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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3화 (3/284)

제1권 3화

003

“하압!”

이정기의 기합과 함께 검이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사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

궤적이 남아 눈에 보일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이었다.

“느리다.”

하지만 그걸 받아내는 이건은 사 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듯했다.

아주 유연하게 이정기의 공격을 흘려내며 검의 옆면을 후려쳤다.

타앗!

사 년 전이었다면, 이정기는 검으로 흘러들어오는 거력에 손을 떨며 울상을 지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열두 살이 된 이정기는 예전과는 달랐다.

“흡!”

잠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것은 잠시뿐.

타탓!

땅을 빠르게 박차는 것으로 모자라, 교묘히 이건을 향해 검을 찔러넣기까지 했다.

‘됐다!’

이정기는 생각했다.

이 공격이 마침내 처음으로 이건에게 적중할 것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지금껏 휘둘러본 검의 궤적 중에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그러나.

타앗!

그런 이정기의 기대는 처참히 부수어졌다.

또다시 후려쳐진 검의 옆면.

빠각!

그것도 모자라 목검이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히잉.”

부서진 검을 보며 울상을 짓는 이정기.

조금은 컸다고 하지만 아직 이정기는 애일 뿐이었다.

“욘석.”

이건은 그런 이정기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한 게냐?”

“아무리 연습해도 할아버지한테 닿지를 못하는걸요.”

피식.

“분명 닿을 것 같았는데, 닿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또 실패에요.”

“실패라고 생각하느냐?”

“그럼 성공이에요?”

이건은 말없이 이정기를 바라보다 뒤늦게 입을 열었다.

“반쯤은 성공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검이 부러졌지 않느냐?.”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말.

“내가 힘 조절에 실패한 게다.”

“……?”

이건은 자리에 앉아 이정기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네 공격이 꽤나 날카로워 나도 잠시 놀랐단 소리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이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실로 대단한 성장이야.’

최강의 자리에 올라 수많은 헌터들을 내려보았던 이건.

그런 이건이 천재라 생각하는 헌터들은 꽤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시엘들이나, 루키라 불리던 헌터들.

‘지금쯤 제법 여물었겠군.’

그중에서는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빠르게 강해지는 자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정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정기의 성장은 일반 헌터들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말 그대로 헌터로 태어나 지옥에서 자라왔다.

그것도 모자라 정기는 특별한 재능을 여러 가지나 쥐고 태어났다.

그 격차는.

‘가히 넘볼 수 없을 거다.’

지구의 천재들은 결코 넘보지도 못할 수준임이 분명했다.

이정기의 나이 열둘.

지금 이정기의 수준은 마력과 육체 능력을 합해 S등급.

사 년 전에 A등급이었던 것에 비하면 느린 성장세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A등급과 S등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A등급에 오른 헌터가 평생을 노력해도 S등급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가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정기는 겨우 열둘의 나이에 그 벽을 깼다.

어디 그뿐일까.

‘가진 바 능력 또한 다양하다.’

헌터들은 헌터가 되는 ‘각성’과 함께 특별한 능력들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능력은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는 한 변하지 않으며 추가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정기는 달랐다.

몬스터를 먹어가며 몬스터의 특성을 흡수했다.

개중 대부분은 육체나 마력을 강화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지만, 그중에서는 공격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특성들도 제법 되었다.

‘천재 중의 천재.’

그리고 고작 열두 살의 검이 자신의 방어막을 깨고 몸에 닿을 뻔했다는 것.

“이 정도면 됐다.”

“뭐가요?”

“오늘부터는 기본 검술은 끝내도록 하자.”

마침내 준비가 된 듯했다.

* * *

이정기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

긴장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떨림은 묘한 흥분 때문이기도 했다.

‘혼자.’

십이 년, 그 긴 세월 동안 이정기가 이건과 떨어진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언제나 이건은 이정기를 혼자 두지 않았고, 이정기도 어느새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후우.”

이정기는 혼자였다.

이유는 있었다.

‘안전지대가 위험하구나.’

얼마 전부터 그들이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안전지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아시스가 들끓었고, 지진이 느껴졌으며, 올림포스의 괴상망측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 이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새로운 곳을 찾아야겠다.’

이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이건은 이정기를 데리고 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주변에 타이탄은 물론, 네게 위협이 될 적들은 전부 정리해두었다.’

오늘은.

‘그러니 한 번 혼자 있어 보거라.’

이정기가 처음으로 홀로 집을 지키는 날이었다.

휘이잉.

평소와 같이 불어오는 바람이건만 오늘따라 을씨년스럽다.

꽈악.

이정기는 어느새 자신의 몸의 일부나 다름없어진 검을 쥐고 사방을 살폈다.

“괜찮아!”

스스로에게 소리치는 이정기.

시간은 흘렀고,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아암.”

쏟아지는 졸음에 잠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벌떡.

이정기가 몸을 일으켰다.

‘기척!’

평소처럼 불어오는 바람의 기류가 조금 다르다.

