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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재벌이 되고 싶다-111화 (111/132)

111화

“제 팔이 잘리게 된 계기도 젊은 날의 혈기에 취해서 같은 정파들을 돕지 않고 황실의 개가 되어버린 무림맹의 행태와 무림맹주에 대해 장문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었죠.”

“그게 진짜입니까? 마두와의 전투에서 잘렸다거나 한 게 아니라?”

“예. 제 팔을 이렇게 만든 건 지금의 무림맹주인 류건석(劉建錫)이 맞습니다. 허허실실 웃던 그 놈의 칼에 독이 발려있었어요.”

“무림맹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치사하게 암수(暗數)를 사용하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사태는 사람들에게 이 비열한 행위에 대해 알리지 않았습니까?”

“화 대협은 어쩔 땐 모든 것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참으로 무림에 무지한 사람 같습니다.”

“제가요?”

“무림에선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누군가를 속인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나쁜 것도 맞지만 속임수에 넘어간 이는 멍청한 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어찌하여 속인 사람이 아니라 속은 사람을 멍청하다고 한단 말입니까?”

“훗.”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차를 마신 뒤 멸마사태는 왜 자신이 멍청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줬다.

“전 사람들 앞에서 류건석을 황제의 개라고 하여 그의 체면을 망가뜨렸습니다. 당연히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 죽이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제게 주고 싶었겠죠. 그렇기에 저는 그가 비열한 수를 쓸 거란 걸 예상했어야 했습니다. 애초에 결투 전에 전 그가 정정당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목숨과도 같은 명예를 건 대결에서 몰래 상대방이 독을 썼을지라도 이긴 순간 패자(敗者)의 말은 어떠한 무게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그런… 하지만 정파인들끼리 하는 공정해야 마땅한 대결에서 독을 쓴 행위는 너무 비열하지 않습니까? 다른 정파인들에게 알리시지 그랬어요.”

“화 대협의 말대로 독을 쓰는 건 비열한 행위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걸 들춰내는 건 오로지 이긴 뒤에만 가능한 겁니다. 승자가 패자의 암수를 들추면 정의로운 행위가 되지만 반대가 되면 패자의 구질구질한 변명에 불과해질 뿐입니다. 화 대협께서 진정 정정당당한 협사(俠士)가 되고 싶다면 저처럼 패하지 말고 항상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강해져야 하겠죠. 무림에서 정의는 약자는 가질 수 없는 강자만의 것입니다. 약자는 정의를 외칠 권리조차 없습니다.”

나는 너무도 쓴웃음을 지으며 토로하듯 내뱉는 멸마사태의 말에 담긴 비논리적인 부분을 지적하여 그녀의 말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그녀와의 논쟁에서 틀렸음을 밝혀낸다고 한들 그녀의 잘린 팔은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고, 그녀를 존중하는 자세도 아니었다. 나는 진실을 밝히고 참담함을 느끼고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침묵을 유지한 채 앉아 있다 아미파를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비아는 멸마사태를 만나고 푹 가라앉아 있는 나에게 물었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게 말이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개방과의 불화부터 시작해서 멸마사태로부터 들은 모든 이야기를 비아에게 전해 주었다.

[흐음, 자네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

“그래! 약자에겐 정의를 외칠 권리조차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이건 다 무림이 아직 너무나 미개해서 그런 거야. 이 세상이 좀 더 발전한 세상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말도 안돼!”

[아니. 난 그녀의 말이 시대에 상관없이 어느 세상에서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네. 정확히 말하면 약자에겐 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힘이 없는 거지.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약자의 말에 힘이 없는 건 변함이 없다네. 자네는 이 세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나?]

“난 그렇게 생각해. 기껏해야 대명률(大明律)처럼 엉성한 법을 가진 명나라와 다르게 대한민국의 헌법은 분명히 명시하고 있어.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이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규정하는 세상이야말로 제대로 된 세상 아니야?”

비아는 이런 말을 하는 내게 아직도 이토록 순진한 구석이 있는 걸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후… 진정으로 그리 믿나? 자네의 세상에선 빈부격차라든가 직업이라든가 하는 것과 상관없이 법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나? 부자의 목숨값과 빈자의 목숨값은 같았나? 아니!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그렇지 않을 걸세. 명예만 해도 그렇지. 가난한 자의 명예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지만 유명세를 가진 자, 권력을 지닌 자, 부를 거머쥔 자의 명예는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겠지. 용운, 자네가 착각하는 것과 다르게 약자가 가진 국민으로서 지니는 권리는 온전히 그가 가진 권리인 게 아니라 자네가 속해있던 집단에서 절대적 강자의 위치를 지닌 국가가 보증하고 나눠준 걸세. 국가라는 강자가 백그라운드가 되어 주지 않았다면 개인에 불과한 약자는 발언권조차 가질 수 없었을 거야.]

“그, 그건…….”

[내가 경험한 어떤 발전한 세상에서도 전혀 공정하지 않은 법이 공정하다고 우기면서 약자든 강자든 모든 이들을 분별없이 같은 링 위에 세워놓고 경쟁을 하게 만들고 있었어.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부자가 고른 기술자를 빈자를 위해 국가가 공정한 척하기 위해서 저렴한 값으로 골라준 기술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을 것 같나? 아니지. 아닐 거야.]

