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22세기가 된다 한들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은 당기호의 행동과 거기에 호응하는 두 여자의 대응에 용운이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달리 오해한 세 사람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후후후, 만약 우리가 만든 옷을 보면 자신의 말을 철회해야 할 것 같으니 그런 것이겠지.’
‘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쩔쩔매면서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속이 시원하구나!’
세 사람의 계속되는 성화에 용운은 가린 손을 치우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이씨…그냥 재수 없게 똥 밟았다 생각하자.’
“아, 알겠습니다. 제가 봐 드릴테니 보고 나면 다시 장포를 바로 입어주셔야만 합니다.”
“알았으니 어서 봐주시오!”
“어라?”
“당황하셨나요? 호호호, 당황하신게 맞군요.”
“당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수정작업을 거친 결과라오! 내 옷이 어떻소? 크하하하하.”
당기호는 모녀가 수선을 한 옷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화운의 표정에 몇주 간의 모든 노고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옆에서 그 표정을 본 당추향 역시 당기호가 느끼는 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거지! 놈! 화공(畫工)을 불러다 그려놓고 심심할 때마다 봤으면 싶은 표정이로구나.’
‘저 꼴 좀 봐. 캬하하하하하. 저리도 당황하는 모습이라니. 꼴 좋구나!’
‘음…조금 뭔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얼굴인데…….’
직접적으로 원한을 쌓을 일이 없었던 당소소만이 용운의 표정이 기대한 것과 다른 것 같아 속으로 의아했지만 워낙 옆에 앉은 두 사람이 좋아하기에 딱히 뭐라 표현하진 않았다.
“그리 놀라셨소? 어떻소? 이런 옷을 100벌 정도 먼저 주문하고 싶은데 이 회중시계들을 만든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소? 아닐 것 같소? 어찌 생각하오?”
“한 3주 정도 드리면 될까요?”
두 조손은 당황한 화운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속이 시원해서 깐족거렸다.
두 사람이 몇 주간 꿈꿔왔던 말을 내뱉으며 신이난 것과 다르게 용운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멈춰 있었던 것은 옷을 보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저게 왜 여기서 나와?’
용운이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기호가 자신만만하게 입고 있는 복장이 전생에 봤던 애니메이션 ‘나X토’에 나오던 나X잎 마을의 닌자 복장과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이 없는게요? 어서 말해보시오! 한달? 두달? 내 반년을 드리면 되겠소?”
“할아버지. 이런 옷은 본 적이 없어서 그럴 텐데 좀 이해해주세요~오호호호. 어디서 이런 옷을 봤겠어요?”
‘그나저나 두 사람은 왜 저렇게 신난 거야.’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하게 된 복장양식에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소감이라는 것도 겨우 그 뿐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완전히 똑같지는 않네. 약간 중에서도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 만든 옷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되나?’
“자, 대답해주시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음…….”
용운은 당기호의 옷을 보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아…거슬려. 왜 저걸 저런 식으로밖에 못 만든 거지? 상의에 저렇게 주렁주렁 주머니를 매다는 것보단 작업조끼같이 따로 장비들을 착용할 수 있는 장비를 추가로 만들어 입는 게 옷에 걸리는 하중을 분산하는 측면에서도 좋을텐데…….’
용운이 눈에 거슬리는 어설픈 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개선점을 떠올리는 걸 장고(長考)에 빠졌다고 생각한 당기호는 탁자를 내리치며 용운을 재촉했다.
“시간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내 기다려줄 수 있으니 이젠 대답을 해주시오.”
“잠깐 제가 따져볼 게 있어서…그렇다곤 해도 별로 오래 걸릴 것 같진 않군요. 이것과 똑같은 100벌 정도면 3주? 3주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고, 고작 3주면 된단 말이오?”
용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듣고 당기호는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표정을 지우고 어이가 없어 확인 차 다시 물었다.
이미 방직공장을 세운 용운으로선 고작 100벌 밖에 안되는 수량은 제작에 필요한 시간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식으로 옷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 디자인 도안을 보내고 샘플을 확인한 뒤 물건을 받아오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그런 내막을 모르는 이들로선 100벌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량을 고작 3주면 만들어올 수 있다는 답변은 과연 예상했던 대로 자신들이 모르는 수단이 용운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듣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었다.
“다시 제대로 봐주시오. 절대 그럴 리가 없단…….”
방금 전까지 목소리가 높았던 상황에서 오히려 부탁하듯이 애원하게 된 당기호의 말은 용운에 의해 중간에 잘려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두번을 보든, 세 번을 보든 제 답변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대로 봤고, 생각해볼 건 다 짚어보고 드린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옷을 고작 3주란 시간 만에 제대로 100벌씩이나 만들어 올 수 있다는 거죠?”
“예. 뭐… 이리 견본품까지 만들어오셨으니 주문만 받는다면 원하시는 물건을 만들어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음… 이리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군요.”
“어디 한번 말해봐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나름 자기들 딴에는 열심히 만든 옷이긴 한데 백화점과 마트,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미디어들을 통해 단련된 현대인의 미적 감각에 너무도 뒤떨어지는 당기호의 옷을 원하는 대로 변화없이 만들어주는 것은 용운에게 있어 너무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보다 더 깔끔하고 세련되면서도 기능 측면에선 전혀 뒤떨어지지 않게 만들어드리지요. 아마 지금의 옷과는 형태가 좀 달라질 겁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제가 개선을 해드리고 싶군요.”
