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턱턱턱―
거지들은 그동안 들어본 적 없었던 둔탁한 저 신발 소리만 들어도 이제 경기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자발적으로 우리 인재개발원에 입소하여 이제는 어느덧 사람의 형상을 갖춘 여러분들이 이렇게 열화와 같은 의지를 보이니 그 의지를 존중하여 오늘도 여러분들의 재사회화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악!”
“본 교관은 올빼미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시작은 간단하게 6번 38회. 몇회?”
“38회!”
“마무리 구호는 생략합니다. 34회 시작.”
“악!”
개방도들이 하오문에서 제공한 복장을 입고 일사불란하고 능숙하게 6번 체조인 발벌려 뛰기를 하는 모습을 개방의 방주가 봤다면 어땠을까.
첫날 14번까지 있는 피투체조를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개방도들은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기껏 뜨신 밥을 주더니 공터로 나가라는 말에 터벅터벅 나올 때까지만 해도.
빨간색의 각진 모자를 쓴 이들이 자신들의 주변에 두 팔을 허리 뒤로 모은 자세로 절도 있게 설 때만 해도 혹시 또 자신들을 때릴 셈인가 싶었지만 이들의 손에 특별한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아 움찔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교관님, 나오십니다. 차렷!”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이가 나와서 큰 구령으로 외치자 빨간 모자를 쓴 이들이 일제히 착 소리를 내며 두 발을 붙였다.
분명 사람은 여럿이건만 발소리는 하나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서로 웅성거리던 개방도들은 눈치밥으로 먹고 살았던 거지 출신답게 분위기를 감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교관님께 대하여 경례!”
“악!”
흑모(黑帽)를 쓴 이와 마찬가지로 적모(赤帽)를 깊게 눌러 쓴 이들이 자신의 오른손을 머리쪽으로 올려 우렁찬 구호와 함께 특이한 자세로 인사를 하자 개방도들은 어느새 본능적으로 그들의 자세를 따라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단상 위에 올라온 흑모를 쓴 이와 마찬가지로 단상 아래에 있는 이도 흑모를 쓰고 있었는데 그게 소리를 짧고 굵게 외치자 자신들의 주변에 있던 적모들 사이에서 다시금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악!”
“편한 자세로 있을 수 있도록.”
단상 위에 있는 자는 어찌나 내공이 심후한지 그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건만 개방도들의 귓가에 그 목소리가 콕콕 박혀 들어왔다. 분명 편한 자세로 있으라길래 거지답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려고 하는 거지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서 옆에서 말리는 다른 거지들 덕분에 흑모를 쓴 남자가 말한 편한 자세라는 게 처음 적모들이 하고 있던 것처럼 두 손을 허리 뒤로 옮기고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는 것임을 알았다.
“자칭 정파라고 떠들었지만 여러분들은 사회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들이었다. 선량한 양민들을 괴롭히고 착취하여 그들로부터 돈을 갈취하거나 보호라는 이름 아래 다른 약한 거지들을 착취하여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을 팔아먹음으로써 얻은 이익을 통해 자신들의 영달을 누리며 살아왔다.”
“뭐, 뭐라고! 감히 우리가 누구인줄 알고!”
“개방을 모욕하지 말라!”
비록 거지이긴 하지만 정파라는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던 개방도들은 엄연히 흑모를 쓴 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사실이긴 했지만 제 3자를 통해 듣고 보니 이건 마두 놈들이나 사파 혹은 흑도 놈들하고 다를 바가 없는 말종들인지라 기분이 나빴다. 점혈 덕분에 내공도 묶여 있는데다 분명 상황이 함부로 소리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평소 해왔던 것처럼 성질을 부렸다.
“아직도 문(門) 밖의 때를 못 버리고 감히 성질을 부린 인원들 옆에 있는 조교들은 따로 불러내서 교화를 시킬 수 있도록. 실시.”
“실시!”
방금 전까지 장승처럼 서 있던 사내들이 소리친 인원들의 목 뒤를 잡고 오와 열을 이루고 있는 줄 밖으로 빠져나가선 허리 뒤춤에 있던 몽둥이를 꺼내 거지들이 길거리의 개를 잡을 때처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탓에 눈을 볼 순 없었지만 때리는 이들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어 근처에서 이를 몰래몰래 슬쩍 보고 있는 거지들은 자신이 맞는 것처럼 움찔움찔하면서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악, 잘못했습니다. 잘못해씁니다! 거지 살려!”
“뼈, 뼈 맞았습니다. 살려주세요!”
‘쥐 죽은 듯이 있어야겠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공터에서 먼지가 일어날 즈음 단상 위에서 그만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림과 적모들은 동시에 행동을 멈추고 몽둥이를 허리 뒤춤으로 꽂아 넣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자신이 받은 교육이 충분하다고 느낀 인원들은 제자리에 복귀하도록 하고, 부족하다고 느낀 인원들은 제자리에서 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돌려 돌려 말했지만 마른 날에 먼지 나게 두드려 맞은 개방도들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흑모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했다.
‘더 맞기 싫으면 알아서 입 다물고 자리로 오고, 더 맞고 싶으면 개겨봐.’
잠깐 사이에 지옥을 맞본 것처럼 살짝 눈이 풀린 동료들이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오자 다른 개방도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잘못 걸렸다.’
그때부터였다. 이전까지 매일 빌어먹고 살 때만 해도 하루가 이토록 길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건만 이들에게서 피투체조라는 걸 전수받고부터 일각, 일다경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무공을 익혀온 몸인데 고작 13초식으로 이루어진 피투체조를 익히는 것은 개방도들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번호를 불러주는 대로 피투체조를 실시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하나였다.
