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5화 (5/284)

제1권 5화

005

“끄윽.”

이정기는 신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된 거지?’

더듬어보는 기억.

자신은 분명 할아버지와 함께 또 한 번 이사를 위해 올림포스의 땅을 걷던 중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발생한 지진.

‘벼락!’

이미 대비했던 대로 행동했건만, 갑작스레 내리친 벼락이 모든 것을 망쳤다.

내리꽂히는 벼락에 서너 번이나 얻어맞아 결국 절벽 속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올림포스의 지하, 그곳은 할아버지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공간이라 들었다.

과거 할아버지의 동료 중 몇몇이 그곳에 떨어져 구출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지금 자신은 그 지하에 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몸이, 생각보다 너무 멀쩡하잖아?”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무의식적으로도 마력장을 만들어 충격에 대비했고, 몬스터들의 특성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피해가 없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정기는 놀란 나머지 두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곳이?”

아름답다.

할아버지에게 수많은 단어를 배웠지만 떠오르는 것은 그 단어뿐이었다.

푸르게 녹음이 무성한 나무들.

안전지대에 듬성듬성 나 있던 나무들과 달리 빽빽이 나 있는 이것은 말로만 들었던 숲인 듯했다.

째짹.

몬스터의 울음소리인가?

이정기는 급히 긴장하며 마력을 피워 기척을 살폈다.

하지만 느껴진 기척은 몬스터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형편없는 것이었다.

퍼드득.

날아든 그것은 이정기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째잭.

하피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고, 그리폰처럼 부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크기는 겨우 손바닥 하나보다도 작았다.

두리번, 두리번.

이정기의 눈앞에서 주변을 살피던 그것은 다시금 날아 어딘가로 사라졌다.

“대체 여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또 그리고 여긴 어딜까.

-침착하거라.

또다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만일 네가 홀로 남겨진다면….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건, 생각지 못한 곳이건 관계없다.

자신은 할아버지를 만나야 했다.

파슷.

이정기가 바닥을 향해 마력을 방출하자 옅은 자국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이건 표식이었다.

작은 마력으로도 아주 먼 곳까지 마력의 향을 맡을 수 있게 하는 표식.

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표식.

-최대한 그 자리에 있거라.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걱정하실 거야.’

마지막에 들었던 할아버지의 분노에 찬 목소리.

그것을 떠올리며 이정기는 눈을 감았다.

-주변을 살피거라.

살아남아야 한다.

할아버지가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걸 위해 훈련한 것을 이정기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죽기라도 한다면.

‘할아버지는 혼자 이곳에 남으셔야 해.’

그것만큼은 절대 싫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그렇게 읊조린 이정기는 한참이나 마력을 통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문득.

찌르르.

발끝에서부터 솟아올라오는 소름에 눈을 떴다.

스릉!

급히 검을 꺼내 겨누는 이정기.

“마, 말도 안 돼.”

그는 경악했다.

먼저, 마력을 이용해 주변을 전부 살폈건만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척은 이미 바로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런 적은 딱 한 번.

‘할아버지…!’

자신의 할아버지, 이건에게서나 느껴 봤던 그것.

그리고 두 번째로 이정기가 경악한 이유.

“누, 누구세요?”

자신의 눈앞에 선 낯선 기척이 바로 인간, 그중에서도 노인의 형태를 한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 * *

꿀꺽.

이정기가 마른 침을 삼켰다.

‘할아버지, 올림포스에는 다른 사람은 없는 거예요?’

과거, 호기심이 생겨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없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다.

올림포스에 들어온 것은 선별하고, 선별된 특수한 자들뿐이라고.

그 이후로 문이 열린 적이 없다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옛 동료들이 올림포스를 탈출하면서 완전히 봉인했다고.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혹시 모를 인간의 흔적을 좇았지만 아무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누, 누구세요?”

자신의 앞에 또 다른 인간이 있었다.

올림포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몬스터에 대해서는 배웠고, 눈으로 직접 보았다.

할아버지가 보이는 족족 몬스터들을 잡아 와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이렇게 생긴, 아니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한 몬스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인간.’

그러나 반가움보다 먼저 든 것은 경계심이었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만나면….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도망쳐라!

타앗!

이정기가 빠르게 발을 굴렀다.

한 방이라도 검을 먹인다면, 더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을까 했지만, 할아버지가 모르는 인간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검이 닿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기에 외려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은 이정기를 압도해버렸다.

타앗!

그러니 도망치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전적으로 따랐다.

온 힘을 다해 발바닥으로 마력을 분출하며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질렀다.

