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하오문의 주요 고객들은 가난하거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거나 하는 하층민들부터 기녀들 그리고 점소이들이나 마부 등 다양했는데 하오문은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에겐 정액제처럼 일정 금액을 주기적으로 받아 그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들로부터 대가를 치르고 얻은 1차 첩보를 가공하여 각 지역에 있는 지부에서 이를 정리하고 다시 상부로 올려 소집한 자료들을 가지고 현실에 쓸모가 있을 정보를 만들어내는 단체로 변모했다. 처음엔 정보를 가져오면 판다는 단순한 정보상에 불과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으나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오문의 정보전략방식은 현대에서 개인들의 정보를 모아 빅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마케팅 혹은 전략수립에 사용하거나 AI를 성장시키는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모티브로 하여 하오문을 통해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수집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이쪽의 개방은 정보를 모아 딱히 정파에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공유하는 문파가 아니었다. 삼대주를 통해 정리된 정보에 따르면 각 지역별로 존재하는 거지들의 모임을 기반으로 한 다단계식 네트워크 단체가 바로 개방이었다. 마치 대리, 차장, 과장, 부장과 같은 직급을 지닌 개방의 거지들은 상위의 거지에 의해 하위 직급의 거지가 통제를 받고 개방은 정식으로 가입을 한 거지들에 한해 그 지역에서의 거지 활동을 허가해주는 단체였다.
지역마다 존재하는 분파 내에서도 여러 계파가 존재하는데 거지들의 계파는 그 성격을 크게 세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었다. 어떤 분파는 구걸과 앵벌이를 전문으로 하는가 하면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염가로 성매매를 제공하는 분파도 있었고 가게들을 대상으로 하여 영업방해라든가 진상을 무기로 협박을 하여 일종의 자릿세를 받는 깡패 같은 분파도 있었다.
‘무협지에선 개방의 거지들이 정의롭고 협의를 숭상한다고 했는데 현실은 아니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아무 것도 가진 거 없는 거지들의 집단이 협의를 숭상하기란 어렵겠지.’
삼대주의 보고를 듣고 있자니 이딴 것들이 어떻게 정파의 한자리를 차지한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오문에서 개인들이 얻은 첩보라든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를 돈을 주고 사줬더니 개방의 거지들도 자기들이 길거리를 오가면서 알아낸 정보를 가져와서 하오문에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거지들이 알아내온 첩보들이란 예를 들면 어느 가게의 음식점이 맛있다든가 어느 음식점은 상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다든가 하는 것처럼 자기들이 길거리에서 보거나 주워들은 것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며칠 전 거지 하나가 기녀 하나가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우연히 기녀가 받은 이야기의 대가가 자신이 받은 푼돈보다 더 많다는 걸 보고서 이를 거지들에게 소문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왜 자신들에게 주는 삯과 기녀들이 주는 삯이 다르냐면서 단체로 와서 성질을 내면서 난장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런 꼬라지를 가만히 봤겠습니까? 예전에 흑도 놈들 패주던 느낌으로 흠씬 두들겨 패서 보냈지요. 그랬더니 이번엔 나름 개방에서 한 수가 있는 놈들이 하오문 건물 앞에 몰려왔더군요. 뭐 그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 이거 아주 흑도 패거리랑 다를 바 없는 놈들이구만.”
거지들의 특성상 개방도 대충 쪽수로 밀어붙여 다구리(?)를 놓는 것이 주된 싸움방법이었지만 은월은 내가 직접 집단전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대의 전경이나 의경이 시위대를 상대했던 방법을 가르쳤기에 엉성한 집단전을 펼치는 거지무리를 때려잡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죽은 거지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쪽도 특별히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요원도 없구요.”
“암……그러라고 일부러 방패술이랑 봉법을 가르쳐준 거니까. 잘했어. 사람을 함부로 죽여선 안되는 거지. 우린 되도록 불살(不殺)의 원칙을 지키도록 하자구.”