“이십!”
“아…….”
“누, 누구야!”
“멍청이!”
나호경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무공 수준이 얕은 탓에 쉬이 지친 탓인지 정신을 못 차리다가 마지막 구호를 크게 외쳐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지친 개방도들 사이에서 원성(怨聲)이 터져 나왔다.
‘젠장. 젠장. 젠장. 걸리면 안된다. 가만히 있어야지.’
“에이, 누구야~ 잘 좀 하지.”
나호경은 분명 본인이 소리를 냈음에도 자신은 그러지 않은 것처럼 주변을 향해 야유하며 가만히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지만 주변에 서 있었던 장진수와 성원영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를 박박 갈면서.
“조용, 본 교관은 여러분들을 위해 딱 20회만 하고 멈추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략하라는 마지막 구호가 나왔군요. 그대들이 끝내길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앞서 횟수의 두배인 40회 실시합니다. 몇회?”
“사~십회!”
“39회. 시작.”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반복구호로 인해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피투체조는 개방도들의 체력적 한계가 어디인지를 눈으로 확인할 것처럼 계속되었다.
“어느덧 밤이 되었군요.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교들은 인원들 잘 통솔해서 청결 유지한 상태로 휴식 취하게 할 수 있도록.”
“악!”
조교들의 인솔 하에 우물가에 간 개방도들은 적모들로부터 바가지 몇 개를 전달받았다.
“이걸 왜?”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았나? 씻어라.”
“예? 물이 너무 찹니다만.”
“두번 말하지 않겠다.”
적모들의 손이 슬슬 허리 뒤춤으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 모를리 없었던 개방도들은 서둘러 서로의 몸을 향해 물을 뿌려줬다. 적모를 쓴 조교들의 때가 안 빠졌다는 지적을 받은 개방도들은 제대로 닦일 때까지 물을 끼얹어야만 했다.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우물물을 뒤집어 쓴 탓에 씻는 시간이 끝났을 땐 지위 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들 오들오들 떠느라 이가 저절로 부딪혔다.
조교들의 통솔을 따라 이동한 공간에는 커다란 건물 안에 혼자 누우면 좋은 크기의 침상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1번부터 100번까지 자신의 번호대로 침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위에 갈아입을 복장과 젖은 물기를 닦을 수 있도록 수건을 준비해놨으니 모두 빠르게 물기를 닦아내고 환복합니다. 실시.”
“악!”
이제는 실시라는 말만 들어도 거지들의 입에서 실시라는 구호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빠릿빠릿한 자세로 움직인 거지들이 명령대로 뽀송뽀송한 상태의 옷을 갈아입자 조교들은 볼 일을 보고 싶은 인원들은 막사(幕舍)에 딸린 뒷간을 이용하면 된다고 전달한 뒤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갔, 갔습니다.”
“휴우……. 죽겠다.”
“아주 온 몸이 노곤노곤한게… 아고고고. 침상에 누우니 이게 천상이로구나.”
“휴우우우우우. 눕는다는 게 이토록 행복한 거였나?”
툭하면 누워서 지내는 개방도들은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는 침상에 눕자 하루 종일 교관과 조교의 명을 따라 섰다가 앉았다가 뛰었다가 하면서 쌓인 피로가 드디어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람인 것인지 각자 하루의 소감을 말하던 중 반복구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아, 아까 반복구호 외친 사람 누구입니까?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게. 앞쪽에서 계속 들리던데.”
“나도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 분명 앞줄에서 소리가 났다니까.”
“누구였냐?”
“아! 좀! 반복구호를 몇 번을 틀리는 건데? 누군데? 진짜 열외만 아니었으면 쌍욕했어.”
침상에 누워 저 멀리 흩어지는 의식을 붙잡지 않으려던 장진수와 성원영은 반복구호라는 말에 오장육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 침상에 일어나 걸터앉았다.
“나호경.”
“예, 예?”
아주 오랜만에 실컷 땀을 흘리고 찬물을 뒤집어 쓴 뒤 깨끗한 옷을 입은 덕분에 침상에 누워 한없이 침잠해가는 의식 속에서 기묘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던 나호경은 둘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 걸 느끼며 아주 뻣뻣하게 일어났다.
“너 할 말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
“부분타주, 할 말 있잖아?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야 할 텐데?”
“딸꾹.”
장진수와 성원영은 마치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생아처럼 침상에서 내려와 일어선 나호경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이 개자식이! 반복구호를 몇 번이나 쳐 해대는 거야. 너 때문에 마지막에 2000번 할 때 얼마나 개 같았는지 알아?”
“그래놓곤 자신이 안한 척 옆에 있는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들더라? 이 뱀 같은 새끼.”
“크으윽.”
두 사람의 말에 계속 틀렸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야 깨달은 다른 개방도들의 눈빛이 흉흉하게 바뀌었다. 슬슬 자신들의 분풀이를 하고자 개방도들이 걸음을 옮길 때쯤 잠겼던 막사의 문이 벌컥 열렸다.
“저녁을 주는 걸 깜빡해서 하루 종일 몸도 썼으니까 자기 전에 먹을 것 좀 챙겨줄까 했더니…아주 기운들이 넘치시네?”
“딸꾹.”
조교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쟁반에 가득 담은 채로 흑모를 쓴 교관의 뒤에 서 있었다.
“일정 변경합니다. 조교들은 야간 훈련 위해 인원 모두 집합시킬 수 있도록.”
개방도들과 조교들의 머리에 커다란 납덩이가 내리꽂히는 것만 같은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