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중국에선 나라를 상징하는 물건을 옥으로 만들 정도로 고래로 오랫동안 옥을 사랑해왔다. 고대 중국에서 전국옥새라는 황제의 상징을 왜 옥(玉)으로 만들어 사용했겠는가. 그들은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오직 중국인들만이 다이아몬드와 동급으로 옥을 취급하는 걸 보면 옥에 대한 중원인에 대한 열망은 거의 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티베트에서 연옥이 아니라 경옥이 발견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처음에 녹색빛을 내는 옥을 보고 티베트에 파견된 신교의 인원들은 시장에 팔기에는 상품성이 없다고 보고서를 올렸으나 현대인이었던 내게는 옥이 녹색 빛을 내는 모습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라 왜 신교의 인원들이 녹색의 옥이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자초지종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명나라 초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적인 옥들은 기껏해야 탁한 백색의 백옥 혹은 연옥(軟玉 nephrite)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림색을 띤 백옥은 보석의 기준으로 삼는 투명도가 겨우 아투명(translucent)에 지나지 않는 데다 채도도 낮은 편이라 투명하고 에메랄드 빛을 내뿜는 녹옥과 비교했을 땐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지. 물론 처음에 접하는 이들이 생소하게 느낄지는 몰라도 곧 본능에 각인된 그 심미안을 따라 백옥이 아니라 녹옥을 더 원하게 될 거야.’
나는 다른 세상의 중원인들이 그러했듯 이 세상의 중원인들도 지금 이들이 그러하듯 에메랄드빛을 내뿜는 경옥(硬玉 jadite)에 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이들의 반응으로 보아 맞는 듯 했다.
이들은 에메랄드 빛의 선명하고 투명한 경옥으로 장식된 시계를 보며 그 고귀함에 넘어가 감히 손도 대지 못하고 코가 빠져라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역시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군. 볼 거 다 보여줬으니 슬슬 다음 수순(手順)으로 넘어가 볼까?’
세 사람은 한참을 회중시계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아무런 언지도 없이 용운이 상자를 탁 닫아버리자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만 같은 보물이 손 안에서 빠져 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순간 분노를 느꼈다.
“아니! 갑자기 왜 말도 없이 닫는 거죠?”
“손녀 말이 맞소!”
“처음 보는 옥이라 제대로 보고 싶은데…….”
하지만 용운의 설명에 세 사람은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닫아야만 했다.
“으음,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만 사실 이 물건은 당기호 님이 주문하신 그 물건이 아닙니다. 잊으셨습니까? 당기호 님께서 보시고 주문하셨던 시계가 이 작품이었습니까? 그때 제가 보여드린 물건은 옥장식같은 건 없었는데요.”
“아……?”
“저번에 주문하신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당기호 님께서 저번에 주문하신 그 물건을 가져오도록.”
용운은 세 사람의 표정을 즐기며 문밖에 대기하고 있는 직원을 향해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예?”
“아버님, 주문하신 시계가 이게 아니라구요?”
용운은 신교의 핵심인원들에게 줬던 것과 동일한 모델의 회중시계를 건네받고는 탁자 위에 툭 올려놓으며 장갑을 벗었다.
“원래 주문하신 물건은 이거였죠. 확인해보십시오. 주문한 물건이 맞게 왔는지.”
‘이런 개 같은.’
분명 화운이 자개함과는 다르게 아무런 장식이 없는 나무로 된 상자를 열어 보여준 것은 자신이 일전에 보고 경탄에 마지않으며 바로 주문을 했던 그 회중시계가 확실했다.
“어떻습니까? 저번에 본 물건과 다른지 확인해보시죠.”
“저번에 내가 본 물건이 맞구려…….”
저번에 봤을 때만 해도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놀랐고 당가의 상징이 될 옷을 수선하면서 이 시계를 받게 될 날을 그려왔는데 막상 받아든 회중시계는 빛이 바랜 것처럼 이전의 그 시계를 봤을 때의 충격은커녕 귀중한 물건을 얻게 되었다는 기쁨조차 주지 못했다.