“허억! 허억!”

체력의 배분이고 뭐고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고, 속도를 내기 위한 몬스터들의 특성도 전부 사용했다.

우르르.

그때 하늘이 울리며.

콰앙!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타타탓!

이정기는 급히 발을 굴러 멈추어야만 했다.

“……!”

자신의 앞에, 아까 보았던 그 노인이 바로 한 치 앞에 있었다.

‘어떻게…?’

분명 최고속으로 달렸다.

할아버지라면 분명히 자신을 따라잡을 테지만, 이만큼 빠르게는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달렸다.

그런데도 따라잡힌 것이 아니라, 앞질러졌다.

꿀꺽.

또 한 번 삼키는 마른 침.

“저는 적이 아닙니다.”

이정기는 그와 대화를 시도했다.

‘다시 도망친다고 해도 불가능해.’

할아버지와 지낸 만큼 실력의 격차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도망쳤다간 괜히 저 정체불명의 노인을 자극해 더 큰 일을 치러야 할지 몰랐다.

생존, 오직 생존을 위해.

스윽.

이정기는 검까지 내려놓았다.

검을 든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검이 없어도.

‘만일의 순간을 위한 한 수는 있어.’

어떻게든 노인에게 한 방은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계산이 깔려 있던 것이었다.

“저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말하는 이정기.

“도망칠 필요는 없다.”

마침내 노인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배운 것과 같은 한국말.

“하, 한국 사람이세요?”

할아버지와 동향인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정기의 눈에 반가움이 서렸다.

적이 아닐지 모른다.

“도망칠 수 없으니.”

“……!”

“도망칠 필요 없다.”

노인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네 적이 아니다.”

“적이, 아니라고요?”

“그렇다.”

노인이 천천히 이정기를 향해 다가왔다.

쿵, 쿵.

그저 가볍게 발을 내딛는 것뿐인데도,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에서 굉음이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건 노인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커다랗고 커다란 거인.

마치 또 하나의 할아버지를 보는 듯한 압박감.

“이제야 처음으로 만나는구나.”

“저, 절 아세요?”

“이정기. 그것이 네 이름이지.”

“마, 맞아요! 혹시 저희 할아버지와 아는….”

어느새 이정기의 눈앞까지 다가온 노인.

“정기야.”

“예, 예?”

“널 돕겠다.”

콰악!

순간-.

노인의 손이 이정기의 목을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커억!”

* * *

‘널 돕겠다.’

분명 노인은 자신을 아는 것은 물론, 적이 아니라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돕는다고 말했다.

“커억!”

하지만 노인이 한 행동은 어떻게 보아도 공격이었다.

“노, 놔!”

이정기는 발버둥 쳤다.

노인이 어떤 말을 하건, 속마음이 어떻건 그 행동이 중요하다.

이건 분명한 공격, 그러니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노인을 공격해야만 했다.

그러나 노인이 자신의 목을 틀어쥔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듯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손은 마치 이 땅 전체가 움직여 자신의 목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 돼…!’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블랙 오크의 힘, 와이번의 민첩함, 센티페드의 갑각….’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의 모든 특성을 일깨웠다.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마력.

“저항해도 소용없다.”

노인의 경고에도 이정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몬스터의 특성, 그리고 뒤를 이어 이건에게 배운 체술을 사용했다.

타앗!

다리로 노인의 가슴을 박찼다.

쿵!

그러나 들려오는 건 쇳소리.

‘마력장!’

마력을 몸으로 방출해 주변에 마력장을 만들었다.

마력장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될 수도, 상대방을 가두거나 공격하는 수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용없다.”

역시 아무것도 노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두 번째였다.

‘할아버지! 제대로 한 번만 싸워주시면 안 돼요?’

‘응?’

‘할아버지가 최강이라면서요. 근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인걸요.’

자신의 도발과 같은 말에.

‘욘석.’

한사코 무시하던 할아버지가 딱 한 번, 전력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느꼈던 절망감.

지금 이정기는 그때의 감정을 또 한 번 느끼고 있었다.

“안, 돼….”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거라.”

이정기는 눈을 감고 방법을 떠올렸다.

-여유를 가지거라.

-침착하거라.

압도적으로 부족한 힘.

이 힘의 간극을 메꿀 방법이.

‘있다.’

딱 하나 있었다.

이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던 또 다른 몬스터의 음식.

예전엔 절대로 주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이제는 될 것 같다며 주었던 그 음식.

“타….”

이정기가 노인의 팔뚝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타이탄.”

화아악-!

이정기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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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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