마력을 개방하니 낯선 기척이 여러 방향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꿀꺽.

몬스터.

지금껏 자신이 식량으로 삼아 먹어왔던 것.

이정기는 이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몬스터는 적이다.’

수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 할아버지.

‘지금 네가 먹고 있기에 무시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것들이다.’

몬스터에 대한 가르침만큼은 결코 졸 수도 없을 만큼 진중했다.

‘네 아비, 어미를 데려간 것도 녀석들이다.’

꽈아악.

이정기가 검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긴장하지 말거라.

어디선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차분히 기회를 노리거라.

실제로 들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입버릇처럼 언제나 자신을 가르칠 때 하시던 말들.

이정기는 그저 그것들을 떠올리는 것뿐이었다.

-너는.

타타탓!

어느새 기척들은 이정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미 충분히 강하다.

쿠웅!

이정기가 있던 자리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쿠오오!”

커다란 덩치, 검은색의 피부.

주먹만 한 엄니를 자랑하며 커다란 대검을 들고 있는 그것은.

“블랙오크!”

A급 몬스터라 배웠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던 블랙 오크였다.

이정기가 있는 곳을 습격했던 녀석은 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녀석의 머리 위.

이정기는 블랙 오크가 습격한 찰나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피한 것이었다.

“쿠오오!”

이정기를 발견한 블랙 오크가 떨어지는 이정기를 향해 무식하게 커다란 대검을 휘둘렀다.

열두 살의 소년은 물론, 건장한 성인 남성조차 두 동강이는커녕 전부 갈아버릴 듯한 모양새.

콰앙!

그러나 이정기의 검과 맞부딪힌 대검은 놀랍게도 굉음을 울리며 밀려나고 있었다.

불끈.

이정기의 팔뚝이 꿀렁였다.

‘블랙 오크의 힘.’

아이러니하게도 이정기가 사용한 능력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블랙 오크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완력을 두 배 가까이 상승시켜주는 힘.

마력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지만.

쾅!

이정기 또한 그것을 메꿀 만큼 막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 한 번 휘둘러진 검이 대검을 완전히 밀어내고, 이정기에게 자유를 주었다.

체공하며 몸을 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검을 쳐낸 덕분에 이정기는 자유로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콰콰쾅!

연속적으로 휘둘러진 이정기의 검이 블랙 오크의 어깨와 팔뚝, 가슴을 후려쳤다.

“크오오!”

밀려오는 고통에 뒷걸음질 치는 블랙 오크.

“쳇.”

이정기는 작게 혀를 찼다.

검에 충분히 마력을 담아 살상력을 높였어야 했건만, 블랙 오크의 힘을 발동시키는 바람에 제대로 마력을 분배하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더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야.’

자신을 습격해 온 블랙 오크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럿.

지금도 또 다른 기척이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서둘….’

-서두르지 마라.

다시금 떠오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급하고, 긴박할수록 침착해야 한단다.

할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이정기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검 끝. 강력한 방어력을 지녔다면, 검 끝에 모든 힘을 집중해 꿰뚫거라.

우웅.

마치 우는 듯한 소리가 이정기의 검에서 울려 퍼졌다.

“쿠오오!”

자세를 다잡은 블랙 오크도 이번에야말로 이정기를 반 토막 내겠다며 거대한 대검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이정기의 정수리에 블랙 오크의 커다란 대검이 부딪히려던 찰나.

파앗!

이정기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발로 땅을 밀어냈다.

이윽고.

콰직!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

분명히 커다랗게 뚫려 있는 블랙 오크의 가슴.

그곳에 이정기의 검이 틀어박혀 있었다.

“오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정기를 보는 블랙 오크.

-끝은 확실히 내야 한단다.

이정기는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검에 부여했던 마력, 오러를 조정했다.

검 끝에 몰아쳤던 기운을 다시 검의 날로.

그렇게.

콰드득!

검을 올려내었다.

이정기를 반으로 쪼개려던 블랙 오크, 녀석은 되려 반 토막이 난 채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하아. 하아.”

첫 실전.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 했어도 어쩔 수 없이 긴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놀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자신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생각.

주륵.

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

하지만 이정기는 숨을 고르며 다시 자세를 취했다.

말했듯, 적은 하나가 아니었으니.

파앙! 파앙!

그러나 곧이어 사방에서 가죽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할아버지!”

이건이 온 것이었다.

“욘석.”

그림자처럼 다가온 이건이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다.”

이정기에게는 자리를 비우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건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언젠가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벌써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그렇기에 일부러 블랙 오크를 유인해 그중 한 마리를 정기에게 보낸 것이었다.

‘솔직히 고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전과는 전혀 다른 것.

거기다 몬스터이지만 숨 쉬고 있는 생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건은 이정기가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정기는 너무나 성공적으로 첫 사냥을 마쳤다.

“잘했다. 욘석아.”

이건은 진심으로 이정기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헤헤.”

수줍게 웃던 이정기가 곧 표정을 바꾸며 이건을 향해 말했다.

“할아버지 근데,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응?”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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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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