간단하게 이야기가 정리되는 듯해서 괜히 부랴부랴 왔나 싶었는데 회의실 한쪽에 있던 한 요원이 손을 들고 한 말에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교주님? 이번에 잡아들인 거지들은 어떻게 합니까? 삼대주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광산에 보내면 됩니까?”
“응? 거지들을…잡아놨다고? 개방의 거지들을?”
부디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잘못 들은 것이길 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삼대주의 대답은 자랑스러움과 평온함을 담고 있었다.
“예. 오늘 쳐들어왔던 놈들은 싹수가 노란 것 같아 일단 싹 다 잡아 들여놨습니다. 조만간 내공을 폐하는 작업을 거쳐 광산에 보낼까 합니다.”
‘슬픈 예감은 확인하고 싶지 않아~ 그냥 패주고 보내면 될 일이지…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개방의 거지들을 잡아놨다 이거지?”
“거지 놈들이 하는 짓이 흑도 놈들이랑 하나 다를 게 없어서 제가 그 자리에서 모두 잡아들이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도망친 놈들도 있고 이전에 처들어왔던 거지들도 있는데 조만간 요원들 풀어서 싹 일망타진한 뒤 예전처럼 광산으로 보낼까 하는 중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위구르 지역에 도로를 까느라 석회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석회석을 캐는 광산에 이번에 잡은 거지들로 부족한 인력을 채워줄까 합니다.”
“아니……. 넌 왜 그런 걸 내 허락도 안 받고 진행하니…….”
“분명 예전엔 제대로 땀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는 불한당(不汗黨)같은 놈들은 싹 다 잡아들이라고…….”
“하! 얘들은 그때처럼 흑도가 아니라 개방이잖아. 9파 1방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개방.”
“그래 봐야 본질은 거지단체 아닙니까?”
“맞지. 개방이 거지 단체인 건 맞는데… 그래도 다루는 방법이 같으면 되겠어?”
너무도 순진하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는 표정을 삼대주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놔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후……. 점창이라든가 청성이라든가 다른 정파 반응은 어떤데?”
“별 반응 없습니다.”
“진짜? 아무 반응이 없다고? 확인해봤어?”
“저희들도 혹시나 같은 정파라고 또 떼거지로 몰려오지 않나 싶어서 동향을 파악했는데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9파1방끼리… 같은 정파가 얻어 터졌다는데 이렇게 반응이 없다고? 같은 정파끼리 그 정도로 의리가 없나?’
“일단 지금 잡아들인 거지들 말고 다른 거지들 추가로 잡아들이는 건 보류. ”
“보류… 입니까?”
“벌써부터 정파들의 눈에 띄는 것도 좀 그런데 분파긴 하지만 개방이랑 척을 지는 것도 부족해서 본산이 사천에 있는 다른 정파들하고까지 불편해지는 건 곤란해. 좀 더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미파로 가서 멸마사태에게 은근슬쩍 이야기를 흘리고 조언을 듣고 판단해야 할 것 같았다.
“아미파에 갔다 오고 나서 어떻게 할지 지시를 내릴 테니까 그때까진 개방에 대해서 진행하려던 계획 모두 중지. 내공 폐하는 것도 중지.”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멸마사태의 말씀은 9파 1방끼리 같은 정파의 대표로 묶여 있긴 하지만 외부의 인식과 다르게 그렇게까지 긴밀한 관계는 아니라 이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화 대협. 분명 송나라 대라든가 원나라 대와 같이 과거에는 그런 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마대전 이후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9파 1방끼리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힘들었다고 해도 같은 사천에 있는 문파들인 점창과 청성이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는 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물론 그들의 문파와 아미파가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라는 차이도 있겠지만 말이죠.”
9파1방은 끈끈한 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정관념하고 다른 멸마사태의 설명은 머리론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에 와닿진 않았다.
“무림맹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따로 따로입니까? 무림맹주가 이런 상황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무림맹주라… 화 대협. 화 대협이 생각하는 정파들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는 얼추 짐작이 갑니다만 그 무림맹주가 바로 정파들의 결속을 가장 싫어하고 이합집산을 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예? 그게 말이 됩니까? 무림맹주는 정파들의 협의에 의해 선출되는 선출직이잖습니까? 그런 사람이 무림의 결속을 싫어해요?”
