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당기호는 처음 듣는 선문상단이란 곳에 속한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저 물건을 보고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보통 물시계라든가 해시계라든가 아니면 모래시계라든가 하는 것들은 보거나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런 물건들은 이처럼 절대로 작은 크기로는 만들 수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품 안에 넣을 수 있게 어떻게 시계를 작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지 너무도 궁금했다.
“한번 내게 그 물건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품 안에서 시계를 꺼낸 녀석은 옆의 있는 녀석의 눈치를 보는 듯했기에 당기호는 상단에서 꽤나 높은 지위를 가진 듯한 화운이란 젊은 녀석을 바라보고 다시금 물었다.
“예…뭐…….”
당기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며 허락을 하는 녀석과 주기 싫은 내색을 팍팍 드러내는 그 옆의 녀석을 보며 이 모든 게 독왕(毒王)이나 독성(毒聖) 혹은 독신(毒神) 정도도 아니고 고작 독장(毒將)이란 별호의 수준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 자신의 현재 수준과 당문이 가진 사회적 지위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중시계인가…….”
손바닥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회중시계라는 물건은 정말 가슴에 품고 다니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품 안에 넣고 있었던 탓인지 사내놈의 온기가 묻어 있어 미지근한 그 체온이 느껴져 약간 불쾌하긴 했지만 놀라운 것은 작은 크기보다 시간을 표현하는 시각적으로 표현한 방법과 똑딱거리면서 쉬지 않고 정밀하게 돌아가는 기계의 수준이었다.
“여기 적힌 기호가 시간을 표현하는 건가?”
“예. 순서대로 일부터 십이까지 아라비아의 숫자로 적혀 있는 겁니다.”
“아라비아? 서역에 있다는 곳 말인가?”
“예.”
“시계에 일부터 십이까지 숫자로 새겨놓았다 함은 12시진을 표현한 게지?”
‘땡! 틀렸다.’
중원의 12시진이 아니라 현대의 시간 체계를 표시한 일반적인 시계일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고 거기서 다시 오전을 12시간, 오후를 12시간으로 놓고 보는 겁니다. 1시진의 절반인 1시간은 60분(分)으로 일다경이 4번 반복되는 거구요. 초(秒)도 마찬가지로 1분을 60개로 쪼개서 표현한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계에 표시된 현재 시간은 오후 3시 33분 33초를 지나고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 말은 하루라는 시간을 24조각으로 나누고 다시 거기서 1시간이라고 표현되는 반시간을 또 다시 60조각으로 나누어 1분이라고 표현하며 1분은 또 다시 1초가 60개가 모여 이루어진다 이 말이지?”
“이제 정확히 이해하셨네요.”
“허!”
당기호는 태양혈(太陽穴)같은 게 불뚝하지 않은 걸로 보아 딱히 무공을 익히지 않은 듯 보이나 키만 멀대같이 커선 얼굴이 번지르르하게 생긴 녀석이 하는 얄밉게 해주는 설명을 듣고 속으로 경악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은 형태의 시계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가시화(可視化) 했다는 말이 아닌가? 진실로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당기호가 그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하건 말건 시계는 실존하였고 지금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속도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에 대해선 중원에선 자신과 당문을 따를 이가 없다고 자부했던 당기호이지만 이런 기물을 만든 이의 솜씨와 거기에 담긴 시간에 대한 혜안(慧眼)은 감히 자신과 당문이 따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당문 말고도 이런 대단한 장인이 있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이리도 작은 물건을 이토록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이 구상해온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문이라는 세가는 다른 세가들에 비해 아직 쌓아온 역사가 짧았고 다른 문파들은 사용하지 않는 독이라는 무기 하나만 가지고 중원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당문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독은 세간에서 암습을 하는 살수들이나 쓰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기에 선조들은 대대로 독을 사용하는 당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독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잡아내고 인체에 독으로 사람을 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인체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여 의원으로서 아픈 이들을 돕는 협행(俠行)을 펼친 끝에 겨우 당문이 정파의 일원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문의 위치란 사파나 옛날옛적 마교의 인물들이나 쓸 법한 독물(毒物)을 쓰는 음습한 집단이란 오명(汚名)이 여전히 정파의 인원들 사이에서 남아 있음을 당기호는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당기호는 그게 자신이 지닌 실제 실력보다 훨씬 낮은 겨우 독장(毒將)이라는 수준의 별호밖에 얻지 못한 이유이자 당문의 다른 인사들이 저평가받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당문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악인을 잡는 일이라면 당문의 인사들이 발 벗고 나서고 돌아다녔지만 ‘당문은 약한 녀석들이 독으로 강한 척 하고 다니는 집단. 이라는 당문에 대한 무림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당문의 어른들은 당문을 강자들의 집단으로 드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 많은 모색을 해왔고 자신은 독을 하독하는 수단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기물(奇物)에 집착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본적으로 독이란 고체, 액체, 기체의 이 세가지 형태로 적에게 도달해야 하는데 기체는 다수의 하수를 상대로 좁은 곳에 투사할 때는 다른 어떤 수단보다도 효과적이나 소수의 고수를 상대로 쓰거나 공기의 순환이 원활한 공간에서 살포하는 데에는 그다지 적절하지 못한 형태였다.