나는 그의 실망하는 표정을 봤지만 모른 척하고 물었다.
“혹시 주문하신 물건에 흠집이라든가 이상이 있습니까?”
“아무런 이상도…없습니다.”
“그럼 물건에 이상 없다는 걸 본인이 직접 확인하셨으니 이제 저번에 미납된 잔금을 주시고 여기 인수증에 서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아, 알겠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며느리와 손녀를 데리고 와서 통쾌하게 한방 시원하게 먹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받을 물건을 받는데 왜 이리 기분이 나쁜 것이냐!’
분명 자신이 준비한 물건을 받고 준비해온 돈을 줘야만 함에도 괜스레 넘겨야만 자신이 무력한 것만 같아 화가 났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어떻게든 한방 먹여주고 싶었던 당기호는 머리를 굴리다 붓과 먹이 준비되지 않은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이거 이거. 서명을 받을 거면서 미리 먹도 갈아놓지 않은 게요? 일을 이렇게 처리해서야 원…”
“아!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쯧쯧, 상인을 하겠다는 사람이 준비성이 없구려…….”
당기호는 마지막 말은 일부러 혼잣말인척 혀를 차며 응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운이란 놈은 자신의 말을 어디로 들은 것인지 도리어 씨익 웃으며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설마 암기인가?’
당기호는 기회다 싶어 놈이 암기를 다 꺼낼 때까지 여유를 부렸다. 화운과 싸운다고 한들 이길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독과 암기의 대가를 자부하는 당문의 1인자로서 이 자리에서 손녀와 며느리 정도는 데리고 도망칠 자신은 있었다. 며느리와 손녀를 대피시킨 뒤 놈의 치졸함과 막되먹음을 사천 여기저기 알릴 생각을 하니 당기호는 벌써부터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이 놈이! 감히 독장인 내 앞에서 암기를? 어디 한번 꺼내봐라! 내가 기필코 후회하게 해주마.’
혼자 모노 드라마를 찍는 것인지 놀랬다가 실망했다가 화를 냈다가 웃기까지 하는 노인네를 보니 용운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 할아범…혹시 노망난 거 아니겠지? 괜히 돈 안 주겠다고 하면 좀 그런데…나쁜 짓하는 놈들이야 혼내주면 그만이라지만 노망난 노인이랑 드잡이질을 하는 건 좀…….’
나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품 속에서 만년필을 꺼내 뚜껑을 열고서 당기호에게 건네줬다.
“만년필(萬年筆)을 빌려드릴 테니 여기에 주문하신 물건을 수령했다는 의미로 서명을 해주시면 됩니다.”
자신을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품 안에서 길쭉한 암기를 천천히 꺼내던 놈의 입에선 이상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암기가 아니라 만년필? 만년을 쓸 수 있는 붓이라니…그게 무슨?”
스티븐 웍스(steven works)가 바지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대중들에게 충격을 줬던 시연했던 것처럼 나는 이들에게 품 속에서 꺼낸 만년필로 그런 충격을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 이건 만년필이라는 필기도구인데 이 붓에만 쓸 수 있게 개발된 전용 먹물을 미리 뒤편에 넣어 언제든 먹을 가는 과정이 필요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붓입니다. 전용 먹물만 미리 채워놓으면 만년을 써도 쓸 수 있다 뭐 그런 의미로 거창하지만 한번 만년필이라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직접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만년필이라니…고작 붓에 이름 붙이기엔 참으로 광오한 이름이오. 어…어디 한번 내가 써보도록 하지.”
붓이라고는 하나 끝에 모필(毛筆)이 달려 있지 않은 물건에선 신기하게도 먹이 미리 묻어 있다는 화운의 말처럼 매끄럽게 글이 써졌다. 붓과는 다른 만년필로 자신의 이름을 적는 그 감각은 붓과는 매우 달랐지만 그럼에도 싫지는 않았다.