“…….”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은 어디에도 없어. 세련되던, 거칠던 모두 대충 그런 척 위장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 그래야 약자들이 강자의 말을 따르니까. 어릴 적부터 막대한 부를 가진 부모로부터 풍족한 물질적 지원과 정신적 지지를 받고 큰 아이와 부모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지원은커녕 겨우 국가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수준의 교육만 받고 자란 아이가 진정으로 시험이라는 제도에서 공정하게 대등한 상태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믿나? 그건 어른과 두 손을 묶은 아이를 링 위에 올려놓고 대결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행위나 마찬가지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말하지. 그들의 대결이 공정하다고. 현실은 결코 자네의 세상에 존재하는 복싱이라는 경기처럼 절대적으로 체급을 구분해놓고 같은 체급끼리만 대결하게 하지 않아. 모두에게 주어진 링 위에서 똑같은 규칙을 놓고 플라이급인 약자가 헤비급 강자하고도 붙어도 공평했다고 말하는 게 현실이지.]

비아의 말은 내가 잊고 있었던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똑같이 대학을 다녀도 누군가는 풍족한 용돈을 받으며 도서관에서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때 누군가는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학자금대출을 갚아나가며 힘겹게 학교를 다녀야 했다. 물론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처럼 집안의 지원을 받는 아이들 중에서도 학점에 열심히 아닌 친구들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풍족한 토끼들이 부모를 믿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학자금을 갚아가며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북이 같은 친구들이 대학을 마치는 동안 부지런히 노력했다고 한들 부지런한 토끼들을 따라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질 때 거북이들은 기껏해야 알바들에 대한 경험과 학점 그리고 토익이라든가 자격증같은 몇 개의 스펙이 전부였지만 토끼들은 방학기간에도 알바를 해야하는 거북이들과 다르게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인턴십을 하기도 하고 해외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다. 거북이들이 가진 몇 개의 스펙들 또한 토끼들은 이미 갖춘 채로.

마침내 취업 시즌이 되었을 때 막강한 스펙을 지닌 토끼들과의 경쟁에서 거북이들이 기업에 뽑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토끼들에겐 거북이는 로또 같은 운으로라도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다른 무기가 있었다. 토끼가 성장할 수 있게 지지를 해줬던 부모라는 백그라운드는 자신이 아는 고위직 인사에게 청탁을 넣어 주기도 했다. 지연과 뇌물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 백그라운드 덕분에 토끼들은 간단하게 서류심사를 통과하기도 하고 면접에서 만점을 받아 손쉽게 좋은 일자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설령 나중에 그 부정한 사실이 밝혀진다고 한들 그들과 카르텔을 짠 이들은 취업청탁을 이유로 심각한 법적 처분을 내린 적이 없었다.

“맞아. 내가 있던 세상에도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어…….”

거북이들이 설령 비좁은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취직을 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토끼들은 앞서 나갔다. 토끼들의 부모가 물려준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증식 속도는 거북이들이 죽을 때까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였다.

코인이라든가 주식이라든가 갭투자라든가 하는 도박에 빠지는 젊은 거북이들이 등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토끼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란 지독한 절망감. 하지만 도박은 하이 리턴과 함께 하이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다.

그나마도 상대적으로 정보량에서 압도하는 기관, 검은 머리 외국인들 혹은 내부자들과 벌이는 제로섬 게임에서 그저 운에 기대거나 부족한 지식을 가진 거북이들이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정한 척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비아의 말대로 거북이들이 대부분 실패했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이제 알겠나? 강자가 만든 판 위에서 싸우는 한 약자는 엄청난 운이 따르거나 개인이 갖고 태어나 갈고 닦은 능력이 압도적인 정도가 아니라면 이길 수가 없어. 약자들에겐 자신조차 지킬 힘이 없거든. 그래서 힘이 없다는 건 결과적으로 권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권리를 주장하는 건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일월신교가 왜 마교가 되어 산에 처박혀야만 했나?]

“정파와의 대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패자는 약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래, 지금 자네가 왜 정파의 눈을 피해 이렇게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건가? 왜 개방과의 다툼에 신경이 곤두섰지?]

“정파가 다시 모여 예전에 했다는 것처럼 신교를 밟으려고 들까 봐. 그리고 내가 하나하나 공들여서 키운 신교와 신교의 사람들을 다 없애버릴 것 같아서.”

[그건 신교가 9파1방과 견주었을 때 약하기 때문이지?]

“하나 하나와 붙으면 지금이라도 신교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자네는 지금 겁을 먹은 거야. 가진 게 늘어날수록 그 공포는 커질 걸세. 잃고 싶지 않을 테니. 근데 언제까지 지금처럼 정파의 눈을 피해 숨길 수 있을까? 그리고 자네는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비아의 말은 두이수였던 이전에 용운이 진정으로 바랐고 지금도 내 마음 구석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한 가지 욕망을 자극했다.

“그들을 모두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 강해지면 그땐 나도 참지 않겠지.”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가 잘나면 그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며 1000배가 되면 그 밑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되길 원한다.』고

정파에 아무런 원한이 없는 나로선 정파인들이 신교의 노예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하고 헐뜯을지언정 신교인들의 앞에선 함부로 그 입을 놀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후…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어. 그럼 일단 지금 잡아들인 개방의 고수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다시 풀어줘?”

[풀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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