두 번째로 액체의 형태는 음식이나 술에 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독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한다거나 음식이나 술의 맛을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만 쓸 수 있다면 암살을 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형태였다. 그러나, 이는 암살을 업으로 삼는 살수들의 방법이었기에 정파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해온 당문으로선 사용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써야 한다는 매우 높은 경각심을 갖고 몰래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당기호는 당문의 고수가 중원에서 인정받기 위해선 고체(固體)의 독을 사용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야만적이지만 눈으로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검이라든가 도라든가 하는 무기로 상대방을 단번에 때려잡는 그 가시성(可視性)을 더 높게 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독을 쓰는 당문 또한 독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데 있어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독을 사용함에 있어 화려한 방법 혹은 치명적인 방법으로 압도적으로 상대방을 살상하거나 제압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지금처럼 독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당문을 저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다.
‘이제 당문의 인사들이 독을 사용하는 것은 정파의 인사들이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당문이 지금보다 더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선 고체로 되어 있는 독을 얼마만큼 사람들의 눈에 있어 보이게 쓰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독이 상대방을 저지하는 데 있어 순식간에 효과를 내는 것과 고수들을 상대함에 있어 아직은 미진한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거리의 어린아이가 봐도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독을 바른 암기를 멋있고 강하게 날리는 방법. 그것이 지금 당기호와 당문의 일부 인사가 몰두하고 집착하고 있는 당면과제였다.
독의 성질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만든 고체의 독을 몸에 닿거나 몸 안에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지금의 한계를 벗어나 독으로 얼마든지 고수를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고체의 독을 상대방에게 닿거나 몸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효과적인 형태가 어떤 것일까 하여 다양한 암기를 개발하기 위해 장인들을 소집하여 암기를 만들어내곤 있지만 암기를 이루고 있는 소재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사람의 몸을 뚫고 독을 투약하기 위해선 끝이 뾰족하거나 날카로워야만 하는데 아무리 단단하다고 한다고 한들 돌은 깎아서 만들면 쉬이 부러지곤 했다. 그렇다고 나무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나무를 깎거나 갈아서 만든 암기는 독물과 반응해서 독성을 약화시키기도 했고 독이 발린 암기가 쉬이 무르기도 했으며 나무라는 소재가 독을 빨아들여 독을 사용하는 당문의 인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조차 있었다.
많고 많은 소재 중에 결국 남은 소재는 철(鐵). 쇠 하나 뿐이었다. 쇠는 기본적으로 녹슬기는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를 하지 않는 한 쉬이 무르지도 않으며 나름의 과정을 거치면 나무와 다르게 독과 반응하지 않았다. 쇠에 독을 묻혀 쓰는 것이 효과적이며 편리하다는 걸 안 당문의 인사들이 쓰는 도구들이 주로 쇠로 된 것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쇠라는 것은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어려운 것이었다. 금속(金屬)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며 그 세계의 깊고 깊은지 일반인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들에겐 그저 모두 똑같은 쇠겠지만 몰래 광산에서 나오는 많은 광석들로 여러 금속들을 제련해봤고 시험해본 당문은 알고 있었다. 쇠 중에는 가벼운 쇠가 있고 무거운 쇠가 있으며 어떤 쇠는 단단하고 어떤 쇠는 무르다는 것을.
당문이 찾는 것은 사람의 몸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적당히 단단하되 가벼운 쇠였다. 때에 따라 무겁고 무른 쇠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쇠라는 것은 나무나 돌에 비해 똑같은 부피일 때 어느 정도의 무게가 있는 것이었기에 쇠로 된 암기를 사람의 몸에 품고 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암기를 품고 다니려면 쇠로 된 암기들을 주렁주렁 달고다니며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이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방의 무기를 피하며 자신의 암기를 상대방에게 적중시켜야 하는 당문의 인사들로선 암기를 많이 몸에 숨길수록 암기들이 가지는 자체의 무게와 함께 암기가 사람의 몸과 함께 움직이며 발생시키는 무게 중심의 변화로 인해 움직임의 방해를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기를 조금만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당문의 인사들은 모두 하나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건 바로 “몸에 품고 다니는 암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였다. 비상상황일수록 가지고 있는 암기가 많다는 것은 대처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몸 안에 숨겨둔 비장의 한 수가 목숨을 살려준 적이 많다는 선대들의 기록은 이미 차고 넘쳤다.
당기호는 언제고 가볍고 튼튼한 쇠로 된 암기를 효과적으로 투척하는 법을 당문이 깨우치기만 한다면 오대세가에 당당히 당문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당기호에게 있어 자신이 보고 있는 기물(奇物)을 만든 장인은 당문을 오대세가로 도약시켜줄 귀인(貴人)이 틀림없었다.
“자네…아니…소협! 그냥 가지 말고 내게 이 귀물(貴物)을 만든 장인을 소개해주시게!”
“예?”
용운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한자락 깔고 보면서 아랫사람 취급하던 사람이 눈빛이 바뀌어선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달려드니 당황스러웠다.
“당소저! 독장 어르신을 좀 말려주시오.”
“미안해요. 제 할아버지시만 이럴 땐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이럴 땐 문주인 제 아버지도 못 말리시거든요.”
‘짱X냐?’
당추향은 내심 자신의 눈엔 똑똑하고 멋있어 보이기만 하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혀를 차고 고깝게 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아쉬운 소리를 하며 달려드니 좋기만 했다.
“아, 아니, 어르신…바지 벗겨집니다. 진정 좀 하십시오!”
‘이 놈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