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삼대주가 한 말에 나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할수록 영상으로 찍어보면 괜찮겠다 싶었다. 고수들을 대상으로 한 훈련 영상이라니 그야말로 천마TV 채널에 올릴 콘텐츠로 딱이지 않은가. 제목은 ‘천마수호대가 되는 길.’ 정도가 좋을 것 같았다.
“조회수가 좀 나오려나? 10억 포인트 고지를 빨리 채웠으면 좋겠는데.”
- 와, 이 형 아주 악마였네. 네이비씰 훈련법을 무림인한테 시키네?
- 사적으론 친하고 싶지만 공적으론 멀리 하고 싶은 타입.
- 마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추천 영상.
- 지린다. 지려.
- 교주형이 언제든지 포기해도 좋다면서 종 흔들라고 꼬시는데 왜케 속이 뒤틀리고 명치 한 대 세게 때려주고 싶지?
- 오히려 때린 사람 손이 부서질 거라는 게 학계의 점심.
- 근데 훈련 딱 끝나고 고생했다 소리 들으니까 훈련받는 사람들 표정 녹아내리는 거 보여?
- 저런 훈련 받고 이겨내면 나 같아도 자부심 장난 아닐 듯.
- 처음 보는 군복 느낌이긴 한데 형이 깔끔한 옷에 초승달 모양 휘장 딱 박아주면서 씨익 웃어주니까 진짜 보기 좋다. 내가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뭔가 뽕이 차오르는 느낌?
- 입가 쫘악 올라가면서 건치 보이면서 짓는 교주님 미소. 캬~ 저 미소는 저 사람들한텐 포상이지.
- 덜렁들이 이딴 소리하고 있으니까 좀 역한데?
- 그래서 싫어?
- 아니~ 좋아!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개좋아! 크크큭.
- 할리우드에 퍼스트 건이 있다면 한국 너튜브엔 우리 천마TV가 있다!
콘텐츠의 조회수가 미친 듯이 치솟아 올랐다. 한편의 영화처럼 담긴 영상의 에필로그에는 모든 훈련을 마치고 받은 초승달 휘장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의 모습부터 주말 휴식을 하며 웃통을 벗고 축구를 하는 상남자들의 영상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알알이 들어찬 근육에선 WFC 파이터들에게서나 느껴지던 실전적인 근육보다 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천마TV의 새 영상에 이토록 열광한 것은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연기자들이 찍은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날 것 느낌과 함께 진실성 있고 호소력 넘치는 요원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우와… 다시 봐도 영화네. 영화.”
김은혜 PD는 자신이 편집한 영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기깔나고 멋있는 영상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영상에 담아도 좋을 양질의 소스가 풍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잘차려진 밥상에서 적당히 괜찮다 싶은 것들만 골라서 넣기만 하면 되었다.
“으음~ 매실향 좋고. 이건 진짜 돈 받고 팔면 좋겠다. 아쉽다. 아쉬워.”
김은혜는 상남자들의 매력 넘치는 영상을 보며 채널 주인이 보내준 매실주 한잔을 마시자 천국이 뭐 별거 있나 싶었다.
“이게 해피타임이지.”
달짝지근한 매실주를 계속 홀짝이자 어느새 한병을 다 마신 김PD는 냉장고를 열며 갈등했다.
“아… 한 병 더 까? 어디 보자… 한 병, 두 병… 세병. 이제 세병 밖에 안 남았단 말이지.”
채널장이 맛이나 보라고 보내준 매실주는 전부 10병이었는데 홀짝홀짝 마셔대는 바람에 어느새 남은 건 세병 뿐이었다.
“참자. 오늘만 날이냐. 술은 이제 그만 마시고. 교주님이 보내주신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이나 해볼까나~?”
술자리에서 진탕 마신 뒤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초코 우유만큼이나 좋은 게 바로 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어우. 우리 천마 스튜디오가 최고다! 최고! 바로 이 맛 아입니까?”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사장이 직접 직원 복지를 위해 술도 담가서 보내주고 잘 챙겨먹으라면서 야식을 보내질 않나 아이스크림까지 수제로 만들어 주는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 하면 어느 누구도 일 가지고 압박을 주는 이가 없다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사를 한 이후 매달 따박따박 월급은 나오지만 사장 얼굴을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다.
“근데 맨날 혼자 일해서 마음은 편한데 또 혼자서만 일하니 좀 쓸쓸할지도?”
특히나 이번 영상은 사장님의 요구로 배경음악에 힘을 주고자 이번엔 OST 작업을 외주로 진행했다. 맨날 혼자 일하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 회의를 하고 어떤 컨셉의 음악을 고를지 선택하여 사장에게 보고를 올리고 컨펌을 받는 과정에서 김은혜는 때때로 고독함을 느꼈다.
