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아, 쫌!”
성도 시내를 편하게 돌아다닐래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생각도 정리할 겸 시내를 혼자 산책하는 게 취미인데 나갈 때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당가의 조손의 얼굴을 보게되니 언젠가부터 그 둘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아니…이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나?”
[용운, 꼭 사생팬을 대하는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는군. 유명해진 건 너튜브에서 유명해졌는데 모순적으로 유명세는 여기서 치르고 있는 건가? 크큭]
“지금 이게 웃겨?”
[솔직히 약간?]
“하!”
어딜 가도 그들이 보인다. 전생의 카페구경하듯 다니던 성도의 유명한 다점 방문은 이제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다점을 다닐 수 없다는 말은 한적한 공간에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차 맛을 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추가로 다점을 가지 못해 생긴 불편함이 한가지 더 있었다.
“중원은 물도 별로라서 뜨겁게 데워서 먹어야 한다구. 그나마 보리차처럼 보이차로 마시면 뜨거운 물도 먹을 만해서 이젠 적응하고 나름 즐기고 있었는데…….”
가게에서 주는 시원한 물은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을 일상처럼 마시던 천산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청해에 진입한 순간부터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냥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처음 마신 중원의 미지근한 물은 물에서 흙내가 나 마실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중원의 물은 차향을 입히지 않는 한 맛이 없었다.
“한국에서처럼 시원하고 맛있는 물을 벌컥벌컥 아무렇게나 마시고 싶은데!”
[하지만 중원은 한반도처럼 암반이 많질 않아 차가운 물을 마시기엔 수질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걸 알지 않나. 자네 정도면야 미지근한 물을 마시거나 해도 탈이 나질 않겠지만 다진 양이라면 금방 탈이날 걸세.]
비아의 말처럼 물에 석회질이 섞인 나라들이 괜히 맥주나 와인을 즐겨 마시는 게 아니었다. 물에 석회나 황토가 섞인 중국에서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일이고 찬 물을 마시는 것은 목숨을 줄이는 거라고 믿는 중국인들에게 음료는 미지근하거나 뜨거운 게 패시브였다.
과거 전생에 싼 맛에 간 중국 여행에서도 어느 음식점에서건 차가운 물은 따로 요구하지 않으면 단번에 내오는 곳이 없었다. 콜라를 미지근하거나 심한 경우 뜨끈한 상태로 주는 경우도 많았고, 슈퍼에서 파는 물은 당연히 상온 보관이 기본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얼음이 따로 담아달라고 요구하면 미지근한 콜라든 미지근한 생수든 얼음으로 식혀 마실 수가 있었지만 이 시대의 중원에는 콜라도, 생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흙내가 나는 물은 시원하게 마셔도 흙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왜 나는 행복할 수가 없어!”
[그러니 어서 빨리 상수도 체계가 중원에 도입될 수 있도록 힘내보시게.]
“돈이 썩어나냐?”
미국도 중국의 물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물에 석회가 많이 끼어 있어 수질이 그렇게 좋지 않긴 했지만 ‘tap water’라고 불리는 수돗물을 바로 컵에 담아 마실 수 있는 이유는 상수도를 통해 정수과정을 거친 물을 각 가정에 보급하는 시스템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인들 그것도 특히나 한국인들에겐 수돗물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만 수질이 나쁜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실 수 있는 음용가능한 수돗물은 그야말로 20세기 공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평할 수 있는 대단한 것이 맞다.
[하지만 자네의 구상안대로 시장을 활성화하고 도시를 성장시킬수록 인구가 모여들어 도시의 인구밀도가 폭증할텐데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전염병들을 어떻게 다 감당할 건가? 겨우 위구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의 백신 체계로 그게 감당이 되겠나?]
