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편하게 아무 때나 잠들고 싶을 때 잠들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눕고 싶을 때 누울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을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깨어나고 싶지 않을 때 깨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가.
개방도들에게 있어 자유를 박탈당한 인재개발원에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렇기에 개방도들은 훈련 초기엔 개방도로서 누려왔던 무한한 수준의 자유를 갈망했다. 하오문에서 운영한다는 인재개발원에선 경험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통제당했기 때문이었다. 잠드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밥 먹는 자세, 옷을 입는 방법. 심지어 걷고 말하는 법까지.
그런데 어느 순간 개방도들은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인재개발원에서의 하루하루에 적응하고 말았다. 기상나팔이 울리기 직전에 저절로 눈이 떠지기 시작했고, 침상에서 일어나 자기가 누운 자리를 정리하고 훈련복으로 환복을 마친 뒤 교정에 집합하는데 반각이 채 걸리지 않게 되었다. 이동 간에 약간의 담소를 나눌지언정 절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인재개발원에서 배운 제식(制式)이라는 방법을 따라 100명의 인원이 마치 하나처럼 움직이는 법을 배웠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서 올바르게 식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식당에 가면 준비된 식판에 밥,국, 3개의 반찬을 담을 수 있었는데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으로 정해져 있었다. 왁자지껄했던 거지답게 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어먹던 이들의 모습은 이제 온데 간데 없었다. 마치 명망 있는 집안의 자손처럼 정갈한 식사방법을 배운 개방도들은 식사를 한 뒤 자신이 사용한 식판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인재개발원에서의 6주가 지나자 방만하고 나태했던 거지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분이 인재개발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지났습니다.”
“악!”
“여러분이 보여주는 절도 있는 제식과 힘찬 함성을 통해 여러분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낍니다.”
“악!”
“여러분은 인재개발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하루를 보내는 법을 배웠고, 하루하루 흘리는 땀방울의 가치와 땀을 흘리고 먹는 밥의 맛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내고 맞이하는 잠이 얼마나 단지를 깨달았습니다.”
“악!”
처음에는 간결했던 악 소리는 훈시가 계속되며 눈물이 섞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정제되고 규칙적인 삶의 가치를 체험한 개방도들의 뇌리로 지난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주의 시간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의 퇴소를 명합니다. 모두, 안전하게 귀가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뵐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교관 님께 대하여 경례!”
“악.”
자신들이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지 짧은 시간에도 깊게 스며든 교정을 떠나는 개방도들이 그 시원하면서 섭섭한 이중적인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눈이 젖어 들어있을 때 교관으로서의 업무를 마친 나는 집무실에 있었다.
“갔나?”
“예, 용운님, 모두 보내줬습니다.”
“이거 6주간 괜히 돈 들여가며 입히고 먹고 재운 게 아닌가 모르겠어.”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거지들을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그런가? 앞으론 좀 정상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근데 걔들 돌아갈 때 어땠어? 개방도들이 이쪽으로 또 찾아올 것 같아? 와서 막 행패부리고?”
개방도들이 또 다시 쳐들어와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용운의 미소에 삼대주는 반응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라면 하오문 근처는커녕 하오문도들이 입는 옷이랑 비슷한 복장만 봐도 피해다닐 것 같습니다. 뭣보다 하오문에서 가르침을 받으면서 제 나름대로 사람처럼 사는 것에 대해 느낀 구석들도 있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그래? 삼대주 말대로 그렇게만 되면 다행이고. 뭐, 또 오면 이번엔 강도를 더 올려서 진행하는 걸로 하자고.”
“예.”
인재개발원 밖으로 나온 개방도들은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자유에 행복해서 각자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지만 야차같았던 조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고 손을 흔들어준 뒤 문을 닫았다.
“저희들, 이제… 분타로 돌아가는 겁니까?”
“그래.”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6주간 매일같이 꿈꿔왔던 순간인데.”
“나도 그렇다.”
“뭔가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간질간질합니다.”
“큭. 저 안에서 어디가 이상해졌나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신들의 말투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자각하지도 못한 개방도들은 주춤주춤 어색해하면서 하오문의 인재개발원 앞을 떠났다.
돌아온 사천 분타는 분명 하오문을 떠나올 때만 해도 사천의 개방도들에게 있어 꿈에도 그리운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였건만 6주라는 시간동안 변해버린 개방도들의 눈에는 어째선지 꼭 돼지우리처럼 느껴졌다.
“아…뭐냐…이거 왜 이렇게 더럽냐? 하아…완전 거지소굴이네.”
“그러게 말입니다…저희가 이런 거지같은 소굴에서 살았던 겁니까?”
“어우, 냄새야.”
장진수와 성원영이 나누는 대화에 모두가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모두의 마음 속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근데 개방은 거지들의 모임 맞잖습니까?”
“맞지… 맞는데… 아! 모르겠다. 일단은 각자 편하게 눕고 싶은 대로 눕고 내가 부르기 전까지 편하게 시간 보내라.”
“악!… 이게 아니지. 예.”
각자 자신이 원래 시간을 보내던 자리로 갔지만 막상 하오문에서 훈련 수료 기념으로 입혀준 깨끗한 옷을 더럽히면서 원래 그랬던 것처럼 땅바닥에 드러눕자니 개방도들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크흠.”
한명이 바닥에 훅하고 뒹굴기보다 엉거주춤 서 있다 쪼그려 앉자 다들 누가 그렇게 앉으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자연스럽게 오와 열을 맞추어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쪼그려 앉은 채로 갑자기 주어진 자유의 낯섦에 대한 주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분타주 장진수와 함께 특수단의 단장 성원영이 찾아왔다. 인재개발원에서 배운 것처럼 가장 오래된 짬의 개방도 한명이 대표로 벌떡 일어났다.