‘붓이랑은 다른데 또 쓰는 맛이 있군.’
“어떻습니까? 필기감(筆記感)이 썩 나쁘지 않지요?”
“필기감이라…”
놈의 입에서 나온 필기감이라는 새로운 단어는 확실히 만년필이라는 붓이 주는 만족스러운 감각을 표현하는데 있어 매우 적합해보였다. 당기호는 연이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계속되자 멍해진 채로 서명을 마치고 만년필을 쳐다봤다.
“만년필이 꽤나 마음에 드신가 봅니다. 하하하”
당기호는 놈의 웃음에 그제야 뒤늦게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두 모녀와 함께 준비를 해온 계획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떠올렸다.
‘이런! 분하다! 아, 아니지. 나에겐 아직 그동안 손녀와 며느리가 몇날 며칠을 꼬박 새우면 만든 이 옷이 남아있다. 놈! 내가 그리 순순히 당하고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생소하지만 나쁘진 않구려. 먹물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붓이라니.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 담긴 물건이오.”
이런 상황에 괜히 상한 감정을 드러내며 비아냥거려 봐야 본인의 좀스러움만 부각될 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당기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만년필이란 물건을 칭찬해줬다. 어차피 자신들이 준비해온 비장의 한수는 이딴 걸로는 무마할 수 없을 터이니.
당추향을 슬쩍 본 당기호는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 회중시계라는 물건을 받으러 올 때 내게 선물로 준 옷 말이오.”
“예! 제가 분명 훈련복 하나를 드렸지요?”
“그때 화운 님이 옷을 입어보고 나중에 혹여 원하는 개선점이 있다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달라고 하셨던 걸 기억합니까?”
“예, 분명 그리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서 저번에 받은 옷을 당문에서 나름 개선해봤소. 그래서 그 옷과 똑같은 옷을 당가에서 한 100벌쯤 주문하고 싶은데 어찌 생각하오? 내가 주문을 하면 언제까지 받을 수 있겠소?”
“으음…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주문을 받기 전에 우선 옷을 직접 봐야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 같다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당기호는 슬쩍 발을 빼려는 놈을 도발했다.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라…언제까지 물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내게 약속할 수 있겠소? 설마 반년은 넘게 걸릴 것 같다거나 그러지는 않을테고.”
“약속이라…음…기껏해야 옷인데 아마도 겨우 며칠 더 걸리겠지요.”
‘이 와중에도 호기를 부리는구나. 놈. 겨우 며칠? 그 말 후회하게 해줄 것이니라.’
‘할아버지, 저딴 허장성세에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용운은 샘플을 봐야 변경점을 확인하여 추산을 할 수 있을 거라 그리 말한 것이었지만 이를 들은 세 사람은 방금 전까지 희희낙락하며 여유 그 자체였던 화운이 드디어 한발 물러나며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한방 먹여줘요!’
‘잘들 보고 있거라.’
“훗! 그리 말할 줄 내 알고 있었소.”
“예?”
건너편에 마주 앉은 늙은 남자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장포를 벗어젖히기에 난 당기호가 노망이 나서 바바리맨같은 변태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더러운 것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가렸다.
“아니, 왜 이러시는 겁니까. 장포를 걸치시지요. 어서요!”
“화운 님! 날 보시오! 날 보란 말이오! 날 보고 나서도 당신이 한 말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소?”
‘미쳤나. 진짜…옆에 있는 손녀랑 며느리는 왜 놀라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는 거야.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그런 거야? 남자의 벌거벗은 몸뚱이 따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추향 님, 소소 님. 어서 기호 님을 말려보시오.”
“호호호, 저희들이 왜요? 보기 좋기만 한데?”
“한번 직접 보시고 말하시죠.”
‘아니…노인네만 미친게 아니라 일가족이 전부 미친 건가? 갑자기 노인네가 노망이 나서 스트립쇼를 하는데 보기 좋기만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