“아니지. 아니지. 은혜야! 정신 차려! 너 방송국 생활을 벌써 잊은 거야? 쓸데없이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상사가 없는 게 어디야? 너 지금 너무 복에 겨워서 그래. 대기업 외거노비 생활따위 잊어버려!”
회사 밖으로 나와 마주하는 회사 밖의 세상은 잠깐 경험한 것이지만 너무도 차가웠다. 창업을 하려고 마음 먹고 알아본 동안 들은 이야기라곤 자영업은 3년 이내에 망할 확률이 90%가 넘는다거나 누가 뭘 하다 망했다거나 하는 이야기였고, 막상 창업을 해도 혼자 일하는 게 아닌 이상 경기의 흐름과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직원들 월급 걱정에 불면증이 생긴 사장님들도 봤었다.
지금의 자신은 직장인 누가 봐도 신의 직장에 있다 할 수 있었다. 일하는 건 프리랜서처럼 일하면서 상사의 얼굴을 보거나 회식을 해야 한다거나 시청률같은 실적의 압박 걱정 없이 다달이 통장에 꽂히는 월급만 쳐다보고 살면 되는 이런 직장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신이 은퇴하는 날까지 오래오래 지금의 직장이 유지가 되는 것이었다.
“사장님, 저는 항상 사장님이 만수무강하시옵고 무탈하기만 바라나이다. 부디 장생불사(長生不死)하세요.”
“이상하네.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다 자네가 업보를 쌓았으니 그렇겠지. 암 그렇고 말고.]
용운은 지옥주를 경험하며 마지막 주에 훌륭히 훈련을 마치고 퇴소한 부하들이 혹시라도 자신의 뒷담화를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내가 무슨 업보를 그렇게 쌓았다고 그래? 나처럼 건실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꼭 조폭 두목이 하는 소리같군.]
“어허. 조폭이라니? 그런 말을 들으면 듣는 교주님 마음이 좀 껄쩍찌근하다고. 내 밑에 있는 애들이 몇 명인데 고작 조폭을 들먹이는 거야?”
[교주님을 위해 앞으로 훈련받을 중원의 은월 요원들이 자네가 이러고 노는 꼬라지를 꼭 봐야 할텐데.]
“쩝.”
나는 괜히 비아와 상황극을 하다가 정색을 하는 비아에게 머쓱해져서 말을 돌렸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번엔 무려 60%나 건져서.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기대 안 했는데.”
[그거야 다진 양이 매일 지켜봐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만.]
“응?”
영상 촬영을 위해 다진이가 촬영장비를 들고 다닌 게 왜 퇴소자 비율의 감소와 영향이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남자란 동물은 자고로 여자 앞에선 멋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동물이지 않나? 아리따운 여성이 향기를 뿜어내며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떤 사내가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겠나? 그게 주모(主母)건 아니건 말이지.]
“아! 그, 그런 건가?”
제 3자의 눈으로 봐도 확실히 다진이가 예쁘긴 했다. 비아의 말을 들으니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헬스장에서 예쁜 여자가 보이면 괜스레 무게를 올리고 아무렇지 않아하던 과거의 경험이.
‘생각하고 보니까 이것도 흑역사라고 해야 되나?’
헬스장에 오는 예쁜 여성들 앞에서 아무리 용을 써본다 한들 자신의 작고 미약한 근육은 트레이너의 근육 앞에서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다르지.’
선문객잔 사천점 개업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가운데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지옥주를 거친 악마들이 입맛을 다시면서 오길 기다렸던 그날이.
“하오문주 나와!”
“감히 대(大)개방을 건드린 놈들이 여기 있단고 들었다! 니 놈들이 그렇게 개방도들을 못 살게 굴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저번에 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더 많은 숫자로.
“에휴, 냄새야. 이 거지 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또 찾아왔느냐! 저번에 맞은 매가 부족했더냐? 쯧쯧.”
“뭐, 뭐! 인마! 뭐가 어째?”
“좀 씻고 다니라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이 잔뜩 져선 너네 부모님들은 니들이 이러고 다니는 거 알고 있냐?”
삼대주는 용운에게 배운 대로 상대 부모의 안부를 먼저 물으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자신은 이게 먹힐까 싶었으나 분명 교주님께선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백이면 백 열화와 같은 반응으로 화답한다고 했었다.
“이 개자식이! 뭐가 어쩌고 어째?”
‘분명 내 생각엔 아닐 거 같다고 했는데… 에휴. 역시나네.’
