노인이 올림포스의 보스 몬스터 쥬피터라는 것과, 노인이 했던 말.
“하지만 저를 살려주실 분이라는 건,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쥬피터가 정기를 살릴 것이라는 말.
“천천히….”
이건이 해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천천히 알게 될 거다.”
이미 쥬피터와 정기의 증상과 원인, 치료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정말 정기의 치료로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꾸욱.
정기가 그것을 잘 받아들일지 고민이었다.
올림포스에서 자랐다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아이.
피 웅덩이 속에서 살아온 자신에게는 과분한 아이인 정기.
“그리고 제가 원래 후계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니…, 그럼 저도 몬스터인가요?”
정기가 겪어야 할 일들.
이건은 그것이 걱정되었다.
“욘석.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분명 내 손자야. 네 어미가 배 아파 낳았는데, 그 아이의 고통을 무시하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는 분명 내 손자다. 그리고 누구보다 확실한 인간이고.”
이건은 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 말거라.”
“아, 알겠어요….”
의문이 풀리지 않은 이정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스륵.
처음 나타났을 때와 같이 귀신처럼 노인, 쥬피터가 나타났다.
“이야기는 끝났나?”
감정의 고조 없는 목소리.
생긴 것은 분명 인간인데, 그 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몬스터.’
정기는 쥬피터의 정체를 잊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그래. 대강의 사정은 이야기해주었으니, 정기는 충분히 납득할 거다.”
“잘됐군.”
“정기야.”
이건이 정기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쥬피터와 함께 지낼 거다.”
“예, 예…?”
“말하지 않았느냐? 네 치료를 같이 진행할 거라고. 그러니 오늘부터….”
이건이 제 머리를 머쓱하게 긁으며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
* * *
원래 둘뿐이던 정기와 이건.
그들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
물론 그 가족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린 것도 모자라.
‘몬스터.’
인간도 아닌 몬스터.
‘속지 말자.’
아무리 인간처럼 생겼어도 그 속은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불만은 그뿐이 아니었다.
“맛이 없군.”
가져다주는 음식은 전부 별로라며 품평하고.
“…….”
저 뜻 모를 눈빛은 기분이 너무 나쁘다.
하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하핫. 그럼 다시 해 오지.”
바로 할아버지, 이건의 행동이었다.
할아버지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건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를 통해서도 분명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본 것 또한 그랬다.
몬스터를, 특히나 자신을 노리던 것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뭐 먹고 싶은 것 없나?”
저 노인에겐 너무나 살갑게 대했다.
‘대체 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 노인은 하물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올림포스의 진짜 보스 몬스터였다.
녀석을 쓰러트리고 자신과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할아버지가 바라던 소망이었다.
그런데.
“잘 부탁하네.”
할아버지가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왜…!”
참지 못한 분노.
이정기는 이건을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싫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가장 강해야 하는 것이 할아버지일 진데.
“정기야.”
이건은 그런 정기를 향해 말했다.
“저자가 무엇이건, 하나만큼은 확실하단다.”
“…….”
“너를 죽음에서 구해 줄 자라는 것.”
“……!”
정기가 눈을 부릅떴다.
“나는 죽은 네 아비와 어미 앞에서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킬 것이라고.”
“할아버지….”
“하지만 내 능력이 부족해 네 몸에 변화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그러니 이런 식으로라도 감사를 표해야지.”
울컥.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이 할애비가 누구한테라도 고개를 숙이는 게 싫으냐?”
“예.”
“욘석.”
이건은 작게 웃었다.
“나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을 수 있단다.”
이건은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커버린 손자였지만, 보기와 다른 면도 있다.
아직 그 속은 자신하고만 지내온 어린아이.
“뭐, 그리고 그냥 감사를 표하는 것 정돈 해도 되지 않겠니?”
이건이 볼을 긁으며 노인을 바라봤다.
사실.
‘으, 그때 힘 조절 좀 할걸.’
이정기가 깨어나기 전, 쥬피터에게 사용했던 볼텍스 때문에 쥬피터의 몸이 상해버렸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정기를 구하려면 녀석의 눈치를 봐야지.
“그러니 서둘러 낫거라. 그게 이 할애비를 도와주는 거란다.”
“알겠어요!”
정기가 씩씩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끄아아악-!”
치료를 빙자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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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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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