“충! 사천 분타 인원 열외 없이 휴식 중!”
“어, 그래. 쉬어.”
“쉬어!”
장진수와 성원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깔끔하고 절도 있는 경례에 자신들을 보던 교관과 조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거수경례로 화답하고 말았다. 순간 사천 분타 내에서 적막이 잠시 흐르고 머쓱해진 그들 사이로 어색한 미소가 머금어졌다.
“다른 게 아니라 그동안 우리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성 단주 님이 복귀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저, 저희들 복귀하는 겁니까?”
장진수의 말을 듣고 사천분타의 인원들과 자연스럽게 군데군데 섞여 있던 특수단의 인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수단이 딱히 사천 분타에서 할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여 상부에 전서구를 보내고 우리는 복귀를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섰다.”
“아…….”
맞는 말이었다. 50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특수단은 목적을 달성하면 복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6주간 훈련을 받는 바람에 중간 보고를 올리지도 못한 상황 아닌가. 본부에선 어쩌면 자신들의 실종(?)에 대해 심각한 논의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니 빨리 복귀하는 게 맞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특수단 인원들은 일다경 이내로 모두 각자 자신의 짐을 챙겨서 집합할 수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성원영과 장진수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나자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며 묘한 형제애같은 것이 생겨버린 특수단과 사천분타의 인원들의 사이에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배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걸세. 사천 분타의 형제들이여.”
“크흡, 특수단 여러분, 모두 보중(保重)하십시오. 저희 사천 분타의 개방도들도 특수단 형제들과 보낸 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우연히 만났지만 진정한 형제가 되었지. 우리들은 땀과 눈물을 함께 흘렸던 그대들을 잊지 않겠네.”
“모두들 특수단 형제들을 향해 경례!”
“악!”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짓고 이별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나호경만이 멀찍이 떨어져 유일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는 혼자 형제애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아주 지랄 났다. 누가 보면 같이 정마대전이라도 치르고 온줄 알겠네. 지들이 거지인지 아닌지 정신을 못 차려.”
특수단을 보내고 난 뒤 사천분타의 인원들은 결국 더러움을 버티지 못하고 일부는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이제는 바닥보다 익숙해진 침상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구하러 시장으로 떠났다.
“주인장, 거기 있는가?”
“아이구… 뉘신지?”
평소처럼 지저분하게 냄새를 풍기며 얼굴은 언제 씻었는지 꼬질꼬질 때가 끼고 머리는 떡이 져서 봉두난발을 한 모습이 아니라 멀끔하다 못해 어느 정파의 협사처럼 나타난 인원들이 개방도라는 걸 알아보지 못한 목재상은 친근하게 말을 거는 치의 행동에 자못 당황스러웠다.
분명 상인으로서 오랫동안 일하며 거래를 한 손님들은 잊어본 적 없는 눈썰미의 소유자인 자신에게 이토록 친근하게 말을 거는 이가 누구인지 머리를 아무리 뒤져봐도 떠오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사람. 날세. 사천분타주 장진수!”
“예? 누구요?”
목재상은 본인이 장진수라고 주장하는 이의 말에 그를 황급히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에서 자신이 누구라고 떠드는 이들의 목소리와 자신이 알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들의 행색과는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지 중의 상거지인 개방도들은 어디 가고…정파의 협사 나리처럼 하고 나타났단 말인가?’
평소 같았으면 상인인 자신을 겁박하고 자릿세나 갈취해갔을 것이 분명한 사천 분타주의 변신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지난 몇 주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아 사천 분타의 개방도들에 혹시 집단으로 어디 가서 죽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다른 상인들과 내심 기뻐했었는데 이렇게 이들이 다시 돌아오다니 또 힘든 시간이 시작될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까웠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침상을 만들려고 하는데 목재가 필요해서 말이야.”
“…목재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전엔 몰랐는데 보니까 우리 분타가 여기저기 낡은 곳도 많고 해서 고쳐야겠더라구.”
“아…….”
‘이 날강도같은 거지들이 어디 가서 뒈져버렸으면 했는데 몇 주 만에 돌아와선 이제는 돈만 걷어가는 게 아니라 장사 밑천인 나무까지 싹 뺏겠다는 소리를 하는 게로구나.’
대대로 물려받은 장사를 이대로 접는가 싶어 눈앞이 캄캄해진 상인이 현기증으로 어지러워진 머리를 되짚으며 비틀거리자 누군가 상인을 부축했다.
“오오,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소.”
“일하느라 고생이 많았나보구려. 사람이 이리도 기운이 없어서야. 원.”
“히익.”
뒤로 나자빠질 뻔한 자신을 붙잡아 준 사람이 사천분타주라는 사실에 목재상은 그 의도를 지레짐작하며 기절할 듯이 놀랐다. 원래의 사천분타주였다면 자신이 쓰러지건 말건 가만히 지켜볼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친절한 척 꾸미고선 아주 바닥까지 긁어갈 셈이로구나!’
“일단 오늘은 계약금으로 3할만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 7할은 내 며칠 뒤에 갚도록 하겠네. 부탁함세.”
이전처럼 물건을 걷어차며 윽박을 지르는 방법이 아니라 도리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부탁하는 모양새로 7할을 후려치는 사천분타의 새로운 악랄함(?)에 목재상은 분루(憤淚)를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어쩔 수 없다. 3할이라도 챙겨야겠구나. 주겠다는 거라도 챙겨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