백아를 그렇게 잃게 된 뒤로 천산 주변에 있는 약초들을 이용해 알약의 형태로 만들 수 있도록 제약산업에 많은 투자를 진행했고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람들에게 마마라고 불리는 공포의 전염병인 천연두라든가 홍역 등의 백신을 신교의 사람들부터 차근차근 접종 중이었다. 그러나 현재 신교의 의약당에서 생산하는 백신의 생산속도로는 중원의 모든 이들에게 접종을 할 양을 감당할 수도 없는데다 그 비용 또한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 그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솔직히 내 입장에선 그들을 위해 그래야 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전염병을 예방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물이지 않나. 20세기 중국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전염병을 막기 위해 뜨거운 물을 마실 것을 적극 권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
“현대의 중국과 인도에서 뜨거운 차와 뜨거운 물을 마실 것을 권장하는 이유가 거대한 땅덩어리에 속해 있는 많은 인구에게 정수된 물을 보급할 수 있는 상하수도 체계를 완성하기엔 너무도 막대한 비용이 겨우 대도시들만 위주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명나라 시대의 내가 아무리 돈을 좀 벌었다고 어떻게 그걸 진행하니…나는 그래야할 권리도 없고 책임도 없어. 내가 황제야?”
사실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다르게 무협지에서 보는 것처럼 명나라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게 물을 끓여 마시거나 차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물을 끓여서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데 여유가 있어 물을 끓이는 목적으로만 쓸 땔깜을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부유층들 혹은 관료들과 당문이라든가 9파 1방과 같이 무림방파들에 속한 이들만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이 시대에서 다점은 현대인들이 노동을 하기 위해 마치 생명수처럼 카페인을 보급받는 카페들처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저렴하고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주머니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자들의 사치 공간이 바로 다점이었다. 왜냐하면 술은 취하려고, 음식은 배를 불리기 위해서 등의 돈을 씀에 있어 실질적인 목적이 있지만 차는 배를 부르게 하지도 못하고, 취하게 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에 평민들은 돈이 있다고 한들 싸구려 차로 집에서나 끓여 먹는 정도면 모를까 갈증 해소라는 목적에선 물 한잔과 별반 차이도 없어 쓸데없이 돈지랄로 보이는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다점을 찾는 경우는 없었다.
“날 찾으려고 돈을 펑펑 써대며 매일같이 성도 다점을 돌아다니는 그 인간들이 이상한거지.”
[독도 잘 쓰면 약이고, 약도 잘못 쓰면 독이라네. 영원한 악연(惡緣)도, 영원한 선연(善緣)도 없는 법이야. 너무 그들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잘 써먹어볼 생각을 해보시게. 개똥도 약으로 쓰는 지혜가 자네에겐 필요해.]
“몰라. 스토커처럼 맨날 나 쫓아다니는 인간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그 사람들 모르고서도 잘 지냈고 앞으로도 잘 지낼 거야. 그리고 저번에 그 노인네가 막 내 몸 조물거린 것도 되게 불쾌했어.”
[하하하하. 사실은 그게 진짜 이유인 거 아닌가? 늙은 남자가 자네 몸을 막 만져댄 게?]
* *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이라고 했던가. 개방의 사천 분타에 보낼 훈련복이 드디어 준비되었다기에 잘 만들었나 확인도 해볼겸 선문상단에 잠깐 들렀다가 그토록 피해 다녔던 두 인물을 만나고 말았다.
“호오, 드디어 자네를 만났구만! 선문상단에 찾아오길 잘했어!”
헤어진 이산가족을 만난다고 한들 저렇게 반가워할까 싶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당기호가 나에게 다가왔다. 사천에선 그래도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집단인데다 손녀와 할아버지를 봤을 때 그 속이 좁기로는 밴댕이 소갈딱지보다 좁아 한번 원한을 사면 두고두고 뒤통수가 따가울 것 같아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인사를 받아줬다.
“아…독장 어르신…어르신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지…….”
“왜긴? 자네를 만나고 싶어서 내가 찾아왔지.”
“할아버지랑 당신을 찾으려고 성도 다점을 얼마나 뒤지고 다녔는지 알아요?”
“그쪽이 왜 화운님을 찾으러 다닌단 말입니까! 하운님 귀찮게.”
하필이면 나를 보좌하기 위해 따라나선 게사르가 이전의 식당에서의 악연을 잊지 않은 것인지 당추향을 보자마자 사천왕상처럼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흥! 윗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데 감히 어딜 끼어드는 건가요!”