방금 전까지 공격하던 입장이었건만 당가의 세 사람은 용운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뒷목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변했다.
‘지금… 당가의 직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해서 만든 이 옷이 저 사람의 안목에는 심히 부족하다는 소리지. 저건?’
‘여기서 더 발전시킬 수가 있다고? 그게 가능해?’
‘이, 이게 아닌데!’
한방을 먹이려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건만 조져지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상황은 거부하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大)당가에서 나온 태상문주인 당기호는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만, 만약에 말이오. 당신이 만들어 준 옷이 우리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소?”
“만들어드린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 마음은 주관적인 것인데 어찌 확답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당문은 그런 치졸한 가문이 아니외다! 물건의 좋고 나쁨에 대해선 우리 당문은 단 한번도 사사로운 감정에 취해서 판단을 내린 적이 없소! 그게 우리 당문의 신념이고 자존심이야!”
“이, 이런… 제가 무례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리도 확실히 말씀하시니 혹여 제가 준비한 옷을 보고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문하신 옷 값의 절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살짝 열이 오른 당기호는 아예 내기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아까 보여준 그 시계들! 그 시계들을 내기에 거시오.”
“아…그래도 그건 좀…….”
“이제 와서 자신이 없는 게요? 그쪽이 이길 거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소?”
“자신이 없다기보다는…무게추가 맞지 않는군요.”
“무게추가 맞지 않다니?”
“내기를 걸면서 어찌 제 쪽에만 불리한 이야기를 하신단 말입니까? 기울어진 저울을 맞춰줄 반대급부를 말씀하지 않았는데 제가 이 불합리한 내기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익! 반대급부는 당신이 말하면 될 거 아닌가!”
“좋습니다. 옥으로 장식된 이 시계들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설령 제가 내기에서 이겨도 그 시계를 가질 수 있게 해드리죠.”
“응?”
방금 전까지 반대급부를 말해주지 않는다고 말한 이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기에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 나온 용운의 말에 왜 그리 말했는지 세 사람은 바로 납득했다.
“대신 제가 이긴다면 옥시계를 제가 판매하고자 마음먹은 가격의 두배를 내고 사셔야만 합니다.”
“두, 두배? 그게 얼마나 되는 물건이길래?”
“한 쌍으로 만든 시계를 판다면 은자 10만냥을 받고자 했으니 그 두배라면 은자로 20만냥이 되겠군요.”
“은자로 20만냥!”
은자 20만냥이란 액수는 사천에 있는 주변의 산지에서 약재를 캐와 사천에 있는 약재상들에게 공급하고 당가의 의원들을 통해 부자들을 치료하거나 정력제같은 걸 팔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당가로서도 심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1달을 사는데 필요한 금액이 겨우 은자 4냥인 걸 감안하면 은자 20만냥이란 금액은 대략 4천여 가구가 한달동안 살고서도 남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의 입이 자신의 제안을 듣고 입이 벌어지자 용운은 속으로 자신이 너무 세게 지른 건 아닌가 싶었다.
‘은자 20만냥이면 한화로 환산했을 때 대략 160억원 정도 되는 금액이니…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우려나?’
순간의 분노에 취해 내지른 대가가 은자 20만냥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당기호는 자신의 말을 주워 담고 싶었건만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자신과 용운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녀와 며느리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와중에 이제 와서 내가 그만하자고 할 수도 없고.’
선의로 물건을 만들어주겠다고 했건만 옥으로 된 시계를 공짜로 차지하려고 욕심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성질을 부리는 인간에게 용운은 결코 호구가 될 생각이 없었다. 당기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며 옆에 앉은 두 사람을 홀깃 보는 걸 본 용운은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로 작정했다.
“역시… 아무리 독장께서 대당가의 태상문주라고는 하시지만 은자 20만냥은 많이 부담스러우신가 봅니다. 그냥 이 내기는 없던 걸로 할까요?”
분명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여기서 그만할래?’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남자에겐 ‘니가 너무 쫄려하는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할까?’라는 의미가 담긴 용운의 도발을 듣자 당기호는 참을 수 없었다.
자고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듯이 슬쩍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척하는 용운의 도발은 평생 일문의 문주로서 떵떵거리고 살아왔던 당기호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었다.
“까짓거 좋소! 그 내기 받아들이도록 하지! 당장 종이 두 장을 가져오시오! 이럴 게 아니라 오늘 내기를 문서로 남겨 내기에 패한 자가 그 대가를 꼭 치르도록 하게.”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시아버지가 슬쩍 내기를 없던 걸로 해줄 수도 있다는 기색을 풍기는 용운의 말에 순순히 응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당기호가 예상을 뒤엎고 도리어 한발 더 나아가 다시는 무를 수도 없게 문서로 남기겠다고 하자 당추향과 당소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돼요.”
“아버님! 참으세요.”
“놔라! 이 무슨 추태란 말이냐!“
‘지금 추태를 벌이는 건 할아버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