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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125화 (125/132)

125화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모르지만 주원장의 협잡으로 인해 정마대전 이후 정파들은 황실에 목줄을 틀어 잡히고 말았다. 어릴 적 아무것만 몰랐던 자신이 선망하던 무림맹주란 자리는 황제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개들의 대표 자리에 불과했다. 구파는 황제의 서슬퍼런 칼날이 자신들에게 직접 향하는 것을 기피했다.

그 결과 구파의 무인들은 자신들을 대신하여 황제를 마주할 집단과 자리로 무림맹과 무림맹주가 제격이라고 생각했기에 정마대전을 위해 임시로 조직한 무림맹을 해체하지 않았다. 이것이 무림맹이 한번도 해체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비사(祕史)였다.

관의 지시를 마주해야 했기에 정마대전 이후의 무림맹에는 각 파의 파벌 싸움에서 밀려난 쭉정이들이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주원장은 그런 무림맹에게 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황실을 대신하여 중원무림의 감찰 권한을 대리하여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명분에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힘을 지닐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지원을 시작했는데 황실비고로 들어가는 전국에서 올라오는 영약의 일부와 각 파에서 황실로 올리는 상납금의 일부가 바로 그것이었다. 황제가 무림맹에 음으로 양으로 힘을 실어준 이후로 구파에서 용의 꼬리가 될 바에 무림맹에서 뱀의 머리가 되려는 야심가들이 무림맹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점차 구파의 성세는 나날이 줄어드는 한편 무림맹은 막강하고 비대한 집단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런 무림맹의 강성함에 많은 중원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열광하며 달려들었다.

정명열은 그런 이들과 다르게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무림맹에 입맹한 이였다. 원래 정명열은 무림맹에 대한 열의같은 것이 딱히 없었다. 지역 유지이자 관리였던 아버지처럼 적당히 무공이나 익히다 무관이 되어 편하게 한량같은 인간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몽둥이를 곁들인 아버지의 조언은 그런 정명열의 꿈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고 한들 정명열은 타고난 무인으로서의 재질이 너무도 미천해서 무림맹 입맹 시험에 몇 번이고 낙방할 정도의 둔재인데다 몇 번의 낙방 끝에 무림맹에 겨우 입맹하고서도 타고난 성품이 반골의 상이라 무재가 떨어지는 자신을 무시하는 상관들을 툭하면 들이박았다.

아직 총명함을 간직하고 있던 젊을 적의 성화제 주견심은 그런 그의 기질과 성향을 중원무림을 견제하고 중원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 쓸 만한 충견(忠犬)의 자질로 보았다. 황제에게 무림맹주는 중원의 무림. 특히나 정파에 날을 세우고 각을 세울 수 있는 이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주로 써먹기에 정명열은 너무도 수준이 미천했기에 황실의 무공 교육과 구파의 후지기수에게 지원했다면 진즉에 초절정고수의 극에 도달했을 정도의 영약 지원을 통해서 겨우 초절정고수의 벽을 턱걸이로 넘길 수 있었다.

정명열은 모든 무림인들이 선망하고 바라는 그 시기를 꿈속에서조차 떠올리기 싫은 악몽의 순간들로 기억했다.

“내가 군대는 안 갔지만 군대에 간 병졸들이 딱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꿈자리가 사나우니.”

고난의(?) 시기를 거쳐 무림맹주로서 중원 각지를 돌아다니니 그때부턴 탄탄대로였다. 꿀벌로 치면 꽃밭이 펼쳐진 거나 다름없는 신세계였던 것이었다. 딱 한가지만 빼고.

무림맹주로서의 권한을 마구 행사하며 날뛰려고 할 때 황제의 부름을 받았고 황제의 서슬퍼런 경고와 자신을 둘러싼 금의위의 고수들에게 공포를 느꼈다. 사리판단이 부족했던 정명열은 그제서야 자신이 황실의 도움을 받아 오르게 된 무림맹주란 자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같은 권력자의 자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줄이 메인 황제의 개의 자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냉큼 황제의 제안을 받는 게 아니라 무림맹주따위 진작 포기했을 지도 몰라.”

