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4화
004
“이상한 게 있어요.”
갑작스러운 이정기의 말에 이건이 표정을 굳혔다.
“혹시.”
이건도 느꼈다.
원래 이건은 이정기에게 블랙 오크의 마무리를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이 지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지만, 이정기의 나이는 고작 열둘.
살아있는 무언가를 죽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기에, 블랙 오크가 제압되었다고 생각할 때 나타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건은 한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블랙 오크를 꿰뚫었던 ‘그것’ 때문이더냐?”
이정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욘석. 이 할애비가 그 정도도 모를까.”
이건은 조금은 가라앉은 눈으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이 할애비가 평생을 써온 기술이다.”
이정기가 말하는 이상한 점.
그건 바로 이건이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자신의 기술 ‘볼텍스’를 따라 했기 때문이었다.
일 점에 강력한 힘을 집중해 극강의 파괴력을 싣는 기술.
이정기는 그런 볼텍스를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사용했다.
‘아니.’
다르다.
‘명확히는 가르쳐준다고 해도 배울 수 없는 기술이다.’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이 아니었다.
헌터가 각성하며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
‘스킬은 배운다고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스킬이었으니까.
스킬은 그 헌터의 특수한 능력이었다.
각성한 헌터가 가질 수 있는 스킬은 적게는 하나, 많게는 셋 정도.
그리고 그 스킬들은 다른 헌터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한들, 뜯어보면 다른 각각의 개성을 가진 고유의 것이었다.
이미 수많은 헌터가 다른 이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
‘헌터는 각성과 함께 스킬에 몸이 맞추어진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맞는 스킬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다.
그건 혈육이라 한들 마찬가지.
“분명히 할아버지가 그 기술은 제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 그랬지.”
“그런데 분명….”
“네가 사용한 건 분명 볼텍스다.”
확인이 필요했다.
한 발자국 물러선 이건.
“이 할애비에게 다시 한 번 사용해볼 수 있겠느냐?”
“……네.”
이정기는 그런 이건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예전, 이건을 상대할 때 조금이나마 있었던 망설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할아버지의 말씀.
‘걱정은 강자나 하는 거다.’
그 뜻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흐읍.”
이정기는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아까 전 느꼈던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검 끝에 모든 걸 담는다!’
한 번 해보았으니, 두 번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검 끝에 밀려드는 마력.
이정기는 그대로 이건을 향해 달려나가며 검을 찔러넣었다.
탓!
쿵!
날이 시퍼렇게 선, 그것도 모자라 마력이 깃든 검이 인간의 육체와 부딪혔건만 울려 퍼져야 할 절삭음 대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정기가 찔러넣은 검은 이건의 손바닥과 부딪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힝.”
이정기가 검을 내리며 물러섰다.
“안 돼요.”
다시 한 번 볼텍스를 사용해보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
블랙 오크를 상대했을 때와는 형편없는 수준의 검격에 불과한 공격이었다.
“아니, 아니야.”
하지만 이건은 전에 없이 가라앉는 눈으로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성공이란다.”
분명 아까 전의 위력과 동일하지는 않다.
자신이 사용하는 볼텍스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공격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분명.
‘와류가 생겼다.’
볼텍스의 근본,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위력이 발휘되었다.
“이런.”
이건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고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네게 내가 찾지 못한 숨겨진 재능이 더 있는 것 같구나.”
* * *
또다시 화살처럼 흐른 사 년.
그동안 이정기와 이건은 두 번의 이사를 거쳐야만 했다.
이건이 찾은 안전지대가 다시 위협에 노출되기까지의 간극이 점차 짧아지고 있었다.
‘변화.’
올림포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힘드냐?”
이건의 물음.
“할아버지. 제가 애예요?”
이정기는 어이없다는 듯 이건을 향해 웃었다.
이제 제법 이정기는 소년의 티를 벗었다.
열여섯 살.
그동안 이정기는 계속해서 몬스터의 고기를 섭취했고 동시에 이건에게 끊임없는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이정기의 육체는 열여섯의 그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미묘했다.
백칠십 중반의 키, 다부진 골격.
아직은 앳된 얼굴을 빼고 본다면 성인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무방한 모습이었다.
“내 눈엔 넌 언제나 애다.”
“애 아니거든요.”
“욘석.”
이건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저 혼자 몬스터 사냥도 하고, 할아버지랑 제법 오래 대련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애 취급은 그만둬주세요.”
또한, 이정기는 사춘기의 기색도 제법 있었다.
이건의 말에 반항하거나,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인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으로서.
‘한 명의 헌터로서 인정받고 싶다.’
그런 생각이 짙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늘은 또 한 번의 이사를 해야 하는 날.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이정기는 이건을 향해 말했다.
“전 괜찮아요.”
“뭘?”
심드렁하게 답하는 이건이었지만, 속으로는 뜨끔 하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머리가 크니, 눈치도 빨라졌다.
머리에 든 게 많아지니 배려 또한 깊어졌다.
“올림포스 생활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말이에요.”
“…….”
사실 이건은 과거 지구로의 귀환을 포기했었다.
올림포스는 살아 돌아간 시엘들에 의해 영원히 봉인되었을 것이고, 평생을 싸움만 해온 자신이 묻히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건의 생각은 특별한 계기를 맞아 바뀌었다.
‘영아.’
자신의 며느리였던 영아의 임신.
원래 게이트에서의 임신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었건만, 자신의 아들인 이강은 뭔 놈의 힘이 그리 좋은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건은 지구로 귀환하고자 하는 마음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래도 지구에 가봐야지.”