“얘들아, 쳐라!”
“거지들이라 그런지 대화하는 예의도 모르네. 못 배운 티가 이런 건가?”
아마 지금의 삼대주가 한 대응을 용운이 직접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따로 없구나. 이제 삼대주는 하산해서 부모 찾는 게임을 해도 되겠다!”라고.
“너, 너! 곰같이 덩치만 큰 놈이! 넌 이 사천분타주 장진수가 책임지고 무릎 꿇고 빌게 해주겠다! 단장님, 부디 저 놈은 꼭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시게. 저 주둥이가 잠시 후에도 나불댈지 궁금하구만.”
장진수는 자신이 데려온 개방의 특수단을 믿었다. 특별히 그동안 모은 비자금까지 본부에 상납해서 모셔온 이들이 아닌가. 중원 어디든 특수단이 파견되면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해결되었다.
“거지 새끼들이 이번엔 많이도 찾아왔네. 옆에 데리고 온 거지들은 또 누구래? 거지들은 바퀴벌레처럼 알아서 증식하고 그러냐? 저번에 못 본 얼굴들이 많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 니 놈의 주둥이가 자유롭기가 거지보다 더 자유롭구나. 이 몸은 중원에서 못 들어본 적이 없는 성원영(猩願英)이라는 분이시다. 오늘 니 놈은 날 만나게 된 걸 니 인생에 있어 평생의 영광이 될 것이다. 내일부턴 누워서 죽만 받아먹으며 오늘 이 몸을 만나게 된 걸 후회하게 해주마!”
“오호라. 생긴 건 꼭 성성이같은 녀석이 사람의 말을 잘도 하는구나.”
전투를 하기에 앞서 부하들을 불러 모으는 동안 삼대주가 개방의 거지들을 대상으로 떠드는 모습을 본 은월의 요원들은 삼대주의 화려한 말솜씨에 속삭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대주님, 무공만 센 줄 알았는데 입담은 더 세시네.”
“내가 저런 말 들었으면 뒷목 잡고 벌써 쓰러졌다.”
사천분타를 돕기 위해 특별히 파견된 특수단의 단주 성원영은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까지 입을 놀리는 놈을 본 적이 없었기에 기가 찼다. 거지들 중에선 그래도 발군의 주둥이 놀림을 자랑하는 자신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뭐, 뭣! 네 이놈! 지금 이 몸을 보고 무어라고 했느냐!”
“감히! 장완봉(長腕棒) 성원영 님을 그따위로 말하다니!”
“어우, 닦고 다니라고 좀. 입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귀를 똑바로 안 파고 다니니까 누가 말을 해도 못 알아먹는 거 아니야. 좀 씻어라, 거지들아! 그리고 누가 지었는지 그 별호 잘 지었네. 긴팔 성성이.”
“맵다. 매워.”
“워… 저 사람 지금 너무 뼈아픈 말 들어서 최소 왼쪽 팔뚝 뼈는 크게 부러졌겠다. 우리 대주님은 말에 뼈가 있는 게 아니라 몽둥이가 실린 것 같아.”
삼대주의 뒤에서 나온 하오문도들의 목소리는 절정고수인 성원영의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개방의 동도들아! 오늘 저 놈들에게 개방의 몽둥이가 매서움을 알려줘라.”
“예!”
분명 삼대주는 성원영에게 말했건만 자신이 모욕당한 것처럼 씩씩 콧김을 내뿜으며 개방의 거지들이 달려들자 삼대주도 슬슬 발걸음을 떼며 은월의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문주님께서 이번에 너희들 다치면 아예 지옥주와 특별훈련을 함께 진행한다고 하시더라.”
“악!”
“악악!”
“죽여!”
왼쪽 가슴에 초승달 무늬의 휘장이 달려 있는 은월의 요원들의 입에선 마치 지옥의 지저에서 뿜어나오는 것만 같은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어허, 죽이면 안돼. 얘들아, 적당히 손맛만 보는 거다. 알았지?”
삼대주가 한 말에 방금 전까지 약간 풀어져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하오문도들을 향해 달려나가던 개방의 거지들의 앞에 악악 소리만 외쳐대는 미친 마귀들이 소환되었다.
“뭐, 뭐야. 저거… 무서워.”
은월의 요원들을 좌우에 끼고 가운데에 선 삼대주는 요원들과 진형을 짜서 뛰어나가며 성원영에게 말했다.
“어서 와. 긴팔 원숭이, 하오문은 처음이지?”
“오냐. 나의 쇠몽둥이를 마주하고도 계속 그렇게 떠들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