그래도 무림맹주란 자리가 그렇게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인들의 뒤를 봐주는 대가로 여기저기서 찔러주는 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무림맹주는 자신이었기에 다른 중소문파들이 구파의 횡포와 폭거를 무림맹에 고발한다고 한들 묵살하면 그만이었다. 성화제는 푼돈을 챙기는 걸론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

더구나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성화제는 어느 순간부터 무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성화제 주견심은 무림에만 관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엄마뻘인 만귀비의 치마폭에 휘둘린 이후로 총기를 잃고 승려와 도사들에게 현혹되어 국정운영이고 뭐고 모든 것을 내던져 버렸다.

그때부턴 진짜 꽃밭이 펼쳐졌다. 이리저리 뒷돈을 받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가끔씩 기어오르는 아미파의 장문인같은 인간들은 무위로 찍어누르면 그만인 것도 퍽 즐거웠다.

“따박따박 말대꾸 하던 그년 팔을 자르고서부턴 대드는 것들도 없었지. 다른 것들과 다르게 꽤나 반항적이라 손맛이 쏠쏠했는데 그게 좀 아쉬워.”

혹여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환관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황제가 무림에 대해 묻거든 적당히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해달라고 하면 되었다. 동창 놈들도 황제가 맛이 가자 대놓고 축재(蓄財)에 열심일 때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성화제 때가 참 좋았지…진짜,”

꿈결같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버리고 홍치중흥을 이끈 홍치제가 집권한 이후 정명열은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면 기도부터 올렸다. 제발 저 황제 놈을 잡아가 달라고. 옥황상제든, 염라대왕이든, 원시천존이든 누구라도 좋았다. 신의 힘이 아니고서는 이제 겨우 32살인 놈이 자연스레 노사(老死)할 것 같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홍치제를 암살하고 무림인들의 세상을 다시 되찾기 위해 정파인들을 끌어모아 반역을 일으키고 심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차라리 그가 방탕하고 사치를 일삼는 황제였다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홍치제는 중원인들의 사랑을 받는 황제였으며 간신들조차 인정하는 정명(正明)한 황제였다. 홍치제는 다른 황제들처럼 문관만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힘을 키우기 위해 국방강화에 힘썼기에 문관(文官) 뿐만 아니라 무관(武官) 역시 황제를 진심으로 따랐다. 만약 자신이 홍치제를 암살하거나 하려고 한다면 금의위들의 서슬퍼런 칼날들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자신은 없었다.

주견심이야 한참 늙어빠진 만귀비가 제 화를 못이겨서 죽자 그녀를 잊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 따라 멍청하게 죽어버렸지만 그런 아비와 다르게 주우탱은 황제답지 않게 색(色)을 밝히지도 않아 후궁들도 별로 들이지 않았고 황후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금슬도 좋았다. 놈에겐 오로지 국정운영뿐이라 지 아비처럼 여자를 밝혀 따라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황제가 되었으면 황제답게 주색도 좀 밝히고 어? 막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나랏일은 뒤로 하고 팽팽 놀아야 할 거 아니야! 어떻게 된 게 사람이 사람 냄새가 안 나!”

정명열의 소망과 다르게 열정적인 황제 주우탱은 초대 황제였던 주원장처럼 무림인의 힘을 빼기 위해 환관들의 집단인 동창을 이용해 중원을 살폈고, 무림맹주를 통해 문파들로부터 상납금을 받아 국고로 환수함으로써 문파들이 성장할 수 없도록 확실히 틀어막았다. 이번 상납 때는 하필이면 얼마 전부터 새외에서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어 황제로부터 질타를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그동안 모아놓은 사비(私費)를 털어내야 했기에 정명열은 더욱 열이 치밀어 올랐다.

“무림맹주로서 삶의 낙이라곤 그저 콩고물 좀 챙기는 것이 전부인데! 젠장! 그것까지 토해내야 한다니!”