이정기가 태어나고 그 생각은 확고해졌다.
이정기가 어렸을 때는 곁을 떠날 수 없었기에 방법을 찾을 수 없었지만, 홀로 몬스터를 사냥한 이후로는 이따금 올림포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방법은 매일같이 생각했다.
‘희망은 있다.’
이미 자신들은 올림포스의 핵을 한 번 파괴했다.
그러나 클리어되지 않은 올림포스.
그렇다는 건 간단한 추론이 가능했다.
‘또 다른 핵이 있다.’
자신들이 파괴한 핵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
아마도 또 다른 핵을 파괴해야만 올림포스가 완전히 닫히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지구로 돌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만 있으면 돼요.”
이정기의 말에 이건은 작게 웃었다.
“그래. 나도 너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지구는 이 할애비와 네 부모가 태어나고 자란 땅이야.”
“…….”
“내 손자가 그곳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죽어요?”
“뭐, 나는 사람 아니냐?”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이건.
“예.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요. 아니다. 사람이긴 하네요. 몬스터라고 해봐야 전부 할아버지한테 한주먹거리니까, 최강의 사람이네요.”
“농은 그쯤 해라.”
“알겠어요.”
이건은 걸음을 재촉했다.
또 한 번의 이사.
미리 찾아둔 안전지대를 향해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올림포스는 그 이동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었다.
‘몬스터는 괜찮다.’
이제 올림포스의 먹이사슬에 정점에 있는 타이탄조차 이건의 손에 쉬이 목숨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런 이건조차 어쩔 수 없는 것은 바로 올림포스의 자연이었다.
쿠쿠쿠.
영문 없이 떨어지는 벼락.
지구의 것이라면 몸으로 맞아도 그저 간지럽고 말 테지만, 올림포스의 벼락은 강맹한 마력을 품은 탓에 꽤나 짜릿했다.
그뿐일까.
투투투투.
저 높은 창공에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우박들은 사람의 머리통보다 커다란 것이었다.
쾅!
바닥에 떨어지며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파괴력을 내는 것들.
“괜찮으냐?”
이건이 이정기를 향해 묻자, 이정기가 손을 내뻗으며 웃어 보였다.
“이젠 애 아니라니까요.”
올림포스의 지독한 자연도 이제 이정기에게 손을 댈 수 없는 지경.
이정기는 이미 S등급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마력량으로만 치자면 SS등급이겠지.’
믿기지 않는 성장세.
“그래도 긴장을 풀지 말거라. 우리가 조심해야 할 건….”
그때였다.
쿠쿠쿠쿠쿠쿵!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진동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정기야!”
이것이 이건이 가장 경계했던 올림포스의 자연재해, 지진이었다.
다른 것들이 그러하듯 올림포스의 지진 또한 일반적인 지진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가히 대륙이 쪼개진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쿠쿠쿠쿠쿵!
그 충격이야 어찌 버틸 수 있다지만,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할아버지!”
“붙잡거라!”
갈라지는 지반으로 인해 벌어진 땅.
자칫하면 올림포스가 가진 그 끝도 없는 그 무저갱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
이건은 그곳에 빠져도 살아날 자신이 있었지만, 이정기는 아니었다.
거기다 만일 완전히 땅이 갈라져 버린다면, 이정기가 자신을 찾아 헤매야 할 수도 있었다.
급히 던진 밧줄.
타이탄의 힘줄을 꼬아 만든 것으로, 절대로 끊어질 리 없는 최상의 밧줄이었다.
타앗!
정기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
쫘악!
이건이 힘을 주자, 밧줄은 빠르게 말려 이건을 향해 휘감겨져 왔다.
지진을 가장 경계한 만큼 그에 관한 대비를 충분히 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이정기를 데리고 이동한다면, 지진을 피할 수.
“……!”
이건이 눈을 부릅떴다.
이정기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허리에 찬 검을 빼내 들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콰콰쾅!
이정기의 몸에 낙뢰가 떨어졌다.
이건의 속도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
“하, 할아버지!”
벌어진 지반을 향해 이정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벽을! 벽을 붙잡아!”
이정기의 추락을 보며 이건이 급히 몸을 내던졌지만, 그 속도는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마력을 방출해 가속해 벽을 향하려던 이정기.
그러나.
콰콰쾅!
벼락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마치 노린 듯.
“정기야-!”
떨어진 벼락은 정확히 이정기의 몸을 때려 지하 깊숙한 곳으로 처박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들려오는 비명에 이건의 눈에 핏발이 섰다.
‘구해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다.
자신에게, 정기에게 했던 다짐.
고오오.
이건의 머리칼이 나풀거리며, 검은색의 빛깔이 구름처럼 퍼져나갔다.
“흐압!”
그리고 내뻗은 주먹.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콰콰콰콰쾅!
벽을 향해 쏘아졌던 이건의 주먹 자국이 그대로 난 채 우수수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돌을 밟아!”
땅을 무너트리는 일격.
이정기를 향한 외침.
우르르르르- 쾅!
하지만 또 한 번 벼락이 내리쳤다.
그제야 이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벼락,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누구냐….”
가라앉은 목소리.
핏대 선 목으로 이건이 하늘을 향해 말했다.
“정기에게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스스로 죽음만을 바랄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야.”
자연재해, 그것을 가장한 납치.
이정기 신형은 이미 저 깊은 어둠을 향해 사라진 상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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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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