“외부에는 아직까지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상은 추대라기보단 세습에 가까운 형태로 변질되었지요. 정파가 힘을 합쳐 무찔러야 하는 마교가 사라진 뒤로 무림맹주와 무림맹은 정파들에게 딱히 명예도, 실리도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누구도 무림맹주가 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필이면 황실에서 모두가 외면해버린 무림맹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인력도, 자금도 황실에서 나온 이후로 무림맹주는 황제의 명을 듣는 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선 사해의 동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황제의 입김에 따라 무림맹주가 바뀌었습니다. 정파들의 입장에선 이미 더럽혀진 무림맹주의 자리 따위 아무도 욕심내지 않구요. 지금의 무림맹주는 우리들에겐 개자식일 뿐입니다.”
“그, 그런.”
현 무림맹과 무림맹주에 대해 설명하는 멸마사태의 얼굴엔 짙은 회의감과 경멸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사실들이 외부로 흘러나오지 않았던 겁니까?”
“정파들의 협의체였던 무림맹이 황실의 개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모두 체면의 문제였지요.”
“고작 체… 면 때문입니까? 그게 사실인데도요?”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해도 입 밖에 내서 누군가의 체면을 깎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중원인들 특유의 체면 문화는 내가 생각하는 체면(體面)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체면을 중원인들은 면자(面子)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체면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한국인들의 체면이 남들 앞에서 떳떳하기 위한 것으로서 외부에서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지만 내 스스로 남들 앞에 당당할 수 있는 내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반면 중원인들의 면자는 오로지 외부에서 날 바라보는 시각만이 중요하다.
음식을 시킬 때도 중원인들은 남들이 보는 것이기에 음식값을 내기로 한 사람이 같이 온 인원들이 전부 먹을 수 없을 만큼 탁자를 가득 채우고도 계속 음식을 가져달라는 주문을 하곤 했다. 본인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덕분에 음식점 매출 올리긴 쉬웠지. 적당히 그들의 자존심만 위해주면 되니까.’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속에 입은 속옷이 누더기이거나 너덜너덜한 걸레일지언정 겉에 입은 옷만 멀쩡하면 되는 것이다. 길을 걸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 속옷을 보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것이다. 속에선 쉬어 터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속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건 괜찮다.
이 같은 중원인들의 체면 문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속담이 바로 ‘갑자기 집에 불이 나는 것은 안 무서워도, 내가 넘어지는 것은 무섭다’라는 것이다. 집에 불이 나는 것은 체면이 상하지 않지만 넘어져서 옷이 더러워지면 그것은 남들 앞에서 나의 체면이 상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 기준으로 보기엔 집에 불이 타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중원인들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중원인들은 남들 앞에서 잘못을 지적받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본인이 잘못을 한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와는 별개로 사람들 앞에서 잘못을 지적한 건 본인의 체면을 깎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잘못을 지적받는 걸 가장 치욕스러워하고 자신의 잘못을 사람들 앞에서 떠든 이를 증오한다. 그래서 중원인들의 잘못을 지적할 땐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해야 한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듣는 잘못에 대한 지적은 사람들 앞에서 듣는 것보다 그 정도가 심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들이 안 보니까.
같은 이유로 중원인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본인들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미안하다. 잘못했다 와 같은 표현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울 때 초급자들은 미안하다는 의미로 ‘뚜이부치(对不起)’를 배우지만 이 중국어가 사실 현실에선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 죽은 중국어인 이유도 그래서이다. 중국인들은 정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선 한국인들이 배운 뚜이부치가 아니라 안타깝다, 쑥스럽다, 곤란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부하오이스(不好意思)’라는 애매하고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내겐 이런 식으로 중원인들의 체면 문화와 관련된 일들을 경험하게 될 때면 납득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누군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무림맹주가 황실의 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무림맹주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멸마사태의 설명을 듣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멸마사태가 한마디를 더 하기 전까지.