홍치제가 집권한 이후로 모든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괜히 자신이 황제의 명이 없을 때 북경을 벗어나 중원을 떠도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한번이라도 황제를 덜 보기 위함이었다.

“에이, 술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 * *

“호오, 이리도 주머니가 많은 옷이라니…옷감도 질긴 것이 무얼 넣어도 쉽게 터질 것 같지가 않고.”

시계를 구경시켜주고 주문을 받은 뒤 돌려보내는 길에 용운이 아까 전 따로 챙겨놓은 훈련복을 본 당기호는 뭐에 꽂혔는지 옷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직접 본 훈련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벅지에도 주머니가 달렸군요.”

“건빵주머니라고 합니다.”

건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허벅지에도 주머니가 달려 있고 상의에도 주머니가 달려 있어 훈련복이라는 옷은 무언가를 넣고 다니기에 참 편리해 보였다.

“화운 님, 주머니를 더 달면 당문에서도 쓰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 어렵지 않긴 합니다. 이렇게 상의 왼쪽에만 주머니를 다는 게 아니라 오른쪽에도 달고 복부 좌우에도 달고 팔뚝에도 달 수도 있습니다. 하의에도 허벅지 쪽에만 주머니를 다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이 달 수도 있구요.”

“어허! 진짜 그렇겠습니다!”

당기호의 머리로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그런 옷이 떠올랐다. 언뜻 말로만 들으면 꽤나 괴상한 모양새일 것 같지만 이 훈련복이라는 것은 주머니가 달려 있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였기에 화운의 말대로 여기저기 주머니를 더 달아도 그렇게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암기를 많이 넣어 다니기에 좋아 보이는데?’

‘되게 마음에 드나 보네. 엄청 만지작거리는 거 보니까.’

[까짓거 한 벌 선물로 줘 보시게. 혹시 아나? 팔아먹을 수 있을지?]

비아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샘플 선물을 준다 치고 당기호의 몸에 맞는 적당한 치수의 훈련복을 골라 주었다.

“한 벌 선물로 드릴 터이니 집에 가서 입어보세요.”

“아이구…제 말은 이걸 선물로 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괜찮습니다. 혹시 압니까? 나중에 당가에서 이 옷이 마음에 든다고 대량구매를 하고 싶다고 할지?”

“아! 선문상단에서 판매하는 상품입니까?”

“현재는 주문제작만 하고 있는데 주문만 넣는다면 얼마든지 만들어드리지요.”

당추향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아니, 여자인 자신에게는 정작 물어보지도 않고 어찌하여 자신의 할아버지에게만 옷 선물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할아버지는 옆에 이렇게 손녀가 버젓이 있건만 자신의 것은 추가로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거기다 남자에게서 옷을 선물받는 것도 이상한데 할아버지는 무슨 정인(情人)에게 선물을 받은 것마냥 눈을 반짝이며 옷을 만지작거리는지 당추향에겐 이 모든 상황이 이상했다.

‘웃겨! 정말.’

옆에서 코에 문제가 있는지 흥흥거리는 당추향을 홀깃 쳐다본 나는 혹시 감기일까 싶어 당추향으로부터 한발짝 물러나 잠재고객이 되어줄 당기호에게 다가가며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어보시고 혹여 원하는 개선점이 있다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다음에 주문한 시계를 찾으러 왔을 때 말씀해주시면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그,그래도 됩니까? 아이고,이거 죄송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손녀랑 와서 이리 못난 모습만 보였는데…정말 감사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시계를 공짜로 드리는 것도 아니고 선금까지 두둑히 주셨는데 이 정도는 제 권한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남자가 서로 손을 정겹게 붙잡고 고개를 몇 번이고 숙여 가며 둘만의 세계에 빠져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추향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남자들이 있는 곳에선 어딜 가도 예쁜 자신이 화제의 중심이었건만.

‘두 사람 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아예 까먹은 거야?’

게사르는 그런 당추향을 보고 확신했다. 측간에 갔다 한참이 지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른 상태로 돌아오더니 지금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히 하나였다.

‘확실해. 저건 변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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