“윗사람? 그대가 어떻게 나의 윗사람이오. 그리고 저번에 제대로 곤륜의 칼맛을 보여 줬어야 하는데 너그러운 화운 님의 뜻을 따라 칼 맛을 보여주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오늘에서야 그때의 후회를 지울 수 있겠구려!”
“곤륜이라?”
자신의 손녀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게사르를 보고 당기호도 퍽 감정이 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허어, 오랫동안 명망을 쌓아온 곤륜에서 왜 이런 아해(兒孩)를 받아들였을꼬? 중원인이 아닌 오랑캐를?”
“뭐, 뭐라고?”
게사르는 사천으로 온 이후로 자신을 향해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사천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면 오랑캐로 보는 저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한 수 아래로 깔고 내려보는 저 시선에 담긴 조롱와 함께.
“노인장, 지금 뭐라고 하셨소?”
“허! 오랑캐가 어디서 배운 것인지 중원 사람처럼 참으로 중원 말을 잘도 하는구나~”
마치 원숭이가 사람 말을 하는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당기호의 무례한 언사를 게사르는 참지 않았다.
“내 곤륜에서의 배운 가르침을 따라 존장(尊長)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했으나 도무지 티벳인에 대한 그 방자하고도 무례한 당신의 언사를 참겠소! 나 게사르쟈시! 당신의 입에서 사과를 받아내야겠소이다!”
게사르가 곤륜 특유의 기수식을 취하며 자세를 잡자 당기호도 이에 맞서 자세를 잡았다.
“내 오늘 저 오랑캐에게 한 수 가르침을 내려줘야겠구나. 앞으로 중원인을 보거들랑 주인을 대하듯 공손히 대하라고.”
당기호는 게사르를 도발하면서 독공을 운용하며 독낭(毒囊)에 담긴 독환을 슬며시 챙겼다. 너따위에겐 아무런 무기도 필요없다는 듯이 독환이 든 손을 뒤로 숨기며 다른 한 손으론 곤륜의 오랑캐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향해 무력을 사용하려는 둘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던 용운은 이럴 때마다 중원에 환멸을 느꼈다.
‘아…그립다. 문명사회. 이건 뭐 수틀리면 일단 몸 하나 자르고 시작하려고 들거나 사람을 죽이고 보려고 드니…문명인이면 문명인답게 대화로 풀어야지. 글자만 쓸 줄 알면 뭐 해. 속에 든 건 아직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데.’
당기호는 옷을 자신의 팔에 감아 화경(化勁)을 이용해 툭툭 방향을 바꾸며 게사르를 상대하다 갑자기 게사르의 얼굴 가까이에 독환을 비벼 만든 가루를 살포했으나 게사르도 도박으로 초절정고수에 오른 게 아니라는 듯이 숨을 참고 검풍으로 가루를 도리어 당기호를 향해 날려버렸다.
중원에 이름을 알린 독장으로서 자신이 날린 독에 당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 당기호 또한 팔에 감았던 옷을 풀어 휘저어 자신의 독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신법을 이용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이후로 어떻게 숨긴 것인가 싶을 정도로 당기호의 몸 곳곳에 숨겨져 있던 암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게사르의 검을 상대해 나갔다. 아이러니한 건 검을 쓰는 게사르가 곤륜 특유의 표홀한 신법을 이용해 벌처럼 검으로 찌르고 날아들었다가 독이나 암기를 피해 빠지는 모양새였고, 반대로 암기와 독을 쓰는 당기호는 독을 품은 개구리마냥 크게 움직이지 않고 검을 쳐내며 암기를 날려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노소(老少)의 치열한 대결을 보고 있는 용운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보다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아주~ 다 부숴라. 부숴. 자기들 거 아니라고 저렇게 막 부숴버리네.’
기껏 마련한 훈련복이 상할까 싶어 용운은 일찌감치 허공섭물로 훈련복 상자를 치워놓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둘이 대결을 하며 다 부숴대는 통에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을 뻔했다.
그나마 지금은 고작해야 집기가 부서지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기껏 이쁘게 지어놓은 선문 상단의 건물까지 